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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로 임진왜란 무렵 조선의 무기체계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런것도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읽으시면 됩니다.
쇼군2가 출시되면서 많은분들이 확장팩으로 임진왜란 에피소드가 나오면 좋겠다고 기대를 하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임진왜란 팩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CA의 제작 정책상 나올 수가 없습니다.
토탈워 시리즈로 출시된 제품들은 크게 두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쇼군 , 로마 , 미디블 그룹이고 둘째는 엠파이어 그룹입니다.(나토포함) CA가 두가지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각 그룹마다 제작 기획단계에서 각각의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설명합니다)
첫번째 그룹의 제품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배경이 사실상의 군웅할거시대라는 점입니다.
쇼군이나 미디블은 말할것도 없고 롬토조차도 지도를 확장해서 실질적으로 많은 세력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세력이 등장하는 이유는 게임으로서의 볼거리를 늘리기위한 선택입니다. 실제로 다양한 문화, 다양한 전술, 다양한 무기가 등장함으로서 유저가 지루하지 않게 많은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게임이 많이 팔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앙집권과는 거리가 먼 시대이다보니 각 세력마다 독자적인 개성을 갖게 됩니다. 게임으로 만들기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의미입니다.
두번째 그룹은 시대배경이 통일왕조입니다. 국가차원의 전략,전술체계가 형성되어있다보니 땅만 넓다 뿐이지 개성을 표현할 여지가 매우 좁습니다. 게임으로 만들면 밋밋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엠토의 경우 유닛 이름이나 디자인만 조금씩 다를뿐 거의 비슷한 병종이 등장합니다. 흥행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엠토가 롬토나 미토보다 흥행이 별로인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것도 이때문입니다.(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상황에서 쇼군2가 선택한 돌파구가 그래픽과 멀티강화입니다. 일본이라는 좁은 영역을 배경으로 하는데다 대부분의 세력이 같은 병종을 활용하는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특(가문별 특기)을 만들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어필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상황에서 조선이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맑은날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봅니다.
새로운 병종이 추가되면 더 좋을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 게임으로 만들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게임으로 만들기가 매우 불리합니다.(뒤에서 설명합니다)
같은시기 조선의 무기체계를 알면 이런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부다 소개하는건 불가능하고 중요도가 높은것 위주로 몇가지만 소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사극(史劇)입니다.
근세 이전의 무기에 관심이 많은사람들에게 사극은 욕이 튀어나옵니다. 한마디로 고증이 개똥만도 못한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개똥고증의 문을 연 드라마가 M모 방송국의 '허준'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고증이 부실한 사극이 많았지만 역량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동정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제작된 이 드라마는 충분한 역량이 있었는데도 무시해 버렸다는데서 좋게 봐줄 수가 없습니다.(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K모 방송국에서 제작한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에서 화룡점정(?)을 찍어버립니다. 특히나 불멸의 경우는 그야말로 고증이 눈물나는 수준이었는데 심지어 이제 30년쯤 후에는 이순신이 장풍을 쏘는 사극이 나오겠구나 라고 조롱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화면빨에 도움이 안되는 고증은 일체 무시한다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제작풍토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극이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현상입니다.
시청자들은 고증같은거 잘 모르는 수준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어서 매우 불쾌한 기분도 듭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해당 사극에서 조선수군은 장군이외에 아무도 갑옷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유물이 남아있지 않아서 확증할 수는 없지만 제 개인적으로 최소한 전투원들은 갑옷을 입었다는 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판단을 굳히게 된 계기가 드라마의 고증에 참여했다는 한 현역 해군 지휘관의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 수군은 갑옷으로 무장하면 배가 무거워져서 기동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갑옷은 입지않는게 맞다."
라고 말한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인 판옥선은 속도를 중시하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적이 도선하지 못하도록 선체를 높게 설계하고 접근하기전에 원거리 포격으로 격침하는것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가 판옥선이었습니다. 배 바닥도 평저선(평평한 바닥)이라 속도를 내는 구조도 아닌데다가 기본전략이 서해와 남해의 연안방어이다보니 쾌속선보다는 바다의 요새라는 개념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갑옷으로 무장하는게 걸림돌이 될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더구나 갑옷은 재료에 특별한 제약이 없습니다. 종이로 만든 갑옷도 있을정도입니다. 물론 전술적으로 볼때 일본 기록화처럼 중무장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겠지만
저고리 하나 입고 싸웠다는 생각은 동의하기 힘듭니다.전투에 참여하는 병사의 심리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간단한것 하나라도 방어구를(예를들어 얇은 가죽갑옷이라도) 입히는게 지극히 당연하다는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개인적으로 제작비때문에 생략해버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의 !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임)
잡설은 여기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무기들을 몇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조선무기의 특징은 거칠게 표현해서 규격화, 단순화, 선택과 집중 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하면 편합니다.
