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 강원도 여행 제2탄
(방아다리 전나무 숲길-월정사 전나무 숲길)
첩첩한 오지에 펼쳐진 산과 강의 공교한 조화의 방법 앞에서, 도회의 찌든 공기와 살풍경에 길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산하가 이토록 빼어난 장소였군’ 하는 감상의 부호를 추스르게 마련입니다. 평창은 사람의 심미감에 젖어드는 ‘조선 토종의 깨끗한 세계’가 무진장 펼쳐지는 곳입니다.(박원식 · ‘수려한 산고을, 순후한 사람들’) 또 시인 고은(高銀)은 말했습니다. 평창 땅 오대산록의 울울한 수음(樹陰), 그 유려하고 웅장한 오대 육체의 깊음을 모조리 섭렵한다는 일은 사람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
그곳은 깊은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 땅의 영지(靈地)인 것이다. 그곳에 가면 아무리 백치라도 지혜를 만나고, 아무리 욕망이 많은 사람이라도 욕망을 죽인 평화를 만날 수 있다.
그렇습니다. 평창의 매력을 한 마디로 말하면 ‘순수’입니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연마저 산골 그 자체로 순수합니다.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은 평창 땅을 두고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석 자에 불과하다’고 지형의 척박함을 한탄했지만 평창은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 해발 700m에 가까워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평창의 동·서·북 3면은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경사진 지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산준령들 사이에 있다 보니 유달리 평창, 봉평, 용평, 장평, 후평, 평촌 등 ‘평(平)’자 들어가는 지명이 많습니다. 평평(平平)한 넓은 땅을 간절히 원해서 지은 지명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방아다리 약수터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있습니다. 조선의 숙종조 이래로 알려진 역사 깊은 약수터입니다. 약수에는 탄산, 철분 등 30여 종의 무기질이 들어있는데, 특히 많이 함유된 철분은 위장병, 빈혈증, 신경통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서쪽에 계방산(1,577m)이 있으며, 약수터는 높이 1,120m 되는 산중턱에 있습니다. 조선 숙종 때 발견되었다고 전하며, 신 약수터와 구 약수터 2곳에서 많은 약수가 솟아납니다. 약수에는 탄산, 철 이온 등 32종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위장병·신경통·피부병에 특효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위에 이승복 반공기념관이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던 아낙네가 바위 한가운데 움푹 팬 곳에 곡식을 넣고 방아를 찧는데 바위가 갈라지면서 약수가 솟아 나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경상도 태생의 한 노인이 신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험이 없어 거의 삶을 포기하고 지내다가 이곳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이 성성한 풍채 좋은 노인이 나타나므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 하니, ‘네가 누워있는 자리를 파보아라”며 사라졌습니다. 땅을 파헤치니 맑은 물이 솟아올라 마셨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원기가 살아나며 병이 씻은 듯 나아 산신단을 모셔 크게 제사를 지냈다 합니다.
방아다리 전나무숲길
평창 오대산 국립공원 내 방아다리 약수터 일대의 전나무숲입니다. 주변에 전나무 1만 그루를 비롯하여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주목나무 등 70여 종의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산림욕에 좋으며, 경관이 좋아 여름 한철 피서를 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입구부터 약수터로 가는 약 1km 구간은 전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전나무 바늘잎에서는 상큼한 향이 뿜어져 나옵니다. 식물성 살균물질인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숲길을 가득 채워 주어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식물학자 이창복 선생은 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고 하여 ‘젖나무’라 불렀다고 합니다.
