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天障 천공 穿孔
삼일 이재영
“드르륵, 드르륵.”
전동 드릴의 예리한 비트(bit)가 딱딱한 콘크리트 천장을 파고든다.
시멘트 가루가 회색 눈송이가 되어 머리 위로 마구 쏟아져 내리고, 보안경 위에 쌓이는 가루가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천장에 수직으로 8파이 곱 60L, 지름 8mm 깊이 60mm의 구멍을 뚫는 천공작업을 하는 중이다.
묵직한 드릴을 양손으로 기관단총처럼 잡고, 수직으로 세워 서서히 위로 밀어 올리면, 양쪽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긴장하게 된다.
만약 콘크리트 속에 차돌멩이라도 박혀있다면, 아무리 강한 강철 비트라도 쨍 소리 내며 부러져 튕겨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공작업이 끝나면 뚫어 만든 구멍 속에 손가락 크기의 앵커볼트(anchor bolt)를 집어넣고 망치로 세게 때려 박는다.
그러면 구멍 속 볼트 끝의 원뿔형 웨지(wedge)에 힘이 가해져 볼트를 둘러싼 슬리브(sleeve)가 밀어 올려지면서 시멘트 속으로 파고들어 꽉 밀착되므로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된다.
등산할 때 바위에 박는 앵커볼트 작업도 이와 비슷하다.
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앵커볼트 나사에 주물로 만든 집게 모양의 클램프(clamp)를 끼우고 너트(nut)로 체결한다.
이 클램프 안쪽 옴폭한 홈에 동축케이블을 집어넣고 팽팽히 잡아당겨 볼트, 너트로 꽉 조여서 고착시키게 된다.
외경이 12mm인 통신용 동축케이블을 건물 내장재 마감 전에 천장에 붙들어 매어 포설하는 것이 이 천공작업의 목적이다.
신축 중인 건물의 내부라서 냉방시설이 있을 수 없고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늘은 져도 바람이 드나들지 않아 한여름엔 무척 덥다.
안전화를 신고 소매가 긴 작업복을 입은 채 머리에 헬멧 같은 안전모를 뒤집어썼으니, 간간이 설치된 선풍기 없이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3명이 동원되어 바퀴 달린 소형 사다리차인 리프트(Lift)를 운전해 건축도면의 ‘케이블 포설도’를 따라 움직이며, 케이블이 50m나 감긴 큰 롤(roll)도 함께 굴리고 간다.
거의 3m 간격으로 지정된 목표지점에 이르면 리프트를 안전하게 고정하고, 높이 3~5m의 천장에 오르내리면서 천공작업에 이어 케이블 포설 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 시작 전과 후에 원청업체의 현장사무소에 작업일지를 제출하고, 점심시간 1시간 외에 오전과 오후 중간쯤에 빵과 우유 같은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일당과 중식비, 리프트의 임대료와 기타 경비 등을 고려하면, 3명이 하루에 케이블 포설 50m 이상은 수행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게 되면 사장인 나라도 나서서 도와야 적자를 메울 수 있다.
여남은 명의 직원을 두고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영세업체를 운영하면서 신축건물에 장비를 납품 설치할 때 케이블 포설도 직접 하고 있다.
포설만 전문으로 하는 팀에게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주는 이윤만큼 우리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다.
회사 운영은 힘들지만,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면서 억지로라도 유지해 나가는 보람은 있다.
케이블 포설이 끝나고 건물 준공 직전에 통신장비 자체의 운용시험을 받게 되는데, 문제없이 통과되어 합격 사인을 받고 기성청구서를 올릴 때, 그동안의 모든 피로와 고달픔이 빗물에 씻기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새로운 의욕이 샘솟아 오른다.
3명 중 조장은 전문대학을 나온 직원이고 나머지 두 명은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대학생들인데 여름방학 중에 알바를 하고 있다.
“힘들지? 일은 할 만해?”
“예, 딱 좋은데요. 살 빼러 헬스장 안 가도 되고요. 하하.”
목에 두른 타월이 땀에 흠뻑 젖었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이들이 무척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이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졸업 후에 취직이 안 되어 제발 나한테 연락이라도 좀 왔으면 싶다.
[ 예전 영세업체 사장 시절의 이야기임. 노사관계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음 ]
첫댓글 세상에는 좋은 관계가 더 많지요.
땀흘려 하는 일들이 더 보람이 있는 거 같아요.
네, 윤슬님 감사합니다.
그럼요. 몸으로 땀흘려 뭔가 이뤄내는 보람이 얼마나 큰 데요.
노동자와 소통이 되는 좋은 사장님이셨네요.
올봄에 전기드릴을 하나 샀는데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설명서에는 자가 설치가 가능하다는 직수기 설치할 때도 기사 불렀어요.
네, 개동님 감사합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전자제품 고장나면 기사 불러야 합니다. ㅎ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무르는 일일지라도 나름대로 보람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장인 정신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화원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거의 적자 수준이면서도 종업원 생각에 억지로 지탱하는 사장도 많습니다.
역시 일은 땀흘려 성취한 보람이 더욱 달콤 한 것 같습니다.
좋은 사장님과 직원들이네요. 아무리 힘들고 보수가 적을지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충분히 버티며 할 수있지요. 부럽습니다.
네, 이응민 시인님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연매출 12억 정도의 작은 회사지만 진짜 가족같은 분위기였지요.
건강한 회사라면 사장과 직원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을거예요ㆍ직원 생각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요ㆍ작가님은 좋은 사장님이셨을 것 같습니다 ㆍ
네, 신이비 작가님 감사합니다.
그렇지요. 사장 개인의 욕심만 버리면 힘은 들어도 생산적인 회사를 운영할 수 있지요.
지난주에 촉석루 다녀왔습니다 ㆍ생각보다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ㆍ
아, 그러셨군요. 제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촉석루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한국 3대 누각이 평양 대동강 부벽루, 밀양 밀양강 영남루, 진주 남강 촉석루지요.
부벽루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영남루는 촉석루와 비교가 안됩니다. ㅎ
@삼일 이재영 네 ㆍ영남루도 가봐야겠네요ㆍ촉석루 야경도 근사했지만 이틀날 아침 촉석루에 올랐을 때 시원한 바람도 꽤 좋았습니다ㆍ왜 논개가 강물로 뛰어들었는지 알겠더라고 ㆍ
@신이비 신상현 네, 촉석루는 아주 좋은 누각입니다.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19살 논개가 기생이 아니고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인 줄은 아시죠.
진주교 교각위쪽에 금가락지 닮은 누렇고 큰 조형물이 있습니다. 논개가 빠지지 않게 여덟 손가락에 끼었던 반지를 의미하고, 8월8일을 '논개 가락지의 날'로 지정해서 행사를 치른다고 하네요.
@삼일 이재영 몰랐어요ㆍ좋은 사실을 알게됐습니다ㅡ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