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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국문학사 책을 읽을 때, 가령
宋××(1493∽1584)
鄭××(1536∽1593)
朴×× (1561∽1625)
曺×× (1561∽1625)
라고 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들이
조선중엽의 가사작가들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숫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 속에 한 인간의 생애가 고스란히
꼼짝없이 체포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어떻게 보면 멸치꽁지 같기도 하고
조금 확대하면 주가지수의 곡선 그래프나
고교시절 수학시간에 배운 sin/cos을 닮기도 했고
세워놓으면 거인왕국으로 뻗어올라간 콩넝쿨 같기도 해
한번의 소용돌이로 끝나는
그저 철썩 한번 바위에 부딪고 사라지는 파도
작은 <波線>
거기에 양반과 상놈이 눈 마주치고 살았다는 것
밥 먹고 오줌 누고 여자와 살부비며 살았다는 것
늦은 밤 책을 읽다 깜빡 졸아 눈썹을 그을렸다는 것
씨앗 뿌리고 곡식 거두고 진탕 술 퍼먹었다는 것
이웃과 쌈박질하고 목청돋우고
썩은 정치가 역적무리 매국노들을 욕하고 분노하고
그리하여 지금 남은 것이 이름 석자와 작은 파선 하나
이 땅에 살았었다는 작은 표시로 요약된 채
그리고, 그래서, 가령
몇 세기 흐른 뒤 구천을 맴돌던 내 영혼이 잠시
교보문고에 들어 20세기 한국문학사 연표를 뒤적이다
鄭××(1958∽????)
라는 상징표식을 발견한다면 나는, 기쁠 것인가
자식과 아내의 직장동료와 스승과 제자와
안산시와 충주시와 청주시와 고향산골
6,500짜리 집과 90만원의 봉급과
장당 3,000원 남짓의 원고료와 그나마 못받을 원고료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과 술집 <나주집>과
이들과 얽히고설킨 끈들이 모두 잘린 채 오직
멸치똥 하나로 압축된 나
내가 거기 웅크리고 있다면
<시 읽기 > ∽/정한용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고, 문학평론을 하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대학 시절 저와 같은 문학동아리의 회원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창窓문학동인회’였습니다. 저보다 한 해 선배인 정한용은 그때부터 시도 쓰면서 동시에 평론도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문학평론가로 먼저 등단했습니다. 그가 등단한 작품명은 <이성부론>이고, 그가 등단한 곳은 《중앙일보》 신춘문예란이었습니다. 그는 23세라는 매우 이른 나이에 문학평론가로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학평론만으로 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한용은 1980년대에 들어와 경희대학 출신들이 주를 이뤄 형성한 ‘시운동’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시인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운동’ 동인들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명상가이자 시인이자 산문가, 더 나아가 번역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류시화, 실험적인 시와 소설을 쓴 하재봉, 역시 시인이자 소설가이면서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로 유명해진 박덕규 등이 있었습니다.
정한용은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나니아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 세 권 속의 많은 시들 가운데 제목조차 이상한 그의 시 <~>을 좋아합니다. 이 작품은 여러분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저는 부호 ‘~’을 ‘파선’이라고 읽겠습니다.
국문학사 책을 읽을 때, 가령
宋××(1493∽1584)
鄭××(1536∽1593)
朴×× (1561∽1625)
曺×× (1561∽1625)
라고 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들이
조선중엽의 가사작가들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숫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 속에 한 인간의 생애가 고스란히
꼼짝없이 체포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어떻게 보면 멸치꽁지 같기도 하고
조금 확대하면 주가지수의 곡선 그래프나
고교시절 수학시간에 배운 sin/cos을 닮기도 했고
세워놓으면 거인왕국으로 뻗어올라간 콩넝쿨 같기도 해
한번의 소용돌이로 끝나는
그저 철썩 한번 바위에 부딪고 사라지는 파도
작은 <波線>
거기에 양반과 상놈이 눈 마주치고 살았다는 것
밥 먹고 오줌 누고 여자와 살부비며 살았다는 것
늦은 밤 책을 읽다 깜빡 졸아 눈썹을 그을렸다는 것
씨앗 뿌리고 곡식 거두고 진탕 술 퍼먹었다는 것
이웃과 쌈박질하고 목청돋우고
썩은 정치가 역적무리 매국노들을 욕하고 분노하고
그리하여 지금 남은 것이 이름 석자와 작은 파선 하나
이 땅에 살았었다는 작은 표시로 요약된 채
그리고, 그래서, 가령
몇 세기 흐른 뒤 구천을 맴돌던 내 영혼이 잠시
교보문고에 들어 20세기 한국문학사 연표를 뒤적이다
鄭××(1958∽????)
