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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좌(25)】 ‘주권이 전체 민중에게 있어" 信天함석헌
요한복음 251)
주권이 전체 민중에게 있어
여왕이 알 낳지. 그 알도 뭐 그저 교미 한 번 해가지고 그러고 얼마동안 키워온 알 낳고 먹여 있는 거지만 알을 낳더니 난 알이 지금 있다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또 어드런가 하니 재미가 있어. 여왕이 어떻게 그 왕봉이 죽어버리면 임시로 왕을 만들어요. 벌 사회에 그런 능력이 있어. 그건 왕 되는 게 뭘로 되냐하면 그 먹이는 뭔가 하는데 따라서 되요. 참 재미있어요. 그거 여러 가지로 연구 생각해보세요. 그럼 그 깨달아 지는 점이 많이 있어요.
로얄제리라는 것이 거기서 나와요. 고 조그만 알을 낳아 놓고 알은 똑같은 알인데 똑같은 알이에요. 알은 다른 거 없는 알인데, 임금이라는 것도 우리와 종자가 다른 거 아니라 그 말이야. 저것들도 마찬가지 종잔데 먹는 것 따라서 달라 먹는 것 따라서 먹으면 되. 먹는 것도 오래 먹이는 거 아니고 처음 나흘 동안인가 먹이는 거 달라서 다르데요. 로얄제리는 그 동안의 즙을 다른 벌과 달라서 알이 있고 왕봉 될거는 소위 왕즙이라고 해서요 크기가 뽀얀 즙이 그 속에 있습니다. 처음 나흘인가 며칠 동안 먹이는 고게 특별한 먹이는 거 돼서 그럼 그게 왕이 되요.
그러니까 벌이란 놈 이게 주권이 전체 민중벌에게 있어 그래서 자기네 생각에 우리 세간나고 싶다 그건 누구 뭐 어떻게 의논 하는지 모르지만 과학적이에요. 우리 세간 너무 나라가 커서 세간나고 싶다 그러면 뭔고 하니 왕봉더러 알을 낳라고 그래요 왕봉은 본래 왕봉 자기생각에 권력자는 마찬가지야 알 않고 왕벌은 왕벌을 안 만들고 싶어 한답니다. 될수록 안날라고 한답니다.
제가 왕 노릇하는 것 좋거든 그런데 이놈들이 벌이 많고 그러면 자꾸 그 왕봉을 협박을 해서 알을 낳고 그러면 왕봉은 할 수 없어 말하자면 알을 낳요. 협박을 하면 되요. 알을 낳거든 말하자면 왕 되면 그럭하면 알 낳는 거는 당연하고 알은 마찬가지 알인데 이것들이 분봉을 하고 싶으면 왕 될 보통구멍보다 벌집을 좀 크게 만들어요. 근데 여기 이미 알을 낳으라고 해도 안 낳는다말야 그럼 저 변자리에 이렇게 가져다가 특별한 다른 구멍보다 다른 데는 거기다 좀 알도 새끼도 쳐내고 꿀도 거기에 해놓고 그러는 방인데 거기다가 일군 될 백성될 건 거기다 다 나놓지만 임금될 건 변자리에다 좀 구멍을 크게 하고 여기다 낳라고 해도 왕벌이 잘 안 낳라고 그래.
그렇지만 인구가 많아지면 자꾸만 낳라고 협박을 어떻게하는지 학자들이 연구를 하면 하면은 여기다 알을 낳아요. 여기 많이 낳는데 여기 자꾸 많이 낳는다 많이 낳는데 거기다가 왕즙을 여다 먹여서 되는데 어떡해서 여왕이 그만 죽어버린다 죽어버리면 거 난 알이 있으면 그 나란 임시로 집을 막 고쳐요. 이제 보통구멍에 낳던 그 알을 확장을 하고 이제 넓게 만들어 가지고 거기다 왕즙을 넣어 먹여서 만들어요. 이러는 재주가 생명에 이러한 신비가 있다 그 말이야. 그러고나면 왕이라는 거 그리 신통한 거 아니에요.
