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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에 따른 전례] 매일 미사와 전례 용기의 변화(4-8세기)
매일 미사가 언제, 어떤 이유로 생겨났으며, 미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용기들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7세기부터 일반화된 매일 미사와 부속 제대
그리스도교는 본디 성찬례를 주일에만,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거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요일도 전례일이 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치프리아노(200?-258년)는 성찬례가 날마다 거행되었다는 증기를 제시한다. 1세기 뒤의 인물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노(354-430년)도 성찬례가 날마다 거행된 것에 대해 알기는 했지만 그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다니엘 콜람의 ‘400년 무렵 라틴 교회에서의 미사 횟수’(“The Frequency of the Mass in the Latin Church ca. 400”, Theological Studies, vol.45)라는 논문에 따르면, 6세기까지는 갈리아에서 미사가 날마다 거행되었다는 증거가 거의 없었으나 7세기에 이르면서 매일 미사는 서방에서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 부분적으로 이 현상은 주교들이 이끈 수도원 공동체 때문이라고 한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요구의 증가
매일 미사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외경인 ‘요한 행전’(170년 무렵) 같은 초기 문헌에 죽은 이를 위한 성찬례를 거행했다는 증거가 있고, 테르툴리아노(~225?년)는 북아프리카의 몬타누스주의자 공동체에서 죽은 이의 기일에 성찬례를 거행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리처드 러더포드는 「그리스도인의 죽음」(The Death of a Christian: The Order of Christian Funerals)에서, 중세의 서방 그리스도교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아우구스티노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한다. 특히 기도와 자선, 그리고 무엇보다 성찬례가 죽은 이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 주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대화편’에 나오는, 죽은 수도자인 유스투스를 위한 삼십일 동안의 연속 미사가 그를 연옥의 정화로부터 벗어나 천국에 가게 했다는 이야기(라틴 교부 총서, 77,421c)는 신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사에 대한 보속 규정과 미사 예물의 증가, 로마의 순회 미사에 대한 모방
당시 보속 목록에는 꽤 혹독한 것도 있었지만, ‘경감’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경우는 대개 금전적인 기부를 통해서였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미사 예물이 발전했는데, 이는 미사가 엄격한 보속을 경감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사에 대한 요구가 늘었으며 이에 따라 미사 예물도 증가했다.
또 다른 요인은 알프스 북쪽의 교회들이 전례력에 따라 축일이나 전례 시기에 적절한 명의 성당(로마 시대에 교황청이 명칭을 지정하고 순회 미사를 행한 성당, 현재 ‘본당’의 전신.)에서 미사를 드리는 로마의 순회 미사(missa stationis)를 모방하고자 성당 내부에 다수의 부속 제대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곧 성당 내부에 전례력에서 기념하는 신비나 성인에게 봉헌한 다수의 부속 제대를 설치하고 축일에 맞추어 미사를 드렸다.
결론적으로 다수의 부속 제대 설치의 시작은 매일 미사와 연결되어 수도원 공동체의 발전, 죽은 이를 위한 미사, 미사에 대한 보속 규정, 미사 예물의 증가 그리고 로마의 순회 미사에 대한 모방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성찬례용 빵의 변화
그리스도교가 생겨났을 때는 성찬례에서 사용된 빵도 일반적인 식사 때 먹던 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세기 무렵에는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성찬례 빵을 준비하는 전통이 생겼다. 당시의 빵틀을 통하여 원반 모양의 빵들이 후대의 제병(hostia)보다 크고 두꺼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9세기에 서방 교회에서는 성찬례 빵으로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결국에는 의무가 되었다.
중세가 시작할 무렵에, 평신도들은 스스로가 은혜를 받기는 했지만 죄가 더 크다고 성찰하여 신성한 성체를 받아 모시기에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성찬례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예물과 빵과 포도주를 교회에 봉헌하려고 가져오지도 않았다. 그에 따라 영성체하는 사람의 숫자는 급격히 줄고, 봉헌 행렬도 많은 지역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수도자와 성직자가 성찬례에 봉헌되는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게 되었고, 수도원과 다른 종교 기관에서는 매우 예식화된 절차에 따라 성찬례 빵을 준비했다.
