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옛 추억
최명애
문득 어릴 때 살던 집을 가보고 싶어 대충 위치를 짐작하며 차를 타고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로와 집들이 새롭게 만들어져 확실히 감이 안 온다. 골목길이라 차를 세울 곳이 없어서 돌아 나왔다. 집 옆에 실개천이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비슷한 장소인 것 같은데, 개천이 없어지고 집들이 많이 지어져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살았을 때 동네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 동네가 재개발이 된 건가? 의아해하며 다음에 다시 와보리라 생각하고 돌아왔다. 세월 따라 장소는 변모하였지만, 동네 가까이에 금호강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여름이 되면 강가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금호강 가는 언니를 따라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던 장소다. 어린 나는 강 이름도 모르고 따라다녔다. 강으로 가는 길에는 밭이 즐비하게 있었고, 놀다가 오는 길에는 배가 고프니 가지도 따서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강가에서 자갈돌로 수제비 뜨기 놀이도 하고 여름에는 옷을 입은 채로 목욕도 하고 놀았다. 그때는 강이 깊지 않았고 강폭도 넓지 않아서 건너편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그 시절 부모들은 자식들이 놀고 들어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 없었을까?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도록 둔 거 같다.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 건너편에는 사과밭이 많이 있었다. 과수원 주인은 아이들이 사과밭에 오면 상품이 안 되는 국광 사과를 한 묶음씩 나누어 주신다. 그것은 간식거리로 충분하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강을 건너서 집에 가면 어머니는 삼성당을 넣고 삶아서 새콤하고 달콤한 맛으로 변신시킨다. 기쁘게 들고 온 못난이 과일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맛이 얼리지 않은 스무디와 같았다. 엄마는 삶은 사과가 우리의 건강에 도움 되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만들었나.
금호강은 어머니의 빨래터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어머니는 빨래를 가득 이고 강가에 가서 빨고 삶아, 말려서 집에 가지고 온다. 거의 하루를 날 잡아서 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빨래하는 엄마 옆 편편한 바위에서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며 놀았던 일, 젖은 옷을 바위 위에 말리던 어릴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모두가 불편했을 것 같은데 불평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비교할 곳이 많지 않았으니 그만큼 마음은 여유로웠다. 여름은 괜찮은데 겨울이 문제다. 겨울에는 날이 풀리면 집에서 따뜻한 물에 애벌빨래를 해서 강가에 가서 씻어 온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빨래를 해 온 것 같다. 지금은 강 빨래터와 동네마다 있던 도랑 빨래터들이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강변에 있는 동촌유원지는 시민이 즐겨 찾는 휴식처다. 대구 동쪽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금호강을 끼고 있다. 내가 어릴 때도 금호강변 동촌유원지에는 어른들의 모임 장소이고 거기서 야유회를 즐겼다. 그 시절 모임에는 풍악 놀이를 꼭 즐겼다. 할머니 따라 놀러 가서 음식도 먹고 풍악 놀이를 구경하며 놀았다. 소박한 음식으로는 막걸리와 전, 미나리나물 무침 등이 있었다. 강변은 정리되지 않은 고목과 수양 버드나무들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동촌 유원지에 가면 어른들의 웃음소리와 할머니의 흥 돋우는 꽹과리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요즘 금호강변은 운동시설들을 잘 겸비해서 더욱 멋진 장소로 변모했다. 대구시민이 즐기는 수변공원 동촌유원지는 금호강변을 따라 아양 기찻길에서 망우당공원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유원지답게 다양한 위락시설이 되어 있고 길가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맑고 깨끗한 금호강 가꾸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생태 보전 및 유지관리가 잘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작은할아버지 집이 금호강 바로 옆에 있어서 어린시절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포도밭을 하고있어 수확철에는 맛도 본답니다^^
금호강을 추억 하셨군요. 저 역시 금호강을 끼고 어린 시절을 보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
그시절로 돌아간듯 합니다, 저도 강에서 1키로쯤 떨어진 곳에서 자라서 강과 함께한 추억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