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5일 새벽 6시 광명역에서 일행 14명이 모였습니다. 그중엔 갈치낚시 유경험자도 있었으나 대여섯명은 갈치에 관한 초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는 말을 듣자하면 ‘그들’은 어부 뺨치는 실력을 가진 듯 보였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기실 ‘그들’은, 지난 이십여년 동안 붕어낚수에서 부터 서해침선에 이르기 까지 상당한 장르의 낚시를 두루 섭렵하며, ‘대박’을 꿈꾸다 ‘꽝’을 칠라치면 익숙하게도 마인드 컨트롤로써 이를 극복하곤 했던 이시대의 ‘진정한 꾼’들이기 때문입니다.
2. 여수 돌산에 도착한 게 오후 한시 반. 돌산입구에 간판 하나 없어도 북적대는 옷닭집이 있다는 걸 님들은 아시나요! 종종 ‘졸구섬’이라는 아뒤를 쓰는 친구의 모친이 하는 곳인데, 남도의 전형적인 음식맛에 더해 ‘돌산에서 태어나 돌산에서 자라고 돌산에서 늙어가는 고운 할머니’의 진정한 멋과 맛도 징하게 느낄수 있는 곳이랍니다. 이 집 옷닭을 먹을라치면, 지금은 몹쓸 치매에 흐려졌지만 늘 구수했던 어머님의 손맛이 생각나 돌아갈 땐 우정 하나씩 싸들고 가곤한답니다.
3. 두시. 군내에는 갈치유선이 두 척이 있습니다. 마음 씀씀이나 실력 모두 ‘괜찮은’ 분들입니다. 작년에 이어 한 집을 계속 타는 것은 일종의 귀소본능 같은 것에 불과할 뿐이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가 도착하자 저마다 배에 올라 채비에 분주합니다. 어촌 아낚네 같지 않게 하얀 선장 ‘마누라’가 만객의 즐거움으로 연방 흘려대는 흐뭇함을 귓가로 느끼며, 제각기 준비한 비장의 장비와 채비를 챙깁니다. 바늘은 물론이요 케미의 색까지 그리곤 특수제작된 10단 기둥줄에 이르기 까지 온갖 설레임이 뭍어나는 꾼들의 낙원입니다.
백도 동남 방향. 배는 세시간반을 쉼 없이 달렸습니다. 저지난해만 해도 지네 동네에서야 제법 폼 잡았을 터이지만 이제는 같은 여수 내에서도 빛을 바랜, 더욱이 침선배를 경험한 오늘의 꾼들에게야 말할 나위도 없이 ‘느린’ 이 배는 그래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아무리 자려해도 들어오는 밝은 빛과 자꾸만 눈떠지는 지루함 속에서도, 선장은 조금전에 계산해받아 넣은 선비의 만원짜리 돈뭉치가 바지춤사이로 전해주는 두툼함에, 넘실대는 파도를 엉덩이춤사래로 타고 넘으며 키를 잡고 있었습니다. 진정 참기 어려운 지루함도 마치 갈치같이 빛나는 시간의 한 토막입니다.
4. 그 끝은 다시 설레임이지요. 엔진소리가 변하면, 느닷없는 꼭두새벽 전화에 영덕에서 일하다말고 뛰어온 ‘홍알님’도, 얼떨결에 자칭 ‘정박사’를 따라온 초로의 객도, 낚시가 시작되면 그 너그럽던 성품은 연기처럼 흩어지곤 무섭게 휘몰아치는 ‘욕정’의 마법에 사로잡히는 ‘메주님’도, 새색시같이 편안한 ‘퍼시픽’, 거칠게 없이 늘 맨 뒤에 자리잡는 ‘무지개’, 바람 새는 웃음소리가 매력있는 '부니기'도; 우린 모두 세월 속에 꾸어왔던 꿈으로 분주했습니다.
아직 일곱 시. 중천에 떠있는 해엔 누구도 잡히지 않는 갈치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풍’ 피기 곤란해하는 선장을 볼라쳐도 그냥 웃기만 합니다. '갈치는 많고 시간이 길다'.
5. 그러나 시간이 열시를 넘기며 모두들 초조해지면서부턴 간간히 몰아치는 소나기조차 안중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물때가 조금이라 자꾸 휘말리는 ‘풍’, 그 넘을 바로 잡으려 수없이 자세를 고쳐잡는 이동에, 선장님 좋은 인상 때문에 참았던 투덜거림이 예서제서 절로 납니다. “클, 도대체 언제 자리잡아 언제 집어할꺼야 원...”
