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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정원 55명 중 현원은 35명…인력부족으로 20명이나 못채워
‘포스트 모템 CT’ 도입 등 기술발전에도 제도 없어 ‘무용지물’
양경무 법의학부장 “부검여부 결정 권한 강화한 검시 제도 필요”
범죄수법이 정교해지면서 과학수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범죄수사 해결의 결정적 단초가 될 수 있는 부검 건수가 늘고 있는 이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의뢰 받는 부검 및 검안 실적은 한해 9,000여건에 달한다. 지난 2016년 7,739건에서 2018년 9,131건으로 큰 폭 늘었다. 하지만 시체를 해부하고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법의관은 턱 없이 부족하다.
현재 국과수 내 법의관 수는 35명으로, 한 해 9,000여건의 부검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의관 1명이 평균 300여건을 담당해야 한다. 여기에 행정을 맡고 있는 보직자를 제외하면 현장인력은 26명으로 업무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고질적인 인력 정체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국과수 정원을 지난 2016년 38명에서 2019년 55명으로 늘려보기도 했지만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정원의 37%인 20명이 결원으로 공석이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업무는 더 가중됐다. 코로나19 백신접종 후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백신접종과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부검 건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쏟아지는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어 ‘번 아웃’된 법의관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는 우리나라 검시 제도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국과수가 지난 1955년 설립된 후 6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검시관 직무와 권한에 대한 법령이 부재한 것은 물론 법의 전문가 양성 시스템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 부검 기술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지만 낡은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국과수는 서울을 비롯 원주와 부산연구원에 시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크리닝이 가능한 ‘포스트 모템 CT(Post mortem CT)’를 각 1대씩 도입했다.
CT와 엑스레이 도입으로 빠르고 정확한 부검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시 관련 책임과 수행이 다원화 돼 있고, 부검이 필요한 필수 검사대상에 대한 명문적인 규정이 없다. ‘영장’ 없이는 검시 수행도 불가능하다.
본지는 법의관 부족의 원인과 이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또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국과수 양경무 법의학부장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그는 가장 먼저 법의관 역할과 권한 등 직무 관련 규정을 만들고, 이와 관련한 부검여부 결정 권한을 강화해 능동적으로 검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토대로 법의 전문가 양성 방안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단순히 인력 늘리기에 초점을 맞춘 주먹구구식 인력운용이 아닌 검시 현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스페셜리스트로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인력난 허덕이는 '국과수'…부검건수 9000건에 법의관 35명
- 2016년 7,000여건에서 2019년 9,000여건으로 부검 건수가 크게 늘었다. 부검이 증가한 이유가 있나.
지난 2016년 충북 증평 사건이 우리나라 검시 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예다. 80대 노인이 부패된 채 발견됐다. 현장 침입흔적이 없었고, 혈흔이나 외상도 없으니 병사로 검안서가 작성됐고 이에 따라 화장됐다.
하지만 이후 50대 이웃 남성의 범행 현장이 기록된 CCTV 파일이 유족에 의해 공개되면서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검안을 한 의사로부터 병사로 들었고, 검안서를 써준 의사는 겉으로 보고 다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유족은 (어머니에게) 아무 일 없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검도 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된 거다.
부검을 하지 않으니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었고, 살해 방법을 입증할 만한 해부학적 단서도 없었다. 시신에서 밝힐 수 있는 절대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CCTV 영상이 증거가 돼 (범인은) 처벌을 받게 됐다. 결국 부검을 결정하는 기준이 부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증평 사건 이후 부검 규정이 만들어졌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정황적 판단이 아닌 일정 기준에 부합할 경우 부검을 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는 경찰청 예규로 그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부합함에도 부검하지 않을 경우 사유서를 쓰도록 명시했다. 그 이후 부검 건수가 7,000여건에서 9,00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
- 우리나라 검시 제도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경찰청 예규로 부검 규정이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법의학 전문가로서 경찰이나 유족에게 부검 요청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연구소 법의관으로 있을 당시 현장에 나가 검안을 하고 나서야 한국의 검시 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현장에서 검안을 해보니 범죄 의심점이라 할 만한 근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근거가 없으니 부검 하자고 말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비통해 하는 유족들이 옆에 있고, 형사는 침입 흔적이 없다며 유족도 부검을 원치 않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부검 하자고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신 손괴가 마뜩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진단도구도 사용할 수 없다보니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부검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에 둘러 싸여 판단해야 하니 어려웠다.
검시 관련 책임과 수행이 다원화 돼 있다. 검시 책임자는 검사고, 수행자는 사법 경찰관, 부검 허가는 판사가, 실무 책임은 의사가 맡다보니 전문성과 통합성이 부족하고 관련 사항에 대한 책임 소재 또한 불명확하다.
또 반드시 부검이 필요한 필수 검시대상에 대한 명문적인 규정도 없다. 때문에 부검 여부에 대한 검사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 1년에 25만명이 사망하고 그 중 7만 건이 시체 검안소로 간다. 즉, 7만 건은 사망한 채 발견된다. 하지만 부검은 9,000건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나머지 6만1,000건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분류돼 화장장으로 갔을까? 그렇지 않다. 검시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 국과수 법의관 인력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9,000건을 부검하기도 벅찬 상황인데, 검시 제도가 바뀌더라도 나머지 6만1,000건을 부검할 인력이 없어 보인다. 해결 방안이 있나.
