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WBC대회에서의 동갑내기 3인방. 왼쪽부터 이대호, 김태균, 추신수이다. 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을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 gettyimages/멀티비츠 |
안녕하세요. 추신수입니다. 오늘은 일기를 통해 오는 11월 일본에서 개막되는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회 출전 여부와 관련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본과 대만에서 진행되는 야구대회에 대해선 오래 전 기사를 통해 접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메이저리그 시즌이 끝난 이후에 열리는 데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의 의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소중한 태극마크를 달고 싶습니다.
그동안 제가 말씀을 드릴 수 없었던 이유는 KBO를 비롯해 김인식 감독님, 또는 한국 기자분들 까지 단 한 분도 제게 이와 관련해 문의를 해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락도 없는데 제가 나서서 대표팀 문제를 먼저 거론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기자가 아닌 이곳 현지 기자들이라도 그에 대해 물어봤다면 분명한 입장을 밝혔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선 제가 대표팀 합류를 고사하거나 출전할 수 없을 것이란 기사가 계속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단 한 번도 대표팀 합류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보내는 첫 시즌이다 보니 구단에선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저도 새로운 팀이고 구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대표팀 출전을 강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FA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었고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왼 발목과 왼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하느라 8월 말에 시즌을 접었고, 수술과 재활로 아예 출전을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제가, 그래서 거액의 FA 계약을 맺은 제가 마치 한국대표팀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진데 대해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만 뽑히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고, 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대회인데, 왜 제가 그 소중한 기회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서 그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전 텍사스 레인저스가 아닌 한국대표팀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KBO를 비롯해 김인식 감독님께서 제게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올시즌 성적이 좋지 않다고 뽑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표팀에 들어간다면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배로서 제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개막전 상대가 일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잘해내고 싶습니다.
2009년 WBC대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김인식 감독님한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저를 끝까지 믿어주시고 기용해주셨습니다.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선수를, 주위의 비난이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뢰를 보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은 제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셨고, 묵묵히 제 이름을 라인업에 올리셨습니다. 덕분에 베네수엘라와의 4강전에서 3점 홈런과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이와쿠마를 상대로 동점 홈런을 터트리기도 했었죠. 사실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치 오래 전부터 스승과 제자였던 것 마냥 선수를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종 영상을 통해 손아섭, 박병호, 나성범 등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입니다. 제가 후배들의 기회를 뺏는 게 아니라면 그 기회, 잡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만 야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도 있습니다.
최근 현지 언론에서 저에 대한 트레이드설이 떠돌았습니다. 전 지금도 이 팀을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나도는 것 자체가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기분 나쁘기 보단 팀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했을 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8번 타순에 나서 투수를 상대하기도 했습니다. 8번 타순이라고 속상해 하고, 안타깝기 보단 8번 타순에서라도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며칠 있으면 올스타전 브레이크입니다. 시즌 전반기 동안 몸 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던 시간이었는데, 며칠만이라도 힐링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대표팀은 남다른 의미이다. 사진은 2009 WBC대회 4강전 베네수엘라 경기에서 추신수가 3점 홈런을 터트리고 세리머니하는 장면이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