그 민중이 저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편의를 만들어. 만들라면 만들고 없애려면 없애고 그러는 거야. 그러는데 글쎄 이상한 거 뭐냐 그러면 왕이란 거 있으면 절대 존경을 해요. 벌이란 그거를 자꾸 옹호를 하고 그건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좋은 것만 먹고 입고 어디를 갈라면 길을 슬슬 내주고 또 그럴뿐만 아니라 또 어떤 때는 왕봉이 없어지면 말이야 왕봉이 없어져 후계자를 만들 여유도 없이 흩어지고 말아 아주 그 벌통 망하고 말아요. 그럴 땐 어디서 왕벌을 왕대를 꿔다가라도 넣어주어야 그 벌이가 안정을 하고 있지 벌써 왕벌 없다 그러면 벌은 흩어지고 말아. 그거 재미있지 않아요. 그런 게 우리 정치 살림의 한 심볼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 말에 영어로 하면 레인 룰(reign rule) 그러나 국민 왕이라는 건 이렇게 있긴 하지만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게 참 임금이야.
민중이란 왕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럼 왕이란 건 왜 필요하냐? 그러면 심볼이야요. 그건 민중이라는 건 왕을 요구한다. 사람은 왕 없으면 못산다. 그 말이에요. 그래 집에서는 아버지가 왕 노릇을 해요 학교에서는 선생이 왕 노릇을 하고 범위가 작을 뿐이지. 그런데 그게 반드시 폭력을 가지고 폭력을 가지고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 어떻게 힘이 강한 거 아니지만 그걸 이렇게 그 절대를, 집에 아버지가 아버지로 모시는데 아버지가 뭐 반드시 힘이 강해서 아버지가 되요. 재주가 많아서도 아버지가 아니야. 그저 아버지니깐 아버지지, 아버지라고 모시니깐 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러는데 어느 상황에도 그래요. 그런 것이 필요하다 그 말이야. 그건 없으면 안 돼.
실제 자라나는 임금이면은 지배하진 않아. 그저 이렇게 임금이라 그럴 수 그거 좋은 예가 스위스의 임금 같은 거, 스웨덴의 임금 같은 거, 그다음에 임금노릇 영국의 임금 같은 거, 아무 거 실력 임금에게 있지 않아. 그렇지만 백성들은 임금님 조심하고 이러지 않아요? 그런데 그럼 그 인간이라는 게 임금 왜 있게 생겼을까. 그러면 그러고 위배되는 일종의 철학얘기가 됩니다만 그 뜻을 생각을 한다면 그게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을 상징하느냐고 그래 그럴 거예요.
인간의 마음에는 제가 살았으면 그만이 아니라 저하나 살자는 것만, 물론 개인으로는 내 개체 밖에 모르지만 의식적으로는 개체밖에 모르지만 그보다 더 깊은 그 인간의 성질이 뭔고 하니 나만 살자는 거 아니라, 이 전체가 전체라 하는 게 이게 생에 근본이야요.
전체가 산다고 하는 그러기 위해서 뭔지 그 있는 것에 여럿이 있는 것에 곳에 가면 전체라 하는걸 보고 표시하게 되는 심볼. 그런 게 인간사회에 임금이라 하는 게 있었어. 그런데 고대에는 그럼 그게 누가 됐냐, 그러면 집안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되는 수가 있고 지혜가 많은 사람이 마음이 어진 사람 그래서 그들이 이제 생활 지도도 해오고 그런 거예요. 그게 참 비교적 좋은 의미의 말하자면 임금이야요.
그러니까 이 사회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전체를 대표해서 좋으니까 그래서 그를 떠받들어 섬겨요. 그것까지는 좋았어요. 그러니까 뭔고 하니 이렇게 높임을 받은 것에 마음속에 딴 생각이 들어가게 됐어. 그 높임을 받는 것이 너만 잘났다해 하는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르는 우리 자기네도 모르는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을 이렇게 바라보는 마음, 영원한 것 무한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 무슨 위대한 무슨 그런 걸 원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하나 내세우는데. 이거는 제가 잘나서 제가 특권을 가져서 그런 줄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됐어. 그런 것이 벌써 이미 종교가 때에 생겼고 그 다음에 내려오다가 무력이 발달되면 무력을 가지고 하는 사람한테 더군다나 그런 생각이 나서 아주 그다음엔 거꾸로 되어 본래 민중이 이렇게 존경해서 앙모해요.
