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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은 요셉
2023년 11월 19일 / 추수감사절 / 막 4:20, 눅 8:15, 창 45:4-8
막 4:20 / 좋은 땅에 씨가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사람 즉 그 마음속에 심어진 씨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눅 8:15 /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나갈 뿐 아니라(인내로 결실)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창 45:5-15 / 형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거지요. 우리 식구들 생명을 구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내신 것 아닙니까? 6) 이 땅에 기근이 든지 올해로 2년째입니다. 앞으로도 5년은 더 기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더구나 추수하는 것도 아예 바라지도 못할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또 형님들의 아이들까지 목숨을 구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 애굽으로 보내셨지요.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보내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을 내리신 것인가요? 8) 나를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밑에서 일하는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지요. 그래서 나는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내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 자신이 원하는 만큼 소출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했지만 병충해와 홍수 때문에 농사가 제대로 안 되었다. 가족을 부양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농부는 완벽한 농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햇볕도 넉넉하게 주시고, 산들 바람도 보내 주십시오. 비는 꼭 알맞은 만큼만 주시고, 해충은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서 올해 꼭 풍년이 들게 해주십시오.’ 농부의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밀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자 농부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밀밭에 들어가 있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밀 이삭을 비벼 보았지만 안에는 거의 부실하기만 한 쭉정이 뿐이었다. 너무나 순탄한 날씨가 계속 되다보니 키는 쑤욱 자랐지만 제대로 여물지 못한 것이다. 그제야 바람과 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참뜻을 알았다.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와 인간을 하나님 자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의도를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 55:8-9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곧 너희를 해방시키겠다. 나의 계획은 너희가 생각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너희들이 보기에 가능한 것들만이 아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과 같이 나의 생각도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보다 높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너희가 가능하게 보는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높다.)
욥기 11:7-8에 보면, 욥의 친구 소발이 욥에게 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그래, 자네가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전능하신 분이 얼마나 힘 있으신 분인지 그걸 알 수 있겠느냔 말일세. 하늘보다도 더 높으신 분을 자네가 어찌하겠단 말인가? 스올보다도 더 깊으신 분을 자네가 어찌 알겠는가?)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깨닫기에 너무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다는 것은, 그 깨닫는 것만큼,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도는 물론 지혜로움의 척도가 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삶은 지혜롭고, 아름답고 값진 것이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에 충실한 알곡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게 된다.
인간 삶에서의 불평과 원망, 비난과 비판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는 감사와 찬양의 생활이 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을 때에는 시련과 고통도 능히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 중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데,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확신하며 인생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중에 요셉을 예로 보자.
요셉은 분명히 길가밭을 벗어나 돌짝밭과 가시덤불 단계를 넘어 좋은 땅이라는 옥토에 도달했다.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연결해 볼 때 은혜가 된다. 한 알의 밀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셉이라는 옥토에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떨어지매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렇다고 요셉이라고 쓸개가 하나 더 있지는 않았다. 대신 그에게는 신앙으로 상황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그 신앙 안에서 기쁨으로 살려고 힘썼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였으며 늘 감사의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셨기 때문이다.
고전 10:10-14 / 또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하거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대하시는 일에 불만을 늘어놓아서도 안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11) 그들에게 일어났던 이러한 일들은 모든 사람에게 경고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됨으로써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조심하십시오. 누가 언제 같은 죄를 범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3) 여러분에게 파고드는 악한 욕망은 새로운 것도 별다른 것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도 여러분보다 앞서 같은 문제에 부딪쳐 싸워 왔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유혹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물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한 유혹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약속해 주셨고 또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십니다. 유혹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실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은 인내로써 그 유혹을 극복해야 합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조심하여 우상숭배를 피하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애굽의 보디발의 가정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모함으로 죄인이 되어 왕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신하의 꿈을 해몽해 주었다. 그 인연으로 애굽 왕의 꿈을 해몽하게 되어 대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닫는 지혜를 가지고 팔레스틴 전역에 찾아온 7년 가뭄으로 인한 대 흉년의 역사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본문은 요셉의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곡식을 얻으러 온 형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 형들에게 위로하는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알곡인 요셉과 열매 맺지 못한 죽정이 형들간의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이다.
