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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8다22008 전원합의체 판결
[구상금]〈시효 중단을 위한 재소 사건〉[공2018하,1708]
【판시사항】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재소)에 소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적극) 및 이때 후소 법원이 그 확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다수의견]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그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판결의 전소(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그 후소(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경우에 후소의 판결이 전소의 승소 확정판결의 내용에 저촉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후소 법원으로서는 그 확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할 수 없다.
대법원은 종래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재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는 법리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법리는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다른 시효중단사유인 압류·가압류나 승인 등의 경우 이를 1회로 제한하고 있지 않음에도 유독 재판상 청구의 경우만 1회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또한 확정판결에 의한 채무라 하더라도 채무자가 파산이나 회생제도를 통해 이로부터 전부 또는 일부 벗어날 수 있는 이상, 채권자에게는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균형에 맞다.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 변제 등으로 만족되지 않는 한 시효로 소멸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채권의 소멸과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민법의 기본 원칙과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하는 민사소송의 원칙에 반하므로 동의할 수 없고, 다수의견이 따르고 있는 종전 대법원판례는 변경되어야 한다.
① 소멸시효가 완성하면 채권은 소멸한다. 채권은 ‘소멸’을 전제로 하는 한시성을 기본적 성질로 하고 있고, 민법은 만족되지 않은 채권의 소멸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소멸시효제도를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만족되지 않은 채권이 소멸되는 것은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채권이 만족될 때까지 존속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채권이 만족될 때까지 시효소멸을 방지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은 채권의 본질과 민법 규정에 어긋난다.
② 민법이 소멸시효와 시효중단 제도를 두고 있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시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있는 제165조 제1항과 ‘청구’를 시효중단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제168조 제1호의 두 규정을 무한히 반복, 순환하면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채권을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견에 따르면 1년의 단기소멸시효에 해당하는 채권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으면 영구적으로 존속하는 채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우리 민법이 의도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③ 민사소송법상 이미 이행판결을 선고받아 유효한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는 원고에게 다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법적 이익은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이 제170조를 둠으로써 이러한 민사소송법의 원칙을 전제로 하여 적법한 재판상 청구만 시효중단사유로 삼은 이상, 승소의 확정판결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 기판력 때문에 재판상 청구는 다시 주장할 수 없는 시효중단사유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있다.
④ 시효중단사유 중 승인은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사이므로 이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이와 달리 이미 유효한 압류, 가압류, 가처분이 있다면 이와 동일한 신청을 중복하여 제기하는 것은 부적법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민법은 제174조에서 최고를 아무리 여러 번 하더라도 시효중단의 효력을 반복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민법 제168조에서 정한 다른 시효중단사유와 재판상 청구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영구적으로 소멸하지 않는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을 부추겨 충분한 변제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가 견뎌야 할 채무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는 사회적 문제도 따른다.
【참조조문】
민법 제162조 제1항, 제163조, 제164조, 제165조 제1항, 제168조, 제170조 제1항, 제174조, 제178조, 제184조 제2항, 제766조, 민사소송법 제216조, 제218조, 제248조[소의 제기]
【참조판례】
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공1988, 97)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5다74764 판결, 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다61557 판결(공2010하, 2176)
【전 문】
【원고, 피상고인】 서울보증보험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헌암 담당변호사 유병일 외 2인)
【피고, 상고인】 피고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법 2018. 1. 31. 선고 2017나43304 판결
【주 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살펴본다.
1.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그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판결의 전소(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그 후소(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5다74764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이러한 경우에 후소의 판결이 전소의 승소 확정판결의 내용에 저촉되어서는 아니 되므로, 후소 법원으로서는 그 확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할 수 없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다61557 판결 등 참조).
