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일기예보가 불안하여 걱정이 많았으나 다행히도 날씨가 쾌청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지리산둘레길 4구간을 걸었다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6개의 산중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는 길이다.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엄천강을 따라 걷는 옛길과 임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가 후텁지근하여 땀이 많이 흘렀고, 산길과 아스팔트길이 너무 지루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다
금계마을 – 의중마을(0.7km) – 벽송사(2.1km) – 모전마을(용유담)(2.8km) – 세동마을(2.3km) – 운서마을(3.3km) –
구시락재(0.7km) – 동강마을(0.8km)....총 12.7km
우리는 지난 달에 트레킹의 종점이었던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 주차장에서 내렸다
폐교된 금계초등학교 운동장에 매점과 식당, 함양군 안내센터가 있다
이곳은 숲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탐방객들에게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설치되었다
함양안내센터가 있는 금계마을에서 우리의 현수막을 펼쳐들고 행복한 출발을 다짐하였다
금계(金鷄)마을로 개명되기 전 마을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엄천강 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촌사람들의 정을 징검징검 날랐을 노디가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4구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금계마을에서 임천을 가로지르는 의탄교를 지나야 한다.
의탄교 아래를 흐르는 물줄기를 여기서는 임천으로 부르지만 용유담을 지나면 엄천으로 바뀐다
폭이 넓어서 하천이나 계곡보다는 강에 가까워 임천강, 엄천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신계곡, 백무동, 칠선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으로 모여 산청의 경호강을 이룬 뒤에 다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의탄교를 지나 의중마을 어귀에는 500년의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가 쉬어가길 권한다.
그러나 우리는 쉬어가기를 거부하고 마을 위로 올라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의중마을의 당산은 용유담으로 직행하는 숲길과 벽송사를 거쳐 용유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용유담으로 바로 가는 길은 임천을 왼편에 두고 산기슭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걷기에 편하고 또 아름답지만 우리는 거칠고 힘든 길을 택하였다
땀을 흠뻑 흘린 뒤에 대나무가 우거진 언덕배기에서 유유히 흐르는 임천강을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꿈보다도 환한 동자꽃을 만난다
고독보다 깊은 눈물도 만난다
사정없이 후려치던 장대비도 만나고
눈 덮인 어느 산장 침낭 속에 웅크린 나도 만나게 된다
부러질지언정 직립을 고집하는 나무들과
누대에 걸쳐 역사를 저 나른 지게도 만나고
일시에 갈증을 해소하는 한 바가지의 샘물도 만나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는 저 산
저 산에 가면 참으로 내가 작고 낮더라
새몰재 넘어 걷는 엄천강 길에서 자빠지고 넘어질지라도
용유담을 향하여 함께 흘러가다 구름을 만나고
아궁이에 장작불 피우며 만나는 눈물의 밤도 있더라
버릴 것은 버리고, 태울 것은 태워야 하더라...........................이종성 <지리산, 가장 아플 때 와라> 부분
의중마을 뒤 산쪽으로 서암정사,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누군가가길 양쪽의 풀을 깎았는지 풋풋한 풀내음이 코를 자극하였다
의중(義中)은 ‘의탄리의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숯을 생산한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숯보다 옻칠 등 옻나무를 이용한 제품 생산으로 유명하다.
길을 가다 보면 옻나무를 키우는 밭과 야생 옻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마을 안에는 당산 느티나무 신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의중마을을 비롯한 칠선계곡 일대의 마을들은 빨치산 토벌을 위한 국군의 소개 작전으로 모두 불태워졌다.
늙은 당산목은 기억하리라.
한국전쟁 당시 불타던 마을의 화염과 칠선계곡에 메아리치던 총성의 날카로운 울림을.
풀잎보다 가벼이 스러지던 목숨들을...
