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묘지 답사는 잘 가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밀양에는 어떠한 인물의 묘가 있을까 하여 검색하여보니 손유호의 묘가 보였다.
그래서 10월 초 즈음에 답사를 가서보니 풀이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을 기약하고 2개월이 지난 12월다시 찾아가서 찾았으나 차만 고장나고 돈만 20만원이 드는
이상한 답사가 되었다.
그래서 지번을 찾아보니 엉뚱한 지번 이었다. 문화재청과 밀양시가 합작으로 엉뚱한 지번을 올려놓으니
다음-- 지도에서 엉뚱한곳을 안내해 놓아 필자가 고생을 한 추억을 남기게 만들었다,
기관들이 이 모양이니 고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손유호 묘는 다시 지번을 찾고 답사하니 대로에서 그리 멀지 나즈막한 곳에 위치 하고있었다.
삼세번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손유호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나오지 않으나 밀양손씨 족보에는 자세히 나온다고 하며
비문에는 선략장군이라는 기록이 있고 기본적인 기록이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대마도정벌에 참여 하였지만 왜 기록이 없는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선략장군에 호칭이 있다면 기록이 제법 있을 만 하지만 전혀 없는것이 의문스럽다.
묘역은 6좌의 묘가 있고 첫번째 묘 바로위에 손유호의. 묘가 있다.
좌촉의 묘비는 비수는 하엽으로 되어 있으며, 빗돌의 붉은 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 오며,
깊이 새기지는 않았지만 비문에는 보이는 글을 잘 보이고 있다.
좌우에 문인석은 관모를 쓰고 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손유호의 답사 목적은 상석에 있다. 상석은 상다리를 표현하고 다리에 도깨비(귀문) 문양을 두었기에
그것을 보고자 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석에서 문양은 보기드문 것인데, 허추 묘, 조숙기 묘에서 보이고 있어 많이 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손유호의 묘는 도깨비 문양이 있기에 더욱 특이한 것이다.
봉문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고 돌을 잘 다듬어 봉분의 흙이 흘러 내리지 않게
정면 좌우의 끝부분을 솟게 만든 것이 보이는데 탑의 귀 솟음과 비슷하다.
방형의 묘는 1599년 까지 나타나며 그 뒤로는 유교 사상이 강하게 때문 인지
봉분의 형태가 둥근 것이 많아지는 무덤의 형태가 많이 보인다.
겨울 초 입에 찾은 손유호 묘는 기록이 많이 없지만
고려말 조선초기 인물로서 많이 알려야 할 것으로 보이며, 지번이 잘 못되어 있는 것을
빨리 수정하여 고생하지 않게 하여 할것으로 생각된다.
옥산 이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