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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를 위한 기도(잠22:6, 엡6:4)-2021.5.2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시127:3).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어린이 주일보다는 자녀주일이라는 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정에 어린이는 없어도 자녀는 있거든요.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녀예요. 그렇다면 자녀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부모 된 입장에서 우리 자녀가 어떤 자녀가 되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히 믿는 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녀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소원하지요.
믿는 자의 모든 부모의 소원은 자기 자녀가 예수 안에서 영육간의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보다 더 복된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평생의 소원이지요. 그러나 소원으로 끝내지 말고 기도를 심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 말입니다. 자녀를 위한 축복 중에 기도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대부분 상식선에서 기도는 드릴 것입니다. 상식적인 기도 말이지요.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 잡고, 좋은 가정을 꾸리고 건강하게 사는 아주 평범한 기도 말입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아주 일상적인 기도이겠지요.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기도이지요.
그러나 성숙한 부모는 성숙한 기도를 드립니다. 이른바 영적인 기도 말입니다. 영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녀로 살아가는 기도입니다. 평범한 부모의 기도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는 기도라면, 성숙한 부모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관한 기도일 것입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를 위한 기도는 할지라도 기도의 깊이와 수준이 다른 것이지요. 사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본능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에게 자식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거나 권면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이지요.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줄 압니다.
그런데 자식의 부모공경은 다릅니다. 자식의 부모사랑이나 공경은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여러 곳에서 부모공경의 효를 가르치고 강조하고 있지요. 오늘은 부모 된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을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세상에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보다 축복되고 행복한 기도는 없습니다. 부모의 기도보다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는 없지요. 그래서 가장 완전한 중보기도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에요. 그 기도보다 진실하고 간절한 중보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기도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한 기도이지요.
그래서 자녀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보다 위대한 부모는 없는 거예요. 재산을 물려주고 가업을 물려주고 온갖 사랑을 베풀지라도 기도를 물려주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부모입니다. 그 부모가 가장 인격적인 부모이지요. 기도를 물려주지 않고 다른 유산만 물려주려고 하는 부모는 동물적인 본능의 부모일 뿐이에요. 자기자식을 사랑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난 부모이지요. 미안하지만 기도하지 않고 자기 힘이나 능으로 키우려고 하는 부모는 최고의 도박꾼이에요. 하지만 믿음의 부모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부모에요.
때문에 믿음의 부모는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믿음의 유산은 기도를 통해 전달되는 거예요. 그래서 의인의 자손은 걸식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시편37장25절에 보십시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물론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드리면 안됩니다. 왜냐면 분명히 의인이 고통받는 경우가 성경에는 허다하거든요. 이 말씀의 핵심은 경건한 의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지켜주심을 받는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어주시면 안전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내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는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부모는 자기자녀를 자녀의 인격과 상관없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요. 물론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지요.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통로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욕구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맡겨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주신이의 마음을 감사함으로 잘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이의 목적에 합당하게 잘 보호하고 지켜야 합니다.
마치 달란트의 비유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주인이 찾으실 때가 있거든요. 그러기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속상해 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지요. 이것이 바로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저는 5월 가정의 달, 그리고 자녀주일을 맞이하여 축복하는 의미에서 자녀를 위한 기도 제목을 드리려고 합니다. 평생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나름대로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터이지만 큰 틀에서 세 가지 기도제목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우리 자녀가 심성이 고운 자녀가 되게 하소서
사람마다 고유한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적인 천성도 있지만, 대개는 자라면서 개발되어지고 연마되어지는 성품들입니다. 비록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천성일지라도 자라면서 환경이나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되거든요. 나쁜 쪽으로 변질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가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 차원에서 인간의 성품은 얼마든지 수정되어 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한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는 우리 자녀가 심성이 고운 자녀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심성은 인간성을 의미하지요. 각 사람의 인격이요, 됨됨이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운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동물적인 성품을 가진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쩌면 동물보다 못한 인격을 가진 자들도 많지요. 우리 자녀의 인격은 어떻습니까? 무엇보다 사람은 인격이 중요해요. 이른바 심성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모든 것을 잘 갖추었어도 심성이 곱고 착하지 못하면 그의 일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조금 부족하고 갖추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심성이 곱고 착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사랑과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지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난 사람, 된 사람, 든 사람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중에서 우리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물론 3가지를 다 갖춘 자녀라면 더없이 좋겠지요. 그러나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그러나 그중에서 만일 한 사람만 고르라면 우리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평생 배움에 한이 맺힌 사람은 든 사람을 택할는지 모르지요. 혹은 나서기를 좋아하는 부모라면 난 사람을 택할는지 모르지요. 하지만 대부분 된 사람을 택하지 않을까요? 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된 사람은 사람의 됨됨이가 곱고 착한 사람입니다. 성품이 고운 사람이지요. 사람은 진짜 성품이 좋아야 해요. 그런데 성품은 주로 가정을 통해 형성되고 발달되어집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말입니다. 물론 살다가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성품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세 살적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려서의 성품이 평생의 성품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예요. 누군가는 인간에게 세 종류의 천국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정천국, 교회천국, 하늘천국이 있다는 거예요. 들어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이 지상에 세워주신 천국의 모델하우스거든요.