2. 원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① 원고는 1995. 12.경 소외인과 사이에 “피보험자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이하 ‘현대자동차’라 한다), 보험가입금액 9,504,000원, 보험기간 1995. 12. 27.부터 1997. 12. 26.까지, 보증내용 쏘나타 자동차 할부금 납입채무 지급보증”으로 하는 할부판매보증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증보험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소외인이 이 사건 보증보험계약에 따라 원고에게 부담하는 모든 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② 현대자동차는 소외인이 할부금 납입채무를 3회 이행하지 아니하자 이 사건 보증보험계약에 따라 원고에게 보험금을 청구하였고, 원고는 1996. 7. 23. 현대자동차에게 보험금으로 7,600,951원을 지급하였다. ③ 원고는 소외인과 피고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 96가소439231호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997. 4. 8. 승소판결을 받아 그 무렵 확정되었으며, 그 후 원고는 2,337,933원을 지급받았다. ④ 원고는 시효연장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가소1135651호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2007. 2. 1. ‘18,767,816원 및 그중 5,263,018원에 대하여 2006. 6. 30.부터 갚는 날까지 연 18%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는 이행권고결정을 받았고, 2007. 2. 23.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원심은, 피고는 소외인과 연대하여 원고에게 구상금 18,767,816원과 그중 원금 5,263,018원에 대하여 2006. 6. 30.부터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2015. 9. 30.까지는 약정이율인 연 18%,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피고는 소외인을 알지 못하며 원고와 연대보증약정을 체결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 사건 보증보험계약에 따른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지방법원 96가소439231호 구상금청구 소송에서 위와 같은 구상금 채권의 존재가 확정된 이상,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제기한 이 사건 소송에서 피고가 주장하는 사유는 위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것이어서 심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
3. 한편 앞서 본 것처럼, 대법원은 종래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재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는 법리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법리는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다른 시효중단사유인 압류·가압류나 승인 등의 경우 이를 1회로 제한하고 있지 않음에도 유독 재판상 청구의 경우만 1회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또한 확정판결에 의한 채무라 하더라도 채무자가 파산이나 회생제도를 통해 이로부터 전부 또는 일부 벗어날 수 있는 이상, 채권자에게는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균형에 맞다.
기록에 따라 살펴보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인 이 사건 소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하였던 전소(서울중앙지방법원 2007가소1135651호)에서 원고 승소의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된 때인 2007. 2. 23.부터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2016. 8. 19. 제기된 것으로서 소의 이익이 있다.
4.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의견이 일치되었으며, 다수의견에 대하여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과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재연의 보충의견이 있고, 반대의견에 대하여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의 반대의견
가. 다수의견은 승소판결이 확정된 후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채권을 변제받지 못하고 있다면,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해 채권자는 전소 판결과 동일한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다고 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한다.
이와 같은 다수의견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 변제 등으로 만족되지 않는 한 시효로 소멸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채권의 소멸과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민법의 기본 원칙과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하는 민사소송의 원칙에 반하므로 동의할 수 없고, 다수의견이 따르고 있는 종전 대법원판례는 변경되어야 한다.
나. 민법은 채권편 제1장 제6절에서 ‘채권의 소멸’을 규정하고 있으나, 물권편에는 물권의 소멸에 관한 별도 항목이 없다. 또한 민법은 총칙편 제7장에서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는데, 모든 채권에 소멸시효가 적용됨에 반하여, 물권은 지상권, 지역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리 즉 소유권, 점유권, 담보물권 등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채권은 절대적 권리인 물권과 달리 상대방에게 의무 이행을 주장하여 권리 실현에 협력을 구하는 상대적 권리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협력이 실행되어 만족을 얻게 된 경우는 물론 더 이상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권리를 소멸시켜 상대방을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민법은 채권의 만족으로 목적을 달성하여 채권이 소멸하는 변제, 공탁, 상계 등에 관한 규정과 채권의 목적 달성과 관계없이 기간 경과로 채권이 소멸하는 소멸시효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민법은 제162조 제1항에서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고 규정하고, 제163조와 제164조에서는 3년이나 1년의 단기로 소멸하는 채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제1항에서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멸시효가 완성하면 채권은 소멸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채권은 ‘소멸’을 전제로 하는 한시성을 기본적 성질로 하고 있고, 민법은 만족되지 않은 채권의 소멸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소멸시효제도를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만족되지 않은 채권이 소멸되는 것은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채권이 만족될 때까지 존속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채권이 만족될 때까지 시효소멸을 방지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은 채권의 본질과 민법 규정에 어긋난다.
다. 민법은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기본적으로 10년으로 정하고, 일부 채권에 대하여는 1년과 3년의 단기소멸시효도 정하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결제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상거래 실정과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액 채권의 영수증 등 증거서류를 장기간 보관하기 어려운 사정을 반영함과 동시에 법률관계를 조기에 안정시켜 채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채권에 대하여도 10년마다 판결만 받으면 무한히 시효가 연장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단기소멸시효제도를 둔 취지가 몰각된다. 그 뿐 아니라 민법 제184조 제2항은 “소멸시효는 법률행위에 의하여 이를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할 수 없으나 이를 단축 또는 경감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는데,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사실상 영구적인 채권을 인정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민법 규정의 취지에도 반한다.
