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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아일체(物我一體)
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는 뜻으로, 바깥 사물과 나,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혼융일체된 상태를 말한다.
物 : 만물 물(牛/4)
我 : 나 아(戈/3)
一 : 한 일(一/0)
體 : 몸 체(骨/12)
이 성어는 만물과 내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체 대상과 그것을 마주한 주체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는 것, 주체와 객체의 분별심이 사라져 조화를 이룬 진실한 세계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 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장자(莊子)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思惟)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미추(美醜), 빈부(貧富), 화복(禍福)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하였다.
장주(莊周)가 도가사상(道家思想)의 본질을 깨달은 것은 어느 날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꾼 데서 비롯된다. 장자의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그 꿈에 대한 일화(逸話)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 나는 나비(蝶; 나비 접)가 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나비였었다. 아주 즐거울 뿐 마음에 안 맞는 것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라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나는 분명히 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장주가 나비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확실히 별개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이 사물의 변화인 까닭이다.
장주가 나비 꿈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서 이를 호접몽(胡蝶夢)이라 하는데, 이는 자신과 나비가 확실히 별개이긴 하지만 둘이 아닌 하나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심경임을 체득했기 때문인 것이다. 장주의 눈으로 보면 자신과 나비는 결국 하나이며 또한 생과 죽음도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둘이 없는 집(無二堂)’인 것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皮相的)인 구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이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는 것, 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비유해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도 한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는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동양 철학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고사성어의 깊은 의미를 탐구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물아일체의 의미와 철학적 배경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가 하나라는 개념을 표현합니다. 이는 개인의 자아가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불교와 도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필요성을 교훈으로 제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개념은 환경 윤리와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연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환경 보호 행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자아 인식과 내면의 평화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신을 우주의 일부로 인식함으로써, 개인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삶을 이해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는 단순한 철학적 개념을 넘어서서 현대 사회에서 구체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고사성어를 통해 우리는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하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재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물아일체의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고
몇 년 전 스페인의 화랑에서 그림 속 인물의 눈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이동을 할 때마다 그림 속의 탁자가 내 쪽으로 찌그러져서 신기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그림에 원근법을 적용한 때문이란다.
서양에서는 13세기 이후 원근법이 시각론에 기초하여 1417년 건축가 브루넬레스코가 투시 원근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하였고 저 유명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그 기법이 드러난다. 동양화에서는 동진 고개지의 '여사잠도'에서 원근 개념이 나타났으며, 유송의 화가 종병이 산수화론에서 원근법을 설명했다고 한다.
시기로는 동양의 원근법이 이른 편이나 대부분 동양화에서는 원근법을 수묵담채의 농담으로 나타내는데 머물렀다. 이는 동서양의 자연을 대하는 인식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하여 자연을 객체로 인식하고 정복 지향적으로 대하였으나 동양인은 자연을 전일적 조화론 적으로 인식하는 이른 바 인간과 자연을 일체시하여 자연 자체를 주인으로 여겼다. 때문에 서양에서 원근법이 더 발달하였다고 한다.
서양은 자연을 극복대상으로 여겼으므로 지구라트나 바벨탑 같은 건축물이 나오고, 동양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하므로 가급적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으뜸으로 여긴다. 자연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본다고 여겨서 우리의 옛 선인들은 풍광 좋은 곳에 대(臺)와 루(樓)나 정자를 지어 자연 속에 동화되고자 하였다. 가히 자연을 바라보는 단계에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수준으로의 상승이다.
이는 물아일체의 사고로도 연관되어 진다. 사전적 의미로 물아일체란 자연물과 자아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대상에 완전히 몰입된 경지를 나타낸다. 이로써 자연을 바라본다면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고 이에 따라 인간의 삶도 더욱 건강해 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개발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태와 미적 균형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가급적 거스르지 않으려는 논리이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자연에 동화된 인간이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자연의 이치를 순리로 여겼다.
