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22년 시월 끝날. 거창 와서 산지도 24년째. 거창 읍내에서 멀찍이 벗어난 이 동네에 집 짓고 옮겨 산지도 20년. 퇴직한지 6년째.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직장을 아홉 군데 옮겨 타고, 늦바람 나서 미국 공부도 댕겨 오고, 아침 눈만 뜨면 학교나 직장으로 달음질 쳐야했던 숨 가쁜 시간을 벗어나 24시간을 오롯이 내가 꾸려야 하는 백수 신분. 이제 엔간히 적응이 되었다. 이승 떠나기 전 치매 없는 건강 여생이 몇 년쯤 남았을까?
아침 너 댓 시에 일어난다. 늘상 하는 아침 루틴이 있다. 컴퓨터를 켠다. 유튜브에서 ‘음악’ 선택. 아침에는 모짤트다. 2층 작은 거실을 둘러싼 9.2 채널 스피커(일반 스피커 9개, 저음 스피커 둘)가 쓸 만하다. 아래층 아내가 일어나는 기척이 있기까지 조용조용 튼다. 찻물을 올린다. 그 다음은 구글이다. 화면 상단 작업표시줄에 첫 번째로 표시된 기상청 홈피에 들어가 오늘의 천기를 살핀다. 요즘 같으면 기온을 체크하여 아침에 출근할 아내의 차량 전면 유리창이 서리로 얼었는지 여부를 본다. 얼었다면 출근 전 미리 나가서 긁어놔야 한다. 작업표시줄 두 번째는 ‘네이버 야구’다. 올해 들어 NC 성적이 바닥이라 실황 중계 직관은 포기하고 그 다음날 뜨는 전날 경기 하이라이트를 본다. 작업표시줄 세 번째는 ‘네이버 뉴스’다. 하루 첫 시간을 지저분한 소식으로 망치기 싫어 한겨레, JTBC, MBC, 오마이뉴스 뉴스만 선택해 놓았다. 철저히 진보 쪽, 확증편향이다. 제목으로 구미에 맞는 뉴스만 클릭해 본다. 이 뉴스 홈피 상단에 ‘오피니언’이 있다. 당일 유수 언론사의 칼럼이 주루룩 뜬다. 대개 백 이 삼십 개인데 이것도 제목으로 선별하여 읽는다. 이때쯤 녹차를 두세 잔 비운다.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연다. 날이 밝았다. 장애물 없이 180도 전면에 펼쳐진 들판, 황강, 솟메, 흐르메, 멀리 달메, 떡갈메의 안개, 측광으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에 물드는 하늘의 구름과 노을을 감상한다. 이른바 '관천문 찰지리(觀天文 察地理)'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베란다 왼쪽으로 60m쯤 떨어져 거의 베란다 높이와 비슷하게 전봇대가 있다. 딱 이 시간쯤 이 전봇대에 까치가 날아온다. 한 마리가 먼저 와 날개를 굼질움질, 꼬리를 간들간들, 머리를 갸웃갸웃, 따로따로 기민하게 움직이며 깟깟깟 상큼 쾌활한 목청을 돋우어 운다. 얼마 지 않아 또 한 마리가 날아와 같은 전봇대 줄에 앉아 중창, 교창을 한다. 얼마지 않아 세 번째 까치가 날아 온다. 나란히 앉아 삼중창으로 온 마을의 아침을 투명하게 깨운다. 세 녀석이 모여 간밤의 안부와 출석을 확인한 잠시 후 함께 같은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그들이 어우러지며 흩어지며 비행하는 창공, 들판, 바람결...... 매일 아침 그들은 그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온 녀석이 울음소리로 다음, 그 다음 친구를 부르는 것을 보면 세 녀석이 밤에 깃드는 숙소가 따로인 것 같다. 우연일까? 그 전봇대 바로 옆에는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인 삼우당(三友堂)이 있다. 백 수십 년 전 동래 정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 사셨던 금천 정시수, 처사 정시웅, 충의위 정시승 3형제의 각별한 우의와 학덕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이 건물을 지었다 하는데, 그렇다면, 이 까치 세 마리가 그분들의 유혼은 아닐랑가? 그분들은 이미 아니 계시니 당호도 삼작당(三鵲堂)으로 바꿔야 하나?
https://youtu.be/DL3acCD-kxM
첫댓글 한 마디 더. 어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삼우당 지붕 위, 용마루 왼쪽 끝 아래, 내림마루와 처마마루가 만나는 지점에서 타다닥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전기 누전에 의한 현상이 분명하였다. 도지정 문화재가 불에 탈 수도 있겠구나! 다음날 당장 군청 문화재 관리 담당에게 전화를 했다. 현장 확인을 해 보겠단다. 그후 이렇다 저렇다 연락이 없었다. 며칠 뒤 마을 산책을 하고 있는데 삼우당 행랑채 위에다 임시 지붕을 설치하고 기와지붕을 수리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가서 따지듯 물었다.
"내가 삼우당 본채 지붕위에 전기 합선이 되는 걸 신고한 사람인데 행랑채 수리는 왜 합니까?"
"아, 예. 전기 점검과 보수는 끝냈고예, 와서 보니 행랑채도 손을 봐야 해서 추가 작업을 하고 있심니더."
부자 나라에 사는 조건도 조건이지만, 투철한 시민의식, 문화재 보호 정신, 애향정신이 이렇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