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루즈버리에서 크루와 체스터를 거쳐 아일랜드 더불린행 배를 타러 홀리헤드에 가다!
4월 24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 호텔을 나와 언덕위에 자리한 오래된 고풍스러운 슈루즈버리
Shrewsbury 구 시가지를 구경하고는 돌아와 체크아웃 후에 배낭을 메고
아일랜드 더불린 으로 가는 배 가 출항하는 홀리헤드 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갑니다.
마눌과 함께 슈루즈버리 기차역 으로 들어가 티켓 오피스 창구에서 미리 인쇄해 온 종이 를 보이며
우선 크루 Crew 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데..... 여성 역무원 표를 4장 이나 주기에 당황 합니다?
아니? 왜 기차표가 2장이 아니고 4장 이야? 그럼 혹시 체스터 Chester 로 가서
다른 기차를 갈아타고 크루 Crew 로 가는가 싶어.... 표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니고 이건 왕복표 입니다? 영국에서 기차표를 끊을 때
특이한 것은...... 편도인지 왕복 인지 반드시 물어 본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줌마 역무원은 사전에 물어보지도 않고 왕복표 를 끊어준지라....
이건 취소해 달라고 말하니 한다는 말이 "가격이 별로 차이가 없다" 나요?
그렇습니다! 영국에서 기차표는 버스표에 비해 비싼데 또 특이한건 크루까지 가는 1인당 편도 요금이
13.8 파운드인데 왕복 요금은 27.6 파운드가 아니라 달랑 14 파운드 에 불과한게 잘 이해가 안됩니다?
해서 요금에 별 차이가 없으니 물어보지도 않고 왕복표로 끊었다는 것인데.... 그럼 현지 주민들은 다른
도시에 갔다가도 집에 돌아와야 하니 엄청 이득 이지만 관광객이야 되돌아올 일 이 있을리 없습니다?
기차를 타고는 교통의 요충지 인 크루 Crew 에 내렸는데 이제 홀리헤드 로 가는 기차표를
끊을까 하다가 기차역 주변을 보니 이 도시는 별로 볼게 없지만 가는 도중에 체스터는
옛날 로마인 들이 만든 도시이니.... 옛 유적을 볼까 해서 체스터 Chester 행 표 를 끊습니다.
체스터역 에 도착해서는 몇년 전에 3차 영국 여행시 이 도시에서 로마인들이
만들었다는 고대 병영도시인 체스터 구시가지 를 본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유럽의 대도시 는 거의 로마군의 주둔지 에서 비롯된 것이라 쾰른, 프랑크푸르트, 베오그라드
빈에 부다페스트 말고도... 런던 이며 맨체스터, 체스터 등은 로마군이 주둔지로 세웠습니다.
3차여행시 체스터역에 내려서 리버풀 로 가는 기차를 환승해야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잠시 시간
을 쪼개어 택시에 배낭을 싣고는 구시가지 동문 이스트 게이트 시계탑 으로 향합니다.
빅토리아 여왕 즉위 기념으로 만들어 졌다는 체스터시의 동문 East Gate
시계탑 에서 내리면서 택시 기사에게는 잠깐 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성문 을 들어가서는 체스터 대성당 으로 향합니다.
체스터 대성당 Chester Cathedral 은 10세기 말에 색슨인 이 세운 교회에
후일 노르만인들 이 고딕 양식 으로 증개축 하였다는데......
성가대 좌석의 목조 조각 은 14세기 것이며 성당의 정원도 또한 볼만 합니다.
더 로우즈 The Rows 는 십자로 주위에 튜더 왕조 시대 양식의 건물 2층 부문에
발코니 가 서로 연결된 통로 로 16~ 18세기 양식의 아케이드 이고......
성벽 City Wall 은 동쪽과 북쪽은 로마인 이 그리고 노르만인들은 남쪽과 서쪽
을 쌓았다고 하는데, 18세기 말에 행한 대보수로 3km
길이에 1시간 걸리는 산책로 가 되었다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저 쳐다만 봅니다!