민법은 소멸시효제도를 두면서 한편으로 시효중단도 함께 정하고 있다. 이는 법률관계의 조기 안정화를 추구하면서도 채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이익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민법 제168조가 규정하는 청구,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승인의 시효중단사유는 시효의 진행을 영원히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법 제178조에 따라 그 중단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새로 시효가 진행하되, 재판상 청구의 경우에는 민법 제165조 제1항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면 단기소멸시효에 속하는 채권이라도 전부 동일하게 10년의 시효기간이 다시 인정된다. 민법은 청구를 시효중단사유로 정하면서 그중 재판상 청구에 대하여 중단 후 새로 시작되는 시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있을 뿐 재판상 청구를 반복하면 10년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시효가 갱신된다고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것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이익 균형을 위해 보완책으로 기능하는 시효중단사유가 시효소멸 자체를 막아버려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법은 제162조 이하에서 채권의 ‘시효소멸’을 예외적이거나 비상적인 것이 아니라 한시성이라는 채권의 본질에 따른 당연하고 통상적인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법이 소멸시효와 시효중단 제도를 두고 있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시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하고 있는 제165조 제1항과 ‘청구’를 시효중단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제168조 제1호의 두 규정을 무한히 반복, 순환하면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채권을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견에 따르면 1년의 단기소멸시효에 해당하는 채권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으면 영구적으로 존속하는 채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우리 민법이 의도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라.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다수의견은 기판력과 관련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대법원은 기판력이라고 함은 기판력 있는 전소 판결의 소송물과 동일한 후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대법원 2001. 1. 16. 선고 2000다41349 판결 등 참조),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판결의 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7다23066 판결 등 참조) 하여,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동일한 소송제기는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의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민법 역시 채권에 대하여 ‘재판상 청구’라는 시효중단사유가 발생한 경우 그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시효가 새로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렇게 새로 시효가 진행된 채권에 대하여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재판상 청구’를 하여 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은 없다. 오히려 민법 제170조 제1항은 재판상의 청구가 부적법하여 각하된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재소는 이미 승소한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이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고, 더 이상의 시효중단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만족되지 않은 채권이 시효로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는 필요성을 유일한 근거로 하여, 승소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족되지 않은 채권이 시효로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소멸시효제도의 취지에 반한다. 이와 다른 전제에서 권리보호의 이익을 인정하려는 다수의견은 채권이 시효로 소멸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견이 말하는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시효완성까지 2년이 남은 시점인가, 1년이 남은 시점인가? 현재 재판실무에서 보듯이 판사마다 임박한 시점에 대한 판단을 달리한다면 법적 불안정성과 사법절차 비용만 증가하게 될 것이다. 또 다수의견에 따르면 시효완성이 임박하지 않은 경우에는 채권자가 시효중단이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확정판결의 기판력으로 인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고, 시효완성이 임박해지면 그 때 권리보호의 이익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판력은 시간이 경과한다고 해서 그 효력이 약해지거나 소멸하는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인정되는 판결의 효력이다. 이러한 기판력으로 인해 원래 인정되지 않던 재소의 권리보호 이익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인정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민사소송법상 이미 이행판결을 선고받아 유효한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는 원고에게 다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법적 이익은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이 제170조를 둠으로써 이러한 민사소송법의 원칙을 전제로 하여 적법한 재판상 청구만 시효중단사유로 삼은 이상, 승소의 확정판결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 기판력 때문에 재판상 청구는 다시 주장할 수 없는 시효중단사유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있다.
마. 민법 제168조에서 정한 시효중단사유는 언제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최고, 압류, 가압류나 승인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면 재판상 청구도 여러 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시효중단사유 중 승인은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사이므로 이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이와 달리 채무자의 의사에 기하지 않은 시효중단사유로서 재판상 청구, 압류, 가압류, 가처분은 소송행위이므로 적법한 소송행위인 경우에만 그 효력이 인정되어야 하고, 민법 역시 이를 제170조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다. 유효한 승소판결이 있다면 다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유효한 압류, 가압류, 가처분이 있다면 이와 동일한 신청을 중복하여 제기하는 것은 부적법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였으나 일부 회수에 그쳐 다른 재산에 대한 압류가 허용되는 것은, 일부임을 명시한 청구에 대해 판결이 확정된 이후 나머지 청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송법상 적법하게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는 소송법상의 행위가 아니므로 채권자가 반복하여 최고하는 것을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막을 수 없음은 당연하나, 민법은 제174조에서 6월 내에 재판상 청구 등을 한 경우에만 최고에 시효중단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민법은 제174조에서 최고를 아무리 여러 번 하더라도 시효중단의 효력을 반복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민법 제168조에서 정한 다른 시효중단사유와 재판상 청구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해 둔다.