특히 가정은 작은 천국이에요.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가정으로부터 천국을 배웁니다. 그러나 만일 가정에서 천국을 배우지 못하면 심성이 삐뚤어져요. 세상을 보는 눈이 삐뚤어지고, 사물이나 사람을 보는 눈도 삐뚤어져요.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거든요. 의와 평강과 희락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자원이에요. 의와 평강과 희락은 한 사람의 성품을 천국 되게 만들어주지요. 고운 심성으로 만들어준다는 말이에요. 천국은 고운 심성을 가진 자의 나라이지요. 천국을 소유한 자는 누구나 고운 심성을 가진 자에요.
물론 고운 심성을 가진 자가 반드시 천국을 소유한 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있거든요. 세상말로 착하고 정직하고 온유한 사람이 그리스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고운 심성이라 할지라도 그 성품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고운 심성도 자신의 태생적인 성품으로 되어 진 것도 있고, 자기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둘의 차이는 완전히 다릅니다. 비록 고운 성품이라 할지라도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성품이 아니라면 천국을 소유한 성품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고운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운 성품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운 성품은 대부분 가정으로부터 시작되고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가정이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자녀의 심성이 고운 심성을 소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의 심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가정천국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에요. 솔직히 우리 자녀가 남의 가정으로부터 천국을 경험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경험입니까? 우리 가정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천국을 친구의 가정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가정으로부터 간접경험을 한다면 그 모든 책임은 부모가 져야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먼저 천국을 이루는 것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요.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자녀는 그곳에서 고운 심성을 배우고 학습합니다. 그리고 평생의 성품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먼저 가정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천국이 이루어질 때 자녀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가정천국이 이루어질 때 교회생활도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합니다. 그런데 요즘 가정천국을 등한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많은 자녀들이 가정에서 성품이 난폭해지고 파괴적이며 공격적인 탈선을 배웁니다. 좋지 못한 인성을 가정에서 보고 배우고 학습한다는 말이에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요. 우리 자녀가 가정으로부터 천국을 배우지는 못하고, 오히려 지옥을 체험한다면 우리 자녀의 심성을 어찌 하겠습니까? 솔직히 부모의 전적인 책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자녀의 모난 성품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자녀의 성품이 어디서 어떻게 병들고 삐뚤어졌는지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는 절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이 최초로 경험한 천국은 가정이 아니면 불가능하거든요. 사실 대부분의 자녀는 가정으로부터 최초의 천국을 경험할 수도 있고, 지옥을 체험할 수도 있지요. 그만큼 가정이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 가정이 먼저 천국이 되어야 할 절대적인 이유인 것이지요. 그래서 내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먼저 가정천국을 보여 주어야 해요. 때문에 자녀를 위한 우선적인 기도는 고운 심성을 위한 기도인 것이지요. 심성으로 인하여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어려서 경험한 것은 평생을 좌우하지요. 그래서 어렸을 적에 맛 들여진 입맛이 평생의 입맛이 되곤 하지요. 어떤 인류학자는 40살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 맛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되려면 남편의 4살 때 먹던 음식을 연구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인성도 어려서 배운 것이 고착화되거든요. 너무 억압받고 자란 사람은 독재형 기질이 강하고, 눈치만 보고 자란 사람은 사기꾼 기질이 강하며, 방탕하게 자란 사람은 난봉꾼 기질이 강하다고 합니다. 보편적으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심성이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오늘날 가정에서 정상적인 심성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위스콘신 주의 루터란 병원 정신과 의사인 미텔 포르테박사는 ‘오늘날 많은 가정이 모든 정신병의 근원지’라고 말합니다. 오죽하면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한번쯤 우리네 가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자녀들이 고운 심성으로 자라기를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가정이 천국을 이루기를 기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정은 자녀의 고운 심성을 이루는 모판이 되는 것이니까요.
(2) 우리 자녀가 영성이 깊은 자녀가 되게 하소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습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은 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것이거든요. 사람이 아무리 고운 심성을 가졌다할지라도 그것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고운 심성으로 영생의 복을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에게 더없이 중요한 성품은 영성입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앙심이지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인간의 모든 심성과 기질과 습관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바른 영성을 소유해야 해요.
바른 영성을 소유하면 심성은 자동적으로 좋아집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때문에 인간을 지배하는 최고의 성품은 영성인 것입니다. 심성이 주로 가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훈련되어진다면, 영성은 주로 교회를 통해 형성되고 훈련되어집니다. 교회생활을 바르게 하면 바른 영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우리의 자녀가 바른 영성을 소유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영성이 깊은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영성이 깊은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면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알지요. 또한 모든 만물을 사랑할 줄 압니다.
깊은 영성을 소유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자기 인생에 대한 목적과 의미가 달라져요. 가치관과 세계관도 달라지구요. 윤리를 알고 질서를 알며, 수상과 수하를 분별합니다.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압니다. 때문에 부모된 우리는 자녀들이 깊은 영성을 체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영성은 한순간에 붙었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평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해요. 어떤 버섯은 6시간 만에 자라기도 하지만, 호박은 6개월을 자라고, 참나무는 백년을 자라야 자기 몫을 감당합니다.
