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懷古)의 도시 춘천⑬’...1
지난해 일제강점기 때 자료를 보려고 박민일 강원대 명예교수님 댁에 들렸다가 귀한 책 한권을 얻었다.
서울신문사가 1954년 9월에 발행한 빛바랜 잡지 신천지(新天地)였다. 1954년은 내가 태어난 해로 나보다 둬달 일찍 세상에 나온 셈이다.
이 책은 르포 형태의 ‘각 도시 풍토기(各都市風土記)’ 시리즈로 ‘회고(懷古)의 도시 춘천⑬’이라는 제목으로 6면에 걸쳐 기사를 실었다. 저자는 박원식(朴元植)이다.
강원도민일보는 2008년 8월 19일자 기사에서 “한국전쟁 이후에 춘천에 대한 최초의 잡지 르포 기사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옮겨 적어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카페 자유게시판에 올려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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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戰塵)의 거리
폭음을 요란이 울리면서 수송기 한 대가 비행장에 착륙하느라 공중을 선회한다. 뒤이어 정찰기인 듯한 비행기가 또 내리느라고 요란스런 폭음을 내면서 춘천시 상공을 선회한다.
저녁 일곱 시-
어슴프레 저물어가는 춘천, 멀리 서면 쪽 산허리로 낙일(落日)의 잔광(殘光)이 희미하다. 비행장이래야 바루 춘천 시내 그 전 춘천역 자리다. 좁은 이 거리에선 그래도 번화가라고 하던 중앙로 네거리에서 역전 대로를 서북으로 나가 한 한 1키로나 될까 이 비행장으로 해서 시내가 항시 시끄러울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요란을 피는 것은 이 비행기뿐이 아니다. 휴전중이라 군용 트럭의 이동이 부쩍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중앙로 네거리에 서 있노라면 트럭(사진: 춘천 소양강의 옛 모습),지프, 스리코오터어 등등 문자 그대로 연락부절이다. 그래서 이런 차들이 지날 때마다 포장이 완전치 못한 노면에서는 흙먼지를 그대로 담아다 붓는 것 같이 사시장철 토사의 황진(黃塵)이 자욱하다.
이 네거리는 서울서 들어오는 길이 이 중앙로를 거쳐 구 도청으로 올라가는 간선 도로와 원주, 강릉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이 이 네거리를 거쳐 38이북 양국, 화천 방면으로 통하는 간선 도로와 교차되는 지점으로 이 도로가 중부전선의 가장 중요한 군사 보급로(MSR)인 까닭에 민간 차량이 비교적 적게 통행하는 이곳이었지만 군용차량만 해도 길이 메일 정도다. 게다가 춘천 시내와 근교에는 비행장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국군과 미군 시설이 널려 있기 때문에 거리가 번잡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녁 일곱 시.
각 부대로 돌아가는 귀로의 군용차량이 갑자기 더 붐빈다. 하꼬방마다 남포불이 켜진다. 가정에도, 큰 거리 점포에도, 전등 시설이 복구되지 못한 이 거리에는 양초불이 아니면 남포불이다.
군도(軍都) 춘천에 밤이 온 것이다.
술집, 술집, 술집...... 하꼬방 주점 등잔불 밑에 각양 각색의 주객이 위집(蝟集)한다. 해가 높을 때부터 시작한 술꾼들은 벌써 얼근히 취해서 거리에서 비틀대고 주점에선 흥겨운 노래소리가 예서 제서 들린다.
차가 서로 비켜서기 힘들만한 춘천의 거리는 밤만 되면 그대로 술꾼의 거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기각만 되면 그 수조차 알 수 없는 미군 위안부들이 활보하기 시작하는 이색의 거리가 되고 만다.
재작년 수복전후는 일선이 가까운 순 군대 지역이라, 야간 통금시간도 없었지만, 그때부터 밤의 이 거리는 술과 그리고 위안부의 독무대가 되는 감(感)을 주어왔다.<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