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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창세기 26:23-33
23 이삭이 거기서 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설교말씀:
겉으로 보면 우리 손에는 아무 병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세하게 현미경으로 보면 얼마나 더러운 각종 세균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대부분 후진국에서는 그냥 손으로 음식을 먹고 더러운 물을 그냥 마시기 때문에 이질, 콜레라, 별의별 식중독 감기까지 다 걸리게 됩니다. 한 3년 전인가요. 신종플루가 한 번 우리나라를 휩쓸었잖습니까. 아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예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물론 우리집 아이들도 그 신종플루에 걸려서 진단을 받고 아이들을 격리를 했던 때도 있습니다. 근데 너무나도 감사하게 아이들이 서로들 우리 부목사서부터 그 아이들을 돌봐야겠다고 나는 신종 독감에 걸려도 괜찮다고 하며 애들이 그렇게 들어가서 밥도 하고 걔네들 돌봐주는 것을 보고 굉장히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애들을 잘못 가르치지는 않았구나 하여튼 손으로부터 수많은 병균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옵니다. 물론 정상적인 세균도 있지만요.
환자들을 수술하기 전에 깨끗하게 손을 먼저 닦습니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이것을 만지게 될까봐 간호사들이 장갑도 껴줍니다. 그리고는 다른 것을 절대 만져서는 안 됩니다. 그 후서부터는 수술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 것도 만져선 안 되고 다른 것이 닿을까봐 손은 항상 앞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혀 문제가 없는 거예요. 다른 것을 만지다가 만약에 수술을 한다면 큰일 납니다. 감염이 되어 죽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손만 잘 씻어도 감기도 예방되고요 웬만한 병들은 아마 대부분 예방될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손을 씻죠.
그런데 손보다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씻지 않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마음들이에요. 사람들은 겉은 세수는 깨끗이 하고 손은 열심히 닦으며 마음은 닦으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손에 묻은 병균보다 백배 천배 더 무서운 병균이 바로 우리들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우리들은 천국도 가고 지옥도 갑니다. 영원한 생명이 결정이 돼버려요. 얼마나 무서운 게 이것인지 모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우리가 손 씻고 세수하듯이 열심히 우리들의 마음을 닦아왔다면 이 땅에 기독교는 여기까지 안 왔을 겁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을 다스리거나 교회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을 닦지 않은 사람들이 다스려왔어요. 세상은 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손가락질 받기 시작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속에 있습니까? 우리들의 마음에 있습니까? 아니면 겉치장하는데 있습니까?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찾아갑니까 아니면 열심히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을 해갑니까? 이게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손이나 얼굴은 더러우니까 눈곱도 끼고 더러우니까 우리는 깨끗하게 씻을 줄 압니다. 몸도 냄새가 나니 씻을 줄 알아요. 그러나 마음을 닦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모르니까 우리들은 마음을 닦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도 본질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것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겉으로 화려한 것을 지으려고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하고 상담도 해요. 오늘도 제가 오늘 오전에는 몸이 좀 안 좋아 집에서 좀 쉬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주의 종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 그 외에 살인한 사람들 별의별 많은 사람들을 전 만나 왔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이 안에는 사람을 죽인 마음의 양심에 가책 때문에 평생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이제야 저는 나이가 60이 되어서야 깨닫습니다. 아 사람의 마음은 정말 모르는구나. 우리 하나님만 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사람은 악하구나. 모든 조건들이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조건들만 갖추어지기만 하면 완벽한 조건만 갖추어지기만 하면 사람은 교만하고 음란할 수 있고 더 갖고 싶어 하고 범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그렇게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구나. 우리에게 십자가를 허락하여주셔서 우리 같은 자들 십자가를 붙들고 죄 씻음 받고 다시 이 길을 가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별로 씻지 않았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먹으니 어찌하여 당신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느냐는 거예요.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당신들의 손은 부정한 손이라는 거예요. 반드시 이 사람들은 손을 씻어야만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이 사람들은 거룩하고 정결해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먹으면 그 사람들은 더러워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씻지 않고 먹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손을 씻어야 우리들은 거룩해집니까? 그렇지 않아요. 우리들은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비로소 깨끗합니다. 손은 안 씻고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더럽지만.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날마다 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니까요. 정말 이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가 있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잘 살았어요. 병원장도 하고 환자도 보면서요. 그러나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에 내 속사람이 변했습니다. 더럽던 제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겼어요. 다 던져버리고 다 팔아버리고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나눠주고 이곳까지 온 게 20년이에요. 어떻게 냄새나는 노숙자 그 사람들하고 같이 들어가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속사람이 변해서 그래요.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제가 속사람이 변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일들을 못하고 살아왔을 거예요. 지금도 우리 많은 사람들 많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할 거예요.
