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4. 무릇 조정의 고관이 사서(私書)를 보내어 관절(關節)(주1)로 청탁하는 것은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질도(郅都)(주2)가 제남(濟南)의 수령이 되었는데 위인이 공평하고 청렴하여 사서(私書)를 떼어보지 않고 선물을 받지 않으며 청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항상 말하기를, “이미 부모를 등지고 벼슬길에 나섰으니 본디 직분을 다하고 절조를 위해 죽어야 할 것이요, 끝내 처자들을 돌보지 않겠다.” 하였다.
위(魏)나라 사마지(司馬芝)(주3)가 하남윤(河南尹)으로 있을 때에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북돋아서 사사로운 청탁〔私請〕(주4)이 감히 행해지지 않았다. 내관(內官)이 사마지에게 일을 청탁하고 싶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사마지의 처백부(妻伯父)인 동소(董昭)(주5)에게 부탁하여 뜻을 통하려고 하였으나 동소도 사마지를 꺼려하여 통하지 못하였다.
진태(陳泰)(주6)가 병주 태수(幷州太守)로 있을 때에 서울의 귀인들이 편지를 많이 보내왔으나, 그는 모조리 벽에 걸어 놓고 그 편지를 뜯어보지 않았다. 다시 부름을 받아 상서(尙書)가 되자 편지를 죄다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조염(趙琰)(주7)이 청주 자사(靑州刺史)로 있을 때에 요직에 있는 귀인으로부터 온 청탁 서신을 모조리 물속에 던져버리고 그 이름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공익(孔翊)(주8)이 낙양령(洛陽令)으로 있을 때에 청탁 편지를 받으면 모조리 물속에다 던져버렸다.
포증(包拯) - 자는 희인(希仁) - 이 개봉 지부(開封知府)로 있었는데, 사람됨이 굳세고 엄하여 사정(私情)으로 청탁할 수가 없었다. 서울 사람들이, “청탁이 통하지 않는 데는 염라대왕(閻羅大王) 포노인(包老人)이 있다.” 하였다.
왕한(王閑)(주9)이 기주(冀州)를 다스릴 때에 사서(私書)를 떼어보지 않고 호족(豪族)들을 용서하지 않으니 왕독좌(王獨坐)라 불렀다.
마준(馬遵)(주10) 개봉윤(開封尹)으로 있을 때 항상 권세가와 호족들의 청탁 때문에 다스릴 수가 없었다. 손이 와서 청탁을 하면 매양 잘 대우하여 거절하지는 않고 손이 물러간 뒤 그 일을 처리할 때는 일체 법대로만 하였다. 오랫동안을 그렇게 하니 사람들이 그에게는 사사로운 청탁을 해서는 안 됨을 알게 되어 고을에는 드디어 아무 일이 없게 되었다.
질도(郅都)나 진태(陳泰)에게는 오히려 원한이 있을 것이니 마준(馬遵)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양(陳襄)(주11)이 포성현 주부(蒲城縣主簿)가 되었을 때 읍에는 세족(世族)들이 많아서 전후의 수령들이 제어할 수가 없고 청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상례(常例)로 생각하였다. 공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폐단을 없애기에 힘썼다. 청탁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사류(士類)임을 아껴서 갑자기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려 하여 매양 송사를 들을 때에는 반드시 몇 사람을 자기 앞에 둘러앉게 하니, 사사로이 청탁하는 사람이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고을 사람들이 청탁할 수 없음을 알고 노숙한 간인(奸人)과 노련한 장리(贓吏)들이 손을 거두고 기가 죽었다.
참판(參判) 유의(柳誼)가 홍주 목사로 있을 때 내가 금정역(金井驛)(주12)에 있으면서 편지를 띄워 공사(公事)를 의논하였으나 답이 없었다. 그 뒤에 홍주에 가서 만나 보고서, “왜 답서를 하지 않았소?” 하니, 유공은, “내가 벼슬살 때는 본래 편지를 뜯어보지 않소.” 하고, 시동(侍童)에게 명령하여 서롱(書籠)을 쏟으니 한 상자의 편지가 모두 뜯기지 않았는데 이는 모두 조정의 귀인들이 보낸 편지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것은 본래 그런 것이지만, 내가 말한 것은 공사(公事)였는데 어찌 뜯어보지 않았소?” 하니, 유공이, “만일 공사였다면 왜 공이(公移)로 보내지 않았소?” 하였다. 내가, “마침 비밀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소.” 하니, 유공은, “만일 비밀에 속한 일이라면 왜 비이(秘移)하지 않았소?”
하기에, 나는 거기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가 사사 청탁을 끊어 버림이 이와 같았다.
[역주]
[주-D001] 관절(關節) : 권세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 청탁하는 일을 가리킨다.
[주-D002] 질도(郅都) :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으로 제남 태수(濟南太守)ㆍ안문 태수(雁門太守)를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여 직간(直諫)하였으며 법을 시행함에 있어 귀척(貴戚)을 피하지 않았다. 창응(蒼鷹)이라 불렀다. 《漢書 卷90 酷吏傳 郅都》
[주-D003] 사마지(司馬芝) : 삼국(三國) 위(魏) 문제(文帝)ㆍ명제(明帝) 때 사람으로 자는 자화(子華)이고, 감릉(甘陵)ㆍ패(沛)ㆍ양평(陽平)의 태수(太守), 하남윤(河南尹) 등을 지냈는데 치적이 있었으며, 대사농(大司農)에 이르렀다. 《三國志 卷12 魏書 司馬芝傳》
[주-D004] 사사로운 청탁〔私請〕 : 원문에는 ‘私情’으로 되어 있는데, 《삼국지(三國志)》에 의해 고쳤다.
[주-D005] 동소(董昭) : 삼국(三國) 위(魏)나라 문제(文帝)ㆍ명제(明帝) 때 사람으로 자는 공인(公仁), 시호는 정(定)이다. 벼슬은 태복(太僕)ㆍ위위(衛尉)를 거쳐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三國志 卷14 魏志 董昭傳》
[주-D006] 진태(陳泰) : 삼국(三國) 위(魏)나라 사람이다. 자는 현백(玄伯), 시호는 목(穆)이다. 벼슬은 병주(幷州)ㆍ옹주(雍州)의 자사(刺史), 가절도독회북제군사(假節都督淮北諸軍事) 등을 거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이르렀다. 고귀향공(高貴鄕公)이 시해되자 통곡하였으며 피를 토하고 죽었다. 《三國志 卷22 魏書 陳泰傳》
[주-D007] 조염(趙琰) : 조영(趙瑛)의 잘못인 둣. 《연감유함》 정술부(政術部) 6공정(公正)에서는,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에서 인용하여 “조영(趙瑛)의 자는 치규(稚圭)이며……” 하였고, 아래 내용은 정약용(丁若鏞)의 인용문과 일치한다. 조염(趙琰)은 후위(後魏) 때 사람으로 청주 자사(靑州刺史)를 지낸 적이 없다.
[주-D008] 공익(孔翊) :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원성(元性)이다. 《몽구(蒙求)》에 〈공익절서(孔翊絶書)〉란 제목이 있다. 《연감유함》 정술부(政術部) 공정조(公正條)에서는 출전을 노국선현전(魯國先賢傳)으로 밝히고, 자는 원서(元恕)라 하였다.
[주-D009] 왕한(王閑) : 미상이다.
[주-D010] 마준(馬遵) :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중도(仲塗)이다. 벼슬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ㆍ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를 지냈다. 《宋史 卷302 呂景初列傳 馬遵》
[주-D011] 진양(陳襄) : 송(宋)나라 인종(仁宗)ㆍ영종(英宗)ㆍ신종(神宗) 때의 문신이며 학자. 자는 술고(述古), 호는 고령선생(高靈先生),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벼슬은 포성현 주부(蒲城縣主簿)로 나갔는데, 수령이 없어서 수령의 일을 행하였으며, 치적이 있었다. 명주(明州)ㆍ진주(陳州)ㆍ항주(杭州) 등의 지주(知州)로 나가 학교를 일으키고 민간의 이병(利病)을 강구하였다. 뒤에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ㆍ겸시강(兼侍講)ㆍ판상서도성(判尙書都省)을 지냈다. 경연(經筵)에 있을 때에 사마광(司馬光)ㆍ한유(韓維)ㆍ소식(蘇軾) 등 33인을 천거하였다. 저서에는 《역의(易義)》ㆍ《중용의(中庸義)》ㆍ《고령집(高靈集)》이 있다. 《宋史 卷321 陳襄列傳》 《宋元學案 卷5 高靈先生學案 陳襄》
[주-D012] 금정역(金井驛)에 있으면서 : 정조 19년(1795) 정약용의 33세 되던 해 7월에 주문모(周文謨)의 서교(西敎) 사건에 연루되어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낸 그가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어 나갔다.
凡朝貴私書。以關節相託者。不可聽施。
郅都爲濟南守。爲人公廉。不發私書。問遺無所受。請寄無所聽。常稱曰已背親而出仕。固當奉職死節。終不顧妻子矣。
魏司馬芝爲河南尹。抑強扶弱。私情不敢行。有內官欲以事託芝。不敢言。因芝妻伯父董昭通意。昭亦憚芝。不爲通。
陳泰爲幷州太守。京邑貴人多寄書。泰皆掛於壁。不發其書。及徵爲尙書。乃悉還之
趙琰爲靑州刺史。有貴要書囑。悉投之水中。無所執名。
〇孔翊爲洛陽令。得囑託書。皆投水中。
包拯 字希仁。 知開封府。爲人剛嚴。不可干以私。京師爲之語曰。關節不通。有閻羅包老。
〇王閑爲冀州。不發私書。不容豪族。號曰王獨坐。
馬遵守開封。常以權豪請託不可治。客至有所請。輒善遇之。無所拒。客退視其事。一斷以法。居久之。人知君之不可以私囑也。縣遂無事。
〇郅都,陳泰。猶有怨矣。當以馬遵爲法。
陳襄爲蒲城縣主簿。邑多世族。前後令罕能制。蒙蔽請託。習以爲常。公夜寐夙興。務究其弊。有請託者。惜其士類。不欲遽繩以法。每聽訟。必數人環列於前。私謁者無所發。由是。邑人知不可干。老奸宿贓。縮手喪氣。
柳參判誼牧洪州時。余在金井驛。書議公事不答。後入州相見曰。何不答書。柳公曰。我在官。素不發書。遂令侍童。瀉下書籠。一籠之書。都不開坼。皆朝貴書也。余曰。彼固然矣。我所言者。公事。胡亦不發。柳公曰。若係公事。胡不公移。余曰。適是秘事。柳公曰。若係秘事。胡不秘移。余無以應。其絶去私囑如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