고마운 생각으로 해서 이렇게 한 심볼 모양으로 봐서 전체를 대표하는 걸로 둔다하는 그게 그러기 때문에 초대 인류사회는 누가 아주 원시시대에는 누가 됐냐하니 어머니가 됐거든 여성이 자식을 낳고 기르고 하니깐 그게 생명의 근본이요. 그러니까 여권시대에 있지 않아요. 여자를 중심으로 하고 지금 아직까지도 미국에 인디아나에 가면 아주 나이 많은 그 할머니가 특별한 존경을 받는데요. 이제 그리고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는 그리고 와서 임석(臨席)2)을 해 앉으라고 그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렇게 가서 묻고 그가 뭐라고 말해주면 대개 어기는 일이 없이 듣고 그랬다하는 거 요새 아마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사람이 가진 역사까지도 인디안의 사회에 미국사람이 간 이후에도 그런 걸 가보면 있었더라 그런 기록하는걸 봐요.
그런 게 고대 어느 사회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 때는 권력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아주 그 말할 수 없는 인정과 무슨 여러 가지 그런 게 얽혀서 이제 자기께 된 건데 이 인간이 요렇게 지식이 지혜가 발달을 되고 이러면서부터는 그게 권력욕이 생겨서 자기가 그런 지위에 있으니깐 나는 높다 내가 곧 하나님이다. 제 생각으로 그렇게 제 말로 그렇게 되고 그러니까 나는 특권을 가져야 된다. 이렇게 돼서 먹고 입고하는 거를 차별을 하고 이름까지도 차별을 하고 해 가지고 자기는 딴 종류의 사람이지. 이렇게 하기를 수천 년을 내려온 거 이거인데, 지금 와서는 다시 이제 그 민중이 깨가지고 그런 거 아니다. 우리야 말로 기다. 그래 이 싸움이, 그러니까 임금이라 하게 이름을 고쳐 뭐 대통령이라고 하고도 뭐라하고 이름을 고친다마는 그런 게 사람들의 그 정치 관계야요.
그런데 그러면 정치관계의 한 심볼로 이렇게 내놓고 그랬습니다만 정치는 그럼 왜 있냐? 그러면 정치 없을 수 없어요. 만일 정치가 없는 걸 생각을 하면 그건 한 공상이지. 이 사실로는 왜 어찌 그래. 사람은 두 면이 있어요. 두 면이라는 말도 부득이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그러나 두 면이라고 할 수밖에 하나는 이제 종교라 하는 말도 표시되는 면이고 신앙, 혹은 정신생활이라고 또 한 면은 이 세상 이 사회라는 거 정치라는 거 무슨 이런 걸로 표시되는 게, 그건 왜 그러냐하면 뭐 보통 다하는 말은 사람은 시간의 사람 이 시간 공간속에 살기로 또 염원하고 무한한 거를 요구하는 그걸 원하는 그 둘이 있는 게 다. 그 두 가지 성격을 다 띤 게 소위 이 인간이라는 건데 생활의 두 면이 다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종교에서 말하면 그게 옛날에 이렇게 종교가가 “우리의 주님이라” 그러고 “메시아라” 그렇게 내세우는 그러니까 정치면에서 보면 임금이라는 거야. 그게 그 세계를 대표하는 정치적인 살림을 대표하는 그런 거 사람인 이상에 완전한 거 아니니깐 욕심이 있지. 욕심은 도를 넘게 마련이지 그러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뭐이 그 문제가 생기게 돼. 그럴 때 그 어떻게 하나 이런 걸 뭘 조정을 하고 이러기 위해서 무슨 정치적인 뭣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안 생활만 가지곤 안 돼요.