여러분들은 속사람이 깨끗해졌습니까? 십자가의 보혈로 여러분들은 정결해졌습니까? 복음 서점에 보면 엠마오서점이 많더라고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엠마오를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정말 만난 겁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지자 엠마오는 세상을 향하여 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아 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르호봇이라고 아십니까? 가끔 가다 기독교인들이 하는 가게를 가보면 르호봇이라는 상점들이 있습니다. 풍요로운 곳, 넓은 지경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서 르호봇이라고 하는 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 백배가 되어 누렸던 곳이 르호봇이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봇은 이삭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어요. 하나님의 축복을 엄청나게 받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사람은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됐습니다.
전 여행을 참 좋아해서 제 삶 가운데 거의 많은 부분을 여행을 했습니다. 가면 얼마나 경치가 좋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제가 지금도 잊지 않는 대학교 때 여행했던 한 곳이 생각납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맨 마지막까지 가요. 전라도 어디를 갔다 왔어요. 어딘지 모르지만 버스에서 내려 한없이 걸어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맨 끝 마을에서부터 걸어 나왔습니다. 눈이 굉장히 많이 왔던 날이에요. 배가 고프니 어느 시골집으로 들어가서 좀 먹게 해 달라 잠자리를 주면 제가 돈을 드리겠다고 하고 돈을 줬더니 거기서 조그만 방에서요 저를 자게 했습니다. 간첩인줄 알고 간첩으로 신고해서 굉장히 혼이 났습니다만 그곳에 가서 이제 밤에 자는데 누가 와서 군불을 때더군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어느 자매가 와서 때는 거예요. (제가) 대학생이니까 달도 굉장히 밝았고요 문을 열고 저하고 좀 얘기하자고 했더니 도망을 가는 거예요. 안 와요. 문을 닫고 책 좀 읽으려고 하니까 또 와서 불을 때다가 또 도망을 가더라고요. 잠깐 말 좀 하자고 하니까요. 그런데 결국은 그 자매가 저하고 밤에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때 저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였습니다. 지금은 육십이지만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달이 떠있었어요. 바로 옆방에서는 애들이 비좁다고 그래도 가만있어 하루만 참어 손님이 계시잖아 떠들지 마 쉬쉬 하는 소리가 들리고요. 그곳에서는 그저 한 열대여섯 살 정도 된 시골처녀가 방에 불을 때주다 저하고 얘길 했어요.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이 자매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저보고 뭘 좋아하느냐고 해서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에 가면 다방에 가면 베토벤이라는 사람 하얀 얼굴을 거기다가 걸어놓은 곳이 있느냐는 거예요. 아 그거 제가 안다고 했거든요. 그것은 베토벤이 죽었을 때 그 얼굴에다가 석고상을 떠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거라고 그 자매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밤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어쨌든 그 다음날 아침에 나올 때 그 자매가 너무 귀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로션들 스킨로션 밀크로션을 다 주고 제가 읽던 안 읽었던 책까지 전부 다 주고 그리고 나왔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그때가 그립더라고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정말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는 별의별 꿈들을 다 가지고 있었던 때예요. 그때 제가 이렇게 교회라고 하면 이를 갈았던 그때 너는 이담에 목사가 될 거야 그랬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이 모습을 그때 봤다면 저는 아마 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어쨌든 여행을 저는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바빠서 여행가기도 어렵지만요. 그런데 여행할 때마다 집회를 외국으로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리 경치가 아름다워도 여행 중반쯤에 접어들고 집회 중반쯤에 접어들면 아무리 맛있는 걸 사주고 최고로 좋은 곳을 데려간다 해도 빨리 여행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또 골치 아픈 스물 몇 명이 살고 있는 그 집이 그립기가 짝이 없는 거예요. 애들이 그립기가 짝이 없는 거예요. 왜 이렇게 옛날이 그리울까? 그 시절에 척박하기가 짝이 없었던 1970년대 초가 뭐가 그렇게 그리울까?