인간관계로서 나와 너에 대한 생각도 자연관에 따라 지평이 넓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우리'라는 생각이 강하다. 어떤 철학자는 이러한 까닭을 한국인에게는 하늘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미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연유가 있으므로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오는 따스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넓디넓은 이 하늘마음이 한류로 작용하여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의 국력은 문화의 힘이 최상의 경지라 하는데 대장금, 싸이, 방탄소년단 등으로 한국 문화가 세계만방에 드높여졌다. 그 바탕에는 우리의 높은 정신문화가 깔려 있음을 새겨야 한다.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세도가들의 집이 동학교도들에게 공격을 당했어도 평소 지역주민들에게 인심을 베풀며, 이들의 궁기를 보살펴 나눔을 베풀었던 양반들은 오히려 동학교도들이 겁난을 당하지 않게 보호를 해 주었다. 일제의 잔인한 식민통치기간에도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 중에 한국 사람들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은 일본이 패망하게 되자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보호로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것도 물아일체의 사고로 배운 것이 아닐까. 정권만 바뀌면 권력 수반에 들었던 사람들이 줄지어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문화 아래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 연장을 해야만 신병이 안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심성 복지정책이 난무하게 되어 예전 로마를 몰락시켰던 '빵과 서커스의 정치'가 다시금 재현되는 것이다. 물아일체의 사고로 주변을 대하면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로 항상 자신을 성찰하면 안전하지 않을까.
물아일체의 세계관
인간과 자연의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요, 인간은 만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의 물아일체설은 일체의 감각과 사유 활동을 정지한 채 좌망(坐忘)하여, 사물의 변화에 임하면, 절대 평등의 경지에 있는 도(道)가 빈 마음속에 모이게 되는 상태이다.
이제는 만물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축복이라 보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연 파괴를 막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인간과 자연의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요, 인간은 만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사랑해야 한다는 ‘물아 일체’의 세계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인간의 삶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자연의 개발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하면서도 자연의 생태적·미적 균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 중심 세계관
서양에서는 인간을 일종의 동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이후 서양에서는 인간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며 생각하는 힘, 즉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왔다. (플라톤의 이데아식 사고)
서양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감각이나 감정의 차원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보았다. 또, 이성이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창조적으로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인간은 학문과 제도, 기술 등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성 중심적 인간관은 서구 인간관의 주류를 이루는 합리주의적 인간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합리주의적 인간관에 의하면, 사람은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때에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이라는 개념이 생성된 과정을 보면, 그 자체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을 이용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서구 인간관으로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이 있다.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을 신(神)의 모사(模寫)로 여기고, 자유 의지와 창조 능력을 가지며 문화를 창조하고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또, 인간을 자연보다 존엄하다고 생각하며,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할 권리가 있다.
합리주의(合理主義)
비합리적· 우연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태도로서, 합리론· 이성론· 이성주의라고도 한다. 실천의 기준으로서 이성적인 원리만을 구하는 생활 태도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 형이상학적으로는, 이성이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이 세상에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합리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식할 수 있는 이성(理性)을 지니고 있다. 이성은 분명하게 증명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그 대표적인 주창자로서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합리주의는 이른바 대륙의 합리론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감각적 경험을 소홀히 하는 대신 논리적 지식을 중시한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이러한 이성의 힘을 신뢰하는 사조라 볼 수 있다.
▶️ 物(물건 물)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며勿(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만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牛)를 지목하여 만물을 뜻한다. 勿(물)은 旗(기), 천자(天子)나 대장의 기는 아니고 보통 무사(武士)가 세우는 색이 섞여 있는 것, 여기에서는 색이 섞여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物(물)은 얼룩소, 나중에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옛 모양은 흙을 갈아 엎고 있는 쟁기의 모양과 牛(우; 소)로 이루어져 밭을 가는 소를 나타내었다. 나중에 모양이 닮은 勿(물)이란 자형(字形)을 쓰게 된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物자는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物자는 牛(소 우)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勿자는 무언가를 칼로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物자는 소를 도축하여 상품화시키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다양한 색이 뒤섞여있던 ‘얼룩소’를 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가축의 종류나 등급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제품’이나 ‘상품’, ‘만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物(물)은 (1)넓은 뜻으로는, 단순한 사고(思考)의 대상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건을 불문하고, 일반으로 어떠한 존재,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판단의 주어(主語)가 되는 일체의 것 (2)좁은 뜻으로는,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사물(事物), 시간(時間), 공간(空間) 가운데 있는 물체적, 물질적인 것 (3)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 물건. 민법 상,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電氣)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自然力). 사권(私權)의 객체(客體)가 될 수 있는 것 등의 뜻으로 ①물건(物件) ②만물(萬物) ③사물(事物) ④일, 사무(事務) ⑤재물(財物) ⑥종류(種類) ⑦색깔 ⑧기(旗) ⑨활 쏘는 자리 ⑩얼룩소 ⑪사람 ⑫보다 ⑬살피다, 변별하다 ⑭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건(件), 물건 품(品),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몸 체(體)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들고 다닐 만한 크기의 일정한 형태를 가진 대상을 물건(物件), 물건의 본바탕으로 재산이나 재물을 물질(物質), 물건 값을 물가(物價), 쓸 만하고 값 있는 물건을 물품(物品),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물건의 분량을 물량(物量),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물자(物資), 어떤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논란하는 상태를 물의(物議), 마음과 형체가 구별없이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물심일여(物心一如),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물외한인(物外閑人),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물유본말(物有本末),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물부충생(物腐蟲生),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면을 물심양면(物心兩面),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에 쓰인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일거양득(一擧兩得) 등에 쓰인다.