그러니까 그런 걸 하자는 게 정치관계고 그런 걸 대표하는 게 옛날 임금이란 그거에요. 그러니까 두 면들이 다 있는 건데 옛날에는 그걸 한배도록 이렇게 사회가 발달되다 분업적으로 갈라져 지금은 그 둘이 잘 조화 되야겠는데 잘 조화 안 된데서 지금 여러 가지 폐단이 이러는데 지금은 지금으로부터 한 2천년이내로는 지금 뭐냐 그러면 아주 이 정치적인 더구나 무력을 배경으로 하는 나라가 옛날에도 늘 그런 거 아니에요. 한 2천년 이후부터 이렇게 무력을 배경으로 하는 국가적인데, 나는 내 개인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인류가 늘 그러리라고 생각을 안 합니다.
아직도 동물의 지경을 나오긴 나왔지만 그리 멀리 나오진 못했기 때문에 상기도 폭력을 써가지고야 말을 듣지 사람이 좀 발달이 되게 되면 폭력을 안 쓰고도 정치가 되는 그런 단계에 갈 거라고 난 생각을 합니다만 지금까지는 체 그렇지 못해서 폭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정신 근래에도 이렇게 지금 지배자의 그러니까 그래 나 어제도 그런 얘기했습니다만 두 세 계인데 사람의 사는 세계가 내적 살림하고 외적 살림하고 둘인데, 종교 살림하고 정치 살림하고 둘인데 이 정치적인 사회적인 살림에서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말하면 뭘까? 사람의 이 욕망이 여러 가지에요.
여러 가지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 있고 입고 싶은 것도 있지만 또 놀고 싶은 것도 있고 뭐 그러니까 욕망이 가지가지 그러니까 사람이 관계하는 여러 가지 면으로 복잡하게 관계하지 한 가지면 만이 아냐 허나 이세상이라고 하는 이 세속이 세큘라(secular)라고 하는 이 세속적인 세상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서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그 관계가 무슨 관이냐 그걸 생각해 보세요. 이제 모든 가치가 다 필요한 거지만 가치정도가 다 같지를 않아요. 어떤 거 더 가치 있고 어떤 거 덜한 거 있고 관계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정도가 다 같지를 않아 어드런건 또 굉장히 선이 굵은 거 있고 가는 거 있고 그러니까 가장 그 속에 기본적인 거 있다.
말하자면 집에 토대모양으로 그거 있어가지고 그 위에 모두 다 이렇게 서게 된다. 그런 거 있다면 뭐라 그러겠나 이 아무생각 없이 나는 이제 이다음은 모르겠어. 지금까지 생각을 해보면 이 세상에 이 인간관계는 말이야 뭐 거기에 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고 뭣도 상점도 뭣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요컨대 이렇게 따지고 따지고 들어가면 지배 피지배의 관계라 그게 기본적인 관계야. 지배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고 아무도 순전히 다스리기만 하는 사람만 없고 순전히 다스림을 받기만하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은 다스리면서 또 다스림을 받으면서 그러는 게 사람이에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다스리는 것 같지만 아버지도 다스림을 받아요. 집은 난 그래서 좋다고 그래. 집에서는 제각기가 다 임금이라 난 그럽니다. 아버지가 왕인 것 같지만 아버지만이 아냐 거기 제일 간난아이가 아버지 이렇게 해줘 그러면 그 아버지가 꼼짝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요.
아마 어린애가 아버지 네발로 벌레벌레 기어 어쩔 수 없이 기고야 말거예요. 그러는 게 아버지에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제일인 것 같은데 가정에서는 제각기가 다 절대권을 가져요. 아들의 권위도 절대야. 어머니의 권위도 절대야 아버지의 권위도 절대야 그렇게 하고도 어떻게 충돌이 안 됩니까. 그 충돌이 안되는 데가 가정이 재미있는 데야. 그게 인제 인류사회에 있어 가정이 아직까진 제일 기본적인 사회로 오니까. 그것은 생명의 본래의 근본에 신비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에 의한다. 완전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그 아낙3)에 보면 그 관계가 지배 피지배라고 다스리냐 다스림을 받냐. 사람의 마음속에 지배욕이라고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을 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할 수가 없어 이러고 있지 “어유 나 같은 건 못합니다.” 그러지만 그거 다 할 수가 없는 줄 아니깐 나 같은 거 못합니다, 그러지 다 없다면 저건 내가 어떻게 하고 다 그런 용기가 다 있어요. 다 있어요.
