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피에토의 양식은 로마식으로는 도릭 오더가 되는 명료한 터스칸 오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원형의 평면이 18개의 열주랑과 기단부의 계단, 다시 작은 열주랑과 중정의 조각적인 벽면으로 계속 반복되어 나감으로써 언뜻보면 필요 이상으로 꾸민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템피에토 전체가 이루어내는 조화미는 당대의 건축미의 극치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건축물의 중요성은 16세기 팔라디오에 의해 제대로 이해되었습니다. 팔라디오는 브라만테를 예술적으로 이어받은 건축가로 그가 선정한 고대의 신전들 가운데 16세기의 템피에토를 포함시켰는데,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브라만테는 고대로부터 이날까지 잊혀져 왔던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축에 새로이 빛을 비춘 최초의 사람이다. "이말은 템피에토가 16세기에 재현된 고대신전으로서 그 조각적인 아름다움이 건축으로 승화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템피에토의 역사적 의의와 예술적 가치
템피에토는 산 피에트로 몬트리오 성당안에 위치한 성소로서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한 곳입니다. 이 성당의 내부에 있는 라이몬디 예배당은 베르니니가 설계했고, 15세기 말에 이르러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왕의 뜻에 따라 브라만테가 설계한 템피에토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템피에토의 조각풍은 모두 베르니니 계열입니다.
템피에토는 1502∼1503 년에 몬토리오의 성 피에트로(베드로) 성당안에 지어진 성소로서 르네상스와 그
이후의 시대에 있어 고전적인 돔 건축물의 전형적인 예제가 되었습니다. 템피에토는 예수탄생이전, 고대
신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신전이란 의미의 '템피에토'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의 설계목적은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외관은 견고하고 조
각적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그리이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건축작품이라기 보다는 조각작품에 가까우
며, 내부 공간은 성소보전의 역할 외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템피에토의 디자인은 여러 가지 고대로부터의 건축언어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 예가 페리스타일로
구성된 티볼리의 시빌신전과 로마의 판테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템피에토는 본래 원형의 열주랑으로 된 중정에 세워질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장식품이 없는 이 건물은
건축물 자체를 조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또한 전성기 르네상스의 회화와 조각이 그러하듯이 이 건물도 살아있는 듯한 입체적 느낌을 줍니다.
브라만테( 1444 ∼1514 )
브라만테는 이태리 우르비노에서 태어나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 의해 화가로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1481년 밀라노에 갔으며, 여기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만났으며 그가 1499년 프랑스로 갈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밀라노에서 브라만테는 그림을 그만두고 건축을 시작한다. ,
그는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 베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하에서 중앙집중식 평면교회라는 전성기 르네상스시대의 형태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그에게 영향을 준 3명은 모두 고전적 고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들이다.
브라만테는 밀라노에서 많은 예술활동을 한 뒤, 1499년 롬바르디아 왕국의 수도를 떠나 로마로 갔는데,
여기서 그는 곧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총애하는 건축가가 되었다. 브라만테는 교황과 같은 나이였으며,
저녁에는 교황에게 단테를 읽어주는 등 매우 친밀한 교우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브라만테의 추종자 중 중요한 한 사람은 안토니오 다 상갈로( 1483 ∼ 1546 )이다. 건축가 집안에서 태
어난 상가로는 친척들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1503년에 로마에 가서 브라만테의 제도사겸 조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