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2월 20일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남사당놀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지정을 자축하는 행사가 열렸다. 사진은 남사당패 연구의 권위자로 서울남사당놀이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심우성 선생이 자축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의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몇 달 사이 안성지역의 일부인사들은 '안성남사당'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둥, 세계인의 인정을 받았다는 둥, 그동안의 노력으로 마침내 쾌거를 이루었다는 둥 자화자찬하면서 공공연하게 호언해 왔다.
심지어 안성시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안성맞춤소식』(2010. 7월호)에서도 “안성은 … 남사당놀이를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시킨 …” 운운하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산이 '안성남사당'임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성남사당이 유네스코 목록에 지정되었다는 것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영예가 되는 일을 갈망하고 희구한다.
인지상정, 이심전심이다.
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 막대한 자원을 투자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다.
정말로 안성남사당이 등재되었다면,
2009년 9월 유네스코에서 등재 결정이 났을 당시 안성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을까.
그 무렵, 비록 전직 시장인 이동희 씨가 부정한 일을 저질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길놀이에 축하공연에 온 동네가 떠나갈듯 큰 잔치를 벌이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당시 시장이 범법자가 되어 인신이 구속되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그리고 내가 '옥관자 바우덕이'의 허구성을 제기한 마당에,
만일 안성남사당이 지정을 받았다고 한다면, 마치 알리바이를 주장하거나 면죄부를 거머쥐듯, 지정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양 홍보해 마지 않았겠는가, 말인즉슨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유네스코위원회나 문화재청의 발표는 물론,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 등을 확인해 보면 지정된 남사당놀이는 안성의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전승된 남사당놀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사당놀이는 조선후기~근세 초기 안성과 서울은 물론 전국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성행했고 기층민들이 전승해온 6마당의 전통연희를 말한다.
현재까지 남사당 패거리들의 은거지로 밝혀진 곳은 안성 외에도 경기도 진위(평택), 충남 당진·회덕, 전남 강진·구례, 경남 진양·남해, 황해도 송화·은율 등지다.
그런 까닭에 '남사당=안성'이라는 도식은 넌센스겠지만, 안성이 유력한 중심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명분으로 보나, 그동안 쏟아부은 공력으로 보나, 역사적 정통성으로 보나,
'안성'남사당놀이가 지정되었어야 마땅할 일이다.
사실 유네스코는 근래 들어서 과거의 교조적 태도와 달리, '국가간 협의 기능'(intergovernmental cooperation and assistance)을 강화, 중시하면서 지정의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거칠게 말해서, 특정 국가에서 반드시 지정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대체로 수용, 지정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남사당놀이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 신청하기 위해 남사당놀이 연구에 일생을 바친 심우성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유네스코에 남사당놀이를 소개한 글('Nomination form' ― 우리 문화재청에서 접수한 신청서)도 선생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물론 이 글은 유네스코 공식 사이트를 방문하면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문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unesco.org/culture/ich/index.php?RL=00184 ― 이 글에는 지정신청한 남사당놀이의 전승지가 '서울'로 특칭[based in Seoul]되어 있다.)
심우성 선생은 안성의 남사당놀이가 한국 전통 남사당의 원류로, 역사적 적통성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국 서울을 택했다.
서울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시여서?
결코 아니다.
2009년 지정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과 2008년 등재된 '강릉단오제'의 경우 '제주'와 '강릉'을 앞세운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국가의 대표도시가 아니라 전승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상례고 상식이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
안성에서는 전통남사당놀이를 아직 복원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겠지만,
(다시 말해, 안성남사당풍물놀이 단원들을 포함하여 현재 안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예가 한국남사당놀이를 대표할만한 특질이나 전형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 안성남사당이 이른바 '신남사당'이라 해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놀이 형태의 창출을 지향하는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무엇보다도 안성의 몇몇 사람들이 우리의 옛 전통을, 특히 '옥관자 바우덕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왜곡하고 있다고 여긴 까닭도 있을 법하다.
심우성 선생은 1974년 <남사당패 연구>라는 기념비적인 필드리서치 연구서를 펴내기 전인 1968년 당시 문화관리국의 요청을 받아 한국 전통남사당의 연원과 뿌리를 정리한 조서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잘 생각해 보자.
심우성 선생은 남사당패 연구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다.
그러나 안성에서 10여 차례 남사당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지만 단 한 차례도 선생을 초빙한 적이 없다.
아마도 선생이 '옥관자 바우덕이'에 대해 보고 들은 그대로 진실을 말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서 일 게다.
특정인의 초청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주최측의 자유다.
하지만 다른 주제라면 모르되 남사당과 관련한 학술세미나를 하는데 심우성 선생에게 단 한 차례도 발제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른바 주최측이 무지했거나 다분히 의도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선생의 빈 자리는, 늘 그래왔듯, 대부분 주최측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주최측이 듣고싶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채워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다보니, 바우덕이의 역사성을 입증할 문헌근거랍시고 제시한 자료가 픽션을 재구성하여 씌여진 소설책일 정도로 코메디 같은 일들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내가 지난 해 말 3편으로 된 <조작된 신화 - 바우덕이의 실체를 묻는다>는 글을 쓴 직후 안성에서 말하는 '옥관자 바우덕이'는 다 "헛소리"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성을 제쳐두고 서울남사당놀이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안성사람들, 특히 주도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인 셈이다.
자신들이 조작해낸 '바우덕이'를 지키려다 결국 남사당을 잃은 형국이라고 할까.
어쨌든,
선인들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의 유수한 문화자산을 발굴 선양하겠다고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채산성 없는 무위롭고, 소모적이고, 허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얼굴을 가린 채 벌떼 처럼 들고 일어나 인신공격을 해 대며 너나 잘하라고 윽박지를 생각부터 하지 말고,
우리나라 남사당놀이의 유네스코 등재에 당위성과 명분, 전통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름 머리에 '안성'을 붙이지 못한 패착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전통남사당의 마지막 후예들. 이들은 대부분 1900년대 초반 안성 청룡리를 은거지로 하여 남사당 단원들로 활동한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송복산(1911-1985), 남운용(1907-1978), 양도일(1907-1979). 1900년대 초반 태생으로 1910년대 말 무렵 남사당과 인연을 맺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자신들이 김암덕(바우덕이)과 그의 거사로 알려진 이경화와 함께 활동했으며 이경화와는 호형호제하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따라서 김암덕이 생존인물이라고 한다면, 흥선대원군 시절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초기에 활동했던 사람이 분명하며 대원군 옥관자 운운은 근거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 사실 이 문제는 지난 해 '남사당놀이'가 유네스코에서 등재 결정된 직후인 10월 무렵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남사당놀이 유네스코 등재"라는 문구를 넣은 현수막을 내걸었을 때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 지역에도 남사당 전통이 있으니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우리나라 남사당놀이가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내건 건 있을 법한 일이겠으나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그 후, 몇몇 사람들이 나서서 등재된 남사당놀이가 안성의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모두들 안성남사당놀이가 등재된 것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하여, 이쯤에서 바로잡지 않으면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옥관자 바우덕이'처럼 사실 아닌 사실로 굳어질 소지가 다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서울이건 부산이건, 어쨌거나, 우리나라의 남사당놀이가 등재된 게 사실일진대, 그걸 안성이라고 하는 게 뭐 대수냐고?
아서시라, 그런 허언에 대꾸할만큼 한가롭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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