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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6. 29
바리 인터뷰
어딜 그리 바리바리 들고 가요?
보라
어딘 글방에 와서 '바리'라는 별명을 처음 들었을 때 추측했던 뜻이 있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다, 자전거에 짐을 ‘바리바리’ 싣고 가다. 이러한 말들이 먼저 떠올랐다. 게다가 바리가 처음 써온 글은 어딘 글방에 오기 전 떨리고 신나는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이었다.
‘솔직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를, 상상해온 공동체이기를 바라고 있다. 마음이 참새처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닌다.’_바리의 <나랑 기대하지 않을래?>글 내용 부분.
‘아 이 사람은 별명처럼 통통 튀고 부지런한 사람인 걸까’하는 추측을 해보곤 했다. 바리라는 별명은 바리가 써오는 글들과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글방 사람들은 서로 합평을 진심을 담아서 해준다.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바리가 해주는 합평들이 따듯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글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기 때문에 따듯하다는 건 아니다. 피드백을 하더라도 글에 애정이 없다면 해줄 수 없는 말들을 해주기 때문이다.
바리! 제가 제일 궁금했던 건데, 왜 별명이 바리인가요?
-바리데기 할 때 바리예요! 저는 글방 오기 전 <활할 발발> 책을 읽고 감명받아서 오게 되었거든요. 그 책 내용 중 생명수를 찾아서 떠나는 바리데기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저도 글을 몇 년이 되도록 써서 마치 생명수처럼 언젠간 제 안에 축적이 되길 바라며, 그 바리데기 심정으로 바리라고 지었어요.
내가 상상했던 뜻과는 전혀 달랐지만 바리데기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바리의 별명도 그렇고 인터뷰를 하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바리의 모습과 달랐던 부분들이 많았다. 글방을 하지 않을 때 글방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조차 난 거의 모른다. 바리도 마찬가지였다.
글방에서 몇 개월 동안 봤지만, 여전히 제가 바리의 일상을 잘 몰라요. 평소에 글방 안 할 때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원래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이제 방학이 시작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보낼지 고민 중이에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고 계세요?
-국어교육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국어교육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보면 글쓰기와 연결되어 있다 볼 수도 있을까요?
-음.. 만약 국어교사가 되면 아이들에게 쓰기도 가르쳐야 하니까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제가 글을 쓰는 건 국어교사 영향을 키우기 위해서 쓰는 건 아니에요. 저한테는 전혀 다른 일처럼 느껴져요. 이 두 개는 상반된 두 집단이랄까요. 물론 도움을 주긴 하겠죠. 그러나 이것 때문에 글방을 온 건 아니에요. 제가 얼마 전에 박완서 선생님 글을 읽었는데 박완서 선생님도 국어교사였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픽션인지는 모르겠는데, 오 국어교사를 하면서 글도 잘 썼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어딘의<활활발발>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글방의 오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어딘 글방에 처음 왔을 때 어땠나요.
-처음 했을 때 저희 줌으로 했었잖아요. 그때 저는 엄청 떨리고 기대되고 믿기지 않고 긴장되고 그랬어요. 전 그전까지 글방을 다녀본 적도 없고,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어서 글에 대해 긴장이 됐었고, 어딘이라는 존재가 멀리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었거든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면 속에 어딘이 있고, 글방 사람들이 있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어요. 마치 제가 그 활활발발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달까요.(웃음) 그래서 전 아직도 첫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줌도 좋았지만 처음 대면으로 만났을 때도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글방에 있다니!! 이런 기분이었죠.
글방에 처음 냈었던 바리의 글에서도 그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리 글 읽으면서 공감 했었던 것 같아요. 글방을 오기 전부터 엄청 기대했다고 했는데 딱 글방을 왔을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은 없었나요? 기대를 많이 하다 보면 실망을 할 때도 있잖아요.
-실망은 전혀 안 했고, 저는 어딘이 글 합평하실 때 날카로운 말로 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분위기도 너무 따듯한 거예요. 예상외로 너무 다정하고, 물론 다들 진심 어린 피드백을 주고받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정한 공간이구나, 여기 생각보다 마음 붙일 수 있는 곳 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딘 글방에 직접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는 건데,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저는 글을 쓰고 싶은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글을 쓰는 게 재미있어요. 글을 써서 무언가가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아요. 글을 쓰는 게 재밌다는 것도 즐겁다는 건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겪잖아요. 처음 글감을 받고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 동안 많은 고민을 하고, 그다음 써보기 위해 애를 쓰고, 근데 잘 안되고, 그렇게 해서 뚱딴지같은 결과물이든 잘한 결과물이든 내잖아요. 그 점이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너무 힘들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재밌어요.
