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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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지금까지 출판된 책 중 가장 많이 팔리고 번역된 책 중 하나인
‘어린 왕자’(1943)는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프랑스의 귀족이자 작가, 군사 비행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이 이야기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다양한 행성을 방문하는
어린 왕자를 따라간다. 동화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는 외로움, 우정, 사랑, 상실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사진을 통해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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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실험을 좋아하고 그의 집과 가족에 대한
시를 쓰는 창의적인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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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에 매료된 프랑스
1900년에서 1940년 사이에, 프랑스는 비행에 매료되었다.
인기에 휩쓸린 생텍쥐페리는 12살에 첫 비행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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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실감
생텍쥐페리는 그의 젊은 시절에
두 번의 상실로 인해 크게 성장했다.
첫 번째는 1904년 그의 아버지 장의 죽음이었고,
1917년 그와 매우 친했던 그의 남동생
프랑수아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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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팬
1941년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생텍쥐페리는
그가 사랑한 첫 번째 책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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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추구하다.
해군 시험에 떨어지고 건축 학교를 중퇴한 후,
생텍쥐페리는 조종사가 되는 그의 꿈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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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직업
그는 결국 북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에어로포스테일과 항공 우편을 배달하는 직업을 구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락이 잦았고 이것을 계기로 그는 프랑스 비행사
앙리 기욤, 장 메르모즈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항상 서로를 구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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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대한 사랑
오늘날 모로코의 타르파야에 있는
그의 판잣집에 대해 회상하면서
생텍쥐페리는 "저는 사막에 살 때보다 제 집을
더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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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들
아에로포스테일에 있는 동안, 생텍쥐페리는
1926년에 그의 첫 저서인 '비행사'를 발표했다.
그리고 1929년에 그는 조종사로서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장편 소설 '남방 우편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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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획기적인 소설
1931년에 출판된 '야간 비행'은 용감한 조종사들의
참혹한 모험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고,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생텍쥐페리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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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1931년 생텍쥐페리는 살바도르계 프랑스 작가이자
예술가인 콘수엘로 카릴료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혼외정사를 일으키며 떠들썩한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944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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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복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생텍쥐페리는
프랑스가 독일에 넘어갈 때까지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뉴욕으로 이주했고, 뉴욕에서 2년 넘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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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배우기를 거부하다.
생텍쥐페리는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판사와 친구들에게 많이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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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은 열망
이 기간에 생텍쥐페리는 우울해졌고
전쟁에 다시 참여하고 싶어했다.
그는 심지어 "극장에서 전쟁 영화를
보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어린 왕자'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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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생텍쥐페리는 밤 11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날이 밝을 때까지 작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한밤중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초고를 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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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영감을 얻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삶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것은 1935년 리비아 사막에서 당한 추락 사고와
그의 아내와의 파란만장한 관계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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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삽화
생텍쥐페리는 이 책의 삽화를 직접 그리고
출판사에 아주 구체적인 요구를 했다.
그 요구는 그가 삽화의 위치, 색깔, 사이즈를
결정한다는 것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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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생텍쥐페리는 20대 때부터
종이 조각에 똑같은 작은 형상을 그려왔다.
생텍쥐페리는 "어느 날 백지 한 장을 내려다보았는데
한 인물이 나를 돌아보며
'나는 어린 왕자다'라고 말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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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판
'어린 왕자'는 1943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되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에 이 책은
프랑스에서만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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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의 귀환
1943년 '어린 왕자'가 처음 출판되었던 달에
생텍쥐페리는 전쟁에 다시 참여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정확한 날짜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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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어린 왕자'가 처음 출판되었을 때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에 2주 밖에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43년 가을까지, 어린 왕자는
영어로 30,000부, 프랑스어로 7,000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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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본
생텍쥐페리는 첫 785권의 인쇄본에 서명했고,
525권은 영문판이었으며, 260권은 프랑스어판이었다.
2013년에 이 서명본의 가치는
미화 25,000달러에서 35,000달러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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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죽음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10번째 정찰 임무로 코르시카 섬을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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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흔적
1998년 한 어부가 지중해에서 생텍쥐페리의 이름과
뉴욕 출판사의 주소가 적힌 팔찌를 발견했다.
그가 타고 있던 비행기의 잔해가 나중에 발견되었지만,
그의 사체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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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망 원인
2008년 호르스트 리페르트라는 이름의 전 독일 공군 조종사는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시켰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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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여우
여우의 유명한 대사인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텍쥐페리가 15번이나 수정하고 다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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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인 성공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출판되었을 때, 이것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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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널리 번역된 책
'어린 왕자'는 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에서 가장 널리 번역된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번역된 책에는 10개의 다른 영어 번역본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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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술의 형태로 각색
1974년 스탠리 도넨의 영화와
2015년 마크 오스본의 애니메이션 등
여러 영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첫 번째 영화 각색은 1967년 리투아니아
영화 제작자 아뤼나스 제브뤼나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린 왕자는 또한 뮤지컬, 오페라, 발레로도 각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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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생텍쥐페리 공항
그의 고향인 리옹에 있는 공항은 그를 기리기 위해
리옹 생택쥐페리 공항이라고 불린다.
출처: (CBC) (Mental Fl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