시계 반대방향 으로 성벽을 한바퀴 돌면 노스게이트, 워터타워, 워터게이트, 체스터성
브리지 게이트로 해서 이스트 게이트 로 돌아올 수 있으며..... 성벽 을
돌다보면 노스게이트 못미쳐 킹 찰스타워 King Charles Tower 가 나오는 데
이 탑에서 찰스왕 이 청교도 의회군 과의 전쟁에서 국왕군의 패배를 알았다고 합니다!
존왕의 대헌장 이래 구성된 의회를 해산 하고 전횡을 일삼던 찰스왕 이 스코틀랜드 와
전쟁을 위해 전비 가 필요하자 소집한 의회를 탄압하니 반기 를 들었던 것이지요!
그러고는 1649년 찰스왕이 크롬웰에게 체포되어 처형 되고 아들 찰스 2세도 저항합니다.
이후 찰스 2세는 프랑스로 도망치는데.... 1660년에 크롬웰 사후 영국으로 돌아오니 왕정복고
라던가요? 그후 영국이 성공회와 가톨릭간의 싸움 이 벌어지니... 의지할 곳 없는 개신교
인 청교도 들은 신앙의 자유 를 위해 신대륙 으로 도망쳐서는 후일 미국 을 건국하는 것입니다!
체스터 Chester 역에서 1인당 28.3 파운드를 주고 홀리헤드 Hoiyhead 행 기차표를 끊어 열차에 타니
기차는 이내 웨일즈 로 접어드는데..... 여기는 간판에 2가지 글자를 사용하니 웨일즈어와 영어 입니다.
한가지 특이한건 10년전에 열국 일주 여행시 여기 북웨일즈 에 왔거니와 그때도 바퀴가
달린 이동식 주택들 이 대거 모여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눌은 빌려주는 집 일 것이라지만 그건 아니고 그냥 주민들이 사는 집인데
어디 이재민 이었거나..... 아님 외국에서 온 사람들 인지 모르겠습니다?
영국을 잉글랜드 라고 부르는 분도 있지만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며 약칭은 유나이티드
킹덤 혹은 브리튼 이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및 북아일랜드 3개의 자치의회가 있습니다.
국제 럭비대회 가 열리면 보통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및 프랑스
6개국이 참가하며 월드컴 축구 예선은 한나라는 한 팀이 출전하지만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4개팀 이 출전하는데.... 월드컵이 영국에서 열려서
예선없이 출전하게 되자 웨일즈인 으로 주장 긱스는 영국 국가가 연주될 때 침묵 으로 일관했다는?
웨일스라는 국명은 영국을 침략한 게르만 색슨족이 브리튼섬 남서부로 쫓아낸 브리튼인들을 Wēalas 라고
칭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방인' 이라는 뜻으로 과거에 Wēalas 라고 썼다고 하는데, 웨일스어로는
컴리(Cymru) 이며 영어와 반대로 '동족들의 땅' 이란 뜻이니 라틴어로는 캄브리아(Cambria) 라고 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유럽인들이 미국을 침략해 아메리카 인디언 들을 산속으로 쫓아내고 야만인 으로 부르거나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략해 한국인들을 함경도나 만주로 쫓아낸 다음 한국인을 반도인 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하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이지만 원래 역사는 침략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웨일즈를 상징하는 Red Dragon 깃발 은 구전 웨일스 신화 모음집인 마비노기온 에서 화이트 드래곤이
브리튼을 침략하자 레드 드래곤 이 나타나 막아서 혈투를 벌이고 이 때문에 국가가 황폐화되자 땅에
구덩이를 파서 벌꿀술을 채워 두 드래곤을 유인하고 그 틈에 드래곤들을 가뒀다는 설화에서 유래합니다.