그래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잘 살고 못 사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옛날이 자꾸 그리운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못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꿈이라는 게 있었어요. 낭만이라는 게 있더군요. 가난하던 옛날이 훨씬 좋은 게 인생들 같아요. 제 목회 삶속에서도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이십년 정도 됐습니다마는 가장 그리운 때가 언제냐 하면 안성에서 노숙자들하고 살고 버려진 애들하고 살고요 저도 냄새가 났어요. 제 몸에서도 노숙자들하고 사니 냄새가 났어요. 버스에 탔는데 여자 학생 아이들이 저 사람 냄새가 나니까 앞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조그맣게 얘기하는 그것이 제 귀에 들렸어요.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몰라요. 노숙자들에게 매를 맞고 같이 사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이 대해주는데 이 아이들은 술 먹으면 교회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쫓아냈어요.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면 애들은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온갖 욕설을 다하며 때렸어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매 맞기도 했어요. 깡패 애들을 자꾸 불러내고 복음을 심어주고요 함께 살게 되니까 깡패들이 절 잡으려고 했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요. 이 녀석들이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저는 걔네들인 줄 알고 도망을 가는데 걔네들을 어떻게 당해요. 바로 얼마 안 돼서 애들이 잡더라고요. 별의별 힘든 일들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왜 자꾸 그리운 그때가 생각나느냐, 지금 제일 그리운 그때가 있습니다. 매 맞을 때는 아니에요. 배고플 때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리울 때가 언제냐 하면 목사 안수를 분당만나교회에서 받던 날이었어요.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할아버님이 제 목사 안수하는데 보좌를 해주기로 하셨는데 할아버님은 5일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목사 안수를 보좌해주시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버려진 애들, 노숙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안성으로 내려갔어요. 그곳으로 내려갔는데 4살 때 저에게 어떤 사람이 맡겨 저하고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여자애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큰 처녀가 됐지만요. 이 아이가 안성천 다리 밑으로 오라는 거예요. 같이 가재요. 목사님, 다들 오라고 했대요. 그 아이의 손을 붙들고 안성천에 내려갔을 때 안성에 있는 노숙자들과 안성에 있는 깡패들과 거리에서 사는 그 아이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어요. 얼마나 감동이었는지요. 깡통에 닭 한 마리를 나무를 불 때서 후 불어서 저에게 삼계탕을 해주려고 했어요. 어린아이들은 그 냄새를 맡고 거기 뱅 둘러앉아서 침을 꼴깍거리며 삼키고 있었고요.
돈이 많다고 행복한 줄 아나요? 안 그래요. 지금은 먹고 싶은 것 맘대로 먹을 수 있어요. 그때는 교인도 없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줘요. 그런데 지금보다도 저는 옛날이 훨씬 더 그리워요. 이제는 매 맞지 않아요. 제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요. 두려운 일들도 없어요. 어디를 가나 목사님, 목사님 하고 그렇게 섬겨줘요. 그러나 가난했던 옛날, 매 맞았던 옛날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어서 그냥 강대상에서 아버지, 주님 저 어떡해요? 하나님! 기도도 못 하고 그렇게 주님만 부를 때 그때가 너무 행복한 거예요. 지금 정말 어렸을 때 70년대에 여행을 다니던 그때가 젊을 때가 그렇게 그리웠던 것처럼 몇 년 지나지 않은 안성에서의 그 삶이 지금 또 그렇게 그리워져요.
여러분, 행복이란 게 어디 있는 줄 아세요? 잘 먹고 잘 살면 행복합니까?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여러분, 행복한 줄 아세요? 저는 지금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상도 경험하고 서른아홉 살 때 하나님을 만나 이제 이십여 년간 이 길로 저는 걸어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서부터 얼마나 힘든 일들을 겪어왔는지 몰라요. 여기까지 오기에 가장 행복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거예요. 마땅히 내가 가야 할 곳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어느 해에 가나안 땅에 엄청난 흉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갔는데 엄청난 흉년이 든 거예요.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정말 저주의 땅 같은 겁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양떼 소떼들이 다 죽는 거예요. 아브라함 때도 그랬고 그 아들 이삭 때도 그랬습니다. 다 죽어가는 거예요. 어쩔 수 없어 이삭은 블레셋 땅으로 피난을 갔어요. 그리고 블레셋의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백배를 얻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이삭에게 들었을까요? 아니,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지? 블레셋 땅은 이렇게 풍족한데 많이 흔들렸을 거 같아요.
