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국가(愛國歌)와 국가(國歌)는 다른가
‘애국가’라는 말은 나라 사랑의 노래라는 뜻이다. 애국가는 본래 고유명사였으나,
구한말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즉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사랑하자는 노래가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애국가란 어느 한 노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나라 사랑의 뜻을 지닌 모든 노래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중의 한 곡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로 남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므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가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國歌)라는 이름이 붙어야 국가는 아니다.
미국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s & Stripes Forever)는 1896년 미국 작곡가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미국의 애국가이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도
프랑스 혁명 당시에 불린 <마르세유(Marseille)의 노래>라는 애국가가 국가로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고종 황제 시절 국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에 의해 당시 군악대장으로 조선에 와 있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가 1902년에 만든 국가가 있었다.
그 제목을 <대한제국 애국가>(大韓帝國 愛國歌)라고 하였으니 우리나라 공식적인 최초의 국가조차 애국가의 일종인 셈이다.
에케르트는 우리나라에 건너오기 전 일본에서도 군악대를 지도하며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작곡하였는데,
이 또한 ‘군주의 치세’라는 제목을 가진 일본의 애국가였다.
그러므로 애국가와 국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며,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국가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애국가는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가로 준용하였고,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공식 연주되고 국가로 공인된 노래이다.
에케르트가 만든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번 개작되었는데, 에케르트가 사용한 1902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上帝)는 우리나라를 도으쇼셔 / 반만 년 오랜 역사 배달민족 / 영원히 번영야
/ 해달이 무궁하도록 / 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 /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 반만 년 오랜 역사 배달민족 / 영원히 번영하여
/ 해와 달이 무궁하도록 / 성지동방의 원류가 곤곤히 /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2.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의한 애국가
<애국가> 가사가 만들어진 것은 약 110년 전의 일이다.
애국가 가사는 1935년 11월 안익태가 지금의 멜로디를 작곡하기 전부터 불렸는데,
이때의 곡조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에 맞춘 것이었다.
이 멜로디는 현행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곡조이다.
1914년 7월 독립운동가 이동휘, 계봉우 선생에 의하여 세워진 북간도 소재 광성중학교에서 등사본으로 만들어져서
음악교재로 사용된 『최신창가집』(最新唱歌集)에는 이 곡조에 의한 애국가 악보가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주목할 것은 이 애국가의 제목을 <국가>라고 한 것이다.
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우리나라 음계와 마찬가지로 5음 음계로 되어 있어서 부르기 편하고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없다. 그래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3·1운동 때에도 애국가는 이 곡조로 애창되었다.
스코틀랜드 방언 올드 랭 사인은 영어로 ‘Old Long Since’이며, 우리말로는 ‘오랜 옛날부터’라고 할 수 있다.
3. 현행 <애국가> 가사가 수록된 최초의 책 『찬미가』
현행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는 최초의 책은 윤치호 역술(譯述)로 1908년(융희 2년)에 발행된 『찬미가』(재판)이다.2
이 책에는 제1, 10, 14장에 각각 다른 가사의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다. 『찬미가』는 공식적인 찬송가는 아니었지만,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제1장은 “우리황상폐하”로 시작하는 애국가인데, 제목은 ‘KOREA’로, 곡명(Tune Name)은 ‘AMERICA’로 기록되어 있다.
멜로디는 현행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의 곡조와 같은데, 이는 영국 국가의 멜로디이다.
제10장은 “승자신손 천만년은”으로 시작한다. 제목은 영어로 (애국가)라고 하였고, 곡명은 ‘AULD LANG SIGN’이다.
애국가의 일종인 이 노래가 예전에는 <무궁화가>로 알려졌는데, 이는 후렴 부분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였기에 붙은 이름이다.
제14장은 제10장과 제목(Patriotic Hymn)이나 곡명(AULD LANG SIGN)이 동일하다.
그리고 후렴 부분(무궁화 삼천리…)도 일치한다. 그러나 가사의 첫머리가 지금의 <애국가>와 같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한다. 즉 현행 <애국가> 가사의 원형인 셈이다. 옛 가사대로 소개한다.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2. 남산 우헤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
3.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 업시 높고 /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긔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 괴로우나 질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위의 가사 중 현행 <애국가> 가사와 다른 부분은 1절의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2절의 “남산 우헤”와 “바람이슬”,
3절의 “구름 업시 높고”, 4절의 “님군을 섬기며 괴로우나 질거우나” 등이다.
4. 찬송가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애국가>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찬송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찬미가』가 찬송가라는 것은 그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실린 찬송가의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기독교 예배를 위한 찬송가책(冊) 임이 증명된다.
