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는 수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의학계에서는 거세와 관련된 수명 연장을 남성호르몬 부족과 연결 짓는 것이 아니라, 뇌하수체의 과활성과 여기서 생산되는 황체형성호르몬(LH), 여포자극호르몬(FSH) 등의 호르몬이 수명 연장과 관계된다는 보웬 박사팀 등의 주장이 대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남성호르몬의 작용에 따라 성생활 등 건강한 성인 남성으로 살면서 동시에 오래 살고 싶다면 남성호르몬이 적절하게 분비되도록 잘 관리해서 갱년기에 진입하는 시기를 늦춰야지, 반대로 남성호르몬을 차단하거나 없어지게 해서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세 외에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키는 요인은?
흡연, 음주, 스트레스, 기아, 비만 그리고 당뇨병, 고혈압, 심장혈관질환 등의 만성질병이 있는 경우에 남성호르몬이 감소됩니다. 또 항우울제, 위장약, 이뇨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도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남성호르몬이 과도하게 많아도 좋지 않습니다. 여드름, 초조, 두통, 과민성, 전립선비대, 뇨폐, 유방비대, 성기위축, 성욕감퇴, 발기부전 그리고 암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내시 족보에 나온 장수는 특별한 경우일까?
내시처럼 성인기 이전에 거세를 통해 남성호르몬이 차단되어 중성화된다면 수명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건강관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또한 그렇게 해서 수명을 늘리려면 제2차 성징 전후 남성호르몬의 활성화가 진행되지 않아야 하므로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서의 성생활이나 임신 등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죠. 단지 오래 살기 위해 남성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중년남성에서는 남성호르몬을 줄인다고 수명이 연장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년기에 남성호르몬이 부족할 경우 성기능이나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남성갱년기장애, 각종 성인병, 대사 증후군과 연계되며 다양한 신체 질환 및 스트레스와 연결됩니다.
내시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평균 19세에 거세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남성호르몬이 강하게 노출되는 제2차 성징 및 사춘기 직후에 해당되는 시기로, 일반 남성에 비해 애초에 남성호르몬에 대한 노출이 초기에 적었던 탓에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일부 내시의 장수와 남성호르몬 억제와의 연관성은 확실치 않습니다.
일부 내시들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왕을 모시는 내시들의 계급 명칭에 음식에 관한 용어가 붙어 있습니다. 내시 중에 가장 높은 벼슬은 종2품 상선(尙膳)인데, 선(膳)은 반찬, 음식을 뜻하죠. 그 아래 정3품 당상관 상온(尙醞)의 온(醞)은 술, 정3품 당하관 상다(尙茶)의 다(茶)는 차, 그리고 종3품 상약(尙藥)의 약(藥)은 복용하는 약입니다. 이처럼 내시의 품계를 음식, 술, 차, 약의 순으로 정해 놓았던 것을 보면 내시들이 음식과 약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했던 한의학 전문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벼슬에서 물러나 복잡한 궁중생활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며 양생법(養生法)을 철저하게 지키고 수시로 한약을 복용하면서 남성호르몬에 불균형이 생긴 몸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맞추었다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든든한 재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내시
한나라 때의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저술했습니다. 태사령(太史令)이란 벼슬에 있던 중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당해 환관이 되어버린 것인데, 48세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궁형을 당하면 자결하는 것이 통례였기에 사마천도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서를 집필하다가 죽으면서 완성을 부탁한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언을 생각하고는 치욕감과 수치를 참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집필했던 것입니다.
후한 때의 채륜(蔡倫)은 환관 중에 우두머리인 ‘중상시(中常侍)’가 되었는데, 저(楮 : 닥나무), 마(麻), 포(布), 어망(魚網)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종이를 발명하였습니다. 이전까지 대나무를 쪼개어 글을 써서 줄로 묶었던 ‘죽간(竹簡)’을 사용하다가 채륜에 의해 종이를 대량으로 만드는 제지술이 개발됨으로서 학문이 널리 유통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명나라 때의 정화(鄭和)는 가난하면서 형제는 많은 집안 형편 때문에 11세 때 환관이 되었는데, 영락제의 신임을 받아 우두머리인 태감(太監)이 된 후 함대를 이끌고 7차에 걸친 대원정으로 대양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콜럼부스(Chinese Columbus)로 불리기도 하는데, 정화의 함대는 군함 60여척에 군사가 2만8천명이나 되었고 배의 크기도 150미터 길이에 8천톤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고 합니다. 500톤이 못 되는 산타마리아호에 90명 정도의 콜럼부스 원정단이나 700톤의 배에 170명 규모의 바스코다가마의 원정단은 정화함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별 것 아닌 셈이죠.