현재 형태의 제병 등장과 성반의 변화
성찬례의 초월성이 강조되면서, 일반 식탁에서와는 전혀 다른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게 되었다. 유다교의 성전 제사에서 사용하고자 누룩 없는 빵을 준비했던 것이, 성찬례를 위한 특별한 빵을 준비하는 성서적 선례가 되었다. 또한 성체를 신자들의 손이 아니라 혀 위에 놓는 관습이 9세기에 일반화되면서 제병의 크기가 작아졌다.
성찬례에서 일반적인 빵을 사용하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빵 바구니와 큰 쟁반이 필요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큰 빵이 작은 제병으로 전환되면서 쟁반의 크기가 작아졌고, 참석한 모든 신자를 위한 빵을 놓던 성반이 사제를 위한 제병을 놓는 용도로 전환되었다. 반면에 신자들을 위한 제병은 성합에 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포도주와 성작의 변화
그리스도교의 포도주에 대한 규정은 제4차 오를레앙 공의회(541년)에서 “성스러운 성작으로 봉헌할 때, 어느 누구도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나온 것과 물을 섞은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은 음료를 바쳐서는 안 된다.”라는 언급에서 처음 발견된다. 또한 「그라티아누스 교령」(1140년 무렵)은 미사 때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했던 율리오 1세 교황(337-352년 재위)의 말을 인용한다.
이전의 시기에는 참석한 신자들이 성혈을 영할 수 있도록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큰 성작을 사용했다. 그러나 깊은 죄의 성찰과 성혈을 올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잔으로 성혈을 마시는 이들의 수가 줄고, 사적 미사가 점점 유행하면서 성작의 크기가 작아지고 손잡이는 사라졌다.
대신에 잔과 받침 사이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마디’가 생겼다. 축성된 제병을 만진 뒤에 엄지와 검지를 붙이는 사제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디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8세기에는 성혈을 흘리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특이한 것으로 성찬 튜브, 곧 일종의 빨대가 등장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각종 전례서의 출현(4-8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 이후에 그리스도교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4세기가 시작될 무렵 5천만 또는 6천만 명이 살았던 로마제국에서 최소 10%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그 전에 가정 중심의 교회에서는 불필요했던 계획과 조직을 요구하게 되었다. 나아가 수많은 교리 논쟁이 생기고 신학적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공적 전례는 새로운 수준의 정확성을 요구했다. 3세기까지의 즉흥성의 시대는 지나가고 어느 정도 형태를 이룬 전례 텍스트의 시대가 왔다. 여기서는 4~8세기에 형성된 전례서들의 유형을 알아본다.
안티포나리움과 성가집
로마에서 미사 고유문을 위한 성가 텍스트 또는 입당, 독서 사이, 봉헌 행렬, 그리고 성찬례 때 부르는 전례문을 담은 책들이 만들어졌다. ‘교송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사 안티포나리움(antiphonarium)은 입당과 성체 행렬을 하는 동안 시편의 구절과 구절 사이에서 불린 성가의 모음집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무일도에서 교송으로 하는 성가를 모은 ‘성무일도 교송집’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모음집이 8세기 초반에 로마 밖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도 있다.