바.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영구적으로 소멸하지 않는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을 부추겨 충분한 변제능력이 없는 경제적 약자가 견뎌야 할 채무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는 사회적 문제도 따른다.
다수의견을 따르게 되면, 채권자로 하여금 10년을 주기로 소송만 제기한다면 채권양도와 채무 상속 등으로 채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채권추심을 끊임없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결과를 낳는다. 장기 연체된 채무의 변제가능성이 미미한 점은 여러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변제받은 개인에게는 적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일지라도 이러한 이익과 10년을 주기로 소송을 반복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 채권추심으로 채무자들이 받게 될 고통까지도 합리적으로 비교형량할 필요성이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강제집행이 가능하지 않을 채권이라면 이를 소멸시켜 채권자로 하여금 재소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채무자에 대하여는 채권의 시효소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여 법적 불안을 제거하며, 부실채권의 전전양도 및 그에 따른 부당한 채권추심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킴으로써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필요도 있다.
또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허용되지 않더라도, 채권자는 기본적인 소멸시효기간에 재판상 청구로 인한 시효중단으로 새로 추가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을 합하면 최대 20년 또는 1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재산거래가 전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그 추적이 용이하고, 재산명시, 재산조회 등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재산을 알아볼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며, 채권자취소소송도 널리 이용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기간은 채권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만약 위 기간이 너무 짧아 채권자 보호가 소홀할 우려가 있다면, 이는 민법이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한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므로 입법적 해결을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원래 민법이 예정하고 있는 제도를 그 취지에 맞게 원칙대로 해석·적용하자는 것일 뿐 전에 없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악의적 채무자의 채무를 면제해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채권은 1996. 7.경 발생하였다. 원고는 1996년 소송을 제기하여 그 승소판결이 확정되었고, 2007년 두 번째 소송을 제기하여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 소송은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된 때로부터 다시 10년이 경과될 무렵인 2016년 제기된 세 번째 소송이다. 최초 채권발생 시로부터 20년이 더 지났다. 다시 판결을 받아 시효를 10년 더 연장시킨다고 해서 피고로부터 과거 20년간 받지 못했던 원금 5,263,018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네 번째 소송이 제기되고, 어쩌면 피고의 상속인을 상대로 하여 그 이후 10년마다 계속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10년마다 소송만 제기하면 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니, 원고로서는 사실상 변제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규정 위반이나 감사 등의 문제로 비용이 들더라도 10년마다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 처하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이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사. 이 사건의 원고는 이미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이행권고결정을 확정받았고, 그로부터 10년이 경과할 무렵 시효를 중단하기 위해 다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 사건 소송은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된 전소와 동일한 소송이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그럼에도 본안 판단에 나아가 원고 청구를 인용한 원심판단에는 소멸시효와 시효중단,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권리보호의 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취지를 밝힌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
가. 반대의견은 확정판결을 받으면 이후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전혀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판례(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5다74764 판결 등)는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라고 반복하여 판시하여 왔다. 반대의견은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위 판례 법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허용이 소멸시효제도의 취지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1) 우리 민법상 소멸시효는 ‘채무자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채권을 그대로 소멸시켜 채무자를 면책시키는(반대의견 나.항 주장)’ 제도가 아니라 소멸시효 중단을 인정하여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익형량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이 사건은 판결로 확정되기까지 한 채무가 이행되지 않고 있을 때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로서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려는 소송이다.
반대의견은 민법 제168조에 정하는 소멸시효 중단사유 중 승인(제3호)은 여러 번 할 수 있지만 청구(제1호) 중에서도 재판상 청구와 압류, 가압류, 가처분(제2호)의 신청은, 선행하는 확정판결 또는 선행하는 압류 등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중복하여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반대의견 마.항). 그러나 반대의견도 전제하는 것처럼, 민법상 소멸시효제도는 민법 총칙편 제7장의 규정에 따른다. 민법은 소멸시효기간, 중단사유와 효력에 관하여 규정할 뿐 중단사유를 행사하는 횟수에 제한을 두는 규정이 없다. 오히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소멸시효를 여러 번 중단시킬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판례도 이를 전제로 확립되어 있다.
소멸시효의 중단은 채권자의 권리 행사에 해당한다. 법령상 근거 없이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법문상 동일하게 규정된 소멸시효 중단사유 중 일부인 재판상 청구에 대하여만 행사범위를 제한하는 해석도 더욱 그러하다.
