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이한림♣ <“야, 이런 데선 각하라고 하지 마” 이의재(언론인)>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1961년의 5.16 군사혁명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혁명 후 10여년이 지날 때까지 오락가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혁명주체세력의
일원이었다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자주 말을 바꾼 탓을 무시할 수 없다.
혁명 직후 제1군사령관이었던 이 한림
장군에 대한 평가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만주에 있던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한 이한림 장군은 성적이 우수해서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이때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함께 일본육사로
전학하게 돼서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해졌다.
해방 후 박정희는 잠시 고향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서울 출장 중 이 장군을 만나 육사 제2기로 입학하면서
다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켰을 때
이 한림 장군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 장군이 거절해서 혁명군에 의해 구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장군은 혁명군의 지원 요청을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때 매그루더 주한미군 사령관이 제1군 병력을
출동시켜서 혁명군을 진압하라고 했는데
이 장군이 이지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한림 장군이 제1군 병력을
서울 쪽으로 출동시키지 않은 것은
혁명군의 지원요청을 거절한 게 아니라
▲박 대통령과 이한림 장관(왼쪽). 1970년 7월 7일
박 대통령 내외와 이한림 건설부장관이 대전인터체인지에서
경부고속도로 준공테이프를 끊었다. ⓒ e영상역사관
오히려 혁명을 저지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일부 과격한 혁명군 헌병장교들이 잘못 알고
이 장군을 구속까지 시켰다는 얘기다.
뒤늦게 전후사정을 확인한 박 전 대통령은
이 장군을 풀어주고 건설부장관으로 기용했다고 한다.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박 전 대통령과 이장군의 우정이 두터웠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박 대통령이
이 장관을 대동하고 헬리콥터로 현장을 시찰했다.
그때 헬리콥터에는 조종사와 부조종사, 박 대통령과
경호원 그리고 이 장관과 건설부 도로국장 외에
단 한 사람만 더 타게 돼있었다.
그 자리에 취재기자를 대표해서 서울신문 기자가 탑승했다.
나는 이른바 ‘풀 기자’로 헬리콥터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다른 기자들에게 빠짐없이 전해주어야 했다.
헬리콥터가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 상공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장관이 “각하, 이곳은 지금…”이라고 상황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이 이 장관을 툭 치면서
“야, 이런 데서는 각하라고 안 해도 돼”라고 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글, 펌, 編: 동해바다)
첫댓글 우정,신뢰 아주 중요합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적이면서 대한민국 초석 다진분이 박정희대통령각하님입니다
그분의 따님또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좋은 글 감동있게 봅니다
공감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원조각하님 대한민국에 영원한 대통령님이십니다..
정답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국부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