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上
一. 佛國品(불국품)
2. 보살대중의 덕행
5) 보살대중의 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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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無等等의 佛自在慧와
十力無畏와 十八不共이며
關閉一切諸惡趣門 하되
而生五道하야 以現其身하며
爲大醫王하야 善療(료)衆病하되
應病與藥하야 令得服行하며
無量功德을 皆成就하고
無量佛土를 皆嚴淨하야
其見聞者가 無不蒙益(몽익)하고
諸有所作을 亦不唐捐(당연)하야
如是一切功德을 皆悉具足이니라
누구와도 대등함이 없는
부처님의 자재한 지혜와
열 가지 힘과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특별한 법[不共]에 가까이 하였다.
일체의 모든
악한 갈래의 문들을 다 막아버렸으나
다섯 갈래의 길에 태어나서 그 몸을 나타낸다.
큰 의사가 되어
온갖 병을 잘 치료하는데
병에 맞추어 약을 주어 잘 복용하도록 한다.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고
한량없는 국토를 다 청정하게 장엄한다.
보고 듣는 사람들은 다 이익을 얻고
모든 하는 일들은 또한 헛되지 않아
이와 같은 일체공덕을 모두 다 구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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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
부처님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無比]!
누구와도 대등함이 없는 분[無等等]!
저절로 그러하게 깨달으신 분[自然覺者]!
세간을 초월한 바른 지식을 가진 분[超世正知]!
지혜의 바다[智海]! 등으로도 표현합니다.
부처님은 여러 가지 능력 중에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가 가장 큽니다.
“열 가지 힘[十力]”
이라는 것도 역시 지혜의 힘 입니다.
1.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도리와 이치가 옳고 그른 것을 다 아는 지혜의 힘!
2.
業異熟智力(업이숙지력)!
일체중생의 3세 업보를 다 아는 지혜의 힘!
3.
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
여러 가지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다 아는 지혜의 힘!
4.
根上下智力(근상하지력)!
중생들의 근기가 높고 낮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
5.
種種勝解智力(종종승해지력)!
중생의 여러 가지 지해(知解)를 아는 지혜의 힘!
6.
種種界智力(종종계지력)!
중생의 여러 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
7.
遍趣行智力(변취행지력)!
여러 가지 행업(行業)으로
어디에 가서 나게 되는 것을 아는 지혜의 힘!
8.
宿住隨念智力(숙주수념지력)!
숙명통으로
중생의 가지가지 숙명을 아는 지혜의 힘!
9.
死生智力(사생지력)!
천안통으로
중생이 죽어서 태어날 때와
선한 곳과 악한 곳을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
10.
漏盡智力(누진지력)!
온갖 번뇌와 습기를 영원히 끊어 없애는 지혜의 힘!
“부처님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어떤 악한 사람을 만나거나 설법을 하더라도
전혀 의심하거나
두려울 것 없이 당당하다는 뜻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四無所畏(4무소외)가 있습니다.
1.
正等覺無畏(정등각무외)!
깨달아 정각에 오르는데 두려움이 없다!
2.
漏永盡無畏(누영진무외)!
온갖 번뇌를 끊어 두려움 없다!
3.
說障法無畏(설장법무외)!
설법하는데
비난을 받는 장애가 있어도 두려움이 없다!
4.
說出道無畏(설출도무외)!
고통을 끊어 해탈에 이르는
四諦와 八正道를 설하는데
장애가 있어도 두려움이 없다!
“열여덟 가지 특별한 법[十八不共法]”이란
부처님께만 있는 열여덟 가지 공덕법입니다.
二乘(이승)이나 보살에게는
공통되지 아니하므로 불공법이라 합니다.
1.
身無失(신무실)! 몸이 실수가 없고!
2.
口無失(구무실)! 입이 실수가 없고!
3.
의무실(意無失)! 생각이 실수가 없고!
4.
무이상(無異想)! 두 가지 생각이 없고!
5.
無不定心(무부정심)! 선정을 여읜 마음이 없고!
6.
無不知已捨(무부지이사)!
알고서 버리지 않는 것이 없고!
7.
欲無減(욕무감)!
하고자 하는 욕망이 줄어듦이 없고!
8.