6.25전쟁 직후까지 황폐했던 이곳의 2만 평방미터를 가득 메운 울창한 숲으로 만든 1대 숲지기는 김익로 전 대제학원 이사장입니다. 1957년부터 50년에 걸쳐 나무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숲을 색다른 시선으로 소개하고 체험하는 KBS TV의 힐링 다큐 ‘나무야 나무야’의 제1편 ‘아버지의 선물, 평창 전나무 숲’에서 배우 김규리가 스토리 텔러로 참여하여 숲이 주는 ‘치유와 위로, 감동, 매력’을 시청자들과 함께 나눈 바 있습니다. 금강소나무처럼 곧게 위로 뻗은 자태와 숲에 가득한 피톤치드는 혹서에 시달리는 몸과 마음을 달래 줍니다.(총 1.8km, 40분 소요)
월정사(月精寺)
전나무 숲길에 잇닿은 월정사에 들어서면 웅장한 적광전(寂光殿) 앞에 팔각구층석탑이 당장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듯 날렵한 맵시를 자랑합니다.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에서 수도를 마친 뒤 부처님의 석존사리를 모시고 돌아온 자장율사는 오대산 비로봉 아래에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창건했습니다. 2년 뒤 동대 만월산 아래에 절을 짓고 경내에 팔각구층석탑을 건립하여 그 안에 부처님 진신사리 37과를 봉안하였습니다. 만월산에 떠오르는 보름달빛이 유난히 밝아 절 이름을 ‘月精’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는 세조 대왕이 문수 동자를 친견한 뒤 병이 나았고 나옹선사,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북방 제일의 수행도량입니다.
월정사의 상징인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다각다층석탑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전체 높이가 15.2m에 달합니다. 조성 연대는 대략 10-11세기로 추정되고 탑의 양식은 고구려 풍을 띠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다각다층석탑은 평면 형태가 팔각 또는 육각이고 층수는 5층, 7층, 9층, 13층으로 층수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모를 많이 주고 층수를 많게 함으로써 방형석탑에 비해 수직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각다층석탑은 평양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으로는 묘향산, 남동쪽으로는 강원도 평창 지방에 주로 분포합니다. 적광전 앞 넓은 뜰 중앙에 서 있는 팔각구층석탑은 국보 48호로 월정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문화재입니다.
6.25전쟁 당시 법당이 전소되면서 많은 열을 받아 법당 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던 것을 해체, 복원하였습니다. 1970년 석탑을 보수할 때 감실 안에서 불상과 사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팔각의 각 모서리에는 풍경이 걸려 있어 은은한 풍경소리가 들리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아합니다. 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이 두 손을 모아 쥐고 연꽃을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석조보살좌상은 강릉 한송사 터 석조보살상, 신복사 터 석조보살상과 함께 강원도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공양상입니다. 법화경에 나오는 ‘약왕(藥王)보살상’이라고도 하나 그 명칭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
월정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Km 정도가 장쾌하게 뻗은 1700여 그루의 전나무 숲길로, 그 아름다움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지정되었습니다. 일주문 안쪽으로 숲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전나무 숲은 월정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나무들의 평균 수령은 80년-. 최고령의 나무들은 500살쯤 되었다 합니다.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제 몸뚱이를 자르고 바닥에 드러누운 노거수들도 눈에 띕니다. 이곳의 전나무들 중 가지 끝과 가지 끝 사이의 거리가 20여m에 이르는 거목 아홉 그루를 ‘아홉수’라 부르는데, 오대산의 전나무들은 이 아홉수의 종자가 퍼져서 성장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원래는 소나무가 울창하던 이곳이 전나무 숲이 된 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에게 공양을 하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고 전나무 9그루에게 대신 절을 지키게 했다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일주문에서 월정사 경내로 가는 길 입구 오른편 숲의 아홉 그루 전나무를 가리킵니다. 높이 20여m의 이 ‘아홉수’들이 이른바 월정사 전나무 숲의 ‘원조’인 것입니다. 17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1km가량 양편으로 늘어선 길을 이 아홉 그루의 후예들이 뒤덮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월정사 전나무 숲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아홉수’에서부터 시작할 일입니다. 수령은 대략 400-500년이며 키가 매우 큽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살갗에 와 닿는 청량감이 너무나 좋아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멋진 경험이 됩니다. 숲이 하도 울창해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으며 그 안락함과 상쾌함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입니다. 멋들어지게 솟아 있는 소나무를 보는 것이 강원도 여행의 백미라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 여행의 별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