총 15장의 찬송가 가사를 현행 찬송가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윤치호의 찬미가 가사 현행 찬송가 가사 곡명 또는 영어 가사
1장 우리 황상 폐하 피난처 있으니 AMERICA
2장 나 사랑하난 예수 비바람이 칠 때와 JESUS LOVES OF MY SOUL
3장 성재 성재 성재 거룩 거룩 거룩 HOLY HOLY HOLY
4장 서라 십자가 군사 십자가 군병들아 STAND UP FOR JESUS
5장 벳네헴 새벽별은 천사 찬송하기를 HARK THE HERALD
6장 아참 날이 도드니 아침 해가 돋을 때 THE MORNING LIGHT IS BREAKING
7장 일하세 밤 되나니 어둔 밤 쉬 되리니 WORK FOR THE NIGHT IS COMING
8장 내 믿고 발아난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 MY FAITH LOOKS UP TO THEE
9장 그리스도 군사 앞서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ONWARD, CHRISTIAN SOLDIERS
10장 승자신손 천만년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AULD LANG SINE
11장 귀하다 우리 맘 주 믿는 형제들 BLEST BE THE TIE
12장 쥬를 밋난 자의 견고한 터가 (한국 찬송가에 없음) HOW FIRM A FOUNDATION
13장 해는 지고 밤은 갓가오니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ABIDE WITH ME
14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AULD LANG SINE
15장 끄릴난 어름산과 저 북방 얼음산과 FROM GREENLAND'S ICE MOUNTAIN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라는 가사를 담은 애국적 찬송가로 만들어졌고,
『찬미가』에 처음 수록되었다.
5. 남의 나라 국가는 부르고 <애국가>는 안 부르는 한국교회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찬송가에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예배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의 나라 국가는 찬송가로 열심히 부르고 있는 현상은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남의 나라 민요나 국가도 가사를 달리하여 얼마든지 찬송가로 전환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의 민요로 찬송가를 만들어 부를 줄 모르고,
<애국가>를 찬송가로 활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현행 한국의 찬송가에는 영국 국가와 독일 국가가 포함되어 있다. 영국 국가는 앞서 말한 대로
70장 <피난처 있으니>이고, 독일 국가는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곡명: AUSTRIAN HYMN)이다.
『통일찬송가』(1983)에는 이 멜로디에 <시온성과 같은 교회>라는 가사 외에도
<예수님의 귀한 사랑>(127장)이라는 가사가 따로 실려 있었다.
또 『통일찬송가』에는 러시아 국가도 있었는데, 77장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멜로디이다.
이 러시아 국가는 원래 찬송가로 먼저 만들어진 것이고, 나중에 “전능의 하나님 왕 되신 주님”(God the Omnipotent! King,
who ordainest)이라는 가사를 그대로 하여 러시아 국가로 불리게 된 애국가의 일종이다.
이 노래는 러시아의 헨리 콜리(Henry F. Chorley, 1808-72)가 1844년에 쓴 가사와
후에 존 엘러튼(John Ellerton, 1826-93)이 1871년에 첨가한 가사가 합쳐진 것이고,
멜로디는 1833년 러시아의 음악가 알렉시스 페오도로비치 르보프(Alexis Fyodorovich Lvov, 1798-1870)가 붙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49년에 발행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연합의 『합동찬송가』에는 위의 국가들 외에
379장 <믿음의 좋은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는 찬송가의 제목과 가사 첫줄이 달랐는데 가사는 “보아라 십자가의 군기 높이 번득거리는 것을”로 시작한다.
이 곡은 프랑스혁명 당시 대위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1760-1836)이
1792년에 작사, 작곡한 애국적 군가였다.
6. <애국가>를 찬송가로 불러야 한다
우리의 <애국가>는 찬송가로 만들어졌고, 『찬미가』에 처음 실렸고, 예배시간에 불렸다.
<애국가>를 불렀던 당시의 교회는 많은 민족지도자들을 배출시켰으며, 3·1운동의 주역으로 독립을 외쳤다.
교회는 민족이 기댈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는 교회 안팎에서
울려퍼진 민족의 믿음이요 소망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현장에서 <애국가>가 불리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애국의 정신이야말로 신앙의 기본이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신앙의 발로이다. 교회와 민족이 점점 유리되어 가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애국가>를 부르며 민족혼을 일깨우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문성모 | 독일 뮌스터 대학(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에서 예배학을,
오스나브뤼크 대학(Universität Osnabrück)에서 음악학을 연구(Dr. Phil.)했다.
대전신학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초빙교수이다.