▶️ 體(몸 체)는 ❶형성문자로 軆(체)의 속자이다. 体(체), 躰(체), 軆(체), 骵(체)는 통자(通字)이고, 体(체)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骨(골; 뼈)部와 音을 나타내는 豊(풍)이 合하여 이루어졌다. 신에게 바치는 많은 물건을 수북이 담은 것을 나타내는 豊(풍; 체)과 사람의 몸(骨)과 관계가 있음의 뜻이 합(合)하여 몸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體자는 ‘몸’이나 ‘신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體자는 骨(뼈 골)자와 豊(풍성할 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豊자는 그릇에 곡식을 가득 담아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풍성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體자는 이렇게 ‘풍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豊자에 骨자를 결합한 것으로 뼈를 포함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신체’를 뜻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體자는 ‘신체’라는 뜻 외에도 ‘물질’이나 ‘물체’와 같은 완전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體(체)는 목, 두 손, 두 발 따위 여러 가지 갖추어진 몸 전체의 뜻으로 ①몸, 신체(身體) ②몸소, 친히 ③형상(形狀) ④근본(根本) ⑤격식(格式) ⑥물질(物質) ⑦물체(物體) ⑧서체(書體) ⑨체재(體裁) ⑩체험하다 ⑪체득하다 ⑫알아주다 ⑬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자는 물건 물(物),고기 육(肉),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낱낱이 다른 것을 통일한 조직을 체계(體系), 기존의 사회 질서를 체재(體制), 몸소 경험함을 체험(體驗), 몸에 느끼는 감각을 체감(體感), 몸의 성질을 체질(體質), 몸의 힘을 체력(體力), 몸의 무게를 체중(體重),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온도를 체온(體溫), 몸의 골격을 체격(體格), 어느 일을 감당할 만한 몸의 능력을 체능(體能), 몸의 냄새를 체취(體臭), 깊이 생각함을 체념(體念), 몸소 체험하여 얻음을 체득(體得),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실제의 물체로 늘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있는 사물의 근원을 이루는 것을 실체(實體),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결합한 두 사람 이상의 집단을 단체(團體), 사업이나 기업의 주체를 업체(業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매체(媒體), 구체적인 물체로서의 인간의 몸뚱이를 육체(肉體), 일정한 부피는 있으나 일정한 모양은 없이 유동하는 물질을 액체(液體),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분해되지 않고 몸 안에 그대로 쌓인 지방을 일컫는 말을 체지방(體脂肪), 몸의 힘이 더욱 강해짐을 일컫는 말을 체력증진(體力增進), 궁지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를 일컫는 말을 절체절명(絶體絶命), 나와 대상이 일체가 됨을 일컫는 말을 주객일체(主客一體), 바깥 사물과 나와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사람들의 행동이나 의지 따위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혼연일체(渾然一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일컫는 말을 신체발부(身體髮膚), 몸에 맞게 옷을 고친다는 뜻으로 일의 처한 형편에 따라 적합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양체재의(量體裁衣),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한마음 한몸이 됨을 이르는 말을 일심동체(一心同體)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