저는 주님을 만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대로 있는 것 다 팔아 던지고 20만원만 주머니에 넣고 용산역 앞 쪽방에서부터 시작을 하여 여기까지 왔어요. 굶을 때도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정말 힘들었어요. 아무리 해도 교인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저는 주님을 만나면 정말 뭐든지 잘 풀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어요. 엄청난 흉년이었어요. 앞이 열리지 않는 그런 제 목회였습니다. 몇 년간 그랬냐고요? 주님 만나고 13년 동안 12년 아마 그 정도는 됐을 거예요.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한 땅은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제가 왜 안성으로 자꾸 가고 싶냐 하면 그때가 하나님께서 저하고 제일 가까웠데요.
이삭도 이해를 못 했을 겁니다. 아버지 때서부터 흉년이 드는 것을 봤어요. 늘 겨우겨우 먹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어쩔 수 없어서 피해갔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됐다고요? 백배의 열매를 얻은 거예요. 백배 결실을 얻은 거예요. 백배가 된 겁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했어요. 우물이란 게 뭔 줄 압니까? 우물은 지금의 유전이 발견되는 것 같이 거기에 생명이 걸려있는 겁니다. 우물을 팠는데 물이 엄청나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주변 사람들이 우물을 다 막아버렸어요. 블레셋 왕 아비멜렉도 너 좀 제발 좀 떠나라. 왜 그러냐 하면 이삭이 뭘 하면 엄청나게 많아지고 하는 것마다 물이 나오잖아요.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백배의 소득을 얻어 그랄에 있는 정말 척박한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물을 팠어요. 우물이 또 터지는 거예요. 에섹이라고 하는 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거기까지 또 왔어요. 이게 자기네들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할 수 없이 그 우물을 또 내줬어요. 그리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이 또 터졌어요. 싯나라고 하는 우물이었습니다. 또 와가지고 이것들이 자기 거라고 하는 겁니다.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 우물도 싯나라고 하는 우물도 내주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또 우물이 터졌어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왜? 이삭이 판 우물로 자기들도 충분하게 이제는 살 수가 있었으니까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파서 우물이 나온 곳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땅이고 축복받은 땅이라고 하는 겁니다. 야 이제 정말 살만하다. 양들도 소들도 잘 자라났고요 거기가 정말 축복의 동산이 돼버린 거예요.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허락하여 주신 거예요. 점점 부자가 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어요.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가 내가 살 곳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우물도 있고 농사도 잘되고 양, 소와 하인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누리고 살면 되지만 이삭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잘 살기는 하지만 이곳이 자기가 머물지 말아야 할 땅인 것을 이삭은 알았어요.
돈이 많으면 좋습니까? 화려하면 좋나요?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내가 있을 곳이 어딘가 내가 가야할 바로 그 길에 들어서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모든 걸 다 버리고 그곳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모욕당하는 길일 수 있어요. 손해나는 길일 수 있습니다. 억울할 수도 있고요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을 향하여 걸어가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을 향하여 걸어갑니까? 정말 우리들은 예수를 만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길로 걸어가고 있나요? 이 땅에 많은 교회들은 과연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교회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될까요?
오늘도 그런 상담을 여러 번을 했습니다. 목사님, 어느 권사님이 기도를 해주시는데 능력 있는 권사님이 기도를 해주시는데 주의 종의 길을 가래요. 담임 목사님이 기도해주셨는데 주의 종의 길을 가래요. 어느 기도원을 갔더니 원장님이 기도해주시고 종의 길을 가지 않으면 평생 고통의 길을 갈 거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무시하고 가다가 자식이 덜컥 아픈 겁니다. 나이 많아 이제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서부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참 많아요.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기도를 하고 이런 얘기를 해줘요. 신학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당신이 종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이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하여 당신이 종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다 목사라고 부르고 전도사라고 부를 지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과연 누굴 종이라고 부르냐는 거예요. 대학을 졸업했다고요? 목사 안수 받았다고 하나님은 종이라고 하시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그 길에 그 일들을 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목사 안수나 전도사 안수 이런 거 받지 말고 평신도로 노숙자들 섬기고 또 열심히 호스피스 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외롭고 불행한 죽어가는 노인들 이 사람들 붙들고 울고 기저귀도 갈아주고요 한없이 흐느껴 울고요 복음을 전하고 찬양을 들려주고 당신 품안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죽어 가게하고 싶지는 않냐 독거노인들에게 찾아가 깨끗하게 닦아주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그분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느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열심히 심방하고 다니고 큰 교회에서 열심히 설교하고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이 땅에 소외된 사람들을 향하여 뭐든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향하여 살아갈 거 같아요.