(2) 채무자 소유의 재산을 유효하게 압류하였는데 집행 결과 채권 일부의 회수에 그치고 시간이 경과한 경우, 채권자는 그 채무자의 다른 재산을 압류함으로써 다시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다. 이러한 권리실현의 도모가 금지되지 않는다.
채무자에게 이행을 최고하였으나 임의이행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면 채권자는 다시 이행을 최고하여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최고는 6월 내에 재판상의 청구 등을 하지 아니하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74조라는 명문의 제한을 받게 되어, 최고를 여러 번 거듭하다가 재판상 청구 등을 한 경우에 있어서의 시효중단의 효력은 재판상 청구 등을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이로부터 소급하여 6월 이내에 한 최고 시에 발생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대법원 1987. 12. 22. 선고 87다카2337 판결 참조). 민법상 시효중단사유인 ‘청구’가 소송법상 행위인지 여부에 따라 그 횟수 제한 여부가 달리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실무상 가압류 등에서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재신청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가압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압류에 의한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가압류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계속되므로(대법원 2000. 4. 25. 선고 2000다11102 판결 등 참조)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가압류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 반대의견 바.항의 내용 중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으로 경제적 약자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취지의 부분, ‘끊임없는 추심, 채무상속 등으로 인한 채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는 취지의 부분은 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이는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다른 제도를 이용하거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권리보호의 이익의 인정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단지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재소 자체를 불허함으로써 채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1) 지급불능 상태의 채무자가 그 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원칙적인 방법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생이나 파산절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선량한 개인도 경제생활 중 의도치 않게 과도한 채무부담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이 경우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하여 채무의 일부만 변제하고 나머지를 탕감받을 수 있고,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에는 개인파산절차를 통해 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다수 채권자 사이의 형평까지도 도모할 수 있다. 법원은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진 개인들이 위와 같은 절차를 이용하여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채무를 청산하고 경제적 재기와 갱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민법은 사망한 부모의 채무 상속과 관련하여 상속의 포기나 한정승인제도를 마련하여 두고 있다. 법원은 빚의 대물림으로 젊은이가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하여야 한다.
한편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하 ‘채권추심법’이라 한다) 등은 대부업자 등 채권추심자의 불법적 채권추심행위를 방지하여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채권추심법은 위계·위력을 사용하는 추심행위,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추심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이에 대한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다(채권추심법 제9조, 제15조 참조). 법원은 채권추심자의 불법적 채권추심행위에 대하여 엄정한 형벌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나아가 국가가 채권추심권리를 남용하거나 불법적인 채권추심행위를 하는 채권추심자로부터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채권추심법 제3조 참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국가에게 무거운 책무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확정판결로 부담하게 된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선량한 의사를 가진 채무자에게는, 비록 자력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더라도, 합리적인 절차와 범위에서만 채무 이행을 독려하고 채권자의 과도한 압박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 자체를 불허함으로써, 확정판결로 권리를 인정받고도 실현하지 못하는 선량한 채권자의 권리 행사를 거절하고, 도리어 확정판결로 의무를 부담하고도 때로는 재산을 은닉하고 채무 이행을 거부하는 채무자에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 대법원이 채무자를 보호하려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요건으로 기존 판례가 제시하는 권리보호의 이익의 인정 요건을 구체적인 사건마다 충실히 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미 사실심 법관들은 현명하게도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 사건을 재판하면서 소의 이익 판단 요건인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구체적인 심리를 통해 보호가 필요한 채무자를 구제하고 있다. 반대의견은 이를 두고 ‘판사마다 판단을 달리하여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한다.’고 비난하지만, 권리보호의 이익의 인정 여부에 있어서는 개별 사건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물론 앞으로 대법원이 그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가다듬어 판시함으로써 재판의 예측가능성을 부여하는 데에 힘써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라. 이 사건으로 돌아와 살펴본다.
(1) 원고는 보증보험, 신용보험 등 보험업법상의 사업과 이에 따르는 채권추심업무 등을 영업목적으로 하며, 특히 각종 상거래에 필요한 보증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보증기관이다. 이 사건 자동차 할부판매를 비롯하여 수많은 거래에 대한 보증보험증권을 발급하고 이후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고 법령과 약정에 따라 지급보험금을 관계인들로부터 회수하는 것이 원고의 본질적 영업이다.