그러게 어떤 회합에 가도 아주 온순하다고 하는 사람도 사실은 제 마음대로 좀 하고 싶은 거예요. 세상이 될수록 내 뜻대로 됐으면, 이게 나를 중심으로 하고 이 우주를 통일해 가는 거예요. 그러는 게 내 자아의 본질이에요. 그런 게 다른 거와 관계되는 게 되니깐 다스림이나 다스림을 받는 거. 그러니까 두면이 다 있어. 다스림을 받기도 하고 다스리기도 하고 그런데 한나라에서는 대통령 같은 사람은 가령 임금 같은 사람은 다스리기만 하지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 그 사람이야말로 다스림을 참 받고 있는 사람이야. 겉껍데기 보면 굉장히 자기 있는 데로 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삼선개헌 해야겠다고 하는데 자기마음으로 했을 리가 있소. 옆에 사람들이 자꾸 자꾸 다같이 왜 그런고 하니 자기가 하고 싶다면 5·16 저 하던 날부터 “내가 할란다” 그랬을 거야. 근데 그 말 여태까지 못하고 있는 거봐요 못하고 있나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 아냐. 그러니까 임금노릇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고 하지 않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고 어디로 가나 절대자는 지배하면서 지배받으면서 사실 어느 면으로 보면 한나라의 임금이나 대통령이나 하는 사람처럼 자유 없는 사람 없어요. 세상에 있다면 내가 비교적 제일 자유가 있는 사람일거라고 내 마음대로 뭐 갈라면 가고 올라면 오고 뭐 쉴라면 쉬고 마음대로야 하나, 아마 박정희씨는 그렇게 못할 거예요.
자유가 없어. 자유가 없을 거야요. 뭣에 지배를 받고 있지. 그런데 좋은 것에 지배를 받고 있다면 좋겠는데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참 큰 걱정이야. 그런데 그런 말로는 나쁜 의미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이러구 아주 강력하게 이럭하는 것이 힘이 강해서 그러는 것 같지만 뒤집어서 보면 그게 민중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러지 않소? 왜 민중이 물건 같다면 뭘 민중에 대하여 법률을 맨다 헌법을 맨다 삼선을 해야겠다고 부정직을 하면서 더럽게 하면서 악독한 수단을 써 가면서까지라도 반드시 헌법 개정이라 하는 형식을 밟아야 하고 국민투표를 밟아야 형식을 밟아야 한다는 건 자유 없는 증거에요.
악을 해도 민중이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악도 못하고 있는 존재가 그 존재야. 그러니까 악하니깐 제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악도 민중의 허락이 이 민중이 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마지못해 하라고는 허락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안된다. 거기가 그런 점을 참 깊이 생각을 한다면 좀 영리하게 우리들에게 아마 할 거예요. 그래 하여간 내말은 인간이 사회 이 종교계말고 정신계말고 여기 이 세상에서 얘기하면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뭐냐 그러면 지배 피지배의 관계, 그러니까 이게 바로 되야 되. 이게 비교적 바로 된데가 어디냐 하면 아까 가정이라는데 지배하지만 지배를 받아 지배를 받지만 조금도 아쉬운 맘이 없어. 불편을 느끼지 않아 지배하지만 조만한 생각을 느끼지 않아. 자기의 특권이라는 생각을 느끼지 않아.
