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mcDtN5Pzdw
예배영상
호 11:3, 고치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26-7-19
사모님이 타고 다니는 오래된 차가 시동이 안 걸린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고 그래도 안 걸리니, 긴급출동을 불러 밧데리 방전이 되었다고, 30분 이상 운전을 해야 밧데리 충전이 될 것이라고, 사모님이 처가까지 30분 이상을 운전하고 시동을 거니 또 시동이 안 걸립니다. 완전히 방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긴급하게 인터넷에서 재생밧데리를 주문해 놓고, 처가에서 사모님이 다시 긴급출동을 불러 사택까지 왔습니다. 금요일 많은 비가 내리다가 멈추는 늦은 시간에 밧데리 교체를 하는데, 비가 다시 내려서 비를 맞아 가면서 밧데리를 교체하니, 시동이 잘 걸립니다. 재생 밧데리도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고 밧데리가 완전 방전이 되었으니, 차를 고쳐야 합니다. 수리해야 합니다. 방법은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기계는 소모품이라 이렇게 교환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어떻습니까?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하나님은 고쳐야 합니다. 수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은 부품을 바꾸듯이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타락한 인간이 재생부품과 같이 쓸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들 합니다. 신앙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무 늦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교회가 어려워지고 힘겨워지니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는 말이 ‘한 번만 더 사랑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한 번만 더 사랑을 받아야 겠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기도입니까? 회사에서도 하나님 이야기를 하니까, 왜 하나님을 소환하게 만들었냐면서, 하나님이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냐고 하길래, 하나님이 당신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하나님의 이런 사랑이면 충분하지, 무슨 사랑을 더 받으려고 하냐고 , 암에 걸려도 그것을 고쳐달라고 애원하기보다 하나님이 전부를 주셨는데 이런 암이 무슨 대수인가 이렇게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어렸을 때에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에게 제사하고 분향했습니다.
호 11:1–2,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다 자란 아이에게 그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어떻게 양육하고 사랑했는지 말하게 되면, 그것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걸음마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야곱을 선택해서 그 아들 12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이렇게 야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 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종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불러내셨습니다. 10가지 기적과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하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워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가나안 땅에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상징되는 바울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세라 우상에게 기도 분향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자가 풍요와 다산-물질축복만 구하다 보니까, 십자가 예수, 창조주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너무나도 쉽게 그런 신과 우상을 찾아 예배하고 기도까지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르수록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경멸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가르침/안음’이란 두 단어로 다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말을 조련하는 조련가들은 말에게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당근은 어떤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의 개념이라면, 채찍은 벌점이나 처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말에게는 적당한 조련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이것을 사용해 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보상은 더 크게 요구하고 반면에 처벌을 기피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더 큰) 보상이 없으면 아예 무엇인가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살아가야 할 방법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가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다. 이것이 살길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가르쳐도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아시고 그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잘 나서 그래서 너무나 반갑고 좋아서 팔로 안으신 것이 아니라, 죄되고 못나고 허약하기 그지 없는 그런 나약한 인간을 수용과 돌봄이라는 끔찍한 사랑으로 그들을 팔로 안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가르치고, 또 팔로 안으셨습니까? 그들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고치지 않으면 죗값으로 둘째 사망, 지옥불구덩이로 떨어지니까, 고쳐서 천국백성 삼으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는 말은 그들이 고칠 마음이 없었다는 아주 서운하고 언짢은 표현입니다. 또 어떻게 그들을 가르치고 팔로 안으셨습니까? 그들을 팔로 안을 때에는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어 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짐승을 가르치고 길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코에 구멍을 뚫고 코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콧줄을 끌어 댕겨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길을 잘 갈 때에는 콧줄을 어떻게요? 채찍 삼아 때리면 더 잘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렇게 짐승 줄로 이끌지 않으시고, ‘사랑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도리어 죄인들의 죄의 멍에를 벗겨 내셨습니다. 그들 앞에 먹을 것, 곧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예배 때마다 먹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날마다 축복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자마다 영생의 축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로부터 물러난 자들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팔로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끝내는 하나님에게서 물러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불렀지만, 심지어 한 사람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곧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호 11: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포기할 만한데, 하나님은 그들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 당한 아드마나 스보임 백성같이 처리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도리어 징벌과 심판의 뜻을 돌이키사 하나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타오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호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