15c 초에 이미 중앙집권이 확고부동해진 상황에서 모든 무기체계가 국가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규격화, 단순화)
특히나 주력무기는 활과 대포입니다.(원거리무기)
무기체계나 국방 시스템은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중대한 위협은 북방 오랑캐와 남방 왜구였습니다. 북쪽 유목민의 주력무기인 활에 대항하고 바다를 건너오는 남쪽 왜구를 격파하기위해 모든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선택과 집중) 이런 상황에서 근접무기보다는 원거리 무기 위주로 발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 활(弓)
명실상부한 조선의 주력무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틀어봐도 그 중요성이 매우 높습니다. 영웅으로 칭하는 사람중에 칼이나 창을 잘쓴다는 말은 거의 없지만 활쏘기가 신묘하다는 말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고주몽이나 이성계가 대표주자입니다.
더구나 조선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서 말하는 육례(예,악,사,어,서,수)를 중요시했는데 이중에
사(射)가 바로 활쏘기 입니다.(더 정확히는 무예)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활의 종류는 많이 알려진것만 10여가지가 넘고 화살의 종류도 그에 못지않게 다양합니다.
중구난방이 아니라 그만큼 세분화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수노(手弩)라 불리는 석궁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중 대표라 할 수 있는 각궁을 소개합니다.
각궁(角弓)은 뿔 각자에 활 궁자를 씁니다. 산뽕나무에 물소뿔을 붙여서 만드는 일종의 합성궁입니다. 제작비가 워낙에 비싼데다가 핵심부품(?)인 물소뿔을 수입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항상 물량확보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도
전략물자인 물소뿔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안을 강구하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아예 물소를 수입해서 전라도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키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탄성이 워낙에 강해서 유효살상거리가 대략 300m 정도이고 최대사거리는 700m에서 1km까지도 가능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래사진이 각궁입니다.
<각궁 실물>
자료출처 - 문화재청 사진자료
활시위를 풀어놓았을때의 모습입니다. 저 상태에서 활을 반대쪽(화면상 아래쪽)으로 힘껏 구부려서 시위를 걸게 됩니다.
습기에 취약해서 보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이성계의 사불가론에도 언급됩니다) 습기는 일본에 합성궁이 발달할 수 없었던 이유중에 한부분을 차지합니다.(기술 수준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활쏘기>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활쏘기 모습입니다.
활을 쏘는 모습, 활을 구부려서 시위를 거는 모습, 화살을 점검하는 모습등이 보입니다.
<활쏘기 사진>
활쏘기 모습 - 자료출처 국가기록원 사진자료실
전통활의 탄성이 어느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유심히 봐야할 것은 오른손의 모습입니다. 국궁은 활이 작고 탄성이 좋아서 시위를 많이 당길 수 있습니다.(그만큼 위력이 강해집니다) 이때 활시위는 엄지손가락에 걸고 당기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옆에서 봤을때 오른손의 손날이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드라마에서 활쏘는 장면이 나올때 오른손의 손등이 보인다면 시위를 잘못 잡았다는 의미가 됩니다.(고증이 개판이라는 뜻입니다)
<삼시수노(手弩)>
삼시수노 복원품 - 자료출처 육군박물관 사진자료
삼시수노는 한번에 세개의 화살이 발사되는 일종의 반자동 활입니다. 네모난 상자에 화살을 담아놓고 손잡이를 아래로 누르면 시위가 자동으로 튕기는 구조입니다. 왼쪽 앞에 희미하게 화살구멍 세개가 보입니다. 근접한 적에게 대량의 화살을 날리기 위한 무기로 사거리는 비교적 짧습니다.