성가집(cantorinus)은 독서와 독서 사이에 홀로 불렸던 성가(층계송과 연송, 알렐루야 독창부)를 담고, 때때로 봉헌을 위한 독창부도 실었다. 성가집의 프랑크 왕국식 명칭은 층계송(graduale)이다. 이 명칭은 그라두스(gradus, ‘계단’이라는 뜻)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이유는 독서와 독서 사이에 선창자가 층계 위에서 성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은 층계에서 부르지 않기에 층계송이 아닌 ‘화답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성경 독서에 관한 최초의 전례서 카피툴룸
전례 발전에서 구약성경, 서간, 복음서 낭독은 성찬례 거행의 전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본디 독서는 성경 전체를 선포하는 행위였을 수 있다. 5세기나 6세기 이전에는 성경 독서에 대한 분명한 지시 사항이 없었다. 성찬 기도의 즉흥성과 마찬가지로, 지역 주교의 주의 깊은 감독 아래 성경 독서의 선택과 독서의 개수에도 현저한 다양성을 보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전례용으로 50권의 필사본을 제작토록 했다. 본디 전례용 성경에는 페이지 여백에 기호나 표시가 있었다. 독서의 시작과 끝을 지시하려는 이유였는데, 장과 절로 나뉘지 않았던 당시 성경의 낭독 부분을 명시하는 데 비교적 효과적인 도구였다. 중세 후기가 되어서야 성경은 장과 절로 나뉘었다.
이러한 여백 표시 외에도, 낭독 표기를 위한 두 번째 도구는 카피툴룸(capitulum)이라고 불렸던 목록이었는데, 대개 날짜, 전례 축일, 전례 거행 장소, 읽어야 할 부분이 있는 성경의 책, 그리고 각 독서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을 적어 놓았다.
에릭 팔라초는 「초기 교회부터 13세기까지의 전례서의 역사」(A History of Liturgical Books from the Beginning to the Thirteenth Century, 1998)에서 카피툴룸의 세 가지 유형을 구분하였다. 첫째 카피툴룸 유형은 낭독해야 하는 서간들을 열거하는데, 이는 나중에 서간집(epistula)으로 발전한다. 둘째 카피툴룸 유형은 낭독해야 하는 복음 부분을 규정한다. 뒤에 복음집(evangelium)이 된다. 셋째 카피툴룸 유형은 앞선 두 유형을 합친 것으로, 기본적인 미사 독서집(lectionarium)의 기원이 된다. 현존하는 서간과 복음 카피툴룸은 6세기 것으로 아마도 5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경본의 기원인 미사 소책자와 성사집
최초의 전례서는 책이라기보다는, 손으로 작성한 팜플렛에 가까웠다. 처음에 이러한 ‘미사 소책자’(libelli missarum)는 특정한 교회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미사에 대한 본기도와 감사송을 포함했다. 때때로 몇 권의 이러한 소책자를 모아 모음집을 만들었고, 이러한 모음집들이 4세기 말 무렵에 그리스도교 특정 지역에 존재했다.
6세기 말에 그 책자들을 모아 만든 모음집은 ‘레오 성사집’이라고 불렸지만, 사실 대 레오 교황(440-461년 재임)의 작품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의 명의 본당(본당 사목구 성당의 전신) 사제들이 사용할 수 있게 교황 전례의 자료들을 차용하여 만든, 사제 전용 전례 양식문과 기도 모음집이었다. 현재는 이 필사본이 보관된 도시의 이름을 따서 ‘베로나의 리벨리 미사룸 모음집’이라 하고 보통은 ‘베로나 성사집’으로 부른다.
성사집(sacramentarium)은 집전자가 성찬례나 다른 전례 예식에서 필요로 하는 기도문을 담은 책이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최초의 성사집은 ‘옛 젤라시오 성사집’인데, 그 제목은 젤라시오 1세 교황(492-496년 재임)이 저자라는 실증할 수 없는 가설에 근거해서 붙여졌다. 이 작품은 본디 로마에서 628-715년 사이에 편찬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두 유형의 성사집이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교황 전례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의 본당 사제가 전례를 집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옛 젤라시오 성사집’은 후자 쪽에서 기원했지만, 교황 전례의 요소도 전체적으로 포함한다.
프랑크 왕국에 보내진 그레고리오 성사집
유명한 또 다른 성사집은 ‘그레고리오 성사집’이다. 많은 학자가 수용하는 견해에 따르면 수많은 필사본은 하나의 동일한 원천, 곧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년 재임)의 이름을 붙인 성사집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실은 호노리오 1세 교황(625-638년 재임)이 편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젤라시오 성사집’과 비교하여 세 가지 큰 특징으로 구별된다. 첫째,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각 권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둘째, 봉헌 기도(예물 기도) 앞에 단 하나의 기도문(본기도)만 있다. 셋째, ‘순회지’(statio), 곧 교황이 특정 전례일에 순회 미사를 거행하는 성당을 축일명 아래에 밝혀 놓았다.