저도 글을 쓸 때는 너무 고통스럽고,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쓰는 게 맞나? 싶지만 그럼에도 또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 그럼 바리는 글을 쓸 때 어떤 마음을 담아요?
-저는 글을 쓸 때 이런 마음을 담아야지! 하는 건 없는데, 항상 어떤 대상에 대해서 다정한 마음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지만 쓰다 보면 그게 안되더라고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산함이 담기기도 하고 그러죠. 결국에는 제가 그렇게 쓰고 싶으니까 그렇게 써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글에 있는 대상에게 다정한 시선을 담고 싶은 것 같아요.
바리 글 중에서 <하늘이 노란색이 아니라고요?>글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어린아이 세 명이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관계성과 한 명 아이가 휘두르는 권력, 제가 초등학생 때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다양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줬던 글이었어요. 그 글에는 어떤 걸 담고 싶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그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어린아이들이 가까이 지켜보면 어른이 상상하는 어린아이와 많이 다르다는 게 보이거든요. 제가 어른이 되었을 때 상상하는 어린아이와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상 초월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은 착하고, 착하지 않으면 투정 부리는 정도로 어른들은 생각하잖아요. 애들이 못되어봤자 얼마나 못되었겠어,라는 말 들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그런 것들 말고도 다양한 면모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 글을 읽으며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바리가 담고 싶었던 의미를 잘 풀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바리는 글을 쓰는 게 본업이 아닌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취미 쪽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글 말고도 다른 취미나 시간 들여서 하고 있는 게 있나요?
-저는 글방을 다니는 게 어떻게 보면 취미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정체성을 잡아주는 것이에요. 일주일 중 글방을 다니는 게 제 일상에서 하는 것 중 1순위로 둘 정도로 중요한 것 같아요. 취미이긴 하지만, 마음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달까요.
글방 말고는, 이런저런 걸 좋아해요. 저는 요즘에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고요. 애를 쓰면서 읽고 있어요.(웃음) 그리고 저는 문구류, 마스킹 테이프,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들이 만든 책갈피 사는 걸 좋아해서 많이 사요. 책갈피를 안 쓰는데도 불구하고 사요. 저는 영수증이나 쓰레기로 책갈피를 쓰거든요.(웃음) 그러고 안 쓰고 모아놓죠. 근데 이건 취미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런 것도 충분히 취미가 될 수 있죠. 저도 예쁜 엽서 같은 거 안 쓰지만 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럼 바리가 글방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글을 쓰는 것만으로 자신의 일주일에서 중요하다고 느끼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글방에서 어떤 점이 바리에게 중요한 일로 느껴지게 만드나요.
-저는 제가 글을 써서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제가 글을 쓰는 행위보다 글방에 간다, 가서 사람들이랑 이야기한다는 게 너무너무 소중한 것 같아요.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주는 것도 그렇고, 다들 진심을 담아서 피드백을 해주잖아요. 그게 매시간마다 느껴져서 소중해요. 그리고 어딘이 해주는 이야기들도 너무 소중하다고 느껴지거든요. 마치 진흙 속에 박혀있는 진주를 내가 캐러 간다는 느낌으로 가요. 다양한 말들이 오가는 순간에 물론 그 말들 중에 흘려들을 수 있는 말들도 많지만 저한테는 그 말들이 진주처럼 느껴져요. 어딘이 해주셨던 말들 중에, “머릿속에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똥 덩어리다. 그건 버려라.”라는 말도 그렇고, 보라한테 해주셨던 말 같은데, “머릿속에 남들이 박아놓은 나사를 빼라”라는 말을 해주셨잖아요. 그런 말들이 저한테는 보석을 캐러 가는 광부의 심정으로 다가오거든요. 글방에서 나오는 말들이 저에게 아주 조그마한 변화라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글방이 저에게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어딘이 해주셨던 말도 좋고 아니면 글방 사람들이 해줬던 말들 중 기억 남는 거 있나요?
