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정평
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왜 애민·애국 세력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가?
1. 배신정권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이재명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40%대에서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배신의 길로 갔을 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정부에 의해 배신정권이 성립된 이래 반동정권과 배신정권이 번갈아 가며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하지만 33년의 세월의 과정에서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김영삼 배신정권에 이어 등장한 김대중과 노무현 배신정권,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반동정권 이후에 탄생한 문재인 배신정권은 처음부터 배신의 길을 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영삼 배신정권처럼 자신의 존립 근거를 군사독재 세력과의 대립 구도에서 찾듯이, 배신정권이 단지 군사독재세력이나 반동세력과의 대립 관계에서 자신의 존립 근거를 찾을 때 어김없이 배신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시대적 흐름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 세력이 민을 가혹하게 억압하고 탄압하였을 때 이들에 대한 반대 투쟁은 유의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그런 구도에 매달린다는 것은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라보고 지난날의 기사도 정신만 강조하는 돈키호테식의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군사독재 세력이 맥을 추지 못한 이후의 시대적 흐름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사독재 내지 반동세력과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게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대립 구도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난날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배신정권이 처음부터 배신의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 초기엔 어느 정도 지지율을 유지합니다. 배신정권의 등장 계기가 군사독재 세력이나 반동세력을 반대하는 과정이었고, 그런 관계로 정권 초기에 이들을 청산하는 절차를 일정하게 진행하니 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자면 그 이후엔 시대 흐름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편으로 군사독재 세력을 이어받는 반동세력은 어차피 반대할 것이고, 반면에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고 있는 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 실망감을 느끼고 반대하는 길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로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면 명확히 확인됩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배신정권의 등장 이래 반동세력과 배신세력 간의 거대 양당 체제로 되었습니다. 제3 정당이 있기는 하지만 별반 영향력이 없고, 사실상 거대 양당 체제의 이중대 역할을 하는 데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신정권이 군사독재 세력의 형태를 이어받는 반동세력과의 대립 구도에서 자기의 존립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반동세력의 핵심을 고립시켜 정권의 안정적 기반을 도모하려는 형태이고, 또 하나는 아예 반동세력과 선을 그어 대립 구도를 명확히 함으로써 자기들 배신세력이 앞으로도 계속 권력을 잡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을 제시하는 형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반동세력은 배신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윤석열이 탄핵된 이후에 장동혁 대표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들이 어떤 이상야릇한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 지지율이 20~30%대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신정권이 잘못된 정책을 펴면 반사 이익으로 그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데에서 확인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반동세력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자기편 세력을 확고히 지지해 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결국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배신정권의 지지율 변화는 반동세력이 아니라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인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반동세력과의 관계도 통합이냐, 아니면 대립 관계냐 하는 그 형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입장에 근거하여 통합하느냐, 대립하느냐가 중대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부차적인 차원인 반동세력의 존립 구도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실상 반동세력은 시대 흐름상 진작 사라져야 할 세력입니다. 그런데도 이들 세력을 존립시키는 구도로 접근한다는 것은 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만행위는 이제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서 배신의 길로 가는 배신정권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2. 배신정권은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게 하자면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생존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조건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고 산다는 것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배신정권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자면 그만한 물질적 기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금융이나 전력, 철도 등의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적 소유로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물질적 기반을 기초로 공공적인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반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공공적인 부분의 삶부터 안정적이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도 명확한데도 배신정권은 이런 길로 나아가지 않고 군사독재 세력과의 대립 구도를 그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인 인정에 그쳤던 것처럼, 경제적 문제를 푸는 데서도 군사독재 세력이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으로 문제가 발생했던 점에 주목하고서 이를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김영삼 정권에서부터 IMF 지배 통치 이래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의 법칙이 그대로 관철되도록 하여 세계거대독점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하였습니다.
재벌이 국가의 엄청난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고 한다면 그 혜택을 민이 누릴 수 있도록 국가적 환수 조치를 취해야 하건만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에 헐값에 팔아넘겼으며, 심지어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 분야의 국영기업이나 공기업마저 민영화의 길로 나아가 헐값에 팔았다는 것입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근본 목적은 민이 물질·문화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듯이, 자본의 법칙이 관철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에게 풍족한 삶을 가져다주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민의 삶에 해악을 준다면 적극 개입해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영기업이나 공기업마저 세계거대독점에 팔아넘기거나 민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단지 자본의 법칙이 형식적으로 관철되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니 빈부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본의 법칙이 관철된다고 하면 어차피 거대독점자본이 형성되고 나머지는 몰락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 이치인데 말입니다.
