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젠트리피케이션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고향의 오일장은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한 그야말로 축제였다. ‘떠돌이 약장수’의 호객 행위는 오일 마다 열리는 문화 공연이었다. 악기와 무희가 등장하고 각종 마술과 차력 시범이 펼쳐졌다. 원숭이와 뱀이 등장해 신기한 묘기도 행해졌다. “이거 한번 잡사 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애들은 가라.” 엉터리로 만든 조악한 약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팔리는 현장이었지만, 약의 효능과는 상관없이 구경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장터는 나눔과 친교는 물론 상호성(相互性)과 무상성(無償性)이 통용되는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장터 입구에서 ‘양약방’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장이 서면 가게 주위에 봇짐장수들이 좌판을 벌이도록 허락했다. 함께 식사하고 그들의 어린아이까지 집안에서 돌봐줬다. “장꾼들이 많아야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면 약을 사는 손님들도 많아진다. 야박하면 서로 죽는다. 함께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진 것 없고 배고픈 시절, 오일장에는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인심이 넘쳤다. 국밥과 풀빵(국화빵)은 기본이고 처음 접한 어묵과 짜장면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돈이 부족해도 국밥 한 그릇 후하게 말아주고 다음에 또 오라며 몇 개씩 더 얹어 주는 곳이 장터였다.
외식 사업가 백종원씨가 군청과 함께 지역 상생 프로젝트의 하나로 자신의 고향인 예산 전통시장을 새로 단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시장을 개발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상설시장을 현대화해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자 애초 예상을 넘어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길어지는 대기 시간과 주차난에 화장실 등 위생 시설 부족으로 방문객들이 발길을 돌리자, 한 달 동안 휴장을 하고 4월 초 다시 문을 열었다. 그동안 각종 민원을 해결하고 음식도 더욱 다양해졌지만,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었다.
‘둥지 내몰림’으로 표현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돼 본래 거주하던 저소득층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현상을 말한다. 예산 상설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건물주들이 기존 상인들에게 퇴거를 통보하고 주변 숙박업소와 상가들이 가격을 두 배 이상 올려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휴장 기간 백종원씨와 예산군의 노력으로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해소됐다. 지역에 주소를 둔 젊은이 등 구직자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제공되고,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음식재료로 공급되는 ‘로컬푸드’가 실현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사회적 불균형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의 수도권 편중으로 ‘민족소멸’, ‘지방소멸’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산업화로 사라지는 지역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1994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됐지만, 지역 활성화 정책은 모두 백약이 무효였다. 생색내기식 일회성 보조금 정책에 지역의 특색이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이고 일률적인 정책 시행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가톨릭의 평신도 영성운동인 포콜라레(마리아사업회)는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EoC)롤 지향한다. 기업가와 노동자, 경영자와 관리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양한 차원에서 생산과 이윤창출에 참여하고 함께 공동선을 추구하자는 운동이다.
전통 시장을 살리고 골목 상권을 지키는 것은 성공한 사업가의 개인적인 역량과 진정성만으론 한계가 있다. 상권의 주체는 상인이다. 정치인도 관청도 프랜차이즈 기업도 아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나눔과 상생을 추구해야 분배와 성장의 공유경제가 실현된다. 예산시장의 젠트리피케이션 갈등은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