12시를 넘기면서는 선장은 아예 풍을 걷었습니다. 조금발 물이 약하고 바람이 없으니 가능도 할 법하다만, 그래도 걷물과 속물이 다르니 옆사람과 걸림이 심했습니다. 제법 고수연하는 사람들과 연이어 선 내 편에서도 연신 엉켜, 심지어는 선수과 선미의 '싹쓰리엉킴'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집어에 명백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속물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진행해야할 배가 서로 진행속도가 달라지자 갈치떼가 수심 10미터에서 70미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퍼진 것입니다. 선장은 연신 집어가 20미터와 40미터 두 곳으로 ‘잘’ 되었다고 말은 하였으나 그의 말엔 확신이나 자신감과 같은 윤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6. 그래도 선수는 있게 마련입니다. 언뜻 보아도 스스로 자수성가를 이룬 것 같은, 그의 삶처럼 언제나 변치 않는 노력으로 부지런한 메주님은 게으른 내게 시종일관 꽁치잇감을 챙겨주면서도 두 틀의 채비를 솜씨있게 다룹니다. 생김새와 말투는 달라도 노는 모습은 비슷한, 그래서 그런지 낚시를 본격적으로 할라치면 '동족'인 메주님과 서로 붙어있기를 꺼리는 무지개님도 맨 꽁무니에서 두 틀을 챙기며 연신 같이 온 동료들에게 내로라 잡았노라 자랑을 합니다.
7. 선수가 있으면 관객도 있게 마련. 조과가 시원찮은 나는 마치 갈치는 이제 그만 잡아도 된다는 투로 루어대를 들었습니다. 작은 한치들은 에기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소형 메탈에 어린 방어새끼와 만세기가 그야말로 환장을 합니다. 녀석들은 껍질이 두텁고 살이 단단해 게으른 꾼의 갈치 미끼론 금상첨화였구요. 건너편 홍알님도 슬그머니 이쪽을 기웃거리며 거듭니다. “이봐 늘보..... 루어대좀 이리줘바” 그 말 속엔 ‘메주님의 뽐뿌질에 놀아나’ 자다말곤 부랴부랴 경상에서 전라까지 넘어온 지난 피곤함과 해도해도 신통치않았던 간밤의 아쉬움이 그대로 뭍어 있었습니다.
8. 아침이 훤해질 무렵까지 선장은 돌아가잔 소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기대와 허무의 반복은 날이 새면서 초조함으로 변합니다. 멀미기가 있다던 무명님도 자신을 데려온 정박사 곁에서 연신 채비를 넣곤 고패질입니다. 그러나, 메주님과 무지개님은 벌써 가득찬 대장쿨러를 얼음보충으로 마무리합니다. 메주님은 쓸만한 다랑어까지 한마릴 덤으로 챙깁니다. 얼굴엔 득의가 가득했지만, 놈들로 말하자면, 늘 대물 사건을 터뜨리는 곽대박님의 가는 줄에 걸려 올라온 두 마리중 하나를 막무가내 가져온 것이지요.
9. 항구로 돌아오는 길은 채 30분도 안 걸렸습니다. 간밤의 긴 피로가 한꺼번에 몰리며 새벽 단잠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선착장의 부산한 언덕 조금 위로 선장네 쉼터가 있습니다. 창고를 개조하여 행색은 곧 쓰러질 듯하지만 전망은 그럴싸해 포구를 감싸고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언제나 그렇듯 선장댁은 문어죽을 마련해 놓곤 지친 꾼들을 달래줍니다. 하얀 얼굴이 달덩이 같아 맘씨 좋았던 우리 큰 누나가 떠오릅니다.
10.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습니다. 유난히 짐이 많은 갈치낚시. 버스에서 짐 꺼내랴, 차 돌려 실으랴, 광명역 D주차장 아랫녂은 아쉬움과 뿌듯함의 교차로입니다. 생김새만큼 인심 좋은 온누리님을 뒤로하곤 갈치 몇마리 넘겨받은 홍알님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태운 채 분당으로.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우리들 일상으로....
첫댓글 재미있보았읍니다 종종***올려주세요**수고하셧읍니다
간만에 후기다운 후기 잘~읽고갑니다 네가 낚시하는 착각속에.....시예시예
우리카페에 조행기 모처럼 올라 왔네요. 에프터 서비스가 좋군요. 매니아 클럽에 좋은분들 많아 늘 정이넘치고 함께하고픈 식구들 입니다. 자주 뵙었으면 합니다. 재밋게 잘 읽었네요. 휴가 잘 보내세요.
글 잘 보고 갑니다....즐건 시간이신듯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았던것 같네요..
실감나느 조행기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자주 부탁드려도될련지요....
갈치낚시의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멋진 조행기 입니다... 수고하셨네요!! 무더운 여름 즐겁게 보내세요 ^^
샘물님 소설 잘보았읍니다.....매번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갈때는 꼭 쿨러조황이 안되서 아쉽네요....매니아횐님들 모두다 쿨러조황을 기원하면서......
저도 1일 저녁 통영에서 출조하였습니다. 갈치 씨알은 좋은데 아직은 활성도가 덜한것 같아요. 수심층이 30-10까지 다양하고 간간히 한마리씩 입질에 열심히 했는데도 60쿨러에 반정도 조황입니다. 쿨러조황 하려면 한번에 3~4마리씩 줄을타야 하는데... 어찌보면 출조일에 운이 따라야 가능한가봐요.
이~~! 샘물님도 이런 재미난 조행기 쓸줄 아시네 ?^^ㅋㅋㅋ 재미난글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