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
-正牧스님의 저서-오룡골에는 여자가 없다-38쪽~41쪽-11회
작성자: 甘露華
작성시간: 17.03.02
무량이의 몸짓은 단순한 개수작이 아니었다.
정토원 외동딸 무량이가 10월 23일 오후 5시에 출산을 시작하여무사히 순산하였습니다. 출산 예정일을 알고 어제밤부터 도량에 밤새불을 밝히고 산모 대접을 잘했습니다. 오전 내내 누워있는 것을 보니밤쯤에는 출산할 것 같았습니다. 진돌이와 아리도 그 사실을 다 알고는 온종일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묘한 일이지요........자기들끼리는
이심전심으로 다 안다니까요.
오후에 무량이는 내가 강의시간이 다가와 떠나려 하자 바지를 잡고부비며 "스님! 힘들어요....." 하며 애원하듯 붙들었지만 도리 없이잠시 떠나야 했습니다.
내가 앉던 좌복 하나 깔아주면서 쓰다듬어주고, 차를 타고 가는데 왠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 애들과 인연이 되어 살고 있으면서 생명의 신비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말이지만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일체가 아미타불 화신이다"
이보다 더 깊고 진실한 진리는 없을 겁니다.
자연을 포함한 일체의 생명,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삶" 이보다 더 진실한 인간애, 더 깊은 수행은 없을 겁 니다.
강의를 마치고 밤 11시에 돌아오니 계곡은 갓난이들 울음소리로 진동을 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무량이가 뛰어나와 "스님! 어디갔다 왔어! 나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흑 흑......" "그래! 장하다 장해......" 하며 쓰다듬어주고, 곧장 미리 준비해둔 미역국을 끓여서 식힌 후 대접했더니 실컷 마시고 안도의 한숨을 쉰 다음 애들 곁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정이 넘었으나 잠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시원한 가을 기운 위에
떠있는 열나흘 새벽 달빛이 유난히 밝고 맑았습니다. 마당을 거닐다가, 문득 오늘 강의시간 중 휴식 공간에 어느 거사님이 묻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악한 일의 상대적 개념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면 결국 선악에 대한분별심에서 일으킨 선행이므로 참수행에 들어가는 데는 아직 이른 상태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데, 그러면 선악 남녀 등 온갖 차별 혹은 분별심을 버리고 행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라는 요지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대답은 미루고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지금 생각합니다.
자, 여러분! 같이 생각해봅시다. 혹자는 "일체가 공한 것을 깨달아그 자리에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연기법을
깨달아 그 지혜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것이
쉬울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일체가 공한 것을 깨닫고 번뇌가 완전히 소멸되어 공한 마음이 되기도 어렵지만, 공空 혹은 연기법緣起法이라는 철학적 논리를 깨달아 자비심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학가는논리적 사유에만 그치고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혹평을 하자면, 철학적
명제의 사유에만 빠지면 '말꾼'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불교의 난해한 논리들로 인하여 불교도들도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오류를 염려하여 전하는 법이 정토사상과 염불수행의 깊은 뜻입니다.
이것도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고, 염불의 정맥을 전하는 조사들의 뜻에서
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경계가 일심인 이 세계의 바탕은 광명의 바다이고,
이곳에서
생멸하는 일체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라 믿고, 그렇게 관찰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깨닫거나 못 깨닫거나 깨달음에 관계없이 믿음으로정진하면 스스로 자신과 세계가 변화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참다운 복덕과 지혜가 증장합니다. 여기에서 참으로 멋있는
불자가 탄생합니다.
이러한 수행이 깊어져서 뭇 생명의 마음과 삶을깊이 헤아릴 줄 알면 이것이 곧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얄팍한 지식이아닙니다.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선악 등 분별심을 잊고진실한 마음을 일으키는 행동하는 지혜입니다.
다 접어두고 오늘의 무량이 사건을 비유하여 예를 들어봅니다. 무량이는 출산일이 다가오자 고민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집안을 청소하고때로는 먼 산을 바라보며 무언가 상념에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내가깨끗한 수건 몇 장을 깔아 주었는데 번번이 밖으로 들어냈습니다.
영문을 몰라 가만히 관찰해보니, 비누 냄새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내가 앉던 좌복을 넣어주었더니 냄새를 맡아보다가
오케이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와 안기며 좋아했습니다.
사람냄새, 따뜻한 정을 느낀 것입니다. 온종일 누워서 진통을 느끼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출산 후 먹을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때문에 잠시 떠나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밤에 돌아와서는
약간은 피 묻은 몸을 실컷 안아주었습니다.
내가 좌복을 깔아주고, 음식을 준비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 염불하고, 돌아와 안아주는 그동안 나는 아무런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염불인의 믿음을 사무치게 인식하고 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무슨 축생이 있고, 선악의 분별이 있고, 공덕의 과보를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일들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글로쓰다가 보니 돌이켜 정리를 해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나의 삶에서 체험한 것으로는 진돌이, 아리, 무량이의 모든 몸짓들은 단순한 축생의개수작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늘 무량이의 애틋하고 진실한 몸짓들이 단순한 개수작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습니다.
염불인 자매형제 여러분!
축생이라 부르는 저들도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살피면 정을 느끼고 은혜를 알고 보은할 줄 아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체를 아미타불 화신으로 관찰하고, 모든 인연의 은혜에감사하고
능력껏 보은하는 곳에 복덕과 지혜가 증장합니다.
이 수행이깊어지면 그 알쏭달쏭한, 그 말 같지도 않은 분별 없는 마음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