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을지로 3가역 7번 출구로 나와서 명보아트홀 까지가면, 인도와 차도 사이에
‘충무공忠武公 (시호: 임금이나 정승,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
하여 주던 이름) 이순신李舜臣 장군(1545년~1598년,선조31) 생가 터’라고 적
힌 비석이 나온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명장이다.
선조23년(1592)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한산도 등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었다.
선조31년(1598) 노량에서 전사하였으며,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시조와 한시 등을 많이 남겼다」
-제9호, 1985년 10월 설치, 서울특별시
광화문 4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위엄 있
게 세워져 있고, 아산 현충사가 성지임을 감안 하
면 딱 표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게 초라하기
그지없다.
꼭, 거창하기만 한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도시개발로 인해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라고는 해도, 나라를 위해 공적을 많이 세운 분인
데 생가 흔적이라고 보기에는 왠지 아쉽다.
하다못해 울타리라도 쳐서 장군의 업적이라도 새
겨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걸음을 옮겨 가는 바닥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거리’
라는 그림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충무로하면,
6.25 전쟁이후 영화인들이 모여들어 활동하면서 알려
져 있지만,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공과 전혀 연관
이 없진 않다.
1545년 3월(음4.28)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난
이순신 장군은 청년시절 외가인 아산에서 성장
한 세계적인 명장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를 되새기기 위해 충무공의 영정을 모
신 사당이 있는 아산 현충사에는, 무과에 급제하
기 전부터 살던 고택이 있다.
현충사 내에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고택.
고택 입구에 탐방객들이 마시는 충무정忠武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가족 그 후손들이 쓰던 우물이다.
1960년대까지 400년 이상을 종손 대대로 살았던 집 뒤편에는
사당이 있는데, 매년 이순신이 전사한 날인 음력 11월 19일에 제
사를 지내고 있다.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떠받들고 견뎌온 현충사에서 나라를 건져
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
근데, 이 시대의 난세를 건져낼 자 그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