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마음은 한결같다
유체양변
영지일종
- 오직 양쪽에 머물러 있다면
어찌 한결같음을 알겠는가
송
네가 화가 나서 기분 나쁘구나.
화가 나서 기분이 나쁜 것은 너의 몫.
내가 기분이 좋아 매우 즐겁구나.
기분이 좋아 즐거운 것은 나의 업이다.
강설
양변이란 양쪽을 의미한다. 즉, 이것이 생기니 저것도 생긴다는 것이니,
곧 분별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니,
생각과 감정이 여기에 해당된다. 무엇이건 있는 그대로 보면 양변의 분별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 있다'고 생각하는 즉시 '없다'는 것이 동시에 생기므로 ' 좋다'라고 생각하면
' 싫다' 또는 '나쁘다'라는 것이 생겨나고, ' 즐겁다'라고 느끼는 동시에 ' 괴롭다'라는 느낌도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쪽의 업이 생기면 다른 한쪽의 업도 생겨나서, 한때는 이쪽의 업이 발생하고,
한때는 다른 쪽의 업이 발생하게 되니, 이를 시절 인연이라 했다.
따라서 좋은 업이 발생할 때가 되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되고, 나쁜 업이 발생할 때가 되면 나쁜 일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업이 상대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시간을 인연의 때라 하고,
그 업이 나타나는 장소를 인연이 닿는 장소하고 한다.
만약 기분 좋은 인연 즉, 일이 잘 풀린다거나, 좋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시험에 합격을 한다거나, 횡재를 한다거나,
주식에 대박을 친다거나, 병이 낫는다거나 등 기분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좋은 업이 나타나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업이 생겨났으므로 그에 따른 인과로 인하여 반대되는 기분 즉, 좋지 않은 인연 또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이다.
고통스럽다거나, 괴로운 일이 생겨난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죽음에 이른다거나, 일이 실패한다거나, 시험에 낙방한다거나,
병이 생긴다거나, 싸운다거나 등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나쁜 업이 생길 때가 되었기 때문에 좋지 않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을 경험한 인과의 과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서, 기분 좋지 않은 감정을
또다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기분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이 업이 쌓였다가 다음에 반드시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이런 일이 나타날 때도 저런 일이 나타날 때도,
마음을 놓고 또 놓아 방하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분별로 인한 괴로운 과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영지일종이라 했다. 즉, 일종이란 한결같음을 말한다. 한결같음이란, 바로 위에서 말한 방하착을 가리킨 것이다.
좋은 것을 놓고 또 놓음으로 인하여, 나쁜 과보가 생기지 않게 되고, 나쁜 것을 놓고 또 놓음으로 하여, 다음에
또다시 나쁜 업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던 그것은 상대의 업이자, 상대의 몫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던 그 또한 나의 업이고 나의 몫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마대사의 제자가 된 헤가대사가 스스로 팔을 자르며 제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달마는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럼 내가 이제 너를 편히 해 주겠다"라고 말한다. 달마는 달마 스스로 불편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고,
혜가는 스스로 불편함을 안고 있기 때문에, 달마는 바로 스스로 마음을 편히 하는 방법은 내가 만드는 것임을 가르쳐 준 것이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서로 장난을 치는데 손자는 애가 타서 울고불고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할아버지 마음은 손주가
귀여울 따름인 것과 같다. 스스로 불편한 사람은 속이타지만, 스스로 편안한 사람은 불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분별하는 마음을 항상 내려놓는 것을 '양변을 따른다'라고 한다.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항상 방하착하면,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 되기 때문에 이를 일종 즉, 한결같다고 하는 것이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분별하지 않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행이라 하겠다.
유체양변
영지일종
- 오직 양쪽에 머물러 있다면
어찌 한결같음을 알겠는가
신심명 강독, 진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