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문고에 일이 있어 갔다가
근처에 있는 성곡미술관에도 들렀다.
광화문역 7번 출구 - 서대문 방향
- 구세군회관과 서대문 역사박물관 사잇길로 올라가면
성곡미술관이 있다.
성곡미술관까지 올라가는 길이 참 재미있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니까 무조건 재미있었다.
그래서 탐험하는 기분으로 사방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다보니 미술관이 나왔다.
이곳에서 박진화 화백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은 격조가 있었고 전시회 역시 품격이 있었다.
전시관 안으로 막 들어서는데 입구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박진화 화백이었다.
히야~~, 연락도 안 하고 왔는데 여기서 만나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걸음을 돌려서 "선생님" 하고 불렀더니 박화백이 반색을 한다.
" 미감 선생, 연락도 않고 왔소?
반갑소오~~~."
1층에는 박화백의 초기 작품(1990년대)부터 2000년 중반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록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물로 보니 반가웠다.
2층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대산리 박화백의 작업실에서 봤던
노인들의 얼굴을 그린 드로잉 작품들도 있었고
또 가장 최근작인 '무량화'도 있었다.
마무리 작업이 긑나지 않았을 때 봤는데
그때와 조금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안정된 느낌이랄까 하여튼 그랬다.
무량화는 아주 아주 큰 작품이다.
가로가 6미터에 세로가 2.7미터나 되는 대작이다.
농가 창고를 개조한 박화백의 작업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것 같았다.
겨울에도 작업하기에 애로가 많을 것 같았고
여름에는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 작업을 할 것 같았다.
지난번에 박진화 화백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대산리의 박진화 미술관을 찾았을 때
때마침 박화백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의 초대로 작업실에 들렀는네 그 더운 여름에 출입문을 꼭꼭 닫고 있지 뭔가.
"선생님, 왜 더운데 문을 다 닫고 계세요?"
"아, 더위보다 파리가 더 무서워요."
작업할 때 파리가 달라들면 일이 안 돼서 문을 다 닫고 있는다고 했다.
더우면 이마에 수건 한 장 두르고 윗옷도 훌렁 벗고 허리에도 수건 하나 두르고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땀이 눈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또 등에서 흐르는 땀도 허리에 두른 수건 덕분에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들은 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그야말로 혼을 바쳐서 나온 작품들이다.
작업 노트들을 보면 박화백이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을 대했는 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길을 수십 년 걸었으니
그 길에서는 대가가 아니 될 수 없으리라.
천천히 그림을 둘러보고 전시장 밖으로 나왔다.
성곡미술관의 야외 전시장은 고즈넉해서 마치 심산유곡에 들어온 듯 했다.
도심의 한 복판에 그렇게 조용하고 호젓한 곳이 있다니 놀라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통인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술까지 한 잔 했다.
박화백 덕분에 서울 서촌을 살짝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안 그래도 요즘 나는 서촌이 궁금했는데, 덕분에 서촌의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