-저는 항상 좋았던 부분을 받아 적어요. 저는 진짜 모든 걸 기억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 사람들이 해주는 말을 다 기억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좋은 말들은 다 적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잊어버리면 아까우니까. 저는 글방 사람들이 저에게 글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고쳤으면 좋겠다는 부분을 말해주는 것도 좋아요. 그런 걸 말해줄 때 그 사람이 많은 용기를 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이런 부분은 최고다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쉬운 부분을 말하는 것도 이 사람이 글을 쓰는데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도 용기를 내서 피드백을 하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이제 그런 말 있잖아요. 아 저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싶은 말들이요. 되게 솔직하게 해주는 말 해주는구나 하는 말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오 저는 방금 바리가 한 말이 멋있다고 느껴져요. 사실 저는 작년에 로드스꼴라에서 했던 글방에서도 그렇고 제 글에 대한 비평을 들으면 마치 저한테 하는 말 같아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상처를 받는 다기 보다 용기를 냈다고 생각한 게 멋있는 것 같아요. 비평을 들으며 기분이 상한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던 거네요?
-네 저는 오히려 너무 고마웠고, 기분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아 물론 속상하긴 하죠. 이번에 대충 쓴 거 티가 났나? 하면서 아쉬움과 속상함이 남죠. 그렇지만 그게 상처로 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글을 쓰거나 아니면 다른 걸 할 때도 슬럼프를 겪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바리만의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저한테는 슬럼프가 어떤 모양으로 오냐면요. 무기력함으로 오거든요. 밖에 나가기 싫고 누워있고 싶고 그래요. 몇 주 전에는 제가 방이 있는데 방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데 그걸 줍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냥 이렇게 줍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못 본 척하고 정리를 잘 안 하고, 마음 상태가 편하지 않으면 주변이 정신 없어지는 걸로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럴 때 일단 씻어요.(웃음) 그럼 기분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진짜 사소한 기분이 좋아지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특히 모닝페이지라는 게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에다가 글을 쓰는 거예요. 작은 노트 2장 정도 쓰고 싶은 걸 막 쓰는 거예요. 눈뜨자마자 쓰다 보면 절반은 무의식 속에서 쓰는 건데 그 무의식들 속에 제 진심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 안에 난 이런 걸 하고 싶다 이런 걸 하기 싫다. 이런 게 적혀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언갈했다는 뿌듯함이 있어요. 그걸 쓰고 난 날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어요.
저는 너무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쓰레기도 줍기 힘들 정도 일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근데 그걸 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쓴 글은 다음에 또 보나요?
-그거는 한두 달 모은 다음에 한 번에 쭉 읽어요. 중간에 읽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서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거죠.
저는 모닝페이지 이야기를 유튜버 이연님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어요. 바리는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내가 이거라도 해냈다는 마음에서 오는 성취감으로 기쁨을 느끼는 건가요 아니면 적으면서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나요?
-저는 둘 다인 것 같아요. 그런 성취감은 언제 오냐면요. 제가 쓴 종이가 쌓일 때가 있어요. 모닝페이지는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쓰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공책이 쌓일 때 뿌듯함이 오는 것 같아요. 마음이 해소되는 것도 있어요. 아, 저 너무 모닝페이지 신봉자 같나요/(웃음)
아니요(웃음) 실제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 못 하는 마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나의 감정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니까 나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런 감정들을 처리하는데 유용함이 있는 것 같아요.
바리는 자신의 감정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뜻 보면 모닝페이지가 쉬워 보일 수 있지만 본인의 아침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기력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기도 힘든데 모닝페이지를 쓴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글방에서 오고 가는 말들도 바리는 쉽게 흘리지 않았다. 종종 어딘 글방 시간에 바리가 손바닥만 한 공책을 붙잡고 무언갈 열심히 쓰는 모습을 봤다. 보석을 캐러 가는 광부의 심정이라는 말이 인상 깊다. 바리의 공책에는 어떤 말들이 쓰여있을지 궁금해진다.
아까 글방에 와본 건 처음이라고 했는데 글방에 오고 싶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어딘 글방에 오고 싶다고 생각한 건가요?