우리는 우리들이 가야할 길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잘 몰라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박수를 쳐준다 해도 우린 그 길이 아니면 돌아서야 해요. 그 땅으로 그 좁은 길로 좁은 문으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쪽으로 들어간다는 건 어렵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삭은 많은 것들을 소유한 그것보다 불편한 삶을 살기로 했어요. 다시 그 땅으로 척박한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르호봇을 버리고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르호봇이 아무리 살기 좋다 해도 우리들은 브엘세바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해요.
르호봇을 떠나면 우리들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죽을 거 같아요. 우리들의 인생이 끝장나버릴 거 같습니다. 다 놓고 좁은 길을 향하여 걸어간다면 그 재밌는 것들을 다 놓고 가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르호봇을 떠나 백배의 결실을 얻었던 그곳을 떠나 과감하게 떠나 브엘세바의 삶을 결단할 때 반드시 하나님은 축복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이삭이 단단히 각오하고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런데 여러분, 그것을 단호하게 결단을 하고 그 길을 향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당연히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향하여 걸어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을 해주세요. 축복이 이 땅에서 뭘 소유하고 뭘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들은 두 번째로 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하고 함께 할게. 그러면 우리는 다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날 밤에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브엘세바를 향하여 걸어온 이삭에 대하여 하나님은 얼마나 고마워하셨을까?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 밤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하고 함께 할게. 이 음성은 들어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음성입니다.
전 가끔 간증하잖아요. 13년 동안 그런 기가 막힌 삶을 살았어요. 아무리 전도해도 한 명도 전도되지 않더라고요. 버려진 사람들과의 삶을 살았어요. 13년 동안 그렇게 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살았어요. 왜? 저는 설교할 줄도 모릅니다. 의사였으니까. 저는 뭐 다른 재주도 없어요. 말재주도 없고 말도 어눌하고 전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하는 모양이다. 애들 학교를 보냈어요. 버려졌던 애들, 앵벌이 하는 얘들도 이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글을 가르쳤어요. 앉아서 영어 ABCD를 가르치기 시작을 했고요. 전과를 사다가 하나하나 가르쳤어요. 애들 학교를 보내는데 도시락을 못 싸줬습니다. 쌀이 없어서요. 그날도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어요. 하나님, 애들 이제 학교 다 갔는데 오늘 저녁에는 라면이라도 주셔야 돼요. 애들도 돌아와 남의 것을 뺏어 먹고 때리고 뺏어 먹고 배고프니까요. 그리고 애들이 와서 물 마시는 것 못 보겠어요. 오늘 라면을 좀 주세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감동을 좀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내 종아!”
들어본 사람들만이 알아요. 얼마나 울었겠어요. 13년 만에 들어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얼마나 울었겠어요.
“다 봤다.”
“이젠 내가 너하고 함께 할 거야.”
그리고 그 외의 얘기는 제가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제 자랑이 되니까요. 어쨌든 들어본 사람들만이 압니다. 그날 밤에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삭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면 뭐가 불안하겠어요. 두려운 게 뭐가 있겠어요.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요. 하여튼 전 울기만 했어요. 주님은 “내가 다 봤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하고 함께 할게.” 어쩌면 이삭에게 하신 그 말씀을 저에게 하셨는지 나중에 성경을 읽어가며 제가 알게 됐어요. 그냥 처음서부터 끝까지 저는 울기만 했어요. 그렇게 서럽더군요.
오늘 찬양 인도한 김성준 전도사하고 제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집회를 가는데 오늘 찬양인도한 김성준 전도사가 제 옆에 타게 됐어요. 어떻게 이런저런 얘기를 저하고 하면서 가게 됐습니다. “야, 너희들은 몰라! 내가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너도 아마 잘 모를 거야. 기가 막힌 사연이 내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지 몰라. 내가 천국 문을 딱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 있을 거야. 분명히 그날이 있을 텐데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예수님이 날 기다리고 계실 거야. 두 팔을 벌리시고 ”내 종아, 수고했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하면 나는 엄청나게 우리 예수님 품에 안겨서 울 거야. ”같이 들어가자“ 해도 나는 막 울 거야. 왜냐면 이 안에는 너무나 많은 사연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모르는 기가 막힌 사연들이 이 안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노숙자들에게 두들겨 매 맞고 그런 일들이 아니에요. 노숙자들은 때로는 제 옷을 벗겼어요. 끔찍해요. 그걸 다 어떻게 얘길 하겠어요. 이 사람들은 밤마다 알코올 중독자들이에요. 술을 먹으면 이성을 다 잃어버려요. 저는 거기서 살았어요.