2023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요셉과 같이 알곡과 같은 분이 다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요셉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야 한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으로 요셉을 미워했다. 형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도록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겼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7년 풍년 후에 2년째 흉년이 계속 되자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에 갔던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 가운데 빠졌다.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사실 약관의 나이였던 요셉에게 주어진 고난은 너무 컸다. 노예와 죄수로서의 고통과 괴로움도 엄청났다. 형들에게 배신당함으로 겪은 정신과 마음, 신앙적인 고통과 아픔은 대단히 컸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임을 깨달았기에 요셉은 그 고난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았다.
요셉의 고난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아브리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약속하신 경건한 나라와 백성을 세우시고자 하시는 섭리 중에 한 부분이었다. 나아가 더욱 깊은 의미로는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역사를 위한 예표이기도 했다. 야곱의 후손들을 살리심으로 그 후손들 가운데서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요셉은 자기가 겪은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일임을 깨달았기에 형들을 미워하여 복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형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아기를 해산하는 산모는 그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참고 견딘다. 그 아픔과 고통이 한 아기의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그 분의 가치 있고 특별한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고난의 방법을 사용하신다. 이것을 깨달은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할 것이요’(약 5:12)라고 했고, 바울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고난 중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오히려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그 고난이 선한 열매가 열리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늘나라의 창고에 들어갈 귀한 알곡들이 되자.
하나님의 섭리를 알면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하면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용서할 수 있었다. 요셉에게 있어 형들은 증오의 대상이며 원수와 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이다. 지난 날 고생한 것을 생각할 때에 형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임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내신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소서’(5절)라면서 형들을 용서했다. 오히려 안심시켰다. 아니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했다. 이러니 우리가 요셉을 한 알의 밀알로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용서할 때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은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 한걸음 나아가 긍휼을 베풀 수 있다. 나아가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의 행위보다 더욱 큰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원수들의 핍박보다 그 원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때문에 용서하고 기도해 줄 수 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무리를 향하여 죽어가면서도 오히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저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을 알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알지 못하는 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 사람을 통하여, 나를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을 수 있을 때에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용서하고픈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눈을 들어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위 위에서 우리를 만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그 섭리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인류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셨기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고 침 뱉고 욕하며 창으로 찌르는 무리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다.
하나님의 도구로 삶을 사는 요셉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 자신을 바로의 아비로 삼으시고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다.’(창 45:7-8)라고 말했다.
요셉은 무서운 기근과 가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도구로 삼으신 섭리를 깨달았다. 그 섭리를 깨달음으로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사는 가치를 찾았다.
바울은 ‘자신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사용되기 위해 어머니 태로부터 택하심을 받았다.’(갈 1:15)라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데서 소명감의 확신과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을 산 것이다. 바울은 어떠한 어려움도 참아나가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 마칠 수가 있었다. 그의 유명한 말을 본다.
히 12:2-3 /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인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 나의 삶이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섭리 중에서 가치 있게 쓰이는 삶임을 고백할 수 있다면 찬양과 감사의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확신의 사람은, 지금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그 속에서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는 축복된 삶을 이룰 것입니다.
2023년도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깨닫고 이에 동참하므로 천국창고에 들이는 알곡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첫열매가 되시기 바란다.
결론 : 요셉이 받은 축복
창 49:22-26 / 요셉아, 너는 물가에서 뛰노는 들나귀 같아 샘가 덮은 무성한 나무같이 싱싱하여라. 그 가지 무성하여 담밖까지 뻗었구나. 23) 원수들 맹렬히 덤벼들지만 화살통 메고 화살을 쏘아대며 득달같이 달려들지만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더 꿋꿋하고 그 팔의 힘 오히려 더 든든하여라. 전능하신 하나님 야곱의 엘 샤다이가 도와주셔서 이스라엘의 지키시는 이, 목자께서 도와주셔서 든든하여라. 걱정 없어라. 25) 그를 도우시는 이, 네 아비의 하나님이시라. 네게 복내리시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엘 샤다이시어라. 위에서 비처럼 복을 쏟아 부으시리라. 땅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깊은 물처럼 복을 솟구치게 하리라. 가축떼 부쩍부쩍 불어나게 하시리라. 자식들 무럭무럭 자라게 하시리라. 한없이, 헤아릴 수 없이 불어나게 하시리라. 26) 저 산을 보아라. 태고적부터 굳건히 서 있는 저 산을 보아라. 구름까지 솟아 맞닿는 저 산을 보아라. 네가 받을 복이 이보다도 더 많으리라. 이 아비가 받은 복, 그 복을 네가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요셉아, 너는 네 형제들 가운데에서 훨씬 더 뛰어나리라.
