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의 뜻하지않은 좌초로 서울, 경기와 강원을 오가는 생활을 해온지도 어느덧 3년째이다.
처음엔 얼른 목표한 바를 이루고 다시금 훌쩍 홍천집으로 귀향해야지 했건만,
현실적 여건들이 맘 같지않아 이런생활을 아직 여러해 더 해얄 것 같다.
생각않으려지만 가끔 이런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게 되면 천하의 태평쟁이도 꿀꿀해지기 마련이다.
지난 금요일이 그랬다.
모처럼 일찍 일이 끝난 벌건 대낮에 사무실을 나와 잠시 갈등을 했다.
기분도 꿀꿀한데 근처 야외를 좀 더 돌아다니다 들어갈까,
떠오르는 얼굴 몇몇에게 전화해 저녁이나 먹을까,
아님 편하게 혼자 눈찜해둔 맛집에나 가볼까 고민끝에,
결국 모처럼 낮에 귀가해보잔 생각에 이르렀다.
나의 휴일은 토요일이기에 지금부터 일요일 오전까진 자유가 보장된 터,
일단은 지긋한 운전대부터 얼른 놓기위해
중앙선 전철이 다니는 남양주 양정역에 차를 주차했다.
평소 서울로 귀가시 피곤할 땐 곧잘 그곳에 차를 세워놓구선 전철을 타곤한다.
귀에 엠피3 꽂고 모자 눌러쓰고 쪼리 끌어대며 전철에 몸을 실으니 맘이 슬슬 가벼워온다.
가방에서 읽을거릴 꺼내다 지난주 파주서 구입하려다 넘 비싸서 보류한 야생화도감이 생각났다.
단골헌책방에 부탁해둔다는게 그만 일주일이 흘렀다.
경희대 부근에 위치한 그곳에 전화를 넣고선 도감이 입수되면 연락달라구 그랬더니,
일단은 와보랜다.
마침 이 전철의 환승역이 '회기역(경희대)'인지라 부담없이 내려 들렀다.
육순의 주인아저씨가 반기며, 도감은 그렇다치고 LP가 몇장 들어와서 불렀댄다.
내가 LP컬렉터임을 아는지라 가끔 중고LP가 들오면 연락을 하곤한다.
조그만 책방앞 진열대에 쪼그려앉아 LP들을 뒤적이다 몇몇 맘에 드는 걸 골랐는데,
그 절반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앨범들이다.
언젠가 갖구있던 LP들이 반복청취 등으로 손상이 되면 대체할 수 있게
스페어로 중복 구입을 하곤 하는거다.
LP 선택이 끝나곤 으례히 서고들을 뒤적였다.
간만에 와서 그런지 사고픈 넘들이 쉽게 눈에 띄인다.
몇권 골라 카운터에 올려놓고선 책방사장 내외분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어느새 사내 하나가 옆에서 말을 거들고 있다.
작은 키와 덩치에 짧은 머리, 생쥐눈에 콧방울 위의 콩점...
한눈에 장정일임을 알겠더라.
내가 이 가게 문턱을 한참 문지르고 다니던 때엔 보지못했었는데,
쥔장이랑 구면인 듯 편히 얘기 주고받는 품이 몇 년새 근처로 전입해들온 듯 하다.
가벼운 인사차,
“장샘이시죠?”
“네” ...
안주인 왈,
“어머 두분 모르셨구나?”
“둘다 단골인데 올 첨봤나?”
......
내가 골라논 LP를 뒤적이곤 몇몇 음반을 물어온다.
“어떤 장르음악들을 좋아하세요?”
“다 좋아해요”
대답하자마자 중고 LP들이 쌓여있는 곳으로 날 이끈다.
그리곤 주빈 메타의 베토벤이라든지 글렌굴드의 바하를 꺼내들며,
“이거 좋잖아요?”
“....”
“이것두...?”
“안그래도 아까 골랐었는데, 내용물이 바뀌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굴드 속에는 엄정행 가곡집이 들어있었고,
메타의 것엔 영화음악이 들어있었다.
그렇기에 중고반을 구입할 땐 꼭 겉과 속을 확인해야한다. ^^
서고로 돌아와 주인네들이랑 다시금 잡변을 나눴는데,
주인네들두 예전엔 출판업을 했었고,
장정일두 출판에 대한 앎이 있었구,
난 그저 한때 출판사에 적을 두며 귀동냥 꺼리가 있었기에
얘기의 태반이 출판물과 출판사 얘기들였다.
한시간여가 지나 장정일이 담날을 기약하며 먼저가고,
나두 배가 슬슬 고파짐에 지름신의 산물을 씁쓸히 챙겨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참에,
그래, LP두 주웠겠다 책들두 내질렀겠다 이참에 한이틀 방콕하며 책이나 보자 싶더라.
귀가 후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터질듯한 배를 깔고 누워 중국출신 한국기원 소속 기사인
장주주, 루이나웨이 9단 부부의 두권짜리 자서전을 단숨에 핧아버리곤,
임진모의 음악강의록을 디저트로 마셨버렸다.
오늘에 이르러는 그 장정일이 아는 척 입을 대던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를
꺼내들 참이다.
일요일 오후 출근하여 이렇게 사무실에 나와있지만,
뭐 딱히 바쁜 일두 없구,
어제와 그제 열독의 달콤함에 나른하기에 책상머리서 이렇게 끄적거린다.
근데, 이 나열을 마침에 있어 가만히 되새겨보니,
장정일의 책을 몇권 본 듯 한데 내용이 거의 기억나질 않는다.
<아담이 눈뜰 때>를 처음 접하곤 꽤 신선함을 느꼈고,
<너에게 나를~>은 나름 통속한 재미를 가진 작품으로 기억되는데,
이후 <너희가 재즈를 ~>에선 쬐금 실망하다 <내게 거짓말을 ~>와
<독서일기>에 이르러선 흥미가 떨어져 슬그머니 잊혀진 듯 하다.
어쩌면 잼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보면 그 얼굴이나 생김이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와 참 많이 닮았기에...ㅎㅎ
아~, 주말 나름 잼나게 보냈다.
덕분에 내 꿀꿀함은 언제 집나갔나 몰라.
역시 난 너무 단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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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주저리... (뭔 내용도없이 길기만 한겨~^^;;)
연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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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03 21:0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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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 요즘 10년 넘게 손놓았던 장구를 칩니다. 교회 음악목사님이 오셨는데 국악 전공이라 찬양대 반주에 장구가 필요해서.. 악보를 읽고 연구하다 보니 전문성이 좀 생기기도. 예술까지는 아니지만 작품을 준비하는 작업시간은 사람을 즐겁게 하네요.
언니가 교회를 다녔었어요? 전혀 생각을 못했던 일이네요. 하긴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으니...새로이 신을 받아들일 수 도 있겠지요.
넘 부럽다~. 전통악기들은 꾸준히 배우고픈데, 몸이나 여유가 안따르네. 몇년전 홍천서 한 대학교수에게 가야금을 배울랬더니, 레슨비가 넘 버거워서 안되겠더라. 종자 살 돈두 빠듯한 판이었기에...^^;;
알찬 퇴근길이네요 ^^
장정일...내가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얼마전 '삼국지'를 쓰면서 '영웅이라 일컽는 남자들의 허위와 위선을 까발리고 싶었다'고 인터뷰를 하는게 참 인상적이더군요.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삐딱한 시선과 도발적 정신은 높이 살 만하지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