길은 제 길을 끌고 무심하게
언덕으로 산모퉁이로 사라져가고
나는 따라가다 쑥댓닢 나부끼는 방죽에 주저앉아
넝마져 내리는 몇 마리 철새를 본다
잘 가거라, 언덕 저켠엔
잎새를 떨군 나무들
저마다 갈쿠리 손 뻗어 하늘을 휘젓지만
낡은 해는 턱없이 기울어 서산마루에 있다
길은 제 길을 지우며 저물어도
어느 길 하나 온전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바라보면 저녁 햇살 한 줄기 금빛으로 반짝일 뿐..........................김명인 <길> 전문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지쳐갈 무렵 서암정사가 나타났다
서암정사는 지리산 산맥 위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주지였던 원응 스님이 6·25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서암정사는 절집에 대한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석굴을 법당으로 삼고있는데다, 곳곳에 돌을 정교하게 쪼아만든 불상들을 세워놓았다
서암정사에서 가파른 시멘트길을 힘겹게 올라가니 벽송사 목장승이 우릴 반겨주었다
구전에 의하면 약 70년 전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목장승으로서는 시대가 오래되어 보기드문 모습이다.
비록 눈·코·입이 과장되게 표현되긴 하였으나 순박한 인상을 주고, 무서운 듯 하면서도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대체로 잘 남아 있는 오른쪽 장승은 대머리에 크고 둥근 눈이 돌출되었다.
코 주위에 깊은 선을 둘러 뭉툭한 코가 더 두드러져 보이며, 꽉 다문 입 주위와 턱 아래에는 톱니 모양의 수염을 묘사해 놓았다
벽송사는 6.25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국군이 야음을 타 불시에 기습, 불을 질러 당시 입원중이던 인민군 환자가 많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1963년 원응 구환스님이 이곳에 와 이 절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1978년 봄에 종각이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는 실상사와 더불어 지리산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벽송사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해 108명의 큰스님을 배출했다고 전해진다
벽송사 선방 뒤에는 수령이 300년 쯤 되는 미인송과 도인송이라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미인송이 도인송을 향해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미인이 도인에게 연정을 품고 유혹을 했으나 도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미인은 연정을 버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곁에서 바라보기로 했다는 것이 이들 소나무에 얽힌 전설이다.
그렇지만 미인송은 사모의 마음을 아직도 버리지는 못하였나 보다.
버팀목에 의지해가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도인송을 향해 기울고 있는 미인송의 마음이 애잔하다.
용유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벽송사 앞으로 나있는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야 한다
이곳 마천(馬川)은 춥고 거칠고 황량한 지리산 북부지역이다
멸망한 옛가야가 재건을 꿈꾸며 절치부심하던 마지막 희망과 절망의 땅이기도 했다
천년에 또 천년이 지났어도 이 지역 사람들은 가야인이다
나라을 잃은 자들의 막연한 어떤 기질 같은 것이 아직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남아 있다
신라인도 아닌 백제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소 살았을 가야인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산길을 걸었다
점심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헤매다가 한적한 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울퉁불퉁한 돌덩이들이 깔려있었고, 젖은 낙엽이 두텁게 덮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시원찮게 하고 나왔기 때문에 함께 먹는 점심밥은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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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친 다음 흐르는 물속에 들어가 몸을 식혔다
깊고 깊은 지리산을 돌아 흐르는 물줄기는 엄청 차가워서 물속에 오래 서있을 수가 없었다
날씬이가 요즘 부쩍 날씬해진 몸매를 드러내놓고 등목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습하고 어두운 산길을 벗어나니 용유담이 있는 모전마을이다
함양군 송전리의 지리산 용유담(龍遊潭)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비경이다.
임천강은 이곳 용유담에 이르러서 엄천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기암괴석을 보고 있자면 용이 앞다퉈 승천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용유담은 2018년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한 곳이다
머리를 위로 묶은 애신아씨가 총포술을 익히고, 유진초이를 만나던 계곡이 바로 여기다.
