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6 7. 26) 마가복음 14:35 믿음의 임계점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세상에는 실패를 해도 실패가 아닌 것이 있고, 성공을 해도 성공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이겼는데도 진 것이 있고, 졌는데도 이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흉악한 강도 취급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일 후 부활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실패하신 예수님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죽인 자들은 처음에 이긴 자처럼 웃었지만 결국 패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성취하든 못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는가 주님 밖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면 성공자이고 주님 밖에 있으면 실패자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장래를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세상을 이기었다 (I have overcome the world.) 완료형입니다. 예수님은 승리를 이미 완료해 놓으시고 제자들보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든든한 말씀입니까? 세상 살아가는 것은 치열합니다. 여전히 싸움이고, 치열한 경쟁에서 수많은 낙오자들이 생깁니다. 패배의 아픔과 쓴맛을 봅니다.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생사가 오고 가기도 합니다. 미국 이란 전쟁 휴전해놓고 다시 싸웁니다. 이긴 자도 진자도 전쟁 다 패자입니다.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주님 모시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결론은 이미 이긴 자이며 승리자입니다. 아멘! 승리자이신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조금 못한 것, 지금 경쟁에 떨어진 것, 지금 돈 좀 못 버는 것,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잘 가든 못 가든, 살ㄷㄴ 죽든 모두 승리를 향해 가는 과정 아닙니까? 단 한 가지만 분명하면 됩니다. ’언제나 주 안에서‘ 이것이 승리하는 인생의 비결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보통 관계가 아님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94:14) 아무리 힘들과 어려워도 끝까지 남아 있으면 삽니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한 15:)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결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소유라는 것은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병든 몸으로 38년 동안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지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데스다는 가끔 천사들이 내려와 물이 동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 들었어도 나음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불치의 병자들이 치료받고 살려고 전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와도 기회를 늘 놓치며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8년된 중풍병 자였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물이 동하는 것을 보았어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들어가서 낫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사이에 더 빠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나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계속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갔고 자신은 언제나 실패자 낙오자로 남았습니다. 신학자 클라크는 베데스다 연못이 사흘에 한 번씩 동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38년 동안 대략 5,000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으로 누워있는 그는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렸습니다. 정말 운명적이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힐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자신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세상이 포기한 그에게도 하나님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오랜 줄 아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 “저보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못 배우고 못나고 병든 자 쓸모없는 자에게도 누가 관심 갖고 이렇게 물어봐 주었겠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38년 된 병자는 그는 즉시로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은 곧바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그는 즉시 걸어보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38년동안 걸어보지 못한 그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패배자의 인생에서 그도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걷기만 하는데도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승리가 무엇입니까? 패배자로 누워 살다가 일어나 스스로 걸어가는 것이 승리자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마가복음에 보면 또 한 사람, 혈룰증 앓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도 정말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마가 5장). 12해 동안 하열을 하면 몸이 빼짝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피를 흘리는 병으로 인해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 되었고,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외롭게 살았습니다. 전국의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만 중해지고 고통만 더하고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재산은 다 탕진했습니다. 말이 12년이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구나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포기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 여인에게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렸습니다. 병이 낫고 싶은 소원이 불일듯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면 나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부정한 여인이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예수님께 나갈 방법도 없었지만 몰래 사람들 틈에 숨어 들어가 예수님 옷에 손을 댔습니다. 아무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능력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뒤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여인은 자신을 숨길 수 없어 주님과 사람들 앞에 나와 모든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할렐루야! 여인 역시 인생의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12년 병의 굴래에서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였겠습니까! 그녀도 패배자에서 인생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인생의 패배자 낙오자들이라도 예수 안에 들어오면 인생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5,000번의 기회를 놓쳤어도, 12년 동안 모든 것을 다 탕진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중풍병자와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도 기회가 온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나도 승리하고 싶고, 나도 행복하고 자유한 영혼으로 살고 싶은데 세상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해도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낮고 절망적일 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모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주안에서 소망해야 합니다. 절망스러울 때라도 한걸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 기다리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참고, 조만 더 기도할 때 우리도 승리의 기회가 옵니다. 이미 이긴 자 이지만 현실에서도 좋은 기회를 붙잡고 인생 승리자로 살 수 있습니다. 아멘. 미국 텍사스의 석유업자이자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톰 슬릭(Tom Slick)'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투자해 석유 채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지하 수백 미터를 파 내려갔지만, 아무리 파도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금은 바닥나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무모한 짓이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인부들도 지쳐서 떠나버렸고, 결국 기계마저 고장나 사업가는 완전히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 수단과 방법이 다 끊어진 그 절망적인 순간,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끝입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까?" 그때 그의 마음에 강렬한 주님의 음성(감동)이 들려왔습니다. "딱 1미터(혹은 3피트)만 더 파라"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에 이성적으로는 포기하는게 맞았지만, 그는 그 음성에 순종하여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딱 1미터를 더 파 내려갔습니다. 그 간 순간, 마침내 지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거대한 유전이 터지면서 엄청난 석유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부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예화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이제는 정말 끝이다", "가능성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의 마지막 1미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정신의 불을 끄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움직임'을 강조했습니다. 믿음이란 멈추지 않고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큰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하면 됩니다.