“야, 너는 몰라. 내가 주님 앞에 가면 얼마나 울지 너는 몰라.”
“목사님, 말도 안돼요.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이에요.”
“아냐, 눈물이 없다 해도 난 주님 품에 안겨서 사연이 얼마나 많은지 엄청나게 울 거야.”
저는 제 사연의 10분의 1도 간증 안 해요. 우리 애들이 "목사님, 이거 좀 해 보시죠 저거 좀 해 보시죠. 왜 이 간증은 안 해요?" 김성준 전도사하고 집회를 갔는데 써주더라고요. 목사님, 이걸 하시래요.
"야, 나는 엄청나게 울 거 같아. 그런데 나는 알아. 우리 예수님이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뭐라고 하실지 난 다 알아. “내 종아, 내가 다 봤다.” 그럼 나는 울면서 주님하고 천국 들어갈 거 같아." "얘, 맞아요." 그러면서 제가 찬양을 했어요. 하늘가는 밝은 길이... 저 혼자 찬양을 했어요. 그렇게 찬양하니까 저한테 그러더군요. "목사님, 저는 그 가사 중에 제일 은혜가 되는 가사가 있어요.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아, 정말, 집회를 가면서 우린 이미 봉고차 안에서 집회 우리 둘이 다 했어요. 그것은 들어본 사람들만이 아는 음성이에요. “내가 너하고 함께 할게. 이제 너를 치는 자들을 내가 칠 거야. 너를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줄 거야."
이삭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언제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르호봇을 버리고 브엘세바로 떠날 때 그리고 도착했을 때 암담하기가 짝이 없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황폐하기가 짝이 없는 그 땅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고마우셔서 “내가 너하고 함께 할게.”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 있다고 하면 대통령이 내가 당신 도와주겠어, 그 음성일까요? 모 그룹의 회장이 내가 박 목사 당신을 도와줄 테니 염려하지 마, 아 그래도 참 위안이 될 거 같아요. 든든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들어본 음성 중에 잊지 못할 음성 그 음성 하나만 하나만 있으면 세상을 다 내 것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내가 널 사랑해. 이제 내가 너하고 함께 할 거야.” 그 생각하면. 왜 저라고 죄가 없겠습니까. 왜 욕심이 없겠어요. 왜 저라고 음란과 탐욕과 거짓 위선들 이런 것들이 왜 제게 없겠냐구요. 저도 다 있어요.
때론 넘어지기도 해요. 때론 그것을 붙들기도 해요. 때로는 상상 속에서 마음껏 즐기기도 해요. 나약한 인간인데 어떡해요. 여러분들과 저는 동일합니다. 제가 좋은 목사라고요? 그럴 때마다 괴로워요 사실. 왜냐하면 저도 여러분과 동일하니까. 단 한 가지 “내가 너하고 함께 할 거야” 그 음성이 있기 때문에 고개를 저을 때도 많고요. 이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찬양도 머리를 흔들면서 할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다 그대로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가리어져 있을 뿐이에요. 이것이 없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요? 어려움이 예상 되도 고난의 장소라 할지라도 이제 개척을 해야 하는 브엘세바로 떠나기만 결단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고마워하시며 함께 해주세요.
세상 사람들은 참 바보더라고요.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해요. 많은 것을 좋아해요. 저는 우리 애들하고 사실은 극비리에 개척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어느 마트의 지하실을, 방주교회고 뭐고 이렇게 크면 다른 사람들 와서 얼마나 잘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개척지로 가서 다시 무릎을 꿇고 주여 주여 하며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이게 얼마나 재밌어요. 저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청년들을 불같이 한 번 일으켜보려고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때가 아닌지 그것을 칸막이로 막으려고 하는데 구청에서 못 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 포기했습니다. 야, 이거 아닌 모양이다 하고 관뒀어요.