그게 비교적 이상적으로 지배를 해서 그 관계를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나라도 그런데 가깝게 됐으면 말하자면 아까 하나님이 어째 그랬는지 이 우주간에 버러지 속에 벌이라 하는 사회를 두어서 정치에 그 모델, 저런 걸 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날만큼 이상한 걸 하나 두었다 하는 그런데 그런 얘기 나왔으니깐 저 부속으로 하나 할랍니다. 자연계가 재미있는 거예요. 또 나쁜 반대되는 면도 있어요. 개미에게 노예개미라는 종류의 개미가 있어요. 종살이 하는 개미. 그런데 그건 여러분 요새 나가면 요렇게 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미 장본다’ 그러지 않아요.
개미 장본다는 게 그게 그거 아니래요. 개미가 여기 있고 여기 둥지가 이렇게 있으면요 그 강한거의 개미에 나가서 이제 첩보대가 나가서 이따끔 탐색을 한 대. 어디 가서 먹을만한 데가 있나 그래서 약한 부대를 보면 좀 약한 부대를 보면 그놈들이 습격을 간대요. 습격을 가서 뭘하는고 하니 그 개미 둥지에 들어가 가지고 알을 가지고 ‘개미 장본다’ 하고 물고 오는 거 남의 둥지에 가서 도둑을 해 가지고 오는 알이랍니다. 그게 약탈해 가지고 오는 알이래요. 그래 그 약탈을 해 가지고 오면 그걸 그 다음에 기르면 이놈의 개미는 천생 노예노릇을 한 대. 아이 이 비참한 자연의 이런 것도 그래서 그걸 노예개미라 어드런가 인간 세계의 이놈의 이 그런데 그런 것도 있냐? 벌이의 왕 같은 것도 있지만 그건 이제 저 무서운 얘기를 했습니다만, 하여간 그래 예수님이 호산나 그랬다는 건 내가 본 인간이란 왕을 원하는 거 왕을 원하는 건 뭔고 하니 이 세상에는 질서가 뭣이 질서를 원해. 무슨 위대한 걸 원해. 그런 것이 심볼로 질서의 심볼로 위대하다 하는 것을 심볼로 그럼 생명을 그런걸 한다해서, 그러니까 사람의 사회가 사람의 크거나 작거나 무슨 사회가 있는 데는 반드시 임금이 있어 집에서 하는 아버지라 하는 이름으로 있던지 학교에서 하는 모양으로 선생으로 했던지 뭐 무슨 클럽이라 하는데 뭐 이렇게 메니저라 하는 체어맨이라 하는 뭘로 하던지 심볼이야.
그런데 그럴 땐 반드시 알건 그건 어디까지 심볼로 있어야 돼. 있기는 자기네 안에 있는 이 관계에 심볼로 하지 그 사람의 개체로서의 무슨 더 잘난 거 있어서 그런 거 아니라는 무슨 그 사람이 받게 되는데 그 자격 있어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특권 주자는 거 아니라 단순하게 전체에 있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한다고, 하는 말로는 그런 말이 없었을는지 몰라도 그거 되가는 역사의 뜻을 생각하면 거기 있다고 하는 거 알아야 그걸 모르고 내가 정말이지 그럭하고는 “이놈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기다” 하고 이러고 명령을 하게 되면, 종교에서도 자긴 어디까지나 심볼인데 심볼이 곧 하나님 노릇을 하게 되는 게 곧 우상이야.
그러게 이날까지 모든 종교가 거기서 모든 정치가 그게 잘못이야 더구나 무력으로 하는 정치에 있어. 이제 지금 와서야 인류가 그런 거를 차차 깨달아. 옛날에도 깨달은 사람이지만 그건 소수의 사람이야. 지금 민중전체가 그걸 깨달으려고 해. 아직도 채 깨닫질 못해서 그래 그러지 그래 어느 정도 환히 깨달으면 문제없습니다. 저 따위들이 뭐 폭력으로 뭐로 그래 아직 시간문제야. 조급해 문제야.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조금 있으면 이제 없어지는 거야 올챙이 꼬리처럼 지금 아직도 채 달하지 못해 그러지 인제 완전히 자라면 꼬랭이 간 곳 없어요. 간데 고랭이 잘라 없어진 줄 아쇼. 그러지 않아 언젠지 모르게 몸뚱이가 쑥 그 안에 어디 온데간데 없이 잘라져 떨어진 거는 거 아니에요. 크니까 없어지는 거지 그렇게 되는 거야요.