이런 배신정권의 정책은 군사독재 시절엔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의 형태를 통해 재벌과 외세의 거대독점자본에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면, 이젠 자본의 법칙을 관철시키는 방식을 통해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과 한국의 대기업에 이익을 안겨주는 형태로 전환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군사독재 시절보다 도리어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등장한 이후에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심화되었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확인됩니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조건에서는 재력 있는 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다수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당장 자기 삶의 미래마저 불안한 상황에서 후세대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산율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여기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일단 태어난 후세대, 특히 청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부모에게 의탁하고 있는 어린 세대는 뭐라 자기 의견을 밝힐 수 없는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청년 세대는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야 어차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벌어 둔 돈도 있을 것이고, 설사 없다고 해도 이미 늙어 적극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앞으로도 한참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 좌절과 절망을 겪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희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떻게 배신정권을 지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년들은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에서 벗어나 자본의 법칙이 형식적으로 관철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희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 또한 이런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배신정권의 정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태 중의 하나가 비수도권 균형 발전을 위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라고 발표하면서 그 일환으로 서남권에 광주 군공항 기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팹 4기를 구축하겠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고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전력과 용수 등의 문제를 해결해 줄 터이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적극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혁한다면서 자유와 평등의 형식적인 인정에 그쳤던 것처럼, 민생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한국 경제의 규모만 키우면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낙수 효과 주장의 재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경제의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해당하지만 왜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청년들은 어떤 희망도 보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빈부격차가 확대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적 메가프로젝트라고 한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물질적 기반을 어떻게 확대·확보할 것인지를 비롯해, 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은 물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면밀히 타산하고 추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별반 따져보지도 않고 단지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기만 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반 시설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하면서 대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시대 흐름과 벗어나는 모습입니까? 이것은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대기업에 대한 또 다른 특혜가 될 것이고, 동시에 국가의 물질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여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국가적 사업이 잘되면 대기업이 그대로 혜택을 보겠지만, 만약 잘못되었을 경우 세금으로 담보하여 진행했기에 결국 국가와 민에게 고통이 전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이재명 정부 또한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다면서 빈부격차를 확대시켜 왔던 지난날의 군사독재와 배신정권의 경제 정책 추진 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제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재명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주식 시장과 부동산 정책을 대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민이 그 혜택을 무조건 누린다고 말할 수 없듯이, 주식이 오른다고 해서 그 혜택이 무조건 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개미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보다는 세계거대독점자본을 비롯한 투기 세력이 돈을 벌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면 주식 시장이 투기적 요소에 좌우되지 않고 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자면 민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에 대해 국가적 소유의 물질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면서 국내적 산업 기반을 전반적으로 더욱 튼튼히 다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그런 정책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되게 주식 시장의 값을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주식 시장은 특정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는데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까지 도입했으니 더욱 투기 형태가 조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거대독점자본을 비롯한 투기 세력이 돈을 벌게 됨으로써 한국의 국부가 유출되고 개미 투자자들과 민이 고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 또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누구는 돈이 있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집이 없어 남의 집을 전월세로 빌려 산다는 이유만으로 주거비에 큰 부담을 안게 된다면 이 자체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를 해결하자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되지 않고 한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기 집을 마련해서 살 수 있어야 할 권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 없는 사람이 누구나 자기 집을 마련해서 살 수 있게 하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현 시기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작용하여 일부 투기 세력이 엄청난 불로소득을 벌어들이고 있기에 이를 일정한 선에서 세금으로 환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기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세금으로만 환수하려고 하면 결국 그것은 집 없는 서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세금 환수 정책은 부동산 문제 해결의 본질적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해결책은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주택을 공급하여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해서 누구나 집을 가지게 된다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크게 작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집을 가지게 하는 조치가 취해진다면 실수요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투기적 형태가 극성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국가가 책임지고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공급하고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채 세금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으니 어떻게 문제가 풀릴 수 있겠습니까?