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쪼들린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 룬더가드는 자신의 아내를 유괴하여 돈 많은 장인으로부터 몸값을 받아 내는 계획을 세운다. 제리는 자동차 수리공 샘을 통해 잡범 게어 그림스루드와 칼 쇼월터칼를 소개받는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본 제리는 못마땅해 한다. 게어는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고, 칼은 쉬지 않고 쓸데없는 말만 지껄인다.
이런 자들에게 아내를 납치해달라는 청부를 하려니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 다른 청부업자를 찾아보고 싶어도 선택지가 없다. 딱하게도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 청부업자로서의 전문성도 없고, 직업윤리도 없고, 팀워크까지 없는 게어와 칼은 평온한 브레이너드 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의뢰인인 제리의 아내와 장인까지 죽여 버린다. 스릴러 영화 파고(Fargo)의 이야기이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제리가 잘못된 청부업자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제리도 뭔가 억울할 듯하다. 제리에게 청부업자를 선택할 자유는 있었겠지만 '더 좋은 청부업자'라는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주어지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할 자유'란 대개 그렇게 다른 선택지가 없는 강요된 선택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시장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정부가 어떻게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지, 소비자의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지 설파한다. 그런데, 왠지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뭔가 장화 신고 가려운 발등 긁는 듯한 느낌이다.
프리드먼이 윤 대통령의 가려운 곳은 시원하게 긁어주었지만, 우리의 가려운 곳은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왠지 딴 세상 이야기 같다. 과연 정부가 시장을 간섭하고 통제한 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자유'를 제한받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상위 1% 혹은 10%에게나 해당하는 말인 듯하다.
상위 1%들이나 일류대 인기학과들을 늘어놓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직업도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대기업들을 줄 세워놓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선남선녀 중에서 자기 짝을 임금님의 간택처럼 선택할 수 있지, 보통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반지하방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폐지 줍는 노인들, 자살자들은 모두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일 뿐이지, 그것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일 리 없다. 만약 제리도 미국의 1%였다면 전직 FBI 요원이나 고도로 훈련받은 전직 특수부대 요원을 선택해서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했을 것이다. 제리나 우리네 보통사람들처럼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할 자유'란 공염불일 뿐이다.
뉴스마다 온갖 어지러운 정치뉴스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또 선거라는 '선택'할 시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선거 때마다 게어·칼과 마찬가지로 전문성도 없어 보이고, 직업윤리도 없어 보이며, 팀워크도 실종된 정치인들 중에서 아무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우리 처지도 자격미달의 그들에게 청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제리만큼이나 딱하다. 우리에겐 분명 우리의 대표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 말고 달리 선택지가 없다.
우리도 팔보채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은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밖에 없다고 한다. 짜장면과 짬뽕이 지겨워진 사람들을 위해 선거철만 되면 '짬짜면'이라는 묘한 메뉴 내놓듯이 '신당'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짬짜면이라는 것이 짜장면에 짬뽕 국물을 부었다는 건지, 짬뽕에 짜장을 얹었다는 건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지겨운 짜장면과 짬뽕이든, 짬짜면이든 그것들이 그나마 식품위생법에 충실하다면 괜찮겠는데, 가끔은 이거 혹시 부정식품은 아닌지 찝찝하기까지 하다.
2021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통해 배웠다는 자유경쟁 시장의 철학이 지금 이 시대에도 맞는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자 '부정식품'의 예를 들어 '선택할 자유'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프리드먼의 책을 보면 거기에 다 나와요… 먹으면 병 걸리고 죽는 것이면 몰라도 없는 사람은 그 아래라도, 그러니까 품질 기준선의 아래라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된다 이거야… 이거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서 그런 말을 본 기억은 없다. 프리드먼이 제아무리 자유지상주의자라도 그렇게까지 심한 말을 할 리는 없다. 아마도 대통령의 확대해석이거나 자의적 해석 같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말하는 '선택할 자유'를 해석한 우리 대통령의 생각이 우리나라 실정에 가장 정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 시점에서 모든 정치인을 '품질 기준선'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니, 품질 기준선 아래라도 뽑도록 만들어주는 게 국민의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주는 꼴일 수 있어서다. 불량 정치인 좀 뽑았다고 당장 병 걸리고 죽거나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 이런 현실을 괜찮다고 말해야 할까.(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