원고는 앞서 본 1차 소송(서울지방법원 96가소439231)의 승소 확정판결을 받고 피고 소유의 토지에 대하여 강제경매절차를 진행하였으나 선순위채권자들의 존재로 인하여 채권의 6% 정도만을 배당받음에 그쳤다. 원고는 1차 소송으로부터 10년이 되어가자 2007년 2차 소송을 제기하였고 피고가 소장을 다투지 않아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되었다. 원고는 2013년 피고의 재산인 보험금청구권을 발견하여 압류·추심명령을 받았으나 피고가 노령과 건강악화를 주장하는 등 민원을 제기하자 압류를 해지하였다. 원고는 2차 소송으로부터 다시 10년이 되어가자 2016년 이 사건 시효중단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그러자 피고는 원고가 제출한 연대보증 관련 서류는 위조된 문서라는, 1차 소송 승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의하여 차단된 주장을 제1심부터 상고이유서에 이르기까지 되풀이하고 있다.
(2) 이러한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반대의견이 주장하는 것처럼 회사 업무의 이행으로서 하는 소제기를 금지시켜야 하거나, 집행권원을 소멸시켜야 할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 소는 위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된 때로부터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여 제기된 것으로서, 소의 이익이 있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7.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재연의 보충의견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하기 위하여 다시 소를 제기하는 것을 부정하는 반대의견은 우리 법체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데도 소멸시효에 걸린다고 보는 것은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맞지 않고 민법의 규정에 정면으로 반한다.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일정한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에 권리의 소멸이라는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제도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권리의 불행사라는 사실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채권은 일정한 기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민법 제162조, 제163조, 제164조). 단순히 일정한 기간이 지남으로써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 시효완성의 또 하나의 요건이다. 소멸시효의 기초가 되는 권리 불행사와 배치되는 사실이 발생하면 소멸시효의 진행은 중단된다. 민법 제168조는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 청구(제1호),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제2호), 승인(제3호)을 들고 있다. 이들 사유는 모두 소멸시효의 기초가 되는 권리 불행사의 사실상태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중단사유로 정하여진 것이다.
반대의견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하여는 10년의 기간 동안 권리 불행사의 상태가 계속되었는지가 아니라 단순히 10년이라는 기간이 지났는지에 따라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소멸시효 완성의 두 가지 요건 중 ‘일정한 기간 경과’에만 주목하고 ‘권리의 불행사’라는 또 다른 요건을 간과한 것으로 찬성할 수 없다.
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것은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반하지 않는다.
(1) 민사소송법은 제216조와 제218조에서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와 주관적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기판력의 구체적 의미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함이 없어 해석에 맡겨져 있다. 기판력은 확정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으로서, 일반적으로 ‘소송에서 다투어지고 있는 권리나 법률관계의 존부가 동일한 당사자 사이의 전소에서 이미 다투어져 이에 관한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에 당사자는 이에 저촉되는 주장을 할 수 없고, 법원도 이에 저촉되는 판단을 할 수 없다.’(대법원 1989. 10. 10. 선고 89누1308 판결 참조)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소 판결의 기판력으로 말미암아 전소 판결과 소송물이 동일한 후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법률에는 아무런 정함이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일반적인 ‘소의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대법원이 줄곧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판결의 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7다23066 판결 등 참조)고 판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소 판결과 소송물이 동일한 후소는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동일한 내용으로 선고될 수밖에 없어 굳이 이를 인정할 실익이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후소를 제기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라면 후소 제기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기판력의 작용으로 전소와 동일한 후소 제기가 금지되고 이를 허용하려면 명문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나, 그렇게 보아야 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 이 문제는 후소 제기가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는지에 따라 해결하면 된다.
(2) 위에서 보았듯이 기판력은 전소와 후소 사이의 모순되는 결론을 피하고 그로써 불필요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정되는 것이다. 후소 제기가 필요하고 전소와 모순되는 결론이 발생하는 경우도 아니라면 전소 판결의 기판력을 이유로 후소 제기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는 그 전형적인 경우이다.