거세 외에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키는 요인은?
흡연, 음주, 스트레스, 기아, 비만 그리고 당뇨병, 고혈압, 심장혈관질환 등의 만성질병이 있는 경우에 남성호르몬이 감소됩니다. 또 항우울제, 위장약, 이뇨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도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남성호르몬이 과도하게 많아도 좋지 않습니다. 여드름, 초조, 두통, 과민성, 전립선비대, 뇨폐, 유방비대, 성기위축, 성욕감퇴, 발기부전 그리고 암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내시 족보에 나온 장수는 특별한 경우일까?
내시처럼 성인기 이전에 거세를 통해 남성호르몬이 차단되어 중성화된다면 수명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건강관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또한 그렇게 해서 수명을 늘리려면 제2차 성징 전후 남성호르몬의 활성화가 진행되지 않아야 하므로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서의 성생활이나 임신 등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죠. 단지 오래 살기 위해 남성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중년남성에서는 남성호르몬을 줄인다고 수명이 연장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년기에 남성호르몬이 부족할 경우 성기능이나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남성갱년기장애, 각종 성인병, 대사 증후군과 연계되며 다양한 신체 질환 및 스트레스와 연결됩니다.
내시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평균 19세에 거세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남성호르몬이 강하게 노출되는 제2차 성징 및 사춘기 직후에 해당되는 시기로, 일반 남성에 비해 애초에 남성호르몬에 대한 노출이 초기에 적었던 탓에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일부 내시의 장수와 남성호르몬 억제와의 연관성은 확실치 않습니다.
일부 내시들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왕을 모시는 내시들의 계급 명칭에 음식에 관한 용어가 붙어 있습니다. 내시 중에 가장 높은 벼슬은 종2품 상선(尙膳)인데, 선(膳)은 반찬, 음식을 뜻하죠. 그 아래 정3품 당상관 상온(尙醞)의 온(醞)은 술, 정3품 당하관 상다(尙茶)의 다(茶)는 차, 그리고 종3품 상약(尙藥)의 약(藥)은 복용하는 약입니다. 이처럼 내시의 품계를 음식, 술, 차, 약의 순으로 정해 놓았던 것을 보면 내시들이 음식과 약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했던 한의학 전문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벼슬에서 물러나 복잡한 궁중생활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며 양생법(養生法)을 철저하게 지키고 수시로 한약을 복용하면서 남성호르몬에 불균형이 생긴 몸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맞추었다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든든한 재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세계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내시
한나라 때의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저술했습니다. 태사령(太史令)이란 벼슬에 있던 중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당해 환관이 되어버린 것인데, 48세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궁형을 당하면 자결하는 것이 통례였기에 사마천도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서를 집필하다가 죽으면서 완성을 부탁한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언을 생각하고는 치욕감과 수치를 참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집필했던 것입니다.
후한 때의 채륜(蔡倫)은 환관 중에 우두머리인 ‘중상시(中常侍)’가 되었는데, 저(楮 : 닥나무), 마(麻), 포(布), 어망(魚網)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종이를 발명하였습니다. 이전까지 대나무를 쪼개어 글을 써서 줄로 묶었던 ‘죽간(竹簡)’을 사용하다가 채륜에 의해 종이를 대량으로 만드는 제지술이 개발됨으로서 학문이 널리 유통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명나라 때의 정화(鄭和)는 가난하면서 형제는 많은 집안 형편 때문에 11세 때 환관이 되었는데, 영락제의 신임을 받아 우두머리인 태감(太監)이 된 후 함대를 이끌고 7차에 걸친 대원정으로 대양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콜럼부스(Chinese Columbus)로 불리기도 하는데, 정화의 함대는 군함 60여척에 군사가 2만8천명이나 되었고 배의 크기도 150미터 길이에 8천톤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고 합니다. 500톤이 못 되는 산타마리아호에 90명 정도의 콜럼부스 원정단이나 700톤의 배에 170명 규모의 바스코다가마의 원정단은 정화함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별 것 아닌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