-저는 글방에 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딱 어딘 글방 한정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책을 새벽 12시에 읽기 시작했어요. 조금만 읽다가 자야지 했는데, 책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막 빠져들어서 읽다가 보니까 해가 뜨고 있는 거예요. 제가 책을 빨리 못 읽어서 밤새 읽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이슬아 작가가 많은 사람들의 글 쓰고 싶은 욕망을 깨운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슬아 작가님의 애정을 가지게 되던 찰나에 어딘 글방을 다녔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제가 사실 어딘 글방을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어요. 어딘 글방에 관심을 가지던 찰나에 인스타그램을 내리다가 로드스꼴라 계정이 뜬 거예요. 제가 팔로우를 한 적도 없는데. 그 로드스꼴라 수업 중 어딘 글방을 모집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초 손을 잡고, 연초야 가자! 하고 오게 되었죠. 운명처럼.
슬아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슬아 책 말고도 바리의 글쓰고 싶은 욕망을 끌어 올려준 책이 또 있나요?
-저는 이슬아 수필집과 활활발발 책들이 글쓰기 욕망의 불씨를 키워준 대표적인 책이었고, 정혜윤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글을 쓰고 싶다는 것보단 정혜윤 작가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정혜윤 작가에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나요?
-<사생활의 천재들>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작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인터뷰하는 내용이 담긴 책이에요. 그중에 호랑이를 연구하는 사람을 인터뷰 한 내용이 있어요. 그 호랑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산에 들어간 거예요. 움집을 짓고 호랑이를 관찰한 거죠. 하루는 본인이 거기 있는지 모르고 호랑이 가족이 자기 주변에 온 거예요. 겨울에 호랑이들이 눈을 밟으면서 움집 주변을 돌아다닌 이야기였어요. 정혜윤 작가는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딱 집어 내는 거예요. 그게 멋있다고 생각이 되었어요. 자기 자신이 아닌 주변 대상들을 향해서 애정을 잘 품는 것 말이에요. 제가 최근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 감독이 ‘아녜스 바르다’라는 여성 감독이에요. 키가 작고 통통하시고 빨간 머리로 염색하신 귀여운 할머니이세요. 제가 저번에 아녜스 바르다의 인터뷰를 봤는데 본인이 술 취한 시각장애인을 보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왜 저러지 라고 말하는 모습들도 자세히 보면 너무너무 사랑할만한 점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이 좋았어요. 저는 정혜윤 작가랑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랑 같은 맥락의 결을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 두 사람 모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세상에 있는 만물들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닮고 싶다고 느꼈죠.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난 게, 바리가 식물 율마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 있잖아요. 그 이야기들도 바리가 말한 정혜윤 작가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시선을 담고 싶었던 건가요?
-저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진심으로 느끼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 딴에는 정혜윤 작가나 아녜스 바르다의 시선까지 도달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랑 아닌가? 저는 아직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거든요.(웃음)
바리는 일상을 지내며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자주 하는 생각이 있나요?
-저는 단순해지자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를 들면 아, 이거를 할까 말까? 안 하기에는 또 좀 그런데, 이런 고민 들을 많이 해요.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냥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 웃기고 유머러스한 게 너무 좋아요. 일상 속 가벼움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 워낙에 살아가면서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일수록 통통 튀는 가벼운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통통 튀고 가볍게 살기 위해 최근에 삶 속에 적용한 게 있나요?
-저는 글방 온 게 진짜 그랬어요. 저는 사실 글방 신청하기 전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걸 이겨내고 에라 모르겠다, 신청했거든요. 제가 그냥 하는 걸 잘못해요. 최근에 그냥 해본 건, 얼마 전 <부엉이와의 댄스는 나의 힘>이라는 글 쓴 적 있잖아요. 종이 오려서 붙이고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거요. 지금은 안 하지만 그런 거에 팍 꽂힐 때가 있어요. 달려들듯이 막 몰입하다가 갑자기 안 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제 그것도 밤새워서 막 오려 붙이고 만들어요. 새벽에 몽롱한 상태로 만들다가 딱 보면 너무 뿌듯한거죠. 그런데 이제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밤새 뭐 한 거지 싶은 게 있더라고요. 아니면 제 방 뒷면에 영화 포스터나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나 막 붙이는 것도 좋아해요. 그런 것들을 붙일 때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고민을 한다거나 망설임 없이 하는 일들 중 하나에요. 정말 제 몸이 반응하는 것들이요. 열렬히 하고 나면 기운이 쭉 빠져서 축 늘어져요.