라는 상징표식을 발견한다면 나는, 기쁠 것인가
자식과 아내의 직장동료와 스승과 제자와
안산시와 충주시와 청주시와 고향산골
6,500짜리 집과 90만원의 봉급과
장당 3,000원 남짓의 원고료와 그나마 못받을 원고료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과 술집 <나주집>과
이들과 얽히고설킨 끈들이 모두 잘린 채 오직
멸치똥 하나로 압축된 나
내가 거기 웅크리고 있다면
이 시를 읽고 나니, 시의 본 내용과 크게 관계 있는 것은 아닌데, 저에게는, 왜 시조를 배우고 가사를 배워야 하는지, 왜 미문을 배우고 적분을 매워야 하는지. 왜 물리를 배우고 화학을 배워야 하는지, 왜 <산타루치아>를 부르고 고갱을 알아야 하는지, 아무도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는 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은 채, 학교와 교재와 교사의 절대적 권력 앞에서 그냥 이들이 알려주는 지식을 몸 속에 우겨넣느라고 정신 없었던 초ㆍ중ㆍ고 시절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 그로 인하여 저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참으로 많은 것을 백과사전처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의 본질과, 그것을 어떻게 실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공부는 우리들 앞에서 철저히 추상화되고 수단화되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들이 한 그 많고 많은 공부가 추사의 세계만을 맴도는 메마른 얼굴로 환상처럼 존재하다가 어느 날 수단으로 기능을 잃고 나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지곤 했습니다. 몸 전체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머리로만 공부를 한 까닭입니다. 체득해야 하는데 암기한 까닭입니다.
정한용의 시 <~>의 제1연을 읽고 나니 위와 같은 푸념과 안타까움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구체화를 지향하는 것이 문학의 특성이라고 배우면서도 실상 문학작품인 가사와 그것을 쓴 작가들에 대하여 우리는 몸으로 생생하게 그들을 체득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머리로 외우는 공부를 하는데 그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국문학사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살아서 우리에게로 다가오지 않고, 항상 우리와 무관한 저 먼 곳의 이방인이나 미라 같은 존재였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훌륭한 시가이고, 훌륭한 인물이기 때문에 어찌 됐든 우리는 배워야 한다는 의무감만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을 뿐, 그들과 교감의 장을 마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정한용은 국문학사 책에 조선 중엽의 가사 작가들이 표시된 방식을 보고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방식이란 위 인용시의 제1연에 나오듯이 “宋××(1493∽1584)/鄭××(1536∽1593)”과 같은 식의 인물 표기 방식을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정한용의 말처럼 우리는 아마도 ‘宋××’ 송순이고 ‘鄭××’은 정송강일거야라고 추측을 하거나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추측과 확인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입니까? 이러한 이름을 추측하거나 아는 것만으로는, 아니 파선(~)과 숫자의 단호한 규정 속에 이들이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한 인간이 몸으로 살아낸 생을 이해할 수도 전달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몸을 갖고 살아간 한 인간의 생이란, 그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그 잘남과 못남에 관계없이 그 나름이 절절한 생의과정을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동안 계속하여 간직하게 마련입니다. 아, 그런데 이런 절절한 과정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작고 초라한 파선(~) 하나와 숫자의 감옥 속에 인간들의 삶이 빵 부스러기 같은 조각으로 압사당해 있단 말입니까? 정한용은 조선 중엽의 가사 작가들을 알려준 그 표식 앞에서 이런 생각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송순이니 정송강이니 박인로니 하는 이들은 축복(?)받은 자이거나 성공한 자입니다. 국문학사 책에 그들의 이름이 올라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많은 역사 속의 작가들이 그들 나름으로는 하얗게 밤을 밝히며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국문학사 책은커녕 사람들의 소문에조차 오르내리지도 못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봅니까? 시인 김승희가 자신의 어느 시에서 말한 것처럼 문학사 책은 깨끗하게 무뉘 맞춰 도배질한 바람벽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위대한(?) 몇몇을 제외한 수많은 시인 작가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어느 면에서 보면, 문학사 책은, 아니 모든 역사책이란 역사책은 다, 존재했던 사람들을 대부분 무화시켜 버리고 마는 엄청난 폭력적 실체이자 관념적 조작물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작고 초라한 파선을 중심으로 하여 앞뒤의 숫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감옥 같은 표식, 그 표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대단한 영광(?)을 누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이 무슨 종류의 역사책이든 간에, 그 역사책에 여러분들의 이름 석자라도 올라가게 할 자신이 있습니까?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중, 과연 몇 퍼센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역사책에 이름이 오르는 그 엄청난 행운을 얻었겠습니까? 이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모든 역사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아예 이 땅에 없었던 존재처럼 만들어놓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역사책이란 역사책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존재임을 자랑으로 삼는 인간들이니, 어떻게 역사책을 다시 쓰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게 쓴 책을 또 보관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인간이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은 인간에게 행운이자 불운입니다. 이 모순 속에서 인간들은 살아갑니다.