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부담하게 되니 당연히 반대할 것이고, 집 없는 사람은 집을 마련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세금 환수로 인해서 전가된 비용을 물게 되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결국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요를 안정적으로 창출하면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빈부격차를 극대화하면 결국 파국을 맞게 되고 경제적 발전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적 소유로 하여 물질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면서도 노동, 농민, 교육, 청년, 여성, 교육, 보건, 복지, 세금, 환경 등 사회 제반 정책에 걸쳐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이 아니라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에서 접근하여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총체적인 사회 개혁을 전개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체질을 확고히 바꿔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배신정권은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게 자유와 평등의 형식적인 인정이나 자본주의 법칙의 형식적인 관철에만 머물러 있는 관계로 이런 총체적인 사회 체질 개선 방향으로 접근하여 풀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배신정권은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결코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배신정권은 미국의 압력에 버텨내지 못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한국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면 주권을 명확히 행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정책은 한국 민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에게는 그만큼 자본의 이윤 획득을 감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실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당연히 압박을 가하며 간섭하고 들어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 간섭과 압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겨내지 못하면 한국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껏 배신정권이 한국의 독자적인 정책 추진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젊은 시절 대중경제론을 제창했는데, 그 핵심적 요체는 민족경제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미국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겠다고 결기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지난날의 얘기는 다 내팽개치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며 배신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명맥을 사실상 세계거대독점자본이 장악한 관계로 싸워봤자 버텨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간섭과 압력을 이겨내자면 전민이 단합해서 싸워야 합니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침공에서 여실히 보여주듯 경제적 압박만으로 되지 않으면 군사적 침략도 서슴지 않고 감행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자면 전민을 하나로 단합시켜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맞게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여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이 아니라, 단순히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차원이거나 혹은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이 한국 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노력의 결실물을 수탈해도 자본주의 법칙이 관철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배신정권이 어떻게 민을 하나로 단합시켜 미국과 단호히 맞서 싸우려는 결전의 의지를 내보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썩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배신정권의 정신적 상태와 사상 의지적 측면을 놓고 볼 때 미국과 결연한 태도로 대응하지 못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한국의 돈을 어려운 한국 경제와 빈부격차 해소에 사용하지 못하고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라든가, 한미동맹 현대화란 미명하에 한국 땅을 미국의 대중국 전초 기지 역할로 전락하게 하는 것도 배신정권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필연적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배신정권에 넋 놓고 기대하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4. 이제는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서야 한다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방법은 단 하나 이제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배신정권에 반대하고 나서면 반동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신세력이 실질적인 개혁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게 증명된 조건에서 민이 나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민이 직접 나섰을 때 반동세력에 대한 반대 투쟁도 적극적으로 전개되면서 실질적으로 응징할 수 있습니다.
실상 애민·애국 세력이 스스로 나서서 미국과 한판 싸움을 결연히 준비해 나간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민·애국의 사상적 기치는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지고 집단을 구성해서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자면 일차적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주권을 회복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이를 가로막는 최대의 세력이 외세와 매국노이기에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한 내용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민을 애민·애국의 기치로 단합시킬 수 있고, 그 단합된 힘으로 미국과의 한판 싸움에서 당당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하나로 단합하면서 그런 경제력과 군사적 대응 능력을 이용한다면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실상 미국과의 싸움은 저 멀리 태평양 같은 링 위에서 누가 힘이 센가에 의해 결정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바로 한국 땅에서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입니다. 따라서 전민이 단합해 싸운다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기어들어 온 미군 세력은 거대한 한국 민의 물결에 에워싸여 포위된 섬의 처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건 한국 땅에서 미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분열된 관계로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서서 수행해야 할 일은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를 구축해 가면서 미국의 주권 유린 행위에 반대하는 동시에 매국노를 응징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한판 싸움을 벌여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땅에서 매국노 역할을 수행하는 세력을 기필코 응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전민적 단합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특히 매국노를 응징하는 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에서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세력입니다.
외국과 정상회담을 한다거나 어떤 행사를 같이했을 때 친선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국기를 들고나와 환영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제를 푸는데 외국 국기를 들고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 문제를 풀고자 하는데 외국 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자유가 보장되자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가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듯이 한국의 문제를 푸는 데 외세가 한국의 주권을 간섭하거나 짓밟아 주라고 요청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외세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를 유린하라고 구걸하는 매국 행위일 뿐입니다.
이런 행위는 매국 행태에 다름 아님을 분명하게 직시하도록 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국 땅에서는 친선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큼은 감히 외국 깃발을 들고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더욱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핵심적인 세력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정권을 겁박하여 한국 민이 피땀으로 이룩한 재부를 약탈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날의 식민 지배 행위도 제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하지도 않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한반도를 재침하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라면 일장기와 성조기를 한국 땅에서 들고 흔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흔든다는 것은 매국 행위임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들고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상황이 벌어지니 미국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한국 정권을 겁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고, 한국의 정치권과 고위급 관료들은 매국 행위를 버젓이 저지르면서도 성조기 부대의 뒷배를 믿으며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얼마든지 자기주장을 밝히는 것은 좋으나 외세의 간섭을 불러와 주권을 유린하도록 호도하는 데 일조하는 성조기만은 들고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분명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조기를 한국 땅에서 들고나와 흔들지 못하게 한다면 미국 또한 한국의 정권에 대해 함부로 겁박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한국의 정치권과 고위급 관료들 또한 감히 매국 행위를 저지르면서 정당화하는 행위를 대놓고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애민·애국 세력은 이 성과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전민적 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를 구축하고, 마침내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여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애민·애국 정권의 힘으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2026. 8. 31.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