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필로테아 님,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교춤이나 도박 또는 이와 비슷한 오락, 곧 영혼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가까이하려는 마음을 품지 말것을 그대에게 특별히 당부합니다.
사회적으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고관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허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특별한 영적 계시나 신비한 탈흔을 체험하고 실어 하는 것도 허영이므로 그런 원의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능력과 거리가 먼 것이나 실현 불가능한 것을 바라면 정신만 피로해지고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여 불평과 불안감만 갖게 됩니다.
어떤 청년이 당장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열망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꿈을 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웃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사고 싶어도 그 사람이 팔려고 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미사에 참례하기를 바라거나 건강한 사람들처럼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해도, 그 일을 할 힘이 없으니 그것은 쓸데없는 소망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따를려면 투병 중에도 인내하고 고통을 견디며, 순명과 온유의 덕을 길러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임신한 부인이 가을에 싱싱한 앵두를 찾고 봄에 포도를 먹고 싶어 하듯이, 마음에 부질없는 원의만 키우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과 다른 삶을 바라면서 자기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헛된 원의는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해야 할 일을 방해할 뿐입니다. 갑자기 관상 수도회 수도자들처럼 은둔 생활을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이며 현재 할 일을 착실히 하려는 마음을 빼앗을 뿐입니다. 또한 우수한 두뇌와 지혜를 바라는 것도 헛되고 무익한 일입니다.
그것보다는 현재 지니고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봉사할때도 자신에게 없는 삶의 양식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가벼운 희망일 뿐 번민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다지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현재 그대에게 주신 십자가도 잘 인내하지 못하면서 더 많은 십자가를 청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받은 모욕을 인내할 용기도 없으면서 순교를 꿈꾼다면 이는 허황된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마는 작은 일에도 충실한 사람에게 실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야망을 품게 합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큰 괴물과 싸우는 용사가 되는 공상을 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길바닥의 작은 뱀에게 물려 죽을 수 있을 만큼 허약한 존재입니다. 실현될 수 없는 야망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데서 옵니다. 그대는 주님께서 주실 십자가에 대비하고 그 기회가 닥칠 때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미리 수양에 힘쓰십시오.
맛이 뛰어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이 약한 사람은 금방 탈이 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대 영혼을 너무 과중한 의욕으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정신적 야망이 지나치면 신심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순한 생각을 제거하여 영혼을 청소하겠다는 의욕 때문에 닥치는 대로 고행과 기도 등 온갖 신심 수행을 시도합니다.
필로테아 님, 이러한 영적 의욕은 좋은 징조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화시킬 능력이 그대에게 있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대의 영적 지도 신부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수행 방법 중 그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실천하십시오.
그것을 실천하고 난 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순서에 따라 다음 것을 실천해 가면 무리한 욕심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당장 실천하기에 어려운 것은 마음속에 유념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착수하십시오.
영적인 희망뿐만 아니라 세속적 희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계를 밟지 않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기를 바라면 우리의 일생은 불안과 기우의 연속이 되고 말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