화살의 종류는 편전, 유엽전, 목전, 명전, 화시, 신전, 장전 등등 매우 다양한 종류가 사용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총통(銃筒) - 총 총자 , 대나무통 통 자
총통은 대포를 뜻합니다. 제조, 운영비가 많이 드는 무기로 당시로서는 최첨단무기였습니다. 그 유래는 고려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초기에는 이미 주력무기로 활용되었습니다. 대포는 군소 영주의 능력으로는 대량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볼때 조선초에 이미 중앙집권이 완성되어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총통은 이미 임진왜란 훨씬 이전부터 표준화, 제식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천(天)자총통, 지(地)자총통, 현(玄)자총통, 황(黃)자총통의 4단계 화포체계가 확립되었고 각각의 총통에 따라 사용탄환, 화약 장전량, 전투 사거리 등이 체계적으로 규정된 상태로 전투에 활용되었습니다.
<a. 천자총통>
4단계 총통중에 가장 대형 화포입니다. 무게도 무겁고 제작비가 워낙에 비싸서 대량으로 사용되지는 못했고 특히 수군의 경우 실질적으로 판옥선 한척당 1~2 문 정도 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드라마 보면 한숨이 나오는 이유)
운용사례에 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합니다.
천자총통 실물 - 자료출처 육군박물관 사진자료
길이 130cm에 포구경 130mm의 대형 화포입니다. 사거리는 1200보(960m)로 알려져 있으며 철환(쇠공), 석환(돌), 장군전(미사일 모양의 대형화살)등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b. 지자총통>
거북선에 장착해서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유명한 화포입니다. 천자총통보다 제작비가 저렴한데다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임진왜란당시에 특히 수군의 주력화포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자총통 실물 - 자료출처 육군박물관 사진자료 (손잡이 부분이 깨져있습니다. 흔적이 보임)
길이는 88.5cm에 포구경 105mm의 화포입니다. 전투시 사거리, 화약 장입량, 상황별 활용방안 등이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모든 화포 동일) 철환, 석환을 주로 사용했으며 근접상황에서는 조란환(작은 쇠 또는 돌 구슬)등을 활용했습니다. 특히 조란환은 일종의 산탄으로 근접전에서 왜군이 조란환을 무척 두려워했다고 전할만큼 위력적이었습니다.
<c. 현자총통>
마찬가지로 임란당시 맹활약한 조선군의 주력화포였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지자, 현자포를 쏘자 적선의 방패가 걸레가 되었다고 할만큼 위력적이었습니다.(더불어 일본배의 방어력이 형편없었다는 의미도 됩니다.)
현자총통 실물 - 자료출처 육군박물관 사진자료 (손잡이 부분이 깨진 상태입니다)
길이는 대략 73cm에 포구경은 75~95mm로 다양합니다. 주로 철환이나 석환을 사용했습니다.
<d. 황자총통>
조선의 화포체계에서 가장 소형의 대포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사거리는 매우 길다고 알려져있습니다.(대략 1km로 추정)
황자총통 실물 - 자료출처 육군박물관 사진자료
길이는 25 ~ 50cm, 포구경은 20 ~ 40mm 의 소형 화포입니다. 소형 철환이나 석환을 사용했습니다.
3. 창(槍)
16c 조선에서 근접무기는 크게 중요시 되지 않았습니다. 활용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물도 매우 부족한 편이고 심지어 사극에서는 당파라고 불리는 삼지창만으로 퉁쳐도 될정도로 단조롭습니다. 하지만 태종실록에 따르면 무과시험과목에
보사(步射), 기사(騎射), 기창(騎槍)이 시험 과목으로 지정된 것으로 볼때 아주 무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선조 무렵이 되면 창은 거의 잊혀진 무기 수준의 위상밖에 갖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임란 직후 조정회의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창검을 사용할줄 모르니 1 ~2년사이에 교습시킬수가 없다. 차라리 몽둥이로 싸우게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라는 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군 편제도 기병과 보병의 비율이 적게는 50 : 50 에서 심하게는 70 : 30 까지 추정하는 경우가 있을만큼 보병의 비중이 높지 않았습니다. (탄금대전투의 4천 기병설이 나오는 근거중에 하나)
지상군은 기병의 비중이 높았고 기병의 경우는 궁기병의 비중이 높았다고 보는견해가 많습니다. 궁기병 7 에 창기병 3 까지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기병의 존재는 기병창의 길이가 15척 3촌(대략 4.5m)라는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무게중심등을 고려하면 공격거리는 대략 3m 정도로 보면 타당합니다. (유물사진이 당파창 밖에 없어서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4. 편곤(鞭棍) - 채찍 편 , 몽둥이 곤 (도리깨라는 의미)
편곤은 임진왜란 직후에 언급이 시작되는 무기입니다. 긴 몽둥이에 쇠줄을 연결해서 끝에 쇠뭉치를 매단 형태로 서양에서 말하는 모닝스타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쌍절곤, 삼절곤 등등을 떠올려도 이해가 쉽습니다.
