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어머니는 화초를 무척 좋아하셨다. 화초는 정성을 들이는 만큼 잘 자랄 뿐 아니라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수많은 꽃 중에서 고르고 골라, 내게 야생란 한 뿌리를 주셨다. 보기에는 볼품없어도 꽃이 피면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면서….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난초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문헌이나 그림을 통해 난초의 아름다움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일년 뒤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자, 난초에게 새삼스레 눈길이 갔다. 일년을 키웠어도 풀 같은 줄기만 자라나고 시들기를 수없이 반복한 난초. 그 꽃은 어떻게 생겼고 언제쯤이면 꽃이 피어날까? 기계적으로 물을 주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날부터 아이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물을 주었다.
일년이 더 지나자 꽃대가 올라서더니 마침내 꽃이 피었다. 단 한 송이였지만 연한 자주색을 띤 그 고고한 아름다움이란…. 어머니의 체취 또한 느껴지는 것 같아 마냥 감격해했고,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한참을 공들인 후에 맛보는 기쁨이란…. 꽃은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었으나 그 감흥과 흥취는 몇 달을 갔다. 다음해에도 꽃봉오리가 올라섰고 다시 명상의 행복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 봄 작은 화분을 큰 화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만 난의 뿌리를 1/3이나 자르고 말았다. 양파처럼 커진 뿌리를 미처 생각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실수였다. 다행히 난은 살아났으나 일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꽃대가 올라서지 않아 무척 안타깝다. 자꾸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들고….
어제 금팔찌를 만들었다. 장신구는 물론 몸에 걸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에 금팔찌를 한 것은 어머니의 체취가 못내 그리웠기 때문이다. 생전에 어머니가 목에 걸고 다니시던 목걸이를 녹여 팔찌로 만들었다. 금은방에서는 목걸이 무게가 6돈인데, 남자팔찌는 10돈은 돼야 한다면서 금 추가를 권유했지만, 어머니를 온전히 느끼고싶어 그냥 해달라 했다. 때문에 팔찌는 얇게 만들어졌으나 그 두께나 모양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난초를 통해 어머니의 향기를 느낀 것처럼, 금팔찌를 통해 어머니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지니…….
난초를 키우고, 금팔찌를 새로 하면서 배운 것 -
체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쉽사리 아는 체하지 말고,
똑같은 겉모습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사연은 제각기 다름을 유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