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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코린토 15,20-27ㄱ
루카 1,39-56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방법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승천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도 당신 아드님처럼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성모님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만 하늘로 오르셨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살아계셨을 때부터 하늘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로 향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하늘로 향하든, 땅으로 향하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죽음과 함께 그 방향의 끝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 걷고 있는지, 땅으로 걷고 있는지 반드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어떠한 추진력을 사용하는지 알면 됩니다.
모든 발사체는 뒤로 뿜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내게서 뿜어나오는 추진력이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물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를 저으며 물줄기를 거슬러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10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5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돈을 쓰는 것에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물처럼 흐름이 있는데 기쁘게 흐르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부족함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쁘게 내어주는 것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용서를 기쁘게 하고 있다면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진리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움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만큼 가버리고 맙니다.
구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두 명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뜻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서 온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약의 에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으니 그 추진력으로 말씀의 고향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며 자신의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떨어뜨렸습니다.
엘리사가 그 망토로 강을 치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힘을 지닌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고 ‘은총’을 상징합니다.
누군가에게 은총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은총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채십니다.
포도주는 은총입니다. 교회에 은총이 부족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내려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에 은총을 중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 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하늘에게서 오는 것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의 중개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에 어떻게 다시 오르는지 보여주신
최초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코린토 15,20-27ㄱ
루카 1,39-56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입으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불러올림을 받으셨음, 즉 구원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함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성모 승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지상 순례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가능한 일이 승천이고 구원이여, 천상 영광에의 참여입니다.”
성모 승천은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의 신앙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구원과 승천이라는 풍성할 결실을 맺었음에 대한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하면서, 그분의 구원 의지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면 성모님처럼 구원과 승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모 승천은 지상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징표로 제시됩니다.
아울러 성모님이 도달한 목표는 성모님 당신 개인만의 목표가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목표, 교회의 목표요, 오늘 우리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후에도 이 목표에서 빗나갈 수 없다.
마리아의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성령강림 직후 에페소로 가셨습니다.
골고타 언덕 위에서 아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에 따라 요한 사도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평소 성모님의 성향을 고려할 때 절대 편안히 계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요한 사도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의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하셨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틈만 나면 기도하면서,
언젠가 상봉하게 될 당신 아들 예수님을 매일 그리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의 죽음과 승천에 관한 전설은 다양합니다.
한 전설에 따르면 성모님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선교를 위해 사방에 흩어져있던 사도들이 모여와
마지막 인사를 올렸답니다.
이윽고 성모님께서 임종하시자 사도들은 기도와 찬미가로 그녀의 덕을 기렸고,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멀리 선교 나가 계셨던 토마스 사도는 빨리 달려온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도착해보니 장례를 치른지 이미 사흘 뒤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토마스 사도는 성모님 얼굴이라도 뵐려고 무덤을 열었는, 그분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수의는 잘 개어져 있었고,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무덤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답니다.
현장을 목격한 사도들은 이렇게 외쳤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님을 부활시키셔서 그 정결한 육신을 모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모승천은 교회와 전 인류가 그토록 바라던 최종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제일입니다.
성모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모승천 교리를 굳게 믿는 우리들은 오늘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이 클수록,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가 나아갈 길이자, 역할모델이신 성모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성모 승천과 관련된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의 찬미가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부께서 간택하신 신부가 하늘의 신방에서 사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가까이서 보며, 아들을 낳으실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칼날 같은 슬픔을 느낀 이가 자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린 대사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의 복사판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비록 나약한 인간이지만 썩는 몸에 썩지 않는 것을 입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 성모님께서 직천당(直天堂)하시고 성인 중의 성인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 대사건입니다.
우리가 비록 썩을 몸을 지닌 인간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처럼 불멸의 갑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8월15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승천 대축일]
8월 15일은 광복절이며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성모승천에 대한 것이 성서에 나타난 근거는 없지만,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에 대한 신앙을 간직해 왔고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Muniticentissimus Deus)이라는 칙서를 통해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교회는 2000년간을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했으나 정식으로 신앙교리로 선포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이요 거룩한 교회는 하느님의 모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가장 큰 축일을 지내고 있다. 8월 15일 축일은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잠(kóimêsis), 성모승천(Análêmpsis) 등이다. 오늘 8월 15일은, 교회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당신의 아들과 같이 특별한 기념을 하고 있다. 아들의 부활과 영광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영광 안에 -영혼과 육신- 처음으로, 우리의 희망으로서, “승천”하셨고, 영광 안에 당신 아들을 따라가셨다.
복음: 루가 1,39-56: 마리아의 노래
주님의 천사가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마리아에게 전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즉 남자가 없는 처녀가, 그리고 석녀였던 엘리사벳, 노인 즈카리아의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과 마리아도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즉 하느님께 충실히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즉 하느님의 말씀대로(38절).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즉시 집을 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도와주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엘리사벳에게 인사한다.”(aspázomài).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이제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35절). 그리고 엘리사벳이 그 인사말을 들었을 때, 즉 당신의 친척의 “인사”(aspamós)(36절)를 들었을 때, 먼저 당신의 태중의 아기가 기뻐하였다. 이 아기는 요한이라 불릴 것이다(63절).
마리아의 여행은 나자렛으로부터 한 것이다. 엘리사벳은 구원을 기다리는 충실한 여인으로부터 난 여인으로 유다에서 구세주가 오시며, 유다에서 나타나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요한을 통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들은 성령 안에서 사제적, 예언자적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방문과 인사는 엘리사벳에게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주었다(41절).
이렇듯 마리아는 첫 번째로 성령을 받은 분이셨으며, 엘리사벳은 두 번째 성령을 받으신 분이시다. 이분들은 바로 성령을 전달해 주는 분들이다. 이 두 여인은 함께 태어날 아기들에게 있어 주님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 위대한 왕의 거룩한 나라의(참조: 시편 47,3; 마태 5,35), 성령으로 준비된 성전의 처음의 중심인물이 된다.
마리아 승천 축일의 의미
이것은 마리아의 신앙과 삶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구원역사의 완성에 희망을 준다.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은혜를 입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성실한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마리아를 통하여 미리 앞당겨 실현한 사건이다. 즉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재확인이며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다.
여기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스스로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신 하느님께 당신의 육체를 내어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이시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
이렇게 마리아를 보면 모든 것이 믿음에서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는 모습이다. 즉 천사의 알림에서 십자가 사건 그리고 성령강림까지 믿음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아브라함보다 더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믿음으로 아드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신 분이시며,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을 당신의 순종으로 풀어주시고 세상에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한 새로운 하와이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해준다.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그 혈연관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복되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에 언제나 칭송과 영광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어머니로서 또한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항상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신앙인의 모델인 성모님께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하늘의 영광에 첫 번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의 생활이 마리아의 삶을 따를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아줄 수 있다. 마리아로서 살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할 길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