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 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감상]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줍는데 그 이유가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선문답과 같은 말입니다. 나는 노숙자지만 원래부터 노숙자는 아니었다, 와 같은 말이죠. 과연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지나가는 그것’이 등장합니다. 지나가는 그것은 나 이외의 다른 존재입니다. 타인이죠. 나를 모르는 어떤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지나가는 그것’은 ‘쓰레기를 줍는 나’보다 스스로 더 월등한 어떤 존재이겠죠. 그것이 나를 쓰레기로 불러서 나는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하지만 나보다 나은 ‘지나가는 그것’도 추운 거리를 배회합니다. 그것의 입 속이 차갑습니다. 하지만 과거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의 코트가 차갑습니다. 냉정합니다. 아하, 이제 그것의 존재는 사람입니다. 입이 있고, 거리를 배회하고, 옛날에는 아름다웠던, 그러나 지금은 차가운 코트를 입은 사람이군요.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일까요? 나를 버린 연인일까요, 아니면 정말 지나가는 사람일까요?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지나가는 그것은 내가 계속 신경에 거슬립니다. 그가 쓰레기 줍는 나를 쓰레기로 동일시했는데, 그렇다면 너(지나가는 그것)는 왜 쓰레기를 줍지 않나요? 너는 쓰레기가 아닌가요? 너도 쓰레기야,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어떤 부부도 쓰레기를 주워가니 쓰레기입니다. 어떤 직장인도 쓰레기죠. 그러나 쓰레기도 용도가 다릅니다. 그런 쓰레기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쓰레기죠. 아니 원래는 한때 나도 그렇게 살았지만 내 인생과는 어울리지 않았죠.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너도 쓰레긴데 너는 나를 쓰레기라 부르며 코를 막고 지나갑니다. 어떤 쓰레기는 옷을 주고 가기도 합니다. 나는 너를 무시해 버립니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 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이라고 합니다.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무덤처럼 보입니다. 노숙의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많아요. 나는 그 노숙의 자리나 잡자고 쓰레기처럼 아침마다 쏟아져나오는 쓰레기를 줍지 않는 자들을 보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나는 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죠.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아, 이제 답이 나오는군요. 나는 노숙자였어요.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행려 말이죠. 담배꽁초를 주워 입에 물어요. 연기가 퍼져나갑니다.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울역 앞에서 나는 담배 연기처럼 타들어 갑니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다시 서울역 시계탑으로 다가갑니다.
노숙자의 눈으로 본 세상입니다. 언젠가 그도 사회의 일원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어떤 일로 노숙자가 되었을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는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그도 한때는 신혼의 달콤한 꿈을 꾸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어쩌다가 노숙자가 되었을까요? 시인은 노숙자의 건강한 삶을 기억합니다.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take라는 뜻은 ‘받다’ ‘가지다’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다’ 또는 ‘(약을) 먹다’ ‘탈것을 타다’의 뜻이 있습니다. 시인은 이 중에서 ‘받다’ 혹은 ‘받아들이다’의 뜻으로 시를 쓴 것 같습니다. 담담한 시선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노숙인들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노숙자와 다름없을까요? 시인의 진심이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