精進無減(정진무감)! 정진이 줄어듦이 없고!
9.
念無減(염무감)! 억념함이 줄어듦이 없고!
10.
慧無減(혜무감)! 지혜가 줄어듦이 없고!
11.
解脫無減(해탈무감)! 해탈이 줄어듦이 없고!
12.
解脫知見無減(해탈지견무감)!
해탈지견이 줄어듦이 없고!
13.
一切身業隨智慧行(일체신업수지혜행)!
온갖 몸으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4.
一切口業隨智慧行(일체구업수지혜행)!
온갖 말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5.
一切意業隨智慧行(일체의업수지혜행)!
온갖 뜻으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6.
智慧知見過去世無礙無障
(지혜지견과거세무애무장)!
지혜로 지나간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고!
17.
智慧知見未來世無礙無障
(지혜지견미래세무애무장)!
지혜로 이 다음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고!
18.
智慧知見現在世無礙無障
(지혜지견현재세무애무장)!
지혜로 지금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은 여래의 경지에
거의 가까워졌다는 것은 큰 德行입니다.
보살에게 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악도의 중생을 제도하려면
일부러 악도에 몸을 나타내야 합니다.
지장보살이
자신에게 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지옥에 가서
지옥의 중생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스스로 서원하기를,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다섯 갈래[五道]”란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입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지옥의 삶을 살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루에도
온갖 곳을 윤회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입니다.
보살은 그와 같은 것이 없으나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그런 곳에 몸을 나타냅니다.
부처님과 관음보살을
훌륭한 의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師表(사표)인 보살은
당연히
세상 사람들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모두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중생의 갖가지 병을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應病與藥(응병여약)하고
離苦得樂(이고득락)하는 종교라고 합니다.
『유마경』의 설법인연이
바로 스스로 병이 있음을 보여서
중생의 병을 다스리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應病與藥”은
『유마경』명언 중에 하나입니다.
불교적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보살로 사는 삶입니다.
보살로 사는 삶은
우선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여야 합니다.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려면
자나 깨나 일체공덕을 모두 다 닦고 지어야합니다.
보살이 지은 공덕으로
세상을 청정하게 장엄하게 됩니다.
신라 선덕왕 때
석장사에 살았던 良志(양지)스님은
재주가 뛰어나서
영묘사 丈六三尊像(장육삼존상)과
천왕상을 조성하였고
법당과 목탑의 기와 무늬도 새겼습니다.
또 천왕사의 목탑 밑 팔부신장과
법림사의 삼존불과
좌우 金剛力士(금강역사)도 조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많은 불사를 하면서
함께 흙을 나르고, 기왓장을 운반하는
수많은 僧俗(승속)에게
양지스님이 鄕歌(향가)를 지어
부르게 하기도 하였는데요.
그때 부른 향가는
불교의 인생관과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일종의 勞動謠(노동요)와 같아서
매우 짧지만 뜻은 충분히 담겨있는 향가입니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더라.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
이렇게
단 다섯 개의 낱말에 네 줄 뿐이지만,
인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영원히 온다는
불교적 三世觀(3세관)과,
이 세상에 와서 보면 인생은
서러운 것.
즉 苦海(고해)요, 火宅(화택)이라는 사실과
그 서러운 현실은 우리 모두 다 같다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서러운 현실이지만
미래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부지런히 공덕을 닦으며 살아야 한다는
불교적 인생관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한마디로
공덕을 닦으며 살아가라는 가르침 입니다.
내가 닦는 공덕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나아가서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보살은 그를 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을 듣는 사람도 모두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를 예배하고 공양하고 공경하면
역시 큰 공덕이 되어 결코 헛되지 않을 겁니다.
懶翁(나옹)화상 발원문의
“나의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해탈을 얻어지이다.
[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
라는 뜻과 같습니다.
『유마경』을 설하는 法席(법석)에 모여
법문을 듣는 보살들의 그 덕행은
위에서 길게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법문을 들으려고
모인 대중들의 덕행과 수준을 보면,
어떤 수준의 설법이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법은 언제나
청중들의 근기와 수준을 잘 살펴서
이익이 되도록 해야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는 설법이 됩니다.
출처: 무비스님의 염화실 카페
http://cafe.daum.net/yumhwas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