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낳고
인간은 말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이 말을 가지고 의사를 교환하고 문화를 전달함으로써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이란, 날카로운 양날을 지닌 칼 같아서, 잘 쓰면 유익하기 짝이 없지만, 잘못 쓰면 큰 화를 불러오게 된다. 잘 쓰면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몸을 찍는 도끼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말의 기능은 따지고 보면, 그것을 쓰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기인한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가슴속에 지닌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고, 또 들은 것에 대하여는 자기의 생각을 거기에 덧붙이고 싶어 한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알고 있던, 관(冠)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발설하지 않고 평생 참으면서 감추어 오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죽을 때에 이르러, 절의 대밭 속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향하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것은, 인간이 가슴속의 생각을 얼마나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화다.
또 우리 속담에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거나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말 보태기를 좋아하는 우리 인간들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말 보태기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남의 흠집을 더 크게 부풀리는 것은 좋지 않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좀 더 재미있게 꾸미거나, 보다 유익하게 윤색하는 것은 굳이 나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좋게 꾸민 이야기 두어 가지를 보기로 하자.
포항시 운제산에 오어사(吾魚寺)란 절이 있다. 오어사는 원래 이름이 항하사(恒河寺)였는데, 오어사로 바뀌게 된 사연을 삼국유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느 날, 원효와 혜공 두 스님이 개울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은 뒤 바위 위에 똥 을 누었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그대의 똥은 내[吾] 고기[魚]이다.”하고 놀려댔다. 이 일로 인하여 절 이름을 오어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기에 덧보태진 새로운 전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신라 고승 원효와 혜공이 함께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었더니, 고기 두 마리가 나와서,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데서 오어사라는 이름이 생겼다.
또 이어서 이보다 좀 더 재미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생겨났다.
수도를 하던 원효와 혜공이 어느 날 절을 끼고 흐르는 계곡의 상류에 있는 반석에서 만 나, 그 동안 수도한 법력을 겨루게 됐다. 개천에서 노는 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고 그것 을 다시 살려내는 내기였다. 원효와 혜공은 같이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고는 개천에다 똑 같이 똥을 누었다. 그런데 개천에 떨어진 둘의 대변 중, 물고기로 변한 것은 한 마리뿐 이었다. 그 한 마리를 두고 서로 자기가 되살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내 고기’ 곧 오 어(吾魚)라 우기었다. 그래서 절 이름이 오어사로 바뀌었고, 그 고기를 놓아 준 곳이 바로 절 아래 있는 오어지(吾魚池)다.
이들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삼국유사에 실린 처음 이야기보다, 후대로 올수록 이야기는 더 길어지고 또 재미를 더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처음의 기록에는 두 사람이 단순히 고기를 잡아먹고 똥을 누었다고만 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똥이 물고기로 살아나고, 또 여기에 두 사람이 서로 내기를 겨루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불어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가 잘 아는 원효의 ‘해골 물’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석문임간록(石門林間錄)이라는 책에 실려 전하는 그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대략 이러하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불법(佛法)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로 가던 길에, 날이 저물어 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손으로 더듬으니, 마침 한 바가지의 물이 있어 마시니 그 맛이 한 량없이 좋았다. 그런데 날이 새고 나서 보니, 어젯밤에 먹은 물이 바가지에 담긴 물이 아 니라, 해 골에 고인 물이었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순간을 넘 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모든 현상은 외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달렸다는 이른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임간록보다 110여 년 전에 나온 송고승전 의상전(義湘傳)에는 이와는 좀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의상이 약관의 나이에, 원효 법사와 뜻을 같이하여 당을 향해 길을 나섰다. 중도에서 궂은비를 만나고 날이 어두워, 길가에 있는 땅굴 속으로 들어가서, 비바람을 피하여 잠을 잤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곳을 살펴보니, 땅굴이 아니라 무덤 속이었으며, 곁에 해골이 있었다.
하늘은 아직 개지 않고 비가 계속 내리며 땅도 질퍽해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으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게 되었다. 그날 밤에는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는 듯하여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이에 원효는 탄식하기를, ‘전 날 여기에서 잤을 적에는 땅굴이라 생각하고 자니 편안했는데, 오늘밤은 귀신의 집인 무덤에서 잠을 잔다고 생각하니, 기괴함이 심한 것이다. 곧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사상(事象)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므로 땅굴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여기서는 후대에 나온 임간록에 보이는, 해골 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땅굴이라고 여기고 잤을 때는 편안했는데, 무덤이라는 것을 알고 자니 귀신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덤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사실로 ‘곁에 해골이 있었다’는 말만 적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송고승전의 ‘해골’이 뒷날 임간록에는 ‘해골 물’을 마신 것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이야기 내용도 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내용이 바뀌게 된 연유는, 아마도 임간록의 저자 덕홍(德洪)이 모본(母本)의 송고승전보다 좀 더 흥미로운 내용으로 개작하고자 한 때문이라 생각된다.
저자의 그러한 의도는 매우 적중하여, 사실과는 달리 후세의 사람들에게 모두 그렇게 알도록 만들어 버리게끔 힘을 발휘하였다.
누가 보아도, 그냥 해골이 있었다는 이야기보다는 해골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에서 더 큰 흥미를 느끼게 한다. 원래의 내용을 바꾸고 보태고 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법의 이치를 더 한층 강화하고 승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앞의 오어사 전설도 뒷날의, 보태어 꾸민 이야기 덕분에 원효와 혜공의 종교적 신비성이 강화되고, 오어사의 이름도 더욱 친근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 바꾸기나 끼워 넣기는, 비록 사실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순수할 뿐만 아니라,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그것을 나무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개변(改變)이 이처럼 플러스적인 역할만 한다면 참으로 좋을 터인데, 대개의 경우, 자신의 비리를 덮거나 남을 해치는 데 이용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른바 국민의 공복이 된 사람이 허물을 저질러 놓고, 그 비행을 감추기 위하여 온갖 거짓말로 꾸며대는 것은 이제 일상으로 대하는 일이 되었다. 또 일반 국민이 보아도 뻔한 사실을 요리조리 꾸며대면서, 국면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낮도깨비들을 화면에서 마주하는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한 말 꾸미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한 사람을 건널수록 칭찬이 불어나고, 보태질수록 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그런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까?
첫댓글 저도 해골물로만 이야기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군요.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성철스님의 제자 원심 스님이 아주 자주 입에 담으시던 말이 일체유심조였습니다. 군생활 중 함께 기합(깍지 끼고 엎으려 뻗쳐 자세)을 받을 때였는데, 이분은 땅 흘리는 건 저와 같았는데,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더라구요. 기합 시간이 끝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기합 받는 동안 큰스님(성철) 모시고 큰절(해인사)에서 백련암을 왔다 갔다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그러면 얼굴이 찡그려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일체유심조의 듯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졸고를 관심 있게 봐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