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롬12:17),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12:19)고 말하면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당부한다(12:21).
우리는 세상이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은 정의로운 존재이기에, 세상의 악을 심판하고 의인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건 주장이고 신념 또는 희망사항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의롭길 바라지만 불의한 자들이 승승장구하고 반면 의인이나 무고한 자들이 고통 중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상적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과도한 이상주의자, 즉 현실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혁명을 통해서라도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종종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가져오겠다며 초자연적 능력을 과시하는 거짓 메시아에 현혹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승리를 거머 쥐었을 때는 자신의 신념이나 정신에 대해 배신자로 변한다. 정반대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현실 도피자가 되곤 한다.
바울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라는 말은, 과도한 이상주의자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이상적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앙 또는 믿음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상적 현실주의자를 인문주의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 시절 인문주의자들의 편지를 읽어보면, 폭력에 의해 세상이 뒤흔들리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독단론자들이 시장판의 장사꾼처럼 어리석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크게 역겨워하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함께 느낄 수 있다. 독단룐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참이요, 우리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톄판 츠바이크, 20쪽).
첫댓글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인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