‘하드리아노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은, 교황 하드리아노(772-795년 재임)가 샤를마뉴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에게 보낸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원본을 필사한 것들이다. 샤를마뉴는 프랑크 왕국의 실정에 맞게 적응시키고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프랑크 왕국에 적응된 ‘그레고리오 성사집의 보충판’이 만들어졌고, 이는 뒤에 ‘총미사경본’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은 앞에서 다룬 ‘옛 젤라시오 성사집’을 그 원천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성사집과 동일하게, 로마에서 알프스 산맥 이북으로 옮겨져 그 성사집을 받아들인 지역 교회의 실정에 맞추어 매우 광범위한 적응의 과정을 겪게 된 성사집들이다. 이렇게 젤라시오 성사집을 바탕으로 복잡한 혼합의 과정을 거친 성사집들을 ‘8세기의 젤라시오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전례 탐구 생활 (46) 영성체 준비
영성체 예식은 성찬 전례의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공동체가 한 장소에 모인 다음, 성경 봉독 때에 하느님의 계획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봉헌의 형태로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가운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을 이룹니다. 이제 영성체를 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로마 전례에서는 성체를 받아 모시기에 앞서 주님의 기도, 평화 예식, 빵을 쪼개는 예식과 성체와 성혈의 혼합 예식으로 영성체를 준비합니다.
- 먼저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치며 성찬의 빵이기도 한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거룩한 예물을 참으로 거룩한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정화”를 간청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1항 참조). 용서를 청하면서 우리는 또한 용서하는 법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우리는 합당하게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평화 예식 :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당신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를 주시며,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표현에 따르면, “평화의 식탁”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의 식탁에서 얻는 평화와 영혼의 구원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에페 2,13-17 참조).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청하면서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상과 지상의 피조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시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시려고 희생되셨습니다. 성찬례에 함께 모여 영성체하기 전에 서로 용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평화가 없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합니다.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이 인사는 의무는 아니며, 기회가 될 때 나눕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2항 참조).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에는, 자리를 떠나지 말고 소란스럽지 않게 각자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 빵 쪼갬 : 신자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동안 사제는 성반 위에서 축성된 빵을 쪼갭니다. 이 예식은, 우리는 비록 여럿이지만 쪼개진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받지 않으셨던 고통을 지금 여러분을 위하여 봉헌 중에 받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하시려고 기꺼이 쪼개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쪼개어지신다 하더라도, 갈라지시는 것은 아닙니다. 쪼개진 뒤에도 거룩한 빵의 각 조각은 완전한 그리스도이십니다.
- 성체와 성혈의 혼합 : 사제는 축성된 빵을 쪼갠 다음 한 조각을 떼어 성작에 넣습니다. 로마 전례에서 이것은 단순하지만 주님의 강생에서 부활까지 성령의 활동을 찬양하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행위입니다. 비잔틴 전례에서는 이 순간에 ‘제온’(Zeon)이라고 부르는 뜨거운 물을 성작에 부으면서 “성령의 충만함이여!”라고 말합니다.
- 개인 준비 : 영성체 후 더욱 긴 침묵에 앞서,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거나 잠시 침묵 속에 영성체를 준비하며 신자들의 영성체 준비를 돕습니다.
전례 탐구 생활 (45) 마침 영광송과 “아멘”
감사 기도를 다 바친 사제가 성체가 든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작을 들고 감사 기도를 끝마치는 영광송을 바치면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아멘은 앞에서 말한 내용이 옳음을 인정하는 히브리 말로, 전례에서 주로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인들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은 “아멘!”으로 하느님 찬양에 참여하였습니다(1역대 16,36). 에즈라가 예식 중에 율법서를 읽고 나서 주님을 찬미하는 말로 끝마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습니다(느헤 8,6). 성 바오로도 이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였고(로마 1,25; 갈라 1,5; 에페 3,21), 자신이 쓴 편지를 “아멘”으로 끝맺기도 하였습니다(1코린 16,24).