인류가 아직 유치해서 그래, 하여간 우리가 그런 문제를 지금 요새 당하고 있잖아요. 그러한 관계 뭐 그래 그런데 예수님이 호산나 그 소릴 듣지만 믿진 않아. 믿진 않는데 나귀 잔등이에 떡 거기 왜 그렇게 하셨을까 수수께기야 영 알 수 없는 일인데, 그 예수님으로서 아까 얘기대로 장난으로 한 것도 아닐거요. 메신(?)4) 하신 것도 아닐 거요. 정말 임금이 돼보자는 생각은 물론 아니고 그러겠는데 왜 당나귀를 떡 타고 이러고 “호산나 호산나” 그러고 군중을 보고, 뭐 무표정하고 가진 또 않았을 거예요. 아 이러면 갔는지도 몰라(웃음) 그렇지만 어드레겠나 거 생각을 해 그래. 하여간 그 장면은 놀라운 장면이 됐다 그거야. 그러니까 왜 그래.
그것이 순수한 심볼이 돼서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야 하나님에 대한 나타내는 걸로 순전히 무상 자기 마음이 참 무상하기 때문에 참 무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걸 고대로 나타낼 수가 있었어요. 그래 타는 것도 당나귀 탔다는 건 그거예요. 옛날의 시인도 왜 그 노래를 했는지 모르지 하지만 당나귀가 뭐냐하면 그러면 당나귀 이 여기 있던 “시온의 딸아 네 임금이 오신다” 다른데 어느 “겸손해서 나귀 새끼 나귀를 탔다”고 나귀를 탔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하면 겸손해서 한 표시에요.
그걸 알려면 말을 알아야 돼. 당나귀가 대조 되는 건 말해야 돼. 괜히 임금이 말타지 말야 말타고 전쟁을 말타고 하지. 당나귀는 같은 비슷한 종류에 속하면서도 말과 다른 게 말은 어디까진지 아주 군사적이요. 지배적이요. 그놈 아주 그럼 그런거지만 말야. 당나귀는 비슷하면서 어디까지 겸손해요. 민중이니까 말이 귀족적이라면 당나귀는 어디까진지 민중적이에요. 그래 당나귀, 당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 이때껏 타본 사람이 없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온다고 하는 데가 이제 그 ‘호산나’ 물론 하나님이 보낸 사람 메시아라는 걸 표시하는 그런 한 상징이지만 그런 걸 하게 참 적합한 그림이라고 그래 그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지.
그래서 이제 제자들이 몰랐다. 그래 “아 그것 참 이제 보니깐 뜻이 있었다. 구약에 이런 말이 있었다.” 구약에 예언자로 만들지 예수 올 걸 딱 미리알고 그렇게 않았을 거예요. 자긴 자기대로 이렇게 물질계의 세계를 보다가 그 뭐 그 진리의 세계에서 그 임금을 자긴 만나보는데 좋아서 그럼 했겠지만 옛날이나 이제나 그건 하나야. 역사에선 딴 사람이야 그렇지 그 그리스도 그러니까 “아 이게 그다” 그러고 해석이 좋아서 제자들이 아마 그렇게 기록을 했을 겁니다. 이제 말이 그만 그만 한가지나 먼저 번에 얘기 했는데 가만히 요번에 생각하니깐 재미있는 게 새로난 생각이 하나있어.
