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군수를 교화한 문수동자
경상남도 지리산 쌍계사는 신라 제46대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창건한 큰 절이다.
그 절에서 3리쯤 올라가면 가야국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들이 이곳에 출가하여 성불했다고
하는 칠불암이 있다.
칠불암에는 여러 개의 건물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아주 유명한 '아자방(亞字房)'이 있다.
집 모양이 '버금아(亞)'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자방'이라고 하는데 이 아자방이 더욱더 유
명해지게 된 것은 방 크기도 물론 크지만 노이도 12척이나 되고 도 방바닥의 높낮이도 '아
(亞)'자처럼 모서리가 더 높은데도 불을 때면 높낮이에 관계없이 똑같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설계는 담공(曇空)선사가 한 것인데 어떻든 동양 유일의 큰 선방이었으므로 더욱 유명했다.
그러나 이 방은 전통적으로 오로지 참선하는 방으로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참선하는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중엽 어느 날 경남 하동(河東) 군수가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가 칠불암 아자
방이 너무나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꼭 한 번 보고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군수를 안내하던 스님이 한사코 아자방을 보여 주기를 꺼렸다.
"그 곳은 보시나마나 한 곳이오니 그냥 가시도록 하십시오."
군수는 더욱 고집을 세우며 호통치듯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 유명하다는 칠불암을 구경하지 않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잠깐 구경이나 하고 가겠노라."
그래서 스님은 하는 수 없이 그 일행을 칠불암으로 안내하였는데 군수는 기어이 아자방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이 방을 보고 싶으니 방문을 좀 열어라."
"지금은 공부시간이라 열어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보여 준단 말인가?"
"이제 막 참선을 시작하였으니 서너 시간 기다리셔야 합니다."
"내가 이 고을 군수인데 참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화가 난 군수는 곧 나졸들에게 방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조정의 영의정도 그러하였고 본도 관찰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옛날분터 규정이 그러하오니 이 방만은 아니 됩니다."
한 스님이 군수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 스님은 나졸들에 의해 내동대이쳐졌고 방문은 활짝 열렸다.
마침 늦은 봄이라 점심공양을 하고 선방에 들어가 스님들은 오수(午睡)에 한참 몰려 앉은 자
세가 엉망이었다.
어떤 스님은 하늘을 쳐다보며 졸고 있었고, 어떤 스님은 머리를 숙이고 졸고 있었고,
또 어떤 스님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방귀를 뀌며 졸고 있었다.
군수는 속으로 '기껏 공부한다는 작자의 자세가 이꼴 이 모먕인가?' 하며 못 볼 것을 보았다
는 듯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문을 닫고 나서 '요놈을 한 번 혼쭐을 내 놓아야겠군'
하고 단단히 벼르다 되돌아갔다.
이렇게 돌아온 군수는 3일만에 편지 한 장을 써서 쌍계사 주지 앞으로 보냈다.
내용은 이러했다.
'네 절에 도인이 많은 듯하니 나무 말(木馬)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동헌(東軒) 마당에서 한
번 타고 돌아 보라.
만일 목마를 잘 타면 큰 상을 내리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리리라."
스님들은 당황했다.
산 말을 탄다 해도 시원치 못할판인데 나무 말을 타고 와서 동헌 마당을 돌라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일이어서 쌍계사 큰 방에서는 대중공사(회의)가 벌어졌다.
"누가 이 일을 맡아 군수 영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해결을 해 볼 사람이 없습니까?"
주지스님이 이렇게 말하였으나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대중공사는 전혀 진척이 없
었다.
이 때 탁자 밑에서 12, 3세 가량 된 동자승 한 사람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스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싸리채나 엮어서 목마나 한 마리 만들어 주십시오."
"네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성당(聖堂)의 환난을 모면케 하오리다."
설사 그 동자승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대책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
이라 여긴 스님들은 싸리채를 베어 목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말이 다 만들어지자 동자승은 말을 들고 가서 부목(負木, 절에서 땔마무를 하는 사람)에게 목마를
지키게 하고는 동헌 마당으로 나갔다.
군수는 어이가 없었다.
"네가 목마를 타려고 가지고 왔느냐?"
"그렇습니다. 소승이 군수님의 소망을 풀어 드리려고 왔습니다."
너무도 당당하고 막힌 데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목마를 타기 전에 몇 가지 물어 볼 말이 있노라."
"무엇이옵니까?"
"내가 전에 칠불암에 갔을 때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도인들이 졸
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전혀 도인답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도인이냐?"
"영감님도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도인아라고 뭐 별다는 모습을 하고 있는가요."
"그래? 그렇다면 내 한번 따져 보겠다. 대답을 못하면 내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고개를 제치고 하늘을 쳐다보고 졸고 있는 중은 무엇을 하는 중인가?"
"그것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입니다."
"앙천성수관이라니?"
"하늘을 보고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별은 왜?"
"상통천문(上通天文,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 아래로는 지리에 밝아야만)
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아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졸고 있는 중은 무엇을 하는 중이나?"
"예, 그것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지옥으로 들어가 죄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구제 할 것인가를 일심으로 관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좌우 전후로 흔들며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는 중은 무슨 공부
를 하는 중이냐?"
"예, 그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입니다.
공부하는 도승은 유(有)에 집착해도 안 되고, 무(無)에 집착해도 안 되고, 고락성쇠(苦樂盛
衰) 그 어느 것에 집착해도 안 되기 때문에, 마치 버드나무가 봄바람에 휘날려도 전후 좌우
그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듯이 '공(空)과 유(有), 선(善)과 악, 죄와 복, 인과와 응보 그 어디
에도 걸리지 않는 관'을 하는 공부입니다."
"해괴한 공부도 다 있구나. 그래 그건 그렇다 하고 방귀를 풍풍 뀌어대며 앉아 있는 중은 도
대체 무슨 공부를 하는 중이냐?"
"그건 타파칠통관(打破漆桶觀)입니다. 사람이 무식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만
하려는 사또와 같은 칠통배(漆桶輩)를 깨닫게 하는 공부입니다."
"어허, 이놈."
군수는 옆에 있는 여러 나졸들을 힐끔 바라보며 무안한 듯 말했다.
"아하, 아직 젖냄새도 가시지 않은 쬐그만 녀석의 식견이 이러할진대 그 곳에 있는 도승들이
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으니 어서 목마나 한 번 타 보아라."
동자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싸리채로 만든 목마 위에 올라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말 궁둥이를 내리쳤다.
"어서 가자, 목마야. 미련한 터줏대감의 칠통 같은 마음을 확 쓸어 버리고 태양 같은 밝은 빛
이 그 안에도 비치게 하자."
그러자 목마가 터벅터벅 동헌 마당을 5~6회나 돌더니 둥실둥실 공중으로 떠 연기처럼 사라
지는 것이다.
군수와 육방관속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리고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로부터 군수는 발심하여 불교를 독실히 믿었다.
또 쌍계사와 아자방을 산 부처님 모시듯 하니 하동 군민이 다 그리하여 일시에 하동은 불교
바다(佛海)를 이루고 화장세계(華藏世界)를 재현하였다 한다.
(쌍계사 칠불암 아자방의 전설)
- <문수기도 공덕 : 정념스님 엮음 : 민족사>에서 발췌 -
첫댓글 젊어서부터 당신 삶 앞에 건강이라는 문제 해결 않하고 매일 딩가딩가 하고만 살다간 불행은 예고없이 찿아온다.늙으면 누구도 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 건강할때 건강 챙기며 사십시요.20세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몸은 병들어 고통뿐이 없다.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받아 앉아만 계십시요(좌욕).실행하면,당신의 건강을 지킬수 있습니다.오전,오후30분이상 실행하며,매일 습관을 들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