가장 눈에 띄는 예는 천상 전례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천사와 성인들의 무리가 외치는 “아멘”입니다. 묵시록에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면, 천사 같은 네 생물이 “아멘!” 하고 화답합니다(묵시 5,13-14). 다른 장면에서는 천사들이 하느님의 어좌 앞에 엎드려 이렇게 외칩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묵시 7,12; 19,4 참조).
천상의 천사와 성인들이 외치는 이 찬양이 지상에서 드리는 미사에서 사제의 목소리로 다시 울려 퍼집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 표현 구조는 성경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1,36). 바오로 사도는 또 “성령께서 이루어 주신 일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에페 4,3). 골고타 언덕에서 완전하게 순종하신 성자를 통하여, 성자와 함께, 성자 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으로 하나되어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드릴 때, 그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을 향해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런 기도를 하게 하신 분 또한 자기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모든 참된 지식은 하느님이셨다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것,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자기 옆에서 기도를 돕고 계시며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느님은 자신의 기도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이 사람이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실제로 움직이고 계심이 드러난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한데 모여 한목소리로 찬양할 때, 삼위일체 하느님은 얼마나 더 분명하게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겠습니까!
모든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제의 찬양에 우리는 천사들처럼 하느님 찬양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아멘!” 하고 외칩니다. 초기 로마 교회의 미사 때 울려 피지는 이 “아멘”을 두고 예로니모 성인은 “우렛소리처럼 하늘에 울려 퍼진다”고 말하였습니다. 구원 역사의 모든 영웅들이 삶 전체로 바친 하느님 찬양에 결합하여 우리도 힘차고 아름답게 “아멘”을 노래합시다.
전례 탐구 생활 (44) 감사 기도의 나머지 부분 : 봉헌과 전구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봉헌에 우리도 참여하는 것은 미사 안에서 누리게 되는 특권적 기회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세례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희생 제사로 이끄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받은 이는 날마다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 주례 사제입니다(로마 12,1 참조). 그러나 ‘신앙의 신비여’ 다음에 바치는 기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사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와 신자들의 생활이 찬미의 제사로 하나가 됩니다.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감사 기도 4양식)
제대 위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봉헌과 일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교회는 매우 일찍부터 이러한 믿음을 고백해 왔습니다. 로마의 지하 묘지에는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신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두 팔을 널리 펴들고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자신을 봉헌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전구를 드리는 교회를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고통과 기도, 우리의 노고와 사랑의 행위를 바칩니다. 우리가 이를 그리스도와 합치고 당신의 완전한 봉헌에 합치면 모든 것의 가치가 새로워집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느님 앞에 봉헌되면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 사랑이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루려는 우리의 온갖 미약한 노력에 와닿아 우리의 봉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희생과 하나가 되면 모든 것은 사랑으로 물들게 됩니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세상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는 우주 전체를 사랑으로 물들이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자의 자기 봉헌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살아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사랑으로 정화되지 않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한 기도가 됩니다.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영면에 든 이들을 위하여, 비록 그들이 죄를 지었음에도, 탄원을 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봉헌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도록 한다.”(성 치릴로, 「신비 교리 교육」)
감사 기도의 이 모든 기도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그리고 교계 직무상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협력자들인 주교와 신부에 의해 지속됩니다. 이러한 지속성은 특히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감사 기도 제2양식)라고 바치는 전구 기도로 표현됩니다. 성찬 거행에서 이 순간에 교회는 개별 교회 또는 지역 교회의 모든 구분에 앞서 교회의 보편성을 특별히 친밀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의 영광 안에 있는 이들, 특히 성모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성찬례 중에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을 기억하고 또 그분들과 일치하여, 특별히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 서서 그리스도의 봉헌과 전구에 결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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