다시 정한용의 시 <~>의 본문으로 들어가봅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한용은 제1연에서 파선 속에 한 인간의 생애가 고스란히 갇히고 마는 현실을 안타까움 속에서 지적했습니다. 그런 그는 제2연을 통하여 파선의 모양을 이런 저런 형내 같다고 재미 있게 묘사했습니다. 다실 보기에 따라 파선(~)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희를 즐기듯 파선의 모양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려 보이던 정한용은 제2연의 뒷행에 와서 매우 심각한 말을 토해놓습니다. 원래 한 인간의 생이란 게 “그저 철썩 한번 바위에 부딪고 사라지는 파도” “작은 波線”과 같은 게 아니냐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우주사는 물론 그 곳의 작은 인간사만 놓고 보더라도 한 인간의 생이란 것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그저 철썩 한번 바위에 부딪고 사라지는 파도”이러나 “작은 波線”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요. 수도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물의 물결 하나 같은 것, 그것이 겁도 없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들의 숙명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물결 하나 같은, 작은 파선, 하나 같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존재의 무게를 느낄 수조차 없는 것 같은 우리들 하나하나의 생은 이승에서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 왜 그렇게 절실하고 무겁고 고단합니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 생이, 자기 자신조차 다 기억해낼 수 없는 그 생이, 왜 그렇게 짊어지기 힘든 지게 짐 같습니까?
정한용은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의 제3연을 시작합니다. 비록 이름 석자와 작은 파선 하나로 요약되고 압축될 것이 우리들의 생이지만, 아니 그러한 이름 석자와 파선 하나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 보통 인간인 우리들의 생이지만,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절절한 우리의 생이 이 땅에서 전개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게 아니냐고 따지면서 말입니다. 대형 도서관 하나를 다 차지하고도 모자랄 만큼의 절절한 생을 역사 속의 모든 인간들이 각각 다 거치면서 살아간 게 아니냐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이렇게 말하더라도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 다시 우리들이 살아온 그 절절한 과정을 작은 파선처럼 가볍게 처리해버립니다. 그런 주에 우리들은 이런 폭력에 익숙해져버립니다.
정한용은 <~>의 제4연으로 오면서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생각해봅니다. 그가 가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가 흘러간 뒤에 그의 영혼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서점, 서울 한복판의 교보문고에 들러 국문학사 책을 들춰보다가 가사 작가의 그것과 같은 ‘鄭××(1958~????)’이라는 표식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 자신의 심정은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 그래도 내 이름 석자가 국문학사 책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고 기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며 나의 모든 생이 무시된 채 이토록 가벼운 파선으로 멸치 똥처럼 구부리고 내가 앉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생각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4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는 괴로워할 것 같다는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시인의 꿈은 그가 절절히 살았던 생의 모든 것들의 다 그 나름이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데 이르고 있으며, 그런 꿈과는 관계없이 역사 속에서 휘발성의 공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해 크나큰 연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본다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절절히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무한한 동정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한용은 이런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의 제4연 뒷부분과 제5연 전체에서 다시금 이승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그 절절한 생의 목록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열해도 다 나열할 수 없는 것들이 인간이 살아온 그 삶의 목록들이지만 그는 그래도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었느냐고, 이런 것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으며 지내지 않았느냐고, 자꾸만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파선 속에 갇힌 인간의 생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생은 말할 것도 없이 허망합니다. 제아무리 저선 중엽의 위대한 가사 작가라고 학생들이 밑줄을 그으며 외워대도 역시 그 파선 속의 작가들은 생의 허망함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허망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가 매일매일 느끼는 생명욕은 얼마나 절절합니까? 그런 생명욕이란 어찌 보면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 것입니까? 오늘도 여기저기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있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허무가 우리의 산 손을 장악하는 순간, 생명욕이 우리의 또 다른 한 손을 이끌고 갑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생은 쉴새없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합니다.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