물론 사용은 그 이전부터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쨋든 임란 이후에는 기병의 주요무기로 편제되고 아예 편곤부대가 편성될 정도로 보편화 되게 됩니다.(당연히 보병도 사용합니다)
편곤은 그 작동방식을 모르면 막기가 매우 어려운 무기입니다. 반면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적당히 노리고 후려쳐도 쉽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인조실록에 "적진으로 돌진하는데에는 편곤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 역적 이괄의 마군 700인이 모두 편곤을 썼는데, 이때문에 당할 수 없었습니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서양의 모닝스타와 조선의 편곤 사진입니다.
<모닝스타>
유럽사이트에서 업어온 사진입니다.
중세 유럽의 모닝스타입니다. 쇠뭉치 형태이지만 작동방식은 편곤과 같습니다. 중장갑옷을 뚫기위해 뾰족한 쇠못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휘두르는 각도만 생각해서 방패를 막으면 쇠뭉치가 방패를 넘어서 뒤통수를 날려버리게 됩니다.
<조선 편곤>
무예도보통지 마상편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의 마상편곤 편입니다. 장비를 유심히 보면 활을 무장한 상태에서 편곤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원거리에서 활로 공격하고 근거리에 접어들면 편곤으로 전투를 치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무기 몇가지만 소개했습니다. 그냥 재미삼아 알아두면 좋습니다. 몰라도 게임을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쇼군 2 에서 만약 조선이 등장한다면 게임 밸런스 자체가 무너질 확률이 거의 99% 라고 볼 수 있습니다.
CA 입장에서 볼때 게임 밸런스를 잡으려면 조선군의 전술체계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그럴듯 해 보이는것 몇가지만 뽑아야 되는데 그러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근접병을 검(劍)병과 당파창만으로 꾸밀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더구나 아시아는 주요 고객이 아닌데다가 한국 유저가 맹렬히 반발하는 사태라도 벌어지면 오히려 골치가 아파질 수가 있습니다. 그냥 임진왜란은 안나온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판옥선은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기 + 보 + 궁 통합운용편을 빨리 이어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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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선기병의 편곤 차징은 볼수없군요 ㅠㅠ
이런 정보 좋습니다 +ㅠ+ 잘봤어요
모드나 기대해야겠네요 ㅋㅋㅋ
유익한정보였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진짜 조선군 보면 워해머의 타우가 생각남....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해군에 있어서 갑옷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현대적인 배를 타봐도 몸에 짊은게 많으면 기동성이 떨어지고 이곳 저곳 걸리고 불편한게 많은데 과거의 배는 오죽했겠습니까.. 판옥선은 적의 도선을 막기 위해서 높이를 높였고 총탄이나 화살로 부터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선박 보다 두께 또한 두꺼웠습니다. 제가 해군에서 몸담고 생활하면서 느껴본지라 주관적으로는 과거에 또한 해군은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현대의 해군 또한 갑옷 입지 않고 있으며 추락을 대비하여 카포크(구명자켓) 정도만 걸칠 뿐.. 근접전 하는 고속정들은 구명자켓에 가슴팍에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 재질 판떼기를
넣고 방탄헬맷을 썼을 뿐 다른 특별한 방어도구는 없었습니다. 해전에서는 뭘 하든 선박의 방어력만 높으면 내부의 병사는 보호 될 수 있고 사람 한명으로 치면 가볍지만 몇십 몇백명이 승선하게 될 경우 배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게 높아집니다. 사람의 몸무게에 특별하게 필요없는 방어구까지 적재하면 당시 선박의 특성상 많이 적재할 수 있는 조선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화포에 쓰이는 화약이나 탄을 더 적재를 했으면 했지 방어구 적재는 사실상 필요 없을거라고 봅니다.
총통이 발달하기 전의 고대의 해전에서는 근접전이 빈번하기에 갑옷을 걸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내용은 정말 유용하고 하나의 배움을 얻을 수 있었네요.
그런데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 해군이 갑옷을 입은 그림도 본거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