사람들이 다 해주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득 메우고 앉아서 예배드릴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였다면 그게 행복일까요? 그게 승리한 걸까요? 그게 목사로서는 최고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해도 과연 거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듭나느냐 하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길을 향하여 걸어오느냐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모인다 해도 성령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는다면 거듭남이 없는 집회라면 마음에 불같이 나는 그래, 그 길을 향하여 브엘세바를 향하여 나는 걸어갈 거야 이렇게 결단하는 집회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쓸데없지 않겠습니까. 늘 듣던 설교 쪼가리에 불과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하면 우리가 거듭나야 돼요. 찬양도 아무리 사람들이 신나게 박수를 친다 해도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님이 함께 하여 주시며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들끼리 즐기고 마는 거예요. 저는 몇 만 명이 모이고 몇 십만 명이 모이고 하는 집회 별로, 그런 사람들 많이 모이는 것, 몇 명이 모였다 저에겐 별 의미가 없어요. 과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느냐 하는 겁니다.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느냐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집회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집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 버리고 브엘세바로 돌아오는 믿음의 집회가 된다고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를 않아요.
저는 한 두 달 동안에 말도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지금 두 달 동안 겪고 있어요. 몇 십억 짜리 보육원을 1950년도서부터 대대로 만들어온 그 보육원을 저를 주겠다는 거예요. 울면서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안 받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다들 울더라고요. 어쨌든 말도 안 되게 저는 그것을 소유하게 됐어요. 한 3주 전인가요 우리 감리교회 집회를 갔습니다. 그것과는 비교 안 되는 큰 재단이었어요. 그 재단을, 어제 화요일에 이사회를 다 끝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물러가요. 이제 그 제단 제가 이사장이 되고요 제 사람들로 이미 다 그것을 접수하여 제가 그것도 또 하게 됐어요. 주인으로 된 거예요. 말도 안 되게, 돈 주고 샀냐고요? 무슨 돈을 주고 살 돈이 어디가 있겠어요. 기도해보니 하나님께서 주라고 하셨대요. 제가 그 엄청난 재단 둘을 받았습니다.
기뻤냐고요? 소유로 인한 기쁨은 요만큼도 없어요. 왜? 이만큼 살아보니 이제 소유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건가를 알아요. 안성에서 살 땐 아무 것도 없이 살았어요. 끼니가 걱정되어 살았을 그때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냥 기도하고 노숙자들하고 살고 버려진 애들하고 함께 살고 애들은 학교를 가고 시험에 붙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시험을 붙고 대학을 가고요 이게 제겐 기쁨이었어요. 대학 보낼 돈이 없는 거예요. 하나도 없는 거예요.
성광교회 유기성 목사님이라는 분이 집회를 와달라고 하여 할 줄도 몰라요, 저기 가면 50만원만 줬으면 좋겠다, 제 생애에 첫 집회였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요 설거지 하고 애들 밥 차려놓고 안성에서 안산까지 열심히 가서 가다가보면 주님, 어떻게 해요? 저는 뭘 해야 될지 몰라요. 가다가 생각나면 적어요 몇 글자를. 그래 이 얘기 해야겠다 저 얘기 해야겠다 가다가 수도 없이 서가지고 이 얘기 해야겠다, 가서 그 얘기 하고 왔어요.
우리 아이는 대학을 가게 됐어요. 앵벌이 하던 애가요. 봉투를 주는데 50만원만 하나님, 50만원만 되게 해주세요. 이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얼마를 줬는지. 그래서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차를 세워놓고 불을 다 꺼버리고요. 빼가지고 세었어요. 세상에, 백만 원짜리가 백만 원, 이백만 원, 삼백만 원, 사백만 원, 오백만 원을 줬더라고요. 오백만 원인가 육백만 원인가를 줬어요. 분명히 불쌍해서 준 거 같아요. 그렇게 누가 주겠습니까?
그때 아이 학비도 다 했어요. 책값도 다 했어요. 이제 그 아이가 버스를 타고 안성에서부터 다닐 버스비까지 다 했어요. 얼마나 좋았는지요. 척박한 그 땅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어요. 굶고 살던 저. 그러면서 거기에 제 동영상이 떴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여기저기 교회에서 저에게 집회 요청이 왔어요. 저 집회 못하는데요. 할 줄 모르는데요. 목사님, 그대로만 해주세요. 저는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유기성 목사님 교회 가서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니 몸으로 때울게요. 그리고 가서 천 몇 백 명 되는 그 사람들 안수 다 해줬어요. 새벽까지 해줬어요. 몸으로 때워야 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500만원인가 그렇게 주더라고요.