한번에 몰입했다가 힘을 빼는 성향이시군요. 그럼 글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나 목표가 있나요?
-저는 목표라기보단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요. 닮고 싶은 어른들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까 말한 바르다 할머니처럼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함을 잃지 않고 싶어요. 요즘 하고 싶은 건, 파주에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다루는 학교가 있어요. 그곳을 가고 싶어요. 디자인 관련해서 해본 건 없지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바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어른은 무엇인 거 같나요?
-좋은 어른이라는 걸 제가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제가 전에 좋은 어른의 조건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올린 게 있는데, 전 이걸 목표를 삼고 있어요. 이걸 읽어드릴게요. 좋은 어른이란 첫째, 맛집을 많이 안다. 둘째, 어리다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셋째, 자기자랑, 오지랖을 1분 이상하지 않는다. 넷째 길에 가래침을 뱉지 않는다. 너무 맞는 말이잖아요. 맛집을 많이 알아야 좋은 어른이란 말에 동의하는 거 같아요. 보라는 맛집을 많이 알아요?(웃음)
저는 아직 가는 곳만 가서 아직 맛집을 잘 몰라요.. (웃음) 아직 어른이 되려면 한참 남았군요...
-저도 그래요. 이제 맛집을 많이 알아놓으려고요.
글에 대해서도 뭔가 앞으로 바라는 게 있나요? 나중에 글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거나 아니면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 하는 것이요.
-저는 첫 번째로 글을 오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 근데 저는 야망은 없는 것 같아요. 어딘이 말한 넷플릭스 자본의 촉수에 걸려서 대박이 나는 것들을 바라진 않고요. 물론 그러면 좋긴 하겠죠. 그러나 그런 걸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고. 어떤 글을 읽을 때 아 이 사람이 글에다가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 느껴지잖아요. 글에다가 진심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진심을 담고 싶다고 해서 담아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진심을 담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글에다가 진심만 담을 수 있다면 제 목표를 달성한 거이지 않을까 싶어요.
글방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글방이라는 공간이 각자의 목적이 있어서 모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되게 서로에게 아늑하고 안식처 같은 공간이 되어가는 기분인 거예요. 물론 서로 위로를 해주고 그런 공간은 아니지만 얼굴을 보고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제가 너무 힘들 때 글방 사람들이 알아주는 생각이요. 알아줬으면 좋겠다기 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되게 감정에 대해서 예민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에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 서로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팡팡 터지잖아요. 이런 마음들을 전하고 싶어요.
아, 글방 사람들이 바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때 엇? 바리가 기분이 안 좋구나!라는 상황을 말하는 거군요(웃음)
-저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어요. 최근에 글방 가기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밤새워 울고 난리 쳤던 날인데, 안 좋은 상태로 갔지만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은 거예요. 위로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아서 그랬는데 옆에 있던 모호가 저한테 안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 거예요. 어딘도 바리 무슨 일 있어? 이러시고, 그래서 저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서로의 기분을 예리하게 알아채는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글방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사실 저희가 1 대 1로 아는 건 별로 없잖아요. 이 사람이 글방 말고는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 것조차 모르는데, 또 서로의 글은 많이 읽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깊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더라고요.
-맞아요(웃음) 껍질은 모르는데 깊은 부분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어딘 글방에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어딘 글방은 이상한 곳이다. 서로 잘 모르지만, 글을 통해 서로의 깊은 속을 자주 들여다본 사람들끼리 모여있다. 이상하지만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간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바리라는 인물의 다각도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서 기뻤다. 바리는 내가 작은 질문을 던지면 크게 만들어서 되돌려주었다.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리가 큰 맥락을 이어나갔다. 인터뷰를 하며 바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글방에 대해서 많은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가 자주 언급했던 말들이 몇 개 있다. 다정함, 진심, 기록하는 것. 마치 퍼즐을 끼워 맞추듯 바리의 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도 바리의 글을 읽으면 은연중 글 속에서 다정함과 진심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독자에게 전해질 만큼 바리는 진심을 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자주 많은 것들을 흘리는 나로서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바리를 닮고 싶기도 했다. 바리는 정혜윤 작가와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진심 어린 시선이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바리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아직 글로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 마음만은 그들 못지않게 다정하고 따듯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