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상에서는 편가르기가 일상화되어 있었다. 적어도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직후부터이다. 자신의 집단을 더 이롭게 하고 더 강하게 하기 위해 다른 집단과의 차별화를 획책했고 그러면서 자연히 자신의 조직을 우선시하는 일종의 아집과 독선의 시스템이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성향이 유전적으로도 전이되어 지금의 인간들의 이런 양상을 낳게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있는 집단은 도태되게 마련이고 비정의적이고 불평등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살아 남았고 진화됐으며 지금의 호모사피언스가 형성됐다고 보는 사회 진화론적 학자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이런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상황들이 속출한다. 아니 모든 부분에서 이런 논리가 적용된다. 바로 극단화 양극화의 시스템이다. 다시말해 중립지역은 없다는 말이다.
러시아 우크라 전쟁은 요상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구촌에는 다양한 생각과 철학과 생존 논리가 존재한다. 별별 인간들이 다 존재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그래서 극단적인 철학과 행동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는 반면 그런 극단적 논리를 배척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강구하고 그런 추구야 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판단하는 부류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 중심 세상에서 이슬람이 태동하자 지구촌은 전쟁에 돌입한다. 같은 유일신이자 교리도 아주 다르지 않지만 기득권을 노리는 그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이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말이다. 십자군 전쟁이 그렇게 생긴 것 아닌가. 기독교도 그냥 평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기존 기독교를 배척하는 새로운 움직임 즉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가톨릭과 개신교사이의 30년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인간은 더 탐욕스러워졌다. 대항해시절을 거치면서 식민제국주의가 팽배해졌다. 식민주의속에 서로 얼마나 많은 땅을 획득하는가에 목숨을 걸었던 식민제국주의시절 서로의 이익이 부딪히면서 세계 1,2차대전은 발발했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인간은 식민주의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어진다. 프랑스 대혁명 등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풍미했을 때 그 부작용과 폐단에 반발하는 공산주의가 태동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결국 대 격돌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전쟁 아닌가. 그이후 베트남 전쟁 등 이런 저런 전쟁이 속출했다. 모두 편가르기 극단주의의 결과물들이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인가. 세계 패권국가들은 조금 그 광기를 누그러뜨렸다.하지만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중동지역의 갈등은 패권국가들을 중심으로 계속됐다. 걸프전쟁 등이 그렇다. 천조국 미국은 심심했는지 잠자는 중국을 깨웠고 중국은 잠에서 일어나자 마자 엄청난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다. 결국 또 잠을 깨운 미국과 잠에서 일어난 중국은 부딪히기 시작했고 지금 미중 무역 갈등 내지는 패권국가 1위를 놓고 대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먹는냐 먹히느냐를 놓고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주변국가들을 동맹국이라는 이름으로 편가르기를 무지막지하게 시도하고 있다. 신냉전시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한 나라를 두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하는가. 어떻게 한 나라의 상황을 특정 국가들에 맞춰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말이 되는가.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렇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무자비한 보복이 감행된다. 그러니 무서워서 그 어느쪽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패권주의에 소외된 듯한 러시아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낸다. 위대한 소련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망상을 가진 러시아 푸틴은 물론 이런 저런 이유는 있겠지만 우크라가 나토에 가입한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급하게 침공한다. 물론 이 대목도 이분법적으로 논할 수는 없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그런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쟁이 유럽지역의 지형도를 요상하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지역에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이 공존한다. 그 사이에는 이른바 중립지역이 있다.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이다. 세계적으로 너무 험한 전쟁을 겪어서 인지 그들 나라들은 이제 전쟁이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네편 내편이 아닌 그냥 중립을 지키고 싶었다. 세계대전이후 그런 성향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런 나라들이 이제 중립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 그런 현상의 단초는 러시아가 제공했다. 러시아가 상대적 약소국인 우크라를 침공하니 언제 자신들도 또 다시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지 모른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힌다. 말이 전쟁이지 그 전쟁은 모든 것은 빼앗아간다. 평화 사랑 인류애 평등 배려 이런 말들을 너무도 허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전쟁 아닌가. 이제 지구상에 중립지역은 없어진다는 의미와 통한다. 여기냐 저기냐만 있을 뿐이다.
오로지 힘과 힘이 정의인 전쟁터에만 극단적 그리고 양극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멀쩡하게 평온한 것 보이는 곳에서도 극단화와 양극화가 상존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제 극단화를 강요하고 있다. 특정 사안을 놓고도 양극화 극단화를 요구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도무지 중립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적 논리가 온 세계 그리고 온 나라를 사로잡고 있다. 적의 적은 동지다라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이제 당당하게 세상을 주름잡고 있다. 대규모 선거를 앞두면서 그런 논리가 더욱 가열된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내년 1월 총통선거를 앞둔 대만이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에 모두 해당되는 상황이다.
세상에 어찌 한쪽으로만 시각이 쏠리겠는가. 외눈박이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왜 눈과 귀 그리고 콧구멍이 두개인지 아는가. 이쪽 저쪽의 상황을 두루 살피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립적 시각은 극우 극좌에 의해 공격당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사물을 판단하는 그 관점조차 매도당하게 마련이다. 중립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중용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그 중용이 이렇게 매도당한 적은 인류 태동이래 그 유래가 없다. 그만큼 극단화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구에도 열대 온대 냉대라는 엄연한 구분이 지어진다. 온대라는 중립지역이 있어 지구가 극단화 양극화로 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온대가 사라진다. 열대화하든지 냉대화하든지 말이다. 중립지역이 사라진다는 것은 엄청난 파국과 난국의 조짐이다. 극단화와 양극화가 일으킬 대 분란의 해결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재자 역할이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끝과 끝의 대립은 결국 파국을 낳고 만다. 파국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한 국가의 패망을 뜻한다. 뭔가 해결책을 강구해야할 중립지역이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역사나 인류의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도 굉장한 비극이다. 중립지역의 회복은 지구촌이 시급히 아니 너무도 성급하게 이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임이 틀림없다.
2023년 7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