지금 이런 생각을 해요. 매 고비 고비마다 제게 그런 은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것들을 소유해요. 소유해서 기쁜 건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날 위하여 하실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 일에 내 생명을 다 해야지. 이사진들을 불러모아놓고도 그 한명 한명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십 원 한 장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다해 해야 할 일은 이 땅에서 버려진 사람들, 내 소망은 이제 다비다의 집은 죽어가는 사람들 그중 두 명만 있으면 이 사람들 더 이상 받지를 못해요. 다비다의 집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이제는 그런 것도요 몇 십 명 육십 명이라도 죽어가는 사람들 잘 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몰라요. 그래, 보육원 애들 너희들 조금만 기다려! 예배도 못 드리게 하지만 이제 그곳은 종이 만들어지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거듭나 하나님의 용사들이 되는 바로 그 장소가 될 거야. 조금만 너희들 기다려!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요. 여러분, 하나님은 브엘세바의 삶을 살려고 애를 쓸 때 가장 선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세요. 모든 길에 책임을 져주세요.
우리가 물질이나 거지같은 물질들이, 예수 믿는다고 여러분, 부자가 됩니까? 아니에요. 그것은 아마 잘못된 거짓들이에요.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요? 이삭같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따라가야 돼요. 예수님을 따라가야 돼요.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은 어쩌면 우리 가지고 있는 것 다 뺏기는 길일 수도 있어요.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도 어려운데 주님이 우리에게 돈 주시겠나요? 우린 그걸 달라고 소리를 질러요. 아닙니다. 버려야 돼요. 가지고 있으면 열심히 나눠야 돼요. 그리고 우리는 주님 가신 그 길을 향하여 걸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뒤에 와서 우리에게 덮치는 거예요. 축복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우리는 그 받은 것을 가지고 또 심는 거예요. 열심히 심고 하나님이 뜻하신 그 일들을 하며 또 걸어가다 보면 백배의 축복이 우리 뒤에서 오는 겁니다. 축복은 절대로 우리 앞에 가질 않아요. 우리 앞에 가는 것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거예요. 우리 뒤에 오는 것은 우리는 얼마든지 심을 수 있고요. 우리 뒤에서 우리에게 덮치는 축복은 천국가기에 어렵게 하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그런 축복이 아니에요. 섬길 수 있고 심을 수 있는 축복들입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잘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은 오지 않았어도 돼요. 왜 이 땅에서 뭐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겠습니까? 다른 종교에도 얼마든지 그 종교 믿고 부자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린 그것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우리들의 마음이 거듭나고 주님이 원하시는 브엘세바를 향하여 걸어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이제 말씀을 마치도록 할게요. 고대에는 우물을 먼저 파고 물이 나오면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수많은 양떼들이 어쩌면 다 몰살당할 수 있어요. 브엘세바로 이주하고 우물을 팠습니다. 또 우물이 터졌어요. 아베멜렉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삭이 “왜 나를 쫓아왔느냐?” “우리는 하나님이 너하고 함께 하는 걸 안다. 서로 해치지 않기로 약속을 하자.”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한 자들이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내주세요. 원수라 할지라도 잘 선대하여 잔치를 베풀고 평안히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이 되었어요. 종이 달려 나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인님, 우물이 터졌습니다.” 우물이 터졌다는 거예요. 이삭은 그 이름을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맹세의 우물. 내가 저들과 맹세하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대하여 보냈더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물을 주셨다는 뜻으로 맹세의 우물, 나중에는 브엘세바로 변화가 됐습니다.
여러분, 내가 가서 그 초라한 곳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샘으로 바꿀 수 있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크고 화려한 곳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작고 천한 곳으로 우리는 내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브엘세바의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황무지로 가서 그곳을 축복의 땅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제 우리들은 시시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웅장한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황무한 곳으로 가 브엘세바의 축복으로 만들어놓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박보영 목사님 목소리가 들리는듯...^^ 정말 주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이런 삶..이런 마음..
감사합니다.
아멘!
너무나도 귀한 말씀입니다...말씀대로 살기 소망합니다. 좁은 길 좁은문 브엘세바로 내려가는 마음과 용기를 주옵소서..감사합니다*^^*
아.. 생명수를 마신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
생명수 같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박보영 목사님같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간증을 삼가하는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간증이 좋은 일이지만, 주님께서 영광받으시기 보다 주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간증을 통해서 영광을 받는 사람은 마땅히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간증을 정말 지혜롭게 하여, 주님께서만 드러나시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간증을 듣는 이들이 경찬하며 박수를 치게 해야 할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