창 50:22-23 /요셉은 집안 식구들과 함께 계속해서 애굽에서 살다가 110세에 세상을 떠났다. 23) 그는 자식인 에브라임 자손을 삼 대까지 보았으며, 맏아들 므낫세가 낳은 손자 손녀들까지 슬하에 거느리면서 살았다.
1. 장수의 복을 누린 요셉(22절)
1)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
요셉의 인생 여정! / (1) 17세에 애굽에 종으로 팔리다. (2) 30세에 바로의 신하가 되다. (3) 39세 경 애굽에서 형들을 만나다. (4) 56세 경 아버지 야곱 사망 (5) 아버지 야곱 사후 54년을 더 살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잠 10:27).’
2) 110세는 당시 애굽 사람들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장수의 삶이라고 생각한 나이였다.
(발굴된 애굽 미이라를 보면 당시 애굽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0-50세 정도로 보여진다. 요셉은 특별히 장수한 애굽 사람들보다도 배 이상 더 살았다.)
2. 장수에 따른 가정과 자녀의 복을 누린 요셉(23절)
1) 최고의 배필을 얻은 요셉 / 요셉은 애굽에 별다른 배경이 없는 이방인이요 노예 출신 인물이다. 타향에 팔려온 노예 출신에게 누가 딸을 주겠는가? 그럼에도 요셉은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배필을 얻었다.
2) 자녀의 복 / 자손 4대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다(욥 42:16). 요셉은 장수하여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녀들도 슬하에서 키웠다.
슬하에서 양육되다(23) / (1) 본 뜻은 ‘무릎 아래서 자라다’ (2) 요셉이 손자들을 가슴에 품고 믿음과 기도로 키웠음을 말해준다. (3) 본래 므낫세에게는 마길(수 17:1, 삿 5:14) 이외에도 아스리엘(민 26:29-31, 대상 7:14)과 다른 아들들(스미다, 헤벨 등)이 있었다. 본문의 내용으로 볼 때 그 중 마길의 자녀만이 요셉이 기력이 있을 때에 태어났었음을 암시한다고 보여진다. (4) 참고로 요단강 동편에 일찌감치 자리 잡은 길르앗 땅의 조상이 된 길르앗(민 26:29)도 마길의 자녀였음. 아모스 선지자는 다메섹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그 원인이 다메섹(시리아)이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므로(암 3:1) 길르앗을 하나님의 관심 아래 있는 이스라엘 민족임을 지적하였다.
3. 형통의 복을 누린 요셉
요셉은 범사에 형통한 복을 누린 사람이었다. 요셉은 장수와 가정과 아내와 자녀의 복 뿐만 아니라 물질과 명예와 평안과 신앙의 복까지 누린 사람이다.
요셉 자녀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므낫세(잊어버림) : 요셉 자신이 당한 고난과 억울함을 잊을 만큼 자녀 출생을 기뻐했음을 나타낸다. (2) 에브라임(갑절의 풍성한 은혜) : 자기의 삶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셨으며 풍성한 은혜를 베푸셨음을 고백하는 믿음과 감사가 담긴 이름이다.