채권자가 확정판결 등을 받고도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경위는 실로 다양하다. 채무자의 소재가 불명이거나 채무자의 재산 은닉 등으로 재산을 찾지 못한 경우와 같이 채권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확정판결에 따른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하도록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한 경우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판상 청구’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전소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다시 동일한 후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은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채권자의 권리보호 이익을 부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권리가 있으면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소멸시효제도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제도이다. 기본적인 사법질서에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채권자’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보다 당연히 더 보호받아야 한다. 기판력 제도를 이용하여 권리의 보호를 막는다면, 이는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산권 보장 조항의 취지나 기판력 제도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
다.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서 ‘재판상 청구’가 1회로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
(1) 민법은 제165조 제1항에서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단기의 소멸시효에 해당한 것이라도 그 소멸시효기간을 10년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168조에서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 ‘① 청구, ② 압류 또는 가압류·가처분, ③ 승인’의 3가지를 정하고 있으며, 그 밖에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관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재소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다른 시효중단사유와 마찬가지로, ‘재판상 청구’도 그 횟수 제한이 없다. 이 문제는 위에서 본 것처럼 전소 판결의 기판력과 관련하여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는지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2) 반대의견은 ‘상대적 권리인 채권은 한시성을 기본적 성질로 하고 있으므로 채무자로부터 더 이상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권리를 소멸시켜야 하며 그것이 소멸시효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나, 이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채권은 채무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 특정의 물건을 직접 지배하여 이익을 얻는 배타적 권리로서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 물권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렇다고 한시성을 채권이 물권과 구분되는 특질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소유권 이외의 물권 역시 기간만 다를 뿐 채권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에 걸리고(민법 제162조 제2항), 소유권도 취득시효 완성에 따라 소멸할 수 있다.
또한 채무자로부터 ‘협력이나 이행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우’ 채권이 소멸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의 전제 역시 타당하지 않다.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채무 이행에 관하여 협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채무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고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에 기초하여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국가로서는 그 절차를 통해 채권자의 권리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다. 채권의 성질상 채무자의 자발적인 이행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이행을 강제할 수 없는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지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별도의 제한이 없다면 법은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 채권이 특정인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 상대적 권리라고 해서 ‘판결로 확정된 채무라도 변제하지 않고 10년만 지나면 채무가 소멸하여 면책될 수 있다.’는 취지의 해석론은 정당화될 수 없다.
(3)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하여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채권보다 그 보호를 약화시킬 이유가 없다.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이상 어느 경우에나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대의견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해서는 재판상 청구로 인한 시효중단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채권에 대해 재판상 청구로 인한 시효중단 규정이 적용되는 것과 비교하여 균형이 맞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지 재판상 청구가 있으면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중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도 반대의견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해서는 재판상 청구를 통한 시효중단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부당하다.
라.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한 재소를 허용하더라도, 반대의견이 그 근거의 하나로 들고 있는 민법 제184조 제2항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는 없다.
민법 제184조 제2항은 “소멸시효는 법률행위에 의하여 이를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할 수 없으나 이를 단축 또는 경감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는 행위자가 의욕한 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법률행위를 통해 소멸시효를 배제, 연장하거나 가중할 수 없도록 법률행위 자유의 원칙을 수정한 것이다.
단기의 소멸시효에 해당하는 채권이라도 판결에 의하여 확정되면 소멸시효기간을 10년으로 한 것은 민법 제165조 제1항에 따른 효과일 뿐이므로, 민법 제184조 제2항에서 금지하는 법률행위에 의한 소멸시효의 배제·연장·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나아가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 재판상의 청구는 법률행위도 아니므로, 민법 제184조 제2항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는 전혀 없다.
마. 우리 민법에서는 일반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으로 동일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일반채권에 비하여 장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다. 독일 민법은 일반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3년으로 하면서(제195조)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30년으로 정하고 있다(제197조 제1항). 프랑스는 일반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5년으로 하되(프랑스 민법 제2224조), 판결로 확정된 권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다(프랑스 민사집행법 제111-4조). 유럽 각국의 계약법을 통일하기 위하여 유럽계약법위원회가 발표한 유럽계약법원칙(PECL)은 채권의 일반적인 시효기간을 3년으로 하면서(제14:201조)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10년으로 정하고 있다(제14:202조 제1항). 이처럼 판결이 확정된 채권에 대해 장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는 나라 등에서도 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하기 위한 재소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또한 재판상 청구를 시효중단사유가 아니라 당초 진행하던 시효기간의 정지사유로 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재판상 청구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면 판결이 확정된 채권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에 재판상 청구를 시효기간의 정지사유로 정한 경우와 중단사유로 정한 경우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
판결로 확정된 채권은 일반적인 채권과 달리 시간의 경과에 따라 채권의 존부나 액수가 불확실하게 되는 위험이 없다. 판결이 확정된 채권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채권과 마찬가지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하기 위한 재소까지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채권자가 그 존재가 분명한 채권의 이행을 명확하게 요구하고 채무자도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채권자에게 소멸시효 완성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주는 것이 정의관념에도 부합한다.
