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영도 '대평동 물회집' 골목'
눈뽈대 물회와 자리물회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여름철이 되면 계절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특별한 음식들을 만들어 먹곤 했다.
이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입맛도 찾는 등 두 가지의 여유를 만끽한 것이다.
특히 삼복이 다가오면 서로 보양음식을 권하며 같이 어울리는 것이 우리 민족의 예법 중에 하나였다.
그 대표적 음식으로 보신탕과 삼계탕이 널리 알려져 있고,그 뒤로 잉어와 자라를 고아 만든
용봉탕이나 민물장어,흑염소 요리 등도 손꼽히는 보양음식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 먹을거리 중에는 이 음식들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맛깔스러운 제철 음식들이 지방 곳곳마다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물을 재료로 한 독특한 음식들도 산재해 있다.
갓 잡은 제 철 생선을 쓱쓱 회를 떠서 먹는 것도 일품이겠으나,해물탕이나 생선맑은국 등의
탕류에 활전복이나 소라,생선살 등을 넣고 흰쌀에 쑨 해물죽이나 어죽 한 그릇이면,아무리 사나운 여름이라도
그냥 맥없이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보양식 한 그릇을 앞에 놓을 수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는
물회만한 제철음식도 없었을 듯싶다.
제주도의 여름에는 제주도민들의 사랑을 받는 여름철 대표음식이 한 가지 있다.
자리물회란 음식이 바로 그것이다.
여름철이면 제주 앞바다를 온통 뒤덮듯 떼를 지어 다니는 손바닥 크기의 자리돔으로 만든다.
요리 방법은 고기를 뼈째 얇게 썰어 파 고추 마늘 통깨와 함께 넣고,손으로 죽죽 찢은 상추나 깻잎 등을 더해
고추장과 버무리면 끝이다.
무더운 여름날 그 음식에 찬물 한 그릇을 부어 사발째 훌훌 들이켜듯 마시면 그 이상의 시원함은 없다고 한다.
동해 지방에도 이런 물회가 잘 발달해 있다.
하지만 재료로 쓰이는 어류는 자리돔 대신 동해에서 잘 잡히는 가자미나 오징어,한치 등인 점이 색다르다.
부산의 영도에도 물회집 골목이 있다.
영도다리를 건너 대평동의 영도 전화국 뒤편에 있는 30년 전통의 골목이다.
제주나 동해처럼 특정한 어류만을 취급하는 전문 골목이 아니라
여러 지방의 물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제주식 자리물회를 비롯하여,동해식 눈뽈대(속명:아까무스) 물회,한치 물회
그리고 잡어를 사용하는 잡어 물회 등 다양한 종류의 물회가 혼재해 있다.
1970년대부터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10여 곳 이상이 성업 중이다.
이곳의 터줏대감이자,3대째 물회집을 하고 있는 영도 물회집으로 들어선다.
이 곳은 눈뽈대 물회 전문이다.
눈뽈대는 살이 부드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선이다.
대접에 물회가 나오고,따듯한 밥 한 공기와 눈뽈대 맑은 탕이 나온다.
기본 반찬에 쌈 종류와 갈치젓도 자리를 같이한다.
우선 갈치젓 냄새가 확 입맛을 자극한다.
한 젓가락을 입에 넣어본다.
오랫동안 곰삭은 맛이 깊은 우물만큼 투명하고 깊다.
물회 대접을 앞으로 당겨온다.
눈뽈대 회와 무채,파,고추,마늘,통깨에다 참기름 몇 방울을 고소하게 떨어뜨려 넣는다.
양념은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으라고 식탁에 따로 준비돼 있다.
친절하게도 '맛있게 드시는 방법'이라며 수저통 위에 적어 놓은 요리 방식대로 설탕 한 숟갈,식초 두 숟갈,
그리고 고추장 한 숟갈을 차례대로 넣는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쓱쓱 비빈다.
눈뽈대 회가 고추장에 붉게 물든다.
바다를 유영하던 붉은 눈뽈대가 푸드득 튀어오를 것만 같다.
소주 한 잔에 물회 한 점을 입에 넣는다.
부드럽고 고소한 회 맛에 무채의 아삭거림이 참으로 조화롭다.
생선맑은국을 한입 떠먹는다.
눈뽈대 뼈로만 우려서인지 생선 잡내가 없으면서 뒷맛이 깔끔하다.
고소하고 시원한 맛이 해장국으로도 손색이 없다.
어느새 점심 반주로 소주 한 병이 동나고,남은 물회에 밥을 쓱쓱 비벼먹고 나니,
이 물회야말로 여름철 한 끼 끼니로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음식이란 생각이 든다.
잘 먹고 나서는데 이 곳 젊은 사장이 큰 비밀 하나 알려주듯 귀띔한다.
"물회는 고추장 맛입니데이…"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