이 드라마는 대한제국 시대 이름 없는 의병들의 애달프고 통쾌하며 묵직한 투쟁사다.
쓸쓸하고 장엄한 사랑 얘기도 품고 있는데... 나는 재방송까지 빠뜨리지 않고 즐겨 보았다.
김은숙 작가의 감각적이고 참신한 명대사는 나를 TV 앞으로 끌어당기는 촉매제가 되었다
용유담에서 송전마을까지는 그늘 하나 없는 지루한 아스팔트 도로였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이니 오르는 수고는 없지만 오늘같은 여름철에 걷는 이 길은 곤욕이다.
송전마을은 31가구 60명이 사는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70대 노인이다
함양군으로부터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됐고, 이어서 산림청으로부터 우리나라 3대 산촌생태마을로 뽑혔다.
마을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마을은 쓸쓸하고 적막하였다
마땅한 쉼터가 없어서 주인이 자리를 비운 펜션에 들어가 쉬어갔다
집앞에 널찍한 암반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위에서 앉거나 누워서 땀을 식혔다
주막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는 후미그룹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쉼터가 나오면 시원한 소맥을 마시기로 하고 출발했으나 가도가도 쉼터는 보이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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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다랭이논 | | 히말라야의 다랭이논 |
마을 입구에 있는 다랭이논을 보면서 히말라야에서 본 다랭이논이 떠올랐다
이곳과 그곳의 다랭이논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리산의 다랭이논은 손바닥만한 자투리 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농심이 느껴져 아름답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산기슭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산 전체를 다랭이논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보는 다랭이논은 농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산악마을에서 생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져 눈물겹다
가파른 언덕 입구에서 빨간 뚜껑에 돌맹이를 올려놓은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을 안고 걸어가서 빨간 뚜껑을 얼어보니 항아리 안에는 우편물이 담겨 있었다
언덕을 올라오는 집배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집주인이 만들어놓은 사랑의 우편함이었던 것이다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제법 숲이 우거진 길을 걸어서 운서마을에 다다랐다
운서마을은 휴천면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좁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 전체 면적의 3/1 이상이 지리산국립공원구역내에 있으며, 산악지역이라 농경지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산에 의지해서 생활을 하며, 지리산을 닮아 인심이 포근하다.
요즘의 운서마을은 오히려 전보다 가구 수가 늘었다고 하는데, 약 30여호 중 3분의 1은 귀농인이다
운서마을에서 구불구불한 시멘트 소로를 따라 오르면 구시락재다.
이곳에 서면 함안군 휴천면 동강마을과 산청군 금서면 자혜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시락재는 운서마을에서 동강마을로 가는 고갯길이다.
옛사람들이 이곳을 넘으며 하도 힘이 들어서 구시렁거리면서 지나서 구시락재일까? ㅎㅎ
구시락재에서 스테파노 단장님께서 두 여인에게 산딸기를 주며 사랑을 고백하신다 ㅋㅋ
구시락재에서 엄천강을 바라보며 내려서니 오늘의 종착지 동강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초입에는 수령 600년의 팽나무 4그루가 쉼터를 만들고 있다
동강(桐江)마을은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동강이라 하였다.
조선 고종때는 엄천면이라 하여 엄천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어 공무와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곳이다.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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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지리산둘레길4.(금계~동강) – 지리산은 엄천강으로 흐른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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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2
20.07.12 14:2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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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힘든데 모두 고생했어요!
지리산 둘레길도 만만치가 안터군요?
좋은 날씨를 주셔서, 잘 다녀왔습니다...
다음 5구간도 기대를 해봐야죠~~~수고들 하셨습니다...
수고하며 걷는길에서 사랑을 배우게 되지요
다음에도 더 많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걸어봅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행 후기를 보고 많이 배웠어요
진즉 알고 걸렀으면 더욱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아요.
수고 했어요.
화산12곡의 전설이 숨어있는 엄천강
거기는 잘 모르실꺼다 아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