현재 국과수에 6만1,000건을 스크린 할 수 있는 기술력은 갖춰져 있다. 선진국에서 ‘포스트 모템 CT’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CT를 도입했다. 시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찍어 출혈, 골절 등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됐다. 중독 검사도 선별검사를 통해 4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이걸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장이 필요하다. 유족은 3일장을 치러야 해서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데 그 사이 영장도 받아야 하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앞서가고 있는데 제도가, 법이 없다.
검시 제도가 잘 정비된 곳 중 하나가 호주의 빅토리아법의연구소다. 어떤 사건이 나면 무조건 법의연구소로 와 CT를 찍고 혈액을 채취한다. 채취한 혈액은 아침과 점심 2회 빠르게 독성 검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놓고 법의 병리의사와 검시 판사가 만나 부검 여부를 논의한다. 부검을 안 하면 안 하는 이유가 있고, 하면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황이 가장 중요해지니 (단서를) 놓치게 되니 안타깝다.
'법의관 제도' 필요…한의사 법의관은? 'No'
- 절대적인 법의관 수부족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수차례 지적돼 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법의관이 될 수 있는 전문의에 의사와 치과의사 외 한의사도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의관이 될 수 있는 전문의에 한의사도 포함시켰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또 법의관 제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의료법 제17조에 따르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진단서·검안서·증명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직종별 분리가 안 돼 있기 때문인데, 지금 크게 문제 삼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의료법 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하면 복잡해지는 거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적으로 법의관이 해야 할 업무와 갖춰야 할 자격 요건이 정해지면 실질적으로 한의사가 (법의학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치과의 경우 법치의학이라는 특수한 임무를 맡는다. 치아에서 신원확인, 연령감정, 성별감정, 백골시신에 의한 감정 등 그 역할이 굉장히 크다. 법의학이라는 통상적인 업무 이외에 특수 업무를 하고 있다.
인력확보를 위해서는 법의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5년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래로 진 의원이 6번째 법의관 제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회기 만료로 번번이 폐기되기 일쑤였다. 단기적으로 처우 개선 등을 통한 유인책을 확충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인력 수급을 위한 양성 계획, 예산 지원 등이 필요하다. 특히 법의관 직무 관련 근거 법령 부재로 수사기관 요청 사항 및 제공되는 자료에 의거해 수동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검사나 판사처럼 어떤 자격을 갖고 어떤 행위를 한다는 규정을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 법의관 부족으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부검감정 지연이다. 정보를 취합하고 꼼꼼히 봐야한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덜 정교해 질 수밖에 없다. 경찰에서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사건의 경우 현장으로 나와 줬으면 하는데 인력 부족으로 그 지원도 잘 안 되고, 증언을 위해 법정 출석 요구도 늘었다. 그러다보니 감정서 쓸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다보면 번 아웃 되기 쉽다.
코로나19가 바꾼 부검 환경, 법의관 결핵 줄었다?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의료 환경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코로나19가 부검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부검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한 이후 사망한 분들의 부검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접종 이후 사망자 수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비이락이 많아 보인다. 부검을 해보면 대동맥류 파열이나 뇌혈관 파열, 심근경색 등 자명한 사인들이 있다. 이에 유족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코로나19 백신과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검사가 늘고 이에 대해 감정을 하기 위한 집중도가 높아졌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위험과 유족들의 민원에 대한 대응도 현장 법의관 몫이다.
반면 코로나19 전에는 방역복장 착용에 느슨한 감이 있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코로나19 후 마스크에 더해 헤어 캡, 방수 에이프런, 장화 등 개인 방호복장이 완벽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후 부검실이 아름다워졌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도 반드시 유지돼야 할 부분이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 법의관들이나 법의조사관들이 자꾸 결핵에 걸렸다. 뇌까지 결핵균이 퍼져 있을 정도로 심한 분들을 부검하다보니 방역복장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을 경우 감염이 일어났을 수 있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 법의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충원 상황이 장기화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지난해 법의관도 전문관 제도를 도입했다. 법의관은 전문지식이 요구되고 장기 근무가 필요한 업무 특성상 한 분야 스페셜티를 갖는 게 중요하다. 명장이 되라는 제도다. 인력 상황도 조금씩 풀리고 있다. 올해 병리과 전문의가 4명 입사했고, 내년에도 6명이 지원해 놓은 상태다. 결국 전공의 지원할 때 의국 분위기 보고 선택하듯 마찬가지인 셈이다. 국과수를 선택하는 이들은 정말 법의관이 하고 싶어 지원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기도 한다. 시신을 다루지만 의사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그 데이터를 산 사람을 위해 사용하려고 애쓴다. 학술활동을 하고 통계청과 질병관리청과도 협조한다. 의사니까 최소한 중의(中醫)라도 돼야 되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집단 지성이 잘 작동되는 조직 안에서 의사로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과수는 내게 사람의 완성도를 높여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