4. 요셉이 축복을 받은 목적 : 나눔의 사명
대개 많은 사람들은 여기까지 관심이 있다. 축복받았다, 성공했다, ...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지 몰라도 성도들은 다르다. 사실은 ‘그 다음’(next)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더 높은 차원의 축복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복 주실 때 분명한 뜻과 목적을 갖고 계신다. 요셉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요셉을 축복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나눔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창세기 49:22을 다시 보시라!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가지가 얼마나 무성한지 담을 넘었다. 무슨 말인가? 그 축복이 차고 넘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이 축복을 받는데 그 복이 요셉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이 사방에 펴져나갔다.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이 임했다.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하고, 감옥에 복이 임하고, 총리가 된 후에는 그를 팔았던 형들을 포함해서 온 가족을 애굽으로 이민 초청하고, 7년 기근을 잘 대비해서 여러 나라와 애굽을 구제하고, ...
이런 목적은 비단 요셉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모든 성도에게 부여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그에게 주시는 복이 흐르고 넘쳐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축복의 통로(Pipe of Blessing)가 되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이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이게 바로 천국의 원리이다. 겨자씨 같은 복음이지만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되고 축복을 받으면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다. 새들이 깃든다는 것은 많은 사람, 세계 만민에게 그 축복을 나눠주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을 나누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고갈시키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더욱 축복을 확대시켜 준다. ‘만일 너희가 남에게 주면 너희는 그것을 다시 얻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서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대로 되돌려 받을 것이다.’(눅 6:38) 하나님이 주신 축복(신앙, 물질, 시간, 건강, 재능, 직업, 지위, 권세, 명예 ... )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나눠주면 나 자신에게 더욱 넘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마중물 원리이다. 옛날 수도가 없던 시절 여름철에 물이 마르면 펌프질을 해도 헛돈다. 그러면 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그 아까운 물을 왜 붓는가? 몇 배가 더 되는 물이 퀄퀄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또 전도서 11:1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아무 계산 없이 나누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중에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되갚아 준다는 것이다.
■ 미국의 프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은퇴했지만, 농구의 황제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다. 그가 시카고 불즈 팀에 소속되어 있을 때 시카고 경제를 쥐락펴락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다. 가난한 무명 시절 시카고 불즈 입단을 위해 가야 되는데 비행기 삯이 없어서 친지들에게 빌려서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서 내리자 택시 탈 돈이 없었다. 그래서 택시들을 붙잡고 기사에게 사정했다. 성공하면 나중에 꼭 갚겠다고. 그랬더니 미친 놈 취급을 하면서 가버렸다. 그런데 한참 후 한 택시 기사가 쾌히 승낙했다. 택시가 도착하자 그는 꼭 기억하고 갚겠다고 다시 약속한다. 그러자 기사는 웃으면서 ‘됐어요! 좋은 경기나 보여주세요! 내가 첫 번째 팬이 되어 주죠!’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그 기사는 잊어 버렸다. 그 후 마이클 조던은 승승장구했고, 방송에 나가서 인터뷰를 할 때 그 기사를 애타게 찾았다. 결국 극적으로 만났고, 그 기사는 덩달아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기사가 마침 한국인이어서 교민 사회에서 회자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은 그때 이렇게 고백했다. ‘사람들은 제가 시카고 경제를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를 움직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그 택시 기사분입니다.’
이게 바로 ‘축복의 확대재생산’의 역사이다. 우리가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이웃 사랑과 섬김을 위해 사용하면 더욱 넘치는 축복의 역사가 나에게, 이 세상에 확장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작은 헌신이 큰 역사를 이룬다.
과연 고귀한 인생이 어떤 것일까?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고귀함에는 의무가 수반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많은 것을 주셨는데, 자기만을 위해 천박하게 흥청망청 사용한다면 반대로 ‘노블레스 멜로디’(Noblesse Malady)가 된다. 멜로디(Malady)는 병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오히려 개인적인 사회적인 병폐로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말 그 행복이 계속 지속되고 풍성해지려면 단순히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차원의 행복을 넘어서야 한다. 영원히 남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Meaningful Life)을 살아야 한다. 나눔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도 40여일 남은 지금 어떤 결실을 맺었으며, 새해에는 어떤 복을 구하시려는지? 이왕이면 우리 모두 요셉의 축복을 갈망하기 바란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 더 나아가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가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많은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나눔으로 더욱 더 풍성케 되는 승리의 역사가 계속 확장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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