그래 그걸 얘기할까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어요. 근데 그 기름 부은데 다른 생각이 어제 저녁엔 났어요. 웬고 하니 예수라는 이름이 뭔고 하니 기름 부었다는 뜻이거든.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라는 이름이 본래 메시아란 말이 희랍말로 번역을 하면 히브리말로 하면 메시아 희랍말로 번역하면 크라이스트 그리스도라는 거 기름 부었다 그말이야. 기름 부었다는 뭐에 썼느고 하니 옛날에는 그 사람들을 임금 될 땐 임금 되는 표시로 기름을 감람유를 머리에다 갖다 부어. 그래 이제 다윗이 사울을 임금으로 세울 때 사울의 머리에다 부었어요. 사울이 꼴목째기가 틀려먹었으니까 그다음엔 누구를 임금으로 할까.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을 좀 고르려면 큰 지방으로 가야하지 그래서 이제 이새의 집안에 가서 아들이 여럿이 70인이나 몇 그중에서 어느 놈을 고를까 “당신의 아들 모조리 나오너라.” 그래 첫째 놈, 둘째 놈, 모조리 누구네 애가 되나하고 이러고 가는데 마지막에 가서 이거 다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이제 “애 하나 있습니다.” 그건 분수에 치지도 않아. “막내 자식이 저기 양치러 갔습니다.” “그것도 오라고 그래라” 하죠. 오라고 그러니까 고것이 맘에 들어서 고거에다 확 부어서 다윗이 됐다는 거 아냐.
그러니까 기름 붓는다는 것은 영광을 표시하는 뜻으로 임금 되는 건데 예수 머리에 누구 언제 기름 부은 일 없거든 마리아가 부었다 그 말이야. 재미있지 않냐 그 말이야. 물론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라 믿는 것은 이 신앙적인 정신적인 의미에서 저는 우리의 임금이다. 다윗이 우리나라에서 임금이었던 모양으로 이스라엘의 참 임금은 저다. 그래 또 빌라도 앞에서도 “너 왕이냐” 그러니까 “야 그말 네가 하냐 네 입으로 하는 거냐 누가 시키더냐” “내가 할꺼 뭐냐 네 사람들이 널 그래” 그러니까 내가 그러지 “그래 그렇다면 왕이다면 왕이지” 그러는 데가 그 거진 마음에 여유작작. 조금도 뭐 저 심판자적 겁을 줘 벌벌 떤다든지 뭐 그런 것도 아니고 미워한다든지 그런 마음, 마음에 평화가 턱 있어. 여유가 작작해서 한 대답이야요.
근데 왕이라면 진리의 왕이지 그런 건데 요새로 말하면 진리의 대통령이지. 그럴 거요. 왕이라는 거를 안 쓸 거예요. 그적엔 왕이라는 거 최고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왕이라는 칭호는 어디가고 대통령이 됐는지 이다음엔 면장이라고 그럴는지도 모르지 상관없어요. 아 그래 그래서 이제 기름 임금이라는 뜻으로 부었다 하는데 실지로는 언제 기름 부은 일이 없는데 돌아가기 한 주일 전에 이 여자가 부었다. 기름 부을 땐 제사장이 아주 것도 높은 사람이 이렇게 붓지 않소, 그러는 것인데 또 그래 재미있는 일이 나폴레옹이 임금들이라는 건 폭력을 가지고 해먹긴 먹으면서도 말야.
서양에 그리스도교 문명이니만큼 옛날하던 그 습관대로 저 로마의 법왕이 이렇게 대관식에 기름을 붓고 관을 씌워줘야 임금이 되. 나폴레옹은 어떡했는지 아세요. 그러지 않아 내가 무슨 필요해 내손으로 집어 썼지. 제 손으로 집어 썼지 시국에 문제가 무슨 심정 나 그럴 필요 없다. 그런데가 나폴레옹이 그거 안 된 점이 있으면서도 된 거. 다른 사람보다 낫다면 난점이에요. 하려고하면 철저히 그렇게 해. 그런데 이제 보통은 하여간 이게 제사장이 이렇게 씌어주는 건데 교회 종교에 제일 높은 사람이 하나님이 씌어준다고 하는 의미로 하는 씌어주는 건데 예수한데 씌워준 일이 없는데 아 마리아가 씌었다. 그 마리아가 그 마리아진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그런다 하면 갈보짓 하던 계집이 씌었다. 참 재미있는 겁니다. (녹음25, 3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