바. 민사법체계는 빚이 많은 채무자를 위하여 도산제도를 통해 갚을 수 없는 채무로부터 벗어나는 방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반대의견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할 경우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가 영원히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됨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소멸시효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모든 채권자가 경제적 강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채무자가 경제적 약자인 것도 아니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실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되면 그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권리의 소멸이라는 법률효과를 인정하는 제도일 뿐이다. 채권자를 강자로, 채무자를 약자로 구별하여 이른바 약자 보호 논리를 소멸시효의 운용에 끌어들이는 것은 소멸시효제도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
민사법체계에서 과중한 채무 문제는 소멸시효제도를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도산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채무자는 도산제도를 통해 갚을 수 없는 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민법 시행 직후 파산법, 화의법, 회사정리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2006. 4. 1.부터는 위 법률들이 폐지되고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고 이후 개인 도산제도도 점차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개인이라 하더라도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채무자가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여 그 채무를 지지 않거나 한정승인을 통해 피상속인의 재산을 한도로 책임을 지는 제도도 있다. 채무자에게는 이러한 도산제도 등을 이용하여 과중한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금지하는 것으로 채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다.
사.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할 경우 이중집행의 위험, 재소에 따른 불필요한 소송 부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 채권추심 가능성,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형식과 소송비용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시효중단을 목적으로 한 소송절차에서 공격·방어 방법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채권추심자가 권리를 남용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채권추심을 할 경우 채권추심법 등에 따라 채무자 또는 관계인의 보호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 제기일 수는 있어도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 금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채권자가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여 확정판결을 받아놓았다는 이유로 그때부터는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하더라도 10년이 지나면 시효연장을 위한 재소가 금지되어 채권이 소멸한다는 반대의견의 결론이 과연 국민 일반의 법감정에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결론이 국민의 경제생활에 미칠 영향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8.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
가. 민법 제168조 제1호는 재판상 청구, 즉 소의 제기를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로 규정하고, 제165조 제1항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단기의 소멸시효에 해당한 것이라도 그 소멸시효는 10년으로 한다.”라고 규정하며, 제178조 제1항은 “시효가 중단된 때에는 중단까지에 경과한 시효기간은 이를 산입하지 아니하고 중단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새로이 진행한다.”라고 규정하는 한편, 제2항은 “재판상의 청구로 인하여 중단한 시효는 전항의 규정에 의하여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새로이 진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을 전제로 다수의견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새로이 진행한 10년의 시효기간이 경과하더라도 그 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시효중단을 위한 소를 제기하면 위 규정에 의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반복하여 생겨난다는 것이고, 반대의견은 이러한 해석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에 대하여 영구히 소멸하지 않는 권리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어서 채권의 성질은 물론 시효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새로이 진행한 10년의 시효기간이 경과하더라도 그 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시효중단을 위한 소를 제기하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반복하여 생겨나는지에 관하여 민법은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결국 해석의 영역에 위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과 그에 대한 각 보충의견(이하 ‘다수의견’이라고만 한다)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의 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시효중단을 위한 소를 제기하였다면 채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분명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므로 소멸시효 완성의 효력이 인정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한다. 아울러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그 존부와 범위가 이미 명확하게 확정되어 있는 결과 시간의 경과로 채권의 존부와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더 이상 긍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 권리의 지속적인 실현을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은 시효제도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을 아무런 제한 없이 고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반드시 당연하거나 정당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반대의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민법의 불가피한 해석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 ‘유럽계약법원칙 제3편’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의 시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하는 한편(그 시효기간의 기산점에 관하여는 우리 민법 제178조 제2항과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강제집행의 시도나 승인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에 관한 시효기간의 새로운 진행사유로 인정하면서도 재판상 청구는 당초 진행하던 시효기간의 정지사유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취지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민법의 내용으로 수용되었거나 수용될 것이다.
이와 같은 ‘유럽계약법원칙’의 태도는 채권의 실효적인 실현이 예상되는 사유라고 볼 수 있는 강제집행의 시도나 승인의 경우에는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에 관한 시효기간의 새로운 진행사유로 인정하지만, 그러한 사유라고 볼 수 없는 재판상 청구의 경우에는 시효기간의 새로운 진행사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전적으로 반대의견에 부합하는 관점이다.
결론적으로 소멸시효제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힘을 얻고 있으며, ‘권리의 불행사’나 ‘시간의 경과로 인한 채권의 존부나 범위 확정의 어려움’이라는 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관한 전통적인 관점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다수의견이 내세우는 근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반대의견이 더욱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고영한 김창석 김신(주심) 김소영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민유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