웨일스 깃발의 배경이 흰색과 녹색 인데 이것은 웨일스 출신 가문으로 처음 영국(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튜더 왕조의 문장 에서 가져왔으니..... 레드 드래곤 역시 튜더 왕조
문장과 연관이 있고 영국 국기 유니언 잭과 국장(Royal coat of arms) 에 웨일스만 유일
하게 포함되지 않는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는 달리 왕국이 아닌 공국 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드래곤이 사탄의 상징 으로 쓰이고 있지만..... 기독교 전래 이전의 영국의 켈트 신앙
에서 기인한 것이라 계속 쓰이고 있는데 때문에 기독당(Christian Party) 이라는 군소 정당
에서 붉은 드래곤 깃발 대신 성 다윗기 깃발 을 웨일스 정식 국기로 삼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대한민국 축구 응원단이 "붉은 악마" 인 것을 기독교계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서쪽 산악지대로 도망친 원주민인 브리튼인 에다가 이후 로마화된
브리튼인들이 브리튼 섬 남부에 살다가 새로 침략해온 앵글로 색슨족 에게 쫓겨나서
서쪽으로 도망쳐 국가들을 형성한 것을 웨일스의 시작 으로 보는데 웨일스 지역의 귀네드
왕국 (Kingdom of Gwynedd, Teyrnas Gwynedd) 은 로마 제국의 후계국 으로 여겨집니다.
초기 웨일스는 토착 귀족들이 각자 소왕국 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1100년경 잉글랜드에 노르만
(바이킹) 왕조가 들어선 이후 남동부 웨일스와 잉글랜드 국경 지대인 웨일스 변경령
(Welsh Marches, Y Mers) 의 일부 귀족들은 변경백과 비슷한 직위를 가진 변경
제후 (Marcher Lord, Barwn y Mers) 로서 종주권자인 잉글랜드의 왕에게 복속된 위치 였습니다.
13세기에 웨일스의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는 귀네드 왕국의 왕 흘러웰린 압 요르웨르스 (Llywelyn
ap Iorwerth) 가 다른 웨일스 귀족들을 복속시켜 하나로 통합 했고 이후 1216년 스스로를
웨일스 공(프린스 오브 웨일스) 이라고 칭하니 1218년 잉글랜드왕 헨리 3세 는 웨일스공을
정식 작위로 인정해 잉글랜드 왕의 봉신이자 웨일스 군주로 승인하니 웨일스 공국 이 성립됩니다.
1272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가 사망하고 즉위한 에드워드 1세 는 명목상으로 잉글랜드의 영토인 웨일스
지방과 봉신 관계라곤 해도 독립된 정권을 달갑지 않게 여겼으니 1277년 웨일스를 공격 하자 웨일스
공국은 격렬하게 저항 했지만 결국 패배해 1282년, 웨일스 공이었던 흘러웰린 압 그리피드 가 전사 합니다.
1284년에 웨일스공을 자칭한 다비드 압 그리피드가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혀 처형당하면서
독립된 웨일스 공국과 웨일스공의 지위는 소멸 되었고 1301년 웨일스 지역을 완전히
복속시킨 에드워드 1세 는 아들이자 왕세자인 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공 작위를
수여해 더이상 독립된 웨일스 공국이 아닌 잉글랜드에 완전히 종속된 웨일스 로 편입합니다.
웨일스공 지위는 훗날 메리 1세 도 받게 되는데 그녀는 오랜 기간 아버지 헨리 8세의 외동딸
이었으니 메리 1세는 헨리 8세와 아라곤의 캐서린왕비 사이가 틀어질 때 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니..... 헨리 8세는 메리 1세에게 영국 왕족 중 처음으로 웨일스
의 여공작 (Princess of Wales) 이란 칭호를 내렸고 처음으로 독립된 궁정 을 두도록 했습니다.
첫댓글 체스터대성당 10세기에 지어진 엄청난 역사를 지닌 고딕양식성당이군요.
체스터는 옛 로마인들의 군영 도시라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