사람의 영성도 마찬가지에요. 평생을 두고 영성은 자랍니다. 성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화는 평생을 두고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의 영성을 위한 기도는 평생을 두고 해야 합니다. 바른 영성을 위한 기도는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도를 떠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요,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행하며 성경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우리 자녀가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안에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것이요, 주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해요.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법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보여줘야 합니다. 전도하는 법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다만 보여주고 가르침으로 끝나지 말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없거든요. 무엇보다 거룩한 습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영성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쉽고 편합니다. 깊고 오래갑니다. 완성도가 높고 체질화도 쉽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과 사무엘, 다니엘과 디모데 같은 인물은 어려서부터 영성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영성이 훨씬 더 깊이가 있고 훈련도 쉽습니다. 어떤 통계에 보면 어린이 전도를 20명하게 되면 19명 정도가 예수를 영접하고, 어른을 전도하면 1명 정도가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렸을 때 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때문에 우리 자녀들이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예수를 믿도록 전도해야 하고, 거룩한 영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요, 선물이고 유산입니다.
(3) 우리 자녀가 사회성이 바른 자녀가 되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이 가정을 통해 형성된 고운 성품과, 교회를 통해 훈련된 깊은 영성의 소유자라면 대부분 사회성이 좋은 자녀일 것입니다. 심성과 영성이 실천되어지는 도장은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통해 형성된 깊은 영성일지라도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아쉬운 점은 교회 밖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매뉴얼이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하면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당황합니다. 이른바 교회 밖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은 교회 안에서의 영성만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기독교의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의 교리는 많이 가르치고 강조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행함의 교리에 대해서는 취약했던 것이지요. 사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배운 믿음을 교회 밖에서 실천하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거든요.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종교니까요.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도장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인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이 중요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오해하는 부분이 있지요. 마치 교회 안에서 믿음생활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세상 속에서는 적당한 수준으로 살아가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말로는 그렇게 안할 테지요. 그러나 살아가는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술 담배 정도 안하는 것으로 자기 영성이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고도의 사회성이 요구되고 필요하거든요. 한마디로 선한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좋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훨씬 더 존중받고 칭찬받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사회성이 무엇일까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아무도 독불장군처럼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요. 그래서 사회성은 모두가 더불어서 살아가는 관계성 내지는 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 섬김과 봉사, 헌신과 충성 같은 거예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성은 내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증거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의 교회생활을 보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구요. 그들은 우리들의 사회성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갖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성이 중요한 거예요. 그들은 은근히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가? 세상을 어떻게 섬기며 살아가는가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자녀들이 특별히 기독교적인 사회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는 거예요. 어느 곳에서든지 잘 적응할 수 있는 자녀, 어떤 계층의 어떤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잘 적응할 수 있는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우리 자녀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녀가 살아야 하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자녀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면 우리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 자녀는 주님의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 자녀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마음을 갖고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험한 세상은 우리 자녀를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거든요.
아무리 고운 심성과 거룩한 영성으로 살아가려해도 거친 세상은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씀이에요. 우리 자녀들은 세상에서 오염되고 세상의 방식으로 금방 젖어들고 말 것입니다. 그들과 똑같이 살수는 없을지라도 적당한 수준에서 그들의 방식을 모방하며 동화돼 버릴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우리 자녀들이 그들만의 영성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 자녀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은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밖에 살 수 없어요.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 자녀가 예수 안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지요.
참고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사회성을 우리가 먼저 배우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로마서12장에서16장, 고린도전서9장과10장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 된 우리가 먼저 배우고 실천하며 우리 자녀에게 부지런히 알려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가 그런 자녀가 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세상에서 모나지 아니하며, 쳐지지 아니하고, 비난받지 않게 하소서. 사회성이 좋은 자녀가 되게 하소서. 사회성이 없는 사람은 거침돌이 되고, 걸림돌이 되거든요. 사회성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 아니라 교회의 덕을 깨뜨리지요.
그리스도인이 사회성이 부족하면 아주 편협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독선적이라는 핀잔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사회성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평생을 두고 기도해 주어야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우리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거룩한 믿음의 유산을 남겨줄 수 있는 믿음의 부모가 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자녀를 책임지고 키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키우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키워주심이 백배 천배 낫지요. 감히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자녀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 평생을 두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힘으로 능으로 우리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음을 깨닫고 우리 자녀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평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자녀를 위한 세 가지의 기도제목을 드립니다. 먼저, 심성이 고운 자녀 되게 하소서. 그리고 영성이 깊은 자녀 되게 하소서. 또한 사회성이 좋은 자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협력하게 하옵소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하게 하시고,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소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 자녀가 존재감을 드러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이른바 가정을 통해 형성되는 인성과, 교회를 통해 형성되는 영성과, 세상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성을 가지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다만 이 모든 것이 부모 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임을 잊지 말게 하시고, 평생을 기도하는 부모로 살게 하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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