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을 말하다]
⑧ 한미연합사·유엔사·주한미군사 작전참모부장 담당
윤예지 통역관
입력 2023. 04. 28 17:12
업데이트 2023. 04.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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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와 연결…정확한 전달 위한 '메신저'이자
동맹 핵심은 상생…제대로 소통 위한 '확성기'이죠"
인생 바꾼 신의 한 ‘수’
전문사관 지원해 육군 통역장교로 임관
중위 전역 후 통역관 채용에 당당히 합격
언어 실력 기본…공부가 ‘답’
뼈 깎는 노력 필요…매일 군사용어 공부
‘장군처럼 얘기하라’ 때론 연기도 필요해
결국 만능 열쇠는 ‘정’
통역관·보좌관·공식 사진가 역할 수행
“견고한 동맹 관계에 일조…양국 가교될 것”
윤예지 통역관이 캠프 험프리스 사무실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통역은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해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군사 분야 통역은 국가안보와 연결돼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윤예지 통역관은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는 ‘메신저’다. 그는 로니 히바드(미 육군소장) 한미연합군사령부·유엔군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 작전참모부장을 담당하는 통역관이다. 작참부장이 참여하는 모든 회의의 서신을 번역하고, 한미동맹 관련 행사에 동석해 통역 업무를 수행한다. 양국 관계를 원활하고 돈독히 이어주는 ‘숨겨진 영웅’을 소개한다. 글=조수연/사진=조종원 기자
다양한 경험 영광…수많은 계급장 ‘별’ 보며 놀라기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사무실에서 만난 윤 통역관은 순박한 웃음을 섞어가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2017년 이화여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윤 통역관은 전문사관에 지원해 육군 통역장교로 임관했다. 전문사관은 군(軍)이 필요로 하는 전문 분야에 활용할 목적으로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인재를 선발해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다.
여대생의 장교 임관이라니, 왠지 군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기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제가 여대를 나와서 그런지 통역장교로 임관한다고 하자 친구들이 엄청 신기해했죠. 가족 중에 군인이 있다거나 그런 특별한 동기는 없습니다. 군인의 ‘각 잡힌’ 모습이 멋있어 보여 통역장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윤 통역관. 그는 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 군 문화는 융통성이 없고,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깼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군 문화가 불합리할 것이라는 ‘색안경’ 낀 목소리도 있는데요. 막상 군에 들어와서 보니까 민간보다 유연한 문화가 더 많더라고요. 이는 군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무심코 시작한 군생활이 제 인생을 바꾼 셈이죠.”
윤 통역관은 합동참모본부에서 통역장교로 3년 복무 후 중위로 전역했고,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작전참모부장 통역관 채용공고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제 나이대 뵙기 어려운 분들과 동석하고, 여러 분야를 경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통역부스에서 회의장을 바라보면 앞에 앉아계신 분들의 ‘별’이 수십 개나 돼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후배 통역사들에게 (통역장교를)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루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윤 통역관이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을 찍고 있다.
25살의 평범한 대학생은 어떻게 한미동맹을 잇는 통역관이 될 수 있었을까? 윤 통역관은 군사 통역관이 되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군사 통역을 시작하며 처음 느낀 것은 ‘살벌함’이었다.
군사 통역관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실력이었다. 통역관으로 살아남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군사 용어를 공부하고, 작전참모부장이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 수십 번 확인하며 회의를 준비했다.
“미군은 약어를 많이 써서 통역 난도가 더 높아요. 게다가 육·해·공군이 사용하는 약어가 모두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미사일의 비행거리·고도·속도를 통역할 때도 숫자·위치·단위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죠. 통역엔 어떤 경지에 오른다는 개념이 없어요. 공부만이 답이었습니다.”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군사 통역. 이 때문에 군사 통역 분야에는 ‘커렉션(Correction)’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어떤 통역관이 내용을 잘못 통역했다면 다른 통역관이 즉시 정정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통역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지만 윤 통역관은 공부가 부족했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는다고.
“군사 통역 분야는 민간 통역엔 없는 커렉션이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지적받는 일이 유쾌하지 않지만,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다음번에는 커렉션 나오지 않도록 더 철저히 준비해야지’라고 다짐합니다.”
동맹 강화 위한 다리 역할에 최선
한미 장병의 대화를 통역하고 있는 윤예지(가운데) 통역관.
통역관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은 기본이다. 언어에 능한 만큼 때론 연기도 잘해야 한다.
통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말로 들릴 것이다. 실제로 연기를 잘하는 것은 통역관에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통역장교 교육받을 때 들었던 인상적인 말 중 하나가 ‘장군처럼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통역관이 중언부언 전달하면 안 들어버리는 사람이 무조건 생기거든요. 장군이 됐다고 상상하면서 강조할 부분을 확실히 힘줘 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제 별명이 ‘확성기’예요.(웃음)”
특유의 또랑또랑하고 단호한 어조로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한미 관계의 만능열쇠는 ‘정(情)’이었다. 딱딱할 것만 같은 군사분야 업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국 관계는 회의장 밖에서도 이뤄지거든요. 제 역할은 작전참모부장님의 통역관 겸 보좌관 겸 공식 사진가입니다. 친교 행사에서 오가는 대화를 더 기분 좋게 다듬어서 전달해야 하죠. 행사에 동석한 부인들의 자녀와 은퇴 후 계획 같은 ‘수다’를 말랑말랑하게 살리는 것도 중요하고요. 행사가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도 예쁘게 찍어드립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 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그만큼 자신의 어깨도 무겁다는 윤 통역관. 그는 “동맹은 상생하는 존재”라며 견고한 관계에 일조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전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어온 한미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동맹으로 더욱 성장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다리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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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메인 | 국방일보 (dema.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