여러분, 물이 끓는 임계점이 몇도인가요? 100도 아닙니까? 그 전까지는 99도에도 끓지 않습니다. 99와 100의 간격은 1도입니다. 그 1도가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주변을 살펴보세요. 남편이나 아내 자녀, 일터. 포기하고 낙심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1%만 더하면 기회일 수 있습니다. 믿음을 더 크게하고, 마침내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 1% 뒤에 변화와 반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서 멈추겠습니까? 구약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뭄이 들고 원수는 자기를 죽이려하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를 하였습니다(왕상 18:42).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비를 내려주옵소서”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환에게 바다쪽을 바라보라고 하며 일곱 번이나 다시 가서 보라고 합니다.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게속 기도합니다. 일곱 번이란 숫자는 중단없는 영원이란 뜻입니다.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징조가 보일 때까지 포기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드디어 작은 손바닥만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의 1% 임계점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캄캄해진 하늘에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기도에 대해서 더 배워본다면 단연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시고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는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어린 제자들에게 그 마음을 토로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시고 따로 가서 기도하십니다. 얼마나 간절하신지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핏방울 되듯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나아가사(막 14:35) 기도하십니다. 주님도 포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승리자가 되는 길을 배웁니다. 그것은 많이도 아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going a little father! 1% 인문고전에서도 Change Big? try small! 마침내 아버지의 원대로 예수님은 쓴잔을 마실 것을 결단하십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4,15절에서 이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 주님은 죽음도 이기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능히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요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안에 모든 재물이 있고 생사화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신명기 30:15, 잠 8:18). 주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녀들 백성들을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38년 된 병자도 이 주님 의지하여 일어섰고, 12해 혈루증 앓는 여인도 주님 붙잡고 일어섰습니다. 주 안에는 오직 승리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면 됩니다. 1mm, 1m, 한걸음, 조금만 더 나아가면 임계점을 통과하고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서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삶입니다. 처음도 믿음 끝도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공부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낙제를 하고, 청년시절에는 청각장애에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전구를 비롯해서 1093개의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전구를 만드는데 140번이나 실패하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에디슨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실패라니요. 나는 절대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전구를 만들 수 없는 140가지의 방법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그가 60년간 가꾸어온 연구실이 눈깜짝할 사이 불타버렸을 때도 그는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발명의 왕으로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포기치 않는 믿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커야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지 우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1%를 더 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명남 단장 중심으로 우주교회 대표 6분이 태국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지난 1차 때는 가볍게 마을 주민 어린아이 중심으로 색소폰 공연하고 선물 과자등을 나눠주었지만 이번 두 번째는 싼바통 스쿨에서 학생중심으로 사역과 쁄라마에서 공연과 선물을 나눠주고, 라후족 마을에 가서는 쌀도 나눠주며 구제사역도 합니다. 김효주 선교사님 왈 처음에는 동행팀 태국 나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태국 단기선교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작은 은사를 진심과 물질을 주께 드려 선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작동 흥분이론이 있습니다. 작게라도 시작하면 더 큰 행위로 이어지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기적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앞으로 5천명을 먹이는 더 큰 역사도 일어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안에 1% 믿음의 임게점을 넘어 변화와 창조의 역사가 계속 일 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동행팀의 태국 여행이 주님이 함께하시는 단기선교가 되어 태국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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