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 "허술한 평가·정치적 판단 개입돼"
이해충돌방지 개념 도입하고 방역 정책 결정 과정 투명화 해야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황승식 교수는 지난 2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서울대 보건대학원 공중보건 세미나에서 '확진을 위한 검사와 추적 체계를 어떻게 구축·개선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사진 출처: 서울대 보건대학원 ZOOM 화면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자가검사키트 도입은 허술한 평가 체계와 정치적 판단, 이해득실에 따라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방역 분야에 '이해충돌방지' 개념을 도입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황승식 교수는 지난 21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진행한 '공중보건 위기대응체계 구축 연구' 세미나에서 '확진을 위한 검사와 추적 체계를 어떻게 구축·개선할 것인가'에 대해 발표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진단검사는 검사 목적과 타겟층, 인구 집단 구성에 따라 그 결과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민감도와 특이도를 산출하면 정확도 100%란 수치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황 교수는 신속항원검사 기반 자가검사키트 도입 과정에서 이를 반영하지 못한 허술한 평가와 정치적 판단이 검사 체제의 구멍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긴급 사용 승인 신청을 낸 신속항원검사 자가검사키트 9개 제품 중 7개가 자사 평가에서 민감도와 특이도가 100%였다고 보고했다. 아무도 이 결과를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다"면서 "현재 우리나라 진단검사 체제의 구멍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 해 12월 대한진단검사의학회가 실시한 연구에서는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자가검사키트 민감도가 PCR검사 대비 41.5%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서울대병원이 진행한 임상 연구 결과에선 17.1%까지 떨어졌다.
황 교수는 "그런데도 방역 최고 결정권자인 청와대는 업체들이 제출한 이 '민감도 100%' 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서 "청와대를 시작으로 정치권에서 이를 도입하자는 발언이 이어졌다. 방역의 정치적 오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결정하는 과정이고 방역은 최고 수준의 정치적 결정을 통해 자원을 배분한다. 그런데 방역이 정치인들이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가 돼버렸다"고 했다.
자가검사키트 도입 과정은 정치권을 비롯해 이해당사자 득실에 따라 좌우됐고 방역은 여기 이용됐다는 의미다.
황 교수는 "각 지자체장의 일방적인 의지로 자가검사키트 도입 여부가 결정됐다. 검사키트 개발이나 검증에 참여했던 의료인 등 전문가들은 정확한 효과를 판단할 만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방역 분야에 '이해충돌방지' 개념이 선제적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자가검사키트 도입 과정을 비롯해 방역 정책 결정에 대한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지자체의 방역 결정 과정에 전문가나 시민이 위원회 형식으로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결정 사항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면서 "방역 관련 공무원은 물론이고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나 시민도 이해충돌 관계가 없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방역이 정치화하면서 같은 사안을 두고 방역 당국 간에 판단이 다르고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발생했다"며 "팬데믹이 끝나고 이번 코로나19 방역을 되돌아볼 때 이런 부분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현재 시중에 이용되고 있는 자가검사키트 사용 승인도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식약처는 자가검사키트 긴급 승인 뒤론 아무런 평가를 진행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문제 제기가 들어오